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4)

나는 잔뜩 긴장해서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영은누나의 날씬한 두 다리를 보면서. 검은색 하이힐을 신은 영은누나가 

의자에 앉아 드륵드륵 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가끔씩 책상 밑에 나를 내려다보며 눈을 찡끗찡끗 해 보인다. 좁은

 책상에 목을 푹 꺼트리고 구겨져 있으려니 다리가 저리고 목이 뻐근하다. 조영인 저 변태 놈이 아까부터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못 봤어?, 이 새끼 어디 갔어?, 야!, 너 어디 숨었어! 도망 못 가게 하루 온종일 입구 소파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감시하더니 다들 퇴근하는 이 시간까지 나를 찾아다니고 있다. 6층 건물에서 뛰어내렸을 리는 없으니 내가 어디 숨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숨었지만. 촬영장, 암실, 화장실, 비상계단, 탕비실, 응접실. 어디고 할 것 없이 6층을 이 잡

듯이 뒤져대며 소리를 지른다. 나는 영은누나의 하이힐 코를 손가락으로 눌러보았다. 여자들의 하이힐은 때로 억압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 같다.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 어떠한 보수성이 하이힐은 여자들의 전족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발가락을 건드리니 영은누나가

 하지 말라는 듯 하이힐 코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임영은, 그 새끼 못 봤어?”

“못 봤는데. 왜, 무슨 일 있어?”

“도대체 어디로 토낀 거야.”

“왜 무슨 일인데.”

나는 너구리굴에 손을 마구 넣어 휘저어대는 인간을 마주하는 너구리처럼 책상 밖 상황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무어라고 구시렁거리던 조영인의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갔나, 하며 고개를 빼보는데.

“으악!”

“뛰어봤자 벼룩이지. 이 벼룩아.”

갑자기 눈앞에 와락 쏟아지듯 들이민 조영인의 얼굴에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웬만한 공포영화 버금가는 충격 장면이다

. 배신자 영은누나가 손가락으로 자기 책상 아래를 가리키며 못 봤는데, 라는 소리를 지껄이는 줄도 모르고 나는 조영인이

 포기하고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조영인이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겼을 때 내 몸은 흙

 속에 파묻혀 있던 감자 줄기처럼 그의 팔에 딸려 올라갔다. 승리의 기색이 만면한 얼굴을 뒤로하고 영은누나를

 쳐다보았다. 뭐가 웃긴지 키득키득 웃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한스럽게 쳐다보며 조영인에게 질질 끌려갔다. 조영인은 

나를 끌고 나가면서 말했다. 퇴근합니다. 조영인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뭐요, 하고 쳐다보니 키 내놔. 이런다.

 주머니를 뒤져 오토바이 키를 건네주었다. 

“닌자 운전할 줄 알아요?”

“타기나 해.”

차주인 내가 졸지에 조영인의 뒤에 올라탔다. 조영인은 헬멧을 쓰더니 경고도 없이 갑자기 출발한다. 휙하고 뒤로 쏠리는

 몸에 기겁을 하고 조영인의 허리를 껴안았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조영인이 제발 내 닌자로 사고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빌고 있었다. 아무리 레이서용 닌자라도

 이렇게 위험하게 달리면, 히익.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느낌에 감은 눈을 아예 뜨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생전 처음 와보는, 조영인의 아파트였다. 조영인은 지하 주차장에 내 닌자를 세웠다. 그리고 내 손목을 절대 놓지 않았다.

 닌자의 키도 제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주변을 살피며 도망갈 기회만 엿보고 있던 나는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린 

오토바이 키에 망연자실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의 공간은 내 오피스텔보다 세 배는 넓어 보였다. 나도 좀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면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개조를 한 것인지 한 쪽 벽의 절반이 수조로 되어 있다.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위로는 높으나 사이가 좁은 수조 안에서 꼬리를 치며 유영하고 있었다. 조영인은 내가 들어서자 문을 잠군 후에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나는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도 잊은 채 벽에 그리고 허공에 매달려 있는 그의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가을 운동장

의 만국기처럼 거실의 쳐 놓은 줄에 사진이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이건 무슨 퍼포먼스예요?”

“그냥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씩 걸어두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나는 걸려 있는 사진들을 하나씩 지나치다 뒤에 써 있는 글귀를 읽어보았다. 

‘12.25 정동진, 오지 않는 기차.’ 

‘05.07 유치원의 병아리들. 신선한 수액이다.’

‘10.20 치졸한 조급증일까. 

‘07.24 오 계절들아, 오 성들아! 결함 없는 넋이 어디 있으랴.’

