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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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나는 오후에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파고다공원이다. 여름 황혼이 지고 있는 파고다 공원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많고 생각들도 많다. 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나는 이곳에서 다양성을 인정한다. 이곳에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수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그래서 불행하게도 슬픈 음지의 냄새가 난다. 특히나 파고다공원은 그렇다. 지는 황혼처럼 황혼의 냄새가 나는 노인들이 이곳엔 많다. 노인들은 뜨끈한 오후에 전부 파고다공원으로 나온다. 줄 것 없는 노인들 앞에 비둘기들이 구구구, 구구구, 몰려든다. 노인들은 발치에서 푸드득거리는 비둘기들의 움직임을 망연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마감한다. 때로 그들에게 하루는 무척이나 짧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과 가치관이 휘발되듯 세상의 시간은 지금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분명 무척 짧았던 하루를 경험했는데도 지금은 온전히 느린 하루들뿐이다. 그래서 짧았던 하루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 상실감이 느껴진다. 느리고 지루한 시간들. 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살아온 나이의 세 번의 시간이 지나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그때 나는 내가 지금하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할 수 있을까. 회색빛이 아닌 유채색의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나이에 걸맞게 늙은 모습이 아닐 것이다. 왜냐면, 자기주장이 강한 우리 어머니에 말씀에 따르면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적당히 때 묻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흐리멍덩해지는 게 철이 드는 것일까. 그런 게 철이라면 나는 들고 싶지 않다. 스물한 살, 영원히 철부지이고 싶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늙게 되어 있다. 나는 이곳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난 후에 어떻게 늙을 것인가 고민한다. 놀랍게도 이 생각의 사이클이 단 한번도 엇나간 적이 없었다. 아마 내가 단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 할머니는 아까 전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할머니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처럼 할머니도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처럼 할머니들도 무슨 생각을 하겠지. 요 며칠 태풍의 진로에 고민하고 있는 나처럼 할머니도 태풍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까, 할머니는 일기예보를 볼까, 할머니에게 일기예보는 어떤 의미일까. 일기예보를 보는 할머니의 뒷모습. 무척이나 쓸쓸할 것만 같다.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던 눈을 내려 당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이미 성장이 끝나 퇴화하고 있는 외피를 더듬고 있다. 어쩐지 나는 계속 쳐다보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고개를 돌려버리다가 화들짝 놀랐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

“그냥. 비둘기는 무슨 맛일까 생각하고 있었어. 너 비둘기 고기 먹어봤냐?”

민후였다. 민후는 요새 아주 이상하다. 그저께도 보고 어제도 보고 오늘 또 본다. 자주 보는 게 아니라 매일 보고 있다. 

섹스 파트너인 우리의 묵약을 깨고 민후는 일탈하고 있다. 그 일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때때로 그것이 나는 난감하게

 느껴진다. 

“우리 비둘기 고기 먹으러 갈까?”

민후의 말에 나는 비둘기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 버스 정류장에 누군가 쏟아놓은 걸쭉한 토사물 찌꺼기를 비둘기 여러

 마리가 붉은 눈을 번득이고 다투면서 쪼아대던 장면을 떠올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싫은데.”

“그럼 뭐 먹으러 가자. 저녁 시간 다 됐잖아.”

“뭐어?”

“글쎄, 뭐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으음, 된장찌개.”

“그럼 그거 먹으러 가.”

민후와 근처 한정식 집에 들어가려다 머뭇했다. 왜, 하며 묻는 녀석에게 다시 냉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다시 얼마를 더 걸어 원조 평양식 냉면집에 당도했다. 나는 또 들어가려다 입구에서 머뭇했다. 왜, 하며 묻는 녀석에게 이번엔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얼마를 더 걸어 패밀리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해물 스파게티를 두 개 시켜놓고 나는 민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민후는 제 얼굴을 더듬거리며 휴지로 입가를 괜스레 닦아내곤 묻는다.

“왜, 뭐 묻었어?”

