소설리스트

8화 (8/14)

“그만 좀 해. 너는 섹스 자체가 기행이야.”

“누가 기행이래?”

“너처럼 소리 지르고 이상한 짓 하면서 섹스 하는 놈들이 어디 있냐?”

“내가 뭐 물구나무를 서면서 했나? 이상한 기계로 쑤셔달라고 했어? 뭐가 기행이냐 기행이?”

“네 행동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 나까지 이상한 놈으로 만들잖아.”

“그러니까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넌 섹스가 장난이냐?”

화가 난 듯한 민후가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그의 허벅다리 위에 앉아 있던 내가 몸을 물렸다. 똑바로 눈을 마주쳐오는데 

나 역시 피할 이유가 없다. 물론 긴 행위의 끝에 서로 정점에 다다른 육체를 통한 영혼의 교감을 나눈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지 놈의 젖꼭지를 쿡쿡 찔러댄 것이 결코 그 교감을 무시하는 장난질은 아니란 말이다. 섹스 했다고 해서 

수줍어하면서 볼이라도 붉혀야 한단 말인가. 

“나한테만 이러는 거지.”

“모올?”

“이런 장난질, 나한테만 이러는 거지?”

장난질이 아니라니까는. 국정교과서식의 학문을 닦아온 녀석은 세뇌 받은 진리를 진리라고 믿고 있다. 그 편견을 어떻게 

부셔주어야 할까. 학문하고 항문을 구분하지 못하는 세상의 진리를 익혔구나.

떼 지어 밀려오는 군중에 민후가 속해 있다니. 오호, 통재라. 

“나는 이게 좋아. 소리도 내 마음대로 지를 거고, 네 몸이 맛있으면 빨아먹을 거고,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할 거야. 

너는 이게 분위기 깨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니야. 이건 분위기 깨는 게 아니야. 내 섹스는.”

“네놈의 섹스엔 애정이 없어.”

“…….”

“너 날 보면 가슴이 떨리냐? 내가 연락이 안 되면 내가 걱정되기는 하냐?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자는지 덥다고 배 다

 내놓고 에어컨 바람에 감기 드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 그런 걱정 해봤어?”

“백민후. 설사 나모르게 우리가 애인이 되었다고 해도 그런 걸 나한테 강요하지 마.”

“강요? 이건 강요가 아니야, 네가 정말 내 애인이라면 당연히 드는 감정이라고!”

“그러니까 그런 걸 당연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네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나한테는 당연하지 않으니까.”

“비켜!”

제 몸 위에 올라타 있는 나를 밀치고 일어선 녀석이 씩씩거리더니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곧 물줄기 쏟아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쏴아아- 비가 내리는 소리 같다. 눅눅해진 침대에 풀썩 엎어졌다. 베개에 얼굴을 묻는데, 하얀 베개 

위에 민후의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져 있다. 나는 그 얇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까만 머리칼은 비단실처럼 

가느다랗고 부드러워 보인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백민후가 소리친다. 나모르게 애인이 됐다고? 다시 쿵.

 하며 주먹으로 벽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머리카락을 들고 내 얼굴을 간질여보았다. 머리카락의 끝을 이마에 코에

 입술에 대어 움직이자 간질간질 얼굴이 간지럽다. 아무것도 닿지 않은데 저 혼자 간질간질 한 것 같다. 에어컨 바람에 

젖은 몸이 식으며 오한이 인다. 손을 침대 밑으로 뻗어 머리카락을 버리고 시트를 끌어 당겨 몸을 덮는다. 몸을 둥글게

 웅크리자 하얀 시트가 나를 중심으로 회오리 모양이 되어 얽힌다. 씻고 나온 민후를 흘깃 바라보았다. 추위에 떠는 내

 모습에 민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녀석의 사타구니에 저절로 시선이 간다. 몹시도 단단할 것 같다. 가끔 입으로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한번도 해본적은 없다. 

“추우면 에어컨을 꺼.”

바보에게 설명하는 투다. 침대 바로 위쪽 벽에 달려 있는 에어컨이 띠리릭 소리를 내며 꺼진다. 리모컨을 소리 나게 내려

놓고 녀석이 털썩, 침대위에 앉는다. 나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조금 거세졌는지 멀리서 보이는 현수막이 

푸들푸들 떨고 있다. 태풍이, 태풍이 가까이 왔는가보다. 시트를 끌어당겨 어깨에 뒤집어씌운 후 가슴 앞으로 여미며

 일어섰다. 녀석이 앉아 있어 시트가 끌리지 않아 힘주어 끌어당겼다. 또 뭐하냐는 얼굴로 민후가 돌아본다. 시트를 질질

 끌고 창문 앞으로 갔다. 밑을 내려다보니 손톱만한 닌자가 어둠 속에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무언가 희끗한 것들이 공

중에서 들썩거리는데 꼭 날개를 접질린 새처럼 높게 치솟았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고개를 드밀고 자세히 살펴보니 

신문지다. 민후가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저도 창밖을 내다본다.

“바람 심하게 부는 것 같네.”