나는 결함 없는 넋이 어디 있으랴, 라고 적혀 있는 사진을 클립에서 빼냈다. 파고다공원이었다. 파고다공원의 노인들이었다

. 지는 황혼을 배경으로 푸른 잔디밭 위의 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주름이 회색빛으로 흐르고 있다. 흐르는 공기, 

흐르는 잔디, 흐르는 주름. 그리고 흘러간 세월. 나는 사진을 보다 조영인을 바라보았다. 변태 대마왕. 변태 대마왕이기 

이전에 그는 예술가였다. 

“이 사진 내가 가져도 돼요?”

“안돼.”

“왜요?”

“안 된다면 안돼.”

“그럼 필름 줘요.”

“없어. 여기 있는 사진은 다시 뽑을 수 없는 것들뿐이니까.”

나는 그의 말에 전부다? 그렇게 물었다. 조영인은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뒤지면서 전부다. 그런 칼날 같은 대꾸를 

돌려준다. 나는 그 사진을 못 먹는 감 보듯 아깝게 쳐다보았다. 조영인이 내게 병맥주를 내밀었다. KBG를 얼굴에 대었다가 

뺨에 굴리면서 열기를 식혔다. 내 행동이 더워서라고 생각했는지 조영인이 에어컨을 틀었다. 더워서가 아니었다. 사진이 

나를 낯 뜨겁게 하고 있었다. 나는 태평양 바다 속 같은 수조 앞에 놓여진 소파에 앉아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내 옆에 털썩

 앉는 조영인이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저도 사진을 들여다본다. 이게 마음에 들어? 그리 물어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

거렸다. 얼마 전 내가 찍고 싶었던 명멸하는 찰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할머니는 젊은 나를 바라보며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함 없는 넋이 어디 있겠느냐고. 누구든 인생을 아까워하며 후회하면서 사는 거라고. 그때 내가 느끼는 죄책감이

 그것이었다. 허비하며 산 늙은 나에 대한 나의 죄책감.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명멸하는 찰나다. 조영인

이 맥주를 마시는지 맞닿아 있는 그의 어깨가 떨려온다. 

“뭐가 보이는데.”

조영인의 말에 나는 갑자기 울고 싶었다. 마구 눈물을 쏟아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자 

조영인이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그래, 가끔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어. 그런 말을 하면서. 내 이런

 감수성을 그는 보존시키고 싶은 모양인지 우는 나를 달래거나 사진 속의 상실감을 납득시키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부추겼다. 그래, 울어. 울어버려. 그렇게. 나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영인이 내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나는 일상의 순치를 벗어난 인간이라 말로써는 그 상실을 감당해 낼 수가 없고 또한 이해할

 수도 없었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저런 미친놈이라는 말까지 했을까. 조영인이 내게 키스할 때 나는 잃었던 상실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었다. 깨무는 것처럼 키스하는 조영인은 옷을 홀라당 벗기고 살가죽을 벗겨낸다더니 키스만 하고 떨어졌

다. 그리고 여전히 내 손에 들려 있던 사진을 원래 있던 클립에 끼워 넣었다. 아쉬워하며 그에게 매달리는 나를 조영인은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중에.”

그리고 내 미간에 입을 맞추었다. 훗날 돌이켰을 때 조영인은 아마 물리적인 애욕의 욕구를 예술가의 자긍으로 눌렀던 것

 같다. 그 순간의 상실의 달래기 위해 그의 육신에 기대고 싶어 하는 나를 조영인은 그 감정 그대로 지켜준 것이다. 아마 그

와 같이 자버렸다면 나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그리고 조영인에게, 또 예술 하는 나에게. 

변태 대마왕은 내게 저녁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의 사진을 보고 또 사진 속의 이야기를 보았다. 상업성과 예술은 일치하게끔 되어 있다. 나는 외면 받는 작품이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예술은 죽은 예술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자질은 상업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누구나 생각이 있고 가치관이 있다.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아량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술이 예술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을 때는 그 다양성에 납득될 때, 그때이다. 물론 랭보 같은 예술가도 있겠지만 말이다. 

푸른 심해의 열대어들이 휙휙 움직이며 물 속을 헤엄쳐댄다. 시야가 온통 수조 속의 푸른 물 뿐이라 이곳이 정말 심해인지, 조영인의 소파 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나는 벽에 달라붙어, 정확히는 수조의 유리벽에 달라붙어 열대어들이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 손가락을 쫓아 푸른 열대어 하나가 주둥이를 콩콩 수조의 반대 벽에 부딪힌다. 나 역시 톡톡. 우리는 교감을 하고 있다. 열대어는 이 좁은 수조가 제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불행하다고? 아니 그래서 행복하다. 녀석은 하얀 배를 뒤집으며 수조의 위로 둥둥 떠오를 때까지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 드넓은 바다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기에 녀석은 행복한 것이다. 그런데 저를 빤히 바라보는 내가 제 친구인 줄 알고 나에게 콩콩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콩콩, 콕콕. 무르며 단단한 작은 입을 뻐끔거리며 콩콩, 그럼 나는 손가락으로 콕콕. 