“너 미쳤지.”

“무슨 소리야?”

“어제 내가 삼겹살 그렇게 싫다고 했는데 억지로 끌고 가더니, 오늘은 왜 이래?”

“너 날 시험 한거냐?”

“시험이 아니야, 확인이지.”

“뭘?”

“뭐긴.”

뭐, 난 무엇을 확인하려고 한 거지? 녀석의 말에 목구멍이 꽉 막혀버렸다. 무엇을 시험하려고 한 것인지 나도 내 행동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확인해서 무엇을 알아보려고 한 걸까. 

“됐어. 나쁜 머리로 고민하지 마.”

“나쁜 머리 아니야.”

“너 머리 나빠.”

치. 나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다. 세상이 일러주고 이력에 찍히는 일상의 순치를 거부할 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것이 어째서 머리가 나쁜 것이 되어야 하는 걸까. 예술 하는 자의 고뇌다. 

“오늘 연습 없어?”

내 말에 민후는 흠칫했다. 그러다 곧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제랑은 또 분위기가 틀리다. 빙상위에 있을 때 또 땅위에 있을 때 민후는 가끔씩 너무나 다르다. 헬멧을 쓰고 숄더패드로 무장을 할 때의 민후는 장군처럼 용감무쌍하다. 적진으로 마구 달려가 상대를 펜스로 거칠게 몰아붙인다. 그러나 무장해제한 민후는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부드럽다. 녀석은 이중인격이다. 민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데 스파게티가 나왔다. 포크로 면발을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면발을 빨아먹는 것보다 단단한 이물감을 씹는 편이 뭔가 더 맛있는 걸 먹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니면 나는 아직도 이가 나고 있어 가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꾸 뭘 씹어야지만 이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도 찰나적인 깨달음일 뿐인데. 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다. 후식으로 나온 팥빙수도 녀석과 머리를 맞대고 다툼을 벌이며 해치웠다. 밖으로 나오니 거리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저기 혹시 오늘 일기예보 봤어?”

내 물음에 민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되묻는다. 왜? 나는 그냥, 이라고 대꾸했다. 그냥, 태풍이 온다잖아. 내 말에 민후는 큰일이라며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네가 일기예보를 안다고 해서 네 마음대로 날씨가 바뀌느니 어쩌느니 해가면서 핀잔을 주더니. 태풍을 재앙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녀석은 어제완 또 다르게 큰일이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중인격자. 어쨌든 일기예보를 본다고 해놓고서 또 까먹었다. 태풍 루시니 루나인지 북상하고 있다면서. 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태풍의 기운을 감지해본다. 별이 보이는 것을 보니 태풍은 아직도 영남지방이나 호남지방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오키나와 해상으로 빠져나갔을까. 여름밤의 공기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 놓는 힘이 있다. 몸이 이완되는 것을 느끼며 나와 민후는 한참을 걸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 오늘은 닌자를 놓고 나왔다. 태양이 너무 뜨거우면 열을 받은 바이크 차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오늘이 그런 뜨거운 날이었다. 파고다공원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다 집에 들어가셨을까. 

“야, 너희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계셔?”

“응. 갑자기 왜?”

“아니, 부러워서.”

“부럽긴. 죽기 전에 분배하신다고 유산상속 하신 거 후회하고 계셔.”

“왜?”

“재산 다 챙겨서 모시겠다던 고모들이 미국으로 떠버렸거든. 지금은 우리 집에 계시지만.”

“…….”

퇴화하는 몸피는 작게 마르고 있었다. 할머니. 나에게 할머니가 있었다면 정말 잘했을 텐데. 불행하게도 이혼한 부모님들은

 조실부모해서 나는 받을 유산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었다. 태풍이 어서 불어서 지저분한 것들을 싹 쓸어갔으면 좋겠다. 

“오피스텔로 가?”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내게 녀석이 물었다. 나는 그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바라보며 녀석이 조심하는 것이 역력한 투로 묻는다. 

“어제…….”