중얼거리면서. 우리는 창문가에 서로 기대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머리채를 바람에 휘어 잡혀 한곳으로 한쪽 방향으로 몸체를 기우뚱하게 숙이고 있는 가로수를 보니 태풍이 지척에 온 것 같다. 나는 민후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보았다. 민후의 시선은 거친 바람이 심상찮은 창밖을 바라보며 그저 내 어깨와 등을 쓸어줄 뿐이다. 

“야.”

“왜.”

“오늘 일기예보 봤어?”

“그딴 걸 뭐하러 봐.”

신경질 냈다가 다정했다가. 어제 만난 민후와 오늘 만난 민후는 또 성격이 달라진다. 이중인격자. 다시 일기예보에 관해 

이야기했다가는 나를 밀쳐버릴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욱 파고들었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맞닿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어째 바깥의 거친 바람소리에만 귀가 쏠린다. 태풍을 동반한 장마전선의 바람. 

팡이실과 포자가 회오리치고 있다. 

“야.”

“왜.”

“야.”

“왜.”

똑같은 굵기, 똑같은 어조로 묻고 대답한다. 민후는 다시 왜 하며 내게 고개를 숙이고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져 있는 내 

머리를 비스듬히 돌렸다. 그 상태로 녀석의 턱을 내려 입을 맞추었다. 쪼오옥. 입술을 떼고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민후가 날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너만 보면 짜증나, 귀여운 척 좀 하지 마.

“저기, 내일 또 올 거야?”

“왜.”

“올 때 치즈케이크 사오라고. 먹고 싶어.”

“처먹고 싶으면 니가 사먹어.”

“민후가 사주는 거 먹고 싶어.”

응? 그렇게 쳐다보자 녀석이 귀찮다는 듯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귓전에서 부는 

것처럼 바람은 깃발 나부끼는 소리로 팔랑거린다. 먼지 같은 흙냄새가 조금씩 번진다. 비가 올 것 같다. 태풍이 아주 

가까운 곳에 왔다. 일기예보를 보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다. 

민후에게 단단히 일러 아침 일곱 시 삼십분에 눈을 떴다. 둘 다 비몽사몽으로 좁은 욕실에 들어가 같이 샤워를 했다. 

물줄기를 맞을 때도 나는 졸고 있었다. 지각하면 조영인이 또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아침도 먹지 않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태풍은 또 밤에만 왔다가 저 혼자 스러졌다. 비온 뒤 갠 하늘은 청명하고 높아서 꼭 가을하늘 같았다. 비에 젖은 사위는

 서늘하게 촉촉했다. 닌자에 시동을 걸며 올라탔다. 재빠르게 행동하는 내가 못 마땅한지 민후는 내내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고 있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줄게. 민후가 훌쩍 내 뒤에

 올라타 허리를 꽉 끌어안는다. 일부러 아주 세게 으스러질 정도로 끌어안는다. 으악,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출발했다.

 근처 버스정류장에 녀석을 내려주고 말했다.

“치즈케이크! 알았지?”

“알았어, 임마. 빗길 조심해. 엎어져서 대가리 깨져가지고 뒈지지 말고.”

민후가 헬멧 쓴 내 머리를 잡고 럭비공처럼 흔들어댔다. 알았어, 대꾸하곤 부아앙 닌자를 몰았다. 버스정류장이 한달음에 

멀찍이 물러선다. 아, 이 얼마나 오래간만의 아침 공기인가. 비에 젖어 공기까지 젖어버린 청명한 느낌을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끌어안아보았다. 다크 그레이로 물든 도로 위에는 알록달록한 색상들의 차들이 사열시킨 군대처럼 늘어서있다. 

줄을 못 맞추고 비뚤어져 있는 차들은 어딘지 모르게 정신박약아처럼 보인다. 나는 그 사이를 요리조리 헤집으며 달렸다.

일부러 더 요리조리 헤집으면서 닌자의 엉덩이를 흔들었다. 마치 내가 벌이 된 것 같았다. 앵앵,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 독침을 품고 있는 벌이 된 기분으로 날렵하게 달려 어느새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닌자를 잘 세워두고 열쇠고리를 손

가락으로 빙빙 돌리면서 올라갔다. 시계를 보니 여덟시 오십일 분. 아마 조영인이 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초조하게 시간이

 어서 흐르기를 고대하고 있으리라.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파에 앉아 나를 지키고 있던 조영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시계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턱을 손가락으로 긁적인다. 나는 조영인에게 걸어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조영인이 

일어나며 오냐. 대꾸하고는 제 사무실로 들어간다. 때로는 바른 생활도 즐겁다. 그날 조영인은 암실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마 내 사진을 인화하고 있으리라. 나는 불안해서 암실 앞을 우왕좌왕 걸어 다녔다. 그리고 가끔 일은 잘 되

느냐고 똑똑 노크를 해보았다. 문 열지 말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조영인이 나는 심히 걱정되었다. 안에서 고꾸라졌을까,

 어두운데서 머리를 부딪치진 않았을까. 현상액을 엎지르진 않을까. 정착액을 쏟지는 않을까, 내 필름을 환수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왔다 갔다 정신없이 움직였다. 가끔씩 문을 발로 뻥뻥 차버릴까 

발돋움을 했지만 차지는 못했다. 조영인은 밥도 안 먹고 암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오후가 되서야 나와서는 나를 보고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툭 던졌다. 뭐요, 하고 쳐다보니 샌드위치를 사오란다. 근처 제과점에 뛰어가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들고 조영인에게 뛰어갔다. 제 사무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조영인은 장거리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나른해했다. 내가 샌드위치를 내밀자 한숨을 쉬며 포장을 뜯었다. 