「찰칵」

셔터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조영인이 묵중한 카메라의 렌즈를 나를 향해 고정시켜놓고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조형인은 사진을 찍을 때 움직임이 거의 없으나 카메라 자체가 역동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밀어붙

이면서 셔터를 눌러댄다. 움찔 굳은 내 얼굴은 아마 울상이리라. 괜찮아,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아무도 안 보여줄게. 

나만 볼 테니까. 너도 안 보여줄 거야. 가만히, 가만히. 그 말에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내 안에 들어온 조영인이

 마치 나를 말로써 부드럽게 달래며 거친 행위로 밀어붙이는 것 같아서였다. 괜찮아, 가만히 있어. 나는 가만히 있었다. 

조영인이 저 혼자 나를 찍음으로써 오르가즘을 느낄 때까지. 조영인은 사진을 찍으며 자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움직임이 

없는 내 주변으로 카메라를 들이댈 때 플래시가 터졌고 놀란 각막이 얼얼해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셔터를 눌러대던 조영인이 배설의 욕구를 다 해소했는

지 끄응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피고 나를 바라보았다. 살 꺼풀이 그가 셔터를 눌러댈 때마다 하나씩 벗겨져 내린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도 조영인보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입안이 하얗게 마르는 느낌은 곧 머리로 번져왔다. 비틀거리는 내 팔을 부축하며 조영인이 제 침실에 눕혔다. 

“쉬고 있어.”

조영인이 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뜻한 빛의 공격에 눈이 뜨끈했다. 감은 눈 안으로

 고색창연한 이미지들이 지끈거리며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가 침실을 나가자 나는 옆으로 돌아누우며 몸을 웅크렸다.

 몸이 뜨거웠다. 세포가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뜨거운 빛에 쪼여졌기 때문일까. 마주 비벼오는 팔이 너무 뜨겁다. 

조영인 나쁜 새끼. 내가 사진 찍는 거 싫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나는 지금 사진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내 이미지는 변질될

 것이다. 조영인이 원하는 이미지대로 사진에 박혀버릴 것이다. 조영인이 날 보는 그 시선으로 사진 속에 갇혀버릴 것이다. 사진 속의 나는 영원히 조영인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조영인이 잡아낸 나의 이미지는 내가 아니라고, 나는 지친 몸을 베개에 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새벽에 눈을 떴다. 에어컨 바람에 격한 추위가 느껴져 따듯한 열이 나는 누군가에게 파고들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눈을 떴다. 조영인의 등짝에 내 얼굴이 기대져 있었다. 얇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조영인의 너른 등짝은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소리 내지 않고 침대를 빠져나왔다. 침실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빠져나왔을 때 오토바이 키에 아차 싶었다. 다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소파 옆 탁자 위에 뒹굴고 있는 내 곰돌이 열쇠고리를 발견했다. 오토바이 키를 쥐고 수조 속 푸른 심해를 바라보았다. 열대어들도 다들 자고 있는지 수초만이 너울너울 거리고 있다. 나는 톡톡 유리를 손가락으로 두들겨보았다. 수조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고 있는 열대어들. 미경험의 무지는 욕망의 근원을 차단시킨다. 나는 너희들이 부러워. 톡톡. 조영인의 집을 나오며 벽에 걸린 둥근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두시였다. 

차들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도로를 달렸다. 간간히 택시들이 보이긴 했지만 한적한 도로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부아앙-- 닌자는 아무도 없다고 신나게 달리자고 나를 부추긴다. 그러나 닌자 너는 비싸고 내 어깨에 메어져 있는 카메라도 비싸고 나 또한 다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닌자가 자꾸 달리자고 나를 부추겼고 나는 나도 모르게 과속을 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악!”

거대한 익명의 군중들이 스크럼을 짜고 나에게 달려들고 있다. 단단하게 맞물려 거대한 벽을 만들고 있다. 때로 그것은 이성, 때로 그것은 체면, 때로 그것은 혈연, 때로 그것은 대한민국의 법률이다. 떼 지어 몰려드는 익명의 군중에게 소리를 질러보았다. 닌자가 좋다고 부아앙 하면서 앞으로 내달린다. 일탈과 자기 파괴로 점철된 랭보의 인생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걸까! 스크럼을 짠 군중들이 나에게 달려들며 나의 사지를 옭아매고 있는 것만 같다. 달려라, 닌자. 달려서 그들의 어깨를 풀어버리자! 

오피스텔에 도착해 1층 편의점에 들렀다. 캔 커피 두 개를 샀다.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 경비아저씨에 하나, 그리고 하나는 

내가 먹었다. 달착지근한 카페오레를 마시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오늘은 하루가 무척이나 길었다. 

“아, 젠장.”