어제. 말꼬리를 흐리는 녀석에게 되물었다. 어제 뭐?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녀석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서 가자고 내 팔을 끌어당겼다. 

“됐어. 나 여기서 버스타면 한번에 가니까.”

“데려다줄게.”

그러지 말라니까.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참았다. 녀석의 눈이 태풍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무거웠기

 때문이다. 정류장에 서 있기를 몇 분. 내 오피스텔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녀석과 나는 꾸역꾸역 사람들이 들어 차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에어컨이 나오고 있지만 버스 안은 후끈할 정도로 더웠다. 불쾌지수가 최고조로 치달아 있는 사람들을 보

니 감히 그 속으로 끼어들지 못할 것 같다. 건드리면 죽인다. 이런 표정들이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날씨가 덥지만은 서로 양보하면서 탑시다. 아마 안내양이 있었으면 이런 말을 했으리라. 버스기사 아저씨는 개새끼라는 욕을 내뱉으며 전용차선으로 끼어든 승용차의 뒤꽁무니에 대고 버럭 화를 내고만 있다. 나와 민후는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 섰다. 손잡이가 없어 내가 잡고 있는 동그란 손잡이에 민후의 손이 겹쳐진다. 귓가에 살포시 내려앉는 녀석의 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비틀어대고 있었다. 

“불편해? 내려서 택시 탈까?” 

얼마 전엔 귀에 닿는 숨이 싫어 고개를 비틀어 댈 때 민후는 지진아냐? 그런 말을 했다. 기분에 따라 성격까지 달라지는 놈들은 딱 질색이다. 조영인의 말처럼,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놈들이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섯 정거장을 거쳐 드디어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꽉꽉 막혀 있는 사람들을 민후가 뚫었다. 내립니다. 실례합니다. 아이스하키를 하며 상대를 초전박살 시키는 민후가 조심스럽게 길을 뚫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 분명 같은 사람인데 또 데자부를 느끼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아직도 콩나물시루 같은 그 안을 바라보았다. 탈출한 내가 부러운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혀 있다.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게 한스럽다. 버스가 움찔 진저리를 치며 앞으로 나아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댔다. 민후가 내 손을 잡아 내린다. 물고기의 비늘처럼 부드러운 손. 그 손을 놓지 않고 오피스텔로 걸어갔다. 손을 잡고 있는 게 좋은지 녀석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손을 잡고 있는 게 좋으면 손을 잡아도 좋다. 키스하는 게 좋으면 키스를 마음껏 해도 좋다. 하지만 감정을 요구하면 나는 줄 수 없다. 나는 예술가라서 감정의 중심에 서 있어야만 했다. 예술가는 감정을 파는 사람이다. 한 곳에 치우쳐버린 감정은 때로 추잡스럽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우리 집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녀석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민후는 제가 가지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

나는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이 아, 하며 손을 놓았다. 뜨거운 손에 잡혀 있었던 터라 화끈거리는 손을 뒤로 감추고 엉덩이에 문지르며 물었다.

“그냥 가게?”

민후는 오랫동안 내 눈을 들여다본다. 할말이 많아 뒤채이고 있는 혼곤한 눈이다. 민후는 그 눈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어제…….”

또 말꼬리를 흐리는 녀석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왜, 뭔데. 하고 채근했다. 

“어제, 내가 잘 기억이 안 나서. 우리 오래 했냐?”

“뭘?”

“섹스 말이야.”

“너 정말 단기 기억상실증 있지?”

마치 바이러스에 잠식 되서 그 기억의 분자들이 와해되는 것처럼 민후는 가끔 이렇게 어젯밤의 행보를 되짚곤 했다.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바이러스다.

“술 때문에, 기억이 잘 안나.”

“어제 안 했어. 그저께 너무 심하게 해서. 아팠거든.”

“……정말이야?”

“나 어제 너랑 있었거든?”

“아, 하하. 그래. 들어가.”

“정말 그냥 가?”

“응. 