“뭐했어요?”

“암실에서 뭘 하냐. 사진 뽑지.”

“그래요?”

“가서 커피나 끓여와.”

나는 또 잽싸게 나가 커피를 대령했다. 조영인의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 하면 사진을 환수할 수 있을지 교묘한 술책을 

떠올려보려 했으나 뾰족한 수가 생각나질 않았다. 두툼한 샌드위치를 몇 입에 다 해치운 조영인이 커피를 마시며 입을 

다셨다.

“저기요, 선생님. 암실에서 사진 뽑았어요?”

“그렇다니까. 너 할일 없냐?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왜 그래, 보는 사람 불안하게.”

“아니요. 기냥.”

조영인은 내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을 보면서도 별 말 하지 않았다. 나는 괜히 렌즈를 헝겊으로 닦으면서 중얼중얼 거렸다. 

렌즈는요, 여자 같아요. 자꾸 닦아주고 만져줘야지 좋은 사진을 내놓거든요. 그래서요, 잘 닦아줘야 되어요. 깨끗하게요, 

뽀득뽀득요. 반질반질하게요. 때로 나는 내가 교묘한 화술을 할 수 없는 단순한 인간이라는 것이 짜증스러울 데가 있다.

 아마 조영인같은 인간이 조영인에게 걸렸다면 조영인은 교묘한 화술을 구사하며 제 이득을 애저녁에 취했을 텐데. 

“렌즈는 그런 거거든요. 근데요, 사진은 뭐 다 뽑았어요? 사진 뽑은 건 나 시켜도 되는데 말이에요. 뭐, 사진은 어디, 

암실엔 없던데. 치웠나 봐요?”

“왜, 보고 싶냐?”

“아니요. 보고 싶긴요. 그냥요. 선생님의 어시로써 제가 충고해드릴 부분이 있을까 해서. 안타깝지만 보고 싶은 건

 아니고요. 제 프로패셔널 한 정신이라고나 할까요. 절대, 보고 싶다거나 뭐, 없앤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없앤다고?”

에엑? 나는 어느새 진심을 발설해버린 내 못난 입술을 짝짝 때렸다. 그리고 또 어느새 그의 렌즈를 다 닦은 후였다.

 마지막 렌즈를 장식장에 올려놓고 조영인을 돌아보았다.

“그냥, 그런 건 아니고요. 선생님,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됐어.”

“그러지 마시고요. 제가 야무지게 주물러드릴게요.”

그의 의자 뒤로 걸어가 조영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책상 위 그리고 책상 아래, 반쯤 열려진 서랍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 어깨를 주물럭거리면서 말했다. 어깨에 근육이 너무 뭉쳐있어요. 스트레스 받는 거 있어요? 스트레스는 인류의 적이에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암세포가 빨리 증식한대요. 생로병사에서 그랬어요. 내 조잘거림을 말없이 듣고 있던 조영인이 

나지막이 말했다.

“기대이상이야.”

“네?”

“기대 이상이었어.”

그의 어깨를 꼬집 꼬집 주물렀다. 조영인이 턱을 들어 나를 바라보고 인상을 썼다. 풀죽은 강아지가 되어 다시 사뿐사뿐 

그의 어깨위에서 손을 놀렸다. 내 벌침을 조영인에게 쏴버려야겠다. 아니면 태풍이 불 때 태풍의 눈으로 밀어 넣어버려야지

.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데 조영인이 피곤한지 고개를 꾸벅꾸벅 조아리기 시작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듯이 조영

인의 잠을 부추겼다. 사람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잠에 소록소록 빠져드는 것 같다. 나는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어루만

져주었다. 그리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졸려요? 잠 와요? 자고 싶어요? 잠들었어요? 자냐? 조영인의 고개가 완전히 숙

여졌을 때 나는 그의 책상 서랍을 쓰윽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서류 봉투를 조심조심 열어보았다. 하나씩,

 하나씩 뒤지는데 사진이 보이지가 않는다. 도대체 어디다가 숨긴 거지. 초조함을 느끼며 다른 서랍도 쓰윽 열어보았다. 

조영인이 깰까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다 뒤졌는데도 사진이 없다. 

“여기 없어.”

실망스런 얼굴로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조영인의 목소리에 팔짝 튀어 올랐다. 조영인이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긴다. 휘청거리다 그의 무릎 풀썩 앉아버렸다.  

“귀엽다, 귀엽다 봐줬더니 아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오고 있어.”

“놔요. 사진 어디 있어요? 왜 남의 사진 함부로 찍고 그래요.”

“대신 안 건드렸잖아.”

“그게 더 싫다고 했잖아요.”

“이상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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