또, 일기예보를 놓쳤다. 태풍, 임마 넌 도대체 어디에 와 있는 거냐. 연락도 없이 동해로 빠져나간 거냐? 아님, 공중분해 되어버린 거냐. 내가 왜 이토록 태풍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서 태풍을 보고 싶다. 나의 예술과 태풍은 조우해야만 한다. 건물 앞에 달려 있는 입간판을 날려버리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태풍이 보고 싶다. 그럼 나는 닌자를 타고 태풍 속을 달릴 텐데. 태풍을 만나서 태풍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하곤 녀석을 마구 찍어댈 테다.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서다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았다.

“너 지금 몇 시야?”

하며 침대에 앉아 있던 민후가 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와, 진짜 오늘 여러 번 놀란다. 주저앉았던 몸을 일으키며 헬멧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옷을 벗었다. 녀석이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지며 욕실로 들어갔다. 협소한

 욕실의 파란색 타일은 민후가 먼저 씻은 건지 물기가 찰박거리고 있었다. 샤워꼭지를 돌리고 차가운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머리도 감고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고 나오니 방안을 휘적거리던 민후가 내게 다가온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일찍 일찍 좀 다녀.”

“응. 언제 왔어?”

“12시?”

미간을 찡그리며 시간을 확인하려는 민후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밀었다. 우리는 침대위로 벌러덩 쓰러졌다. 스프링이 좋지

 않은 침대가 심하게 쿨렁거린다. 녀석의 몸 위로 기어 올라갔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넘겨주며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

다. 그리고 음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녀석은 내 엉덩이를 양손으로 꽉 잡는다. 나는 체면을 잊겠다는 면구한 자의 미소를 

히죽거려본다. 자자, 발동을 걸어보자고. 백민후씨. 우리는 이성이고 체면이고 나발이고 다 날려버리고 이제 짐승의 섹스를

 해보는 거야. 응? 애욕만 남겨두고. 알겠어? 민후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젖은 내 입술이 그의 미간을 그리고 콧마루를 

따라 내려온다. 입술에 녀석의 입술이 닿았다. 내 양 뺨을 그러쥐고 녀석이 내 입술을 받는다. 차가운 혀를 교환하며 장난

치듯 물컹거리는 이물감을 즐겼다. 입술을 떼고 내 얼굴과 몸을 움직여 가만히 누워 있는 녀석의 입술이 나의 귀를 그리고 

목을 가슴을 핥게 했다. 그의 배 위에 앉아 궤도를 그리며 이동하고 있는 나의 몸을 쓸어 만지며 녀석이 빨아댄다. 나는 

가슴을 숙여 녀석의 입술에 닿게 했다. 내 유두를 빨아 당기는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아랫배는 벌럭거린다. CK가 적혀

 있는 녀석의 하얀 티셔츠를 끌어 올렸다. 내 손길을 도와 녀석이 팔을 위로 뻗는다. 머리 위로 셔츠를 벗겨버리고 나는

 본격적으로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 키스를 하며 목을 끌어안으니 녀석이 비척거리면서 상체를 일으킨다. 열대어들은

 이런 쾌감을 모를 텐데. 서로 빨아 당기고 빨리면서 우리는 진정한 육체의 탐색가가 된다. 소리를 지르려는 내 입을 틀어

막고 민후가 거세게 밀려온다. 기존의 질서와 족보, 진리, 고정관념을 폐기하고자 하는 자유의 통로! 떼 지어 밀려드는 익

명의 공포에 대항한다. 내 신음을 막기 위해 입술위에 올려져 있는 손바닥을 날름날름 핥아댄다. 간지러운지 녀석이 손을

 떼어버릴 때 나는 소리를 지른다. 아, 아, 아! 나는 자유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런 자유를 주는 민후를 사랑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해, 백민후.

“아읏.”

찐득하게 내 몸 깊숙이 뿌리의 끝까지 찔러 넣으며 움찔 굳는 녀석의 목을 꽈악 끌어안았다. 맞닿은 하체가 움직움직 

떨려왔다. 전신을 쥐고 흔드는 듯한 쾌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떠는 내 젖은 등을 녀석이 끌어안고 그대로 뒤로 쓰러진다. 

내 안에 꽂혀 있던 녀석의 지렛대가 빠져나갈 때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하아, 너 좀 조용히 못하냐?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좋아서.”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민후가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린다. 나는 젖은 몸을 일으켜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왜하는 얼굴로 눈을 마주쳐오는 녀석의

 눈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고등학교 때부터 흠모해온 나의 피사체. 그의 건장한 어깨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그 실루엣을

 따라 손을 놀린다. 내 손길이 갈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민후는 몸은 다시 흥분할 것처럼 여린 맥박이 치고 있다. 

민후의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문질 거렸다. 갑자기 녀석이 내 손을 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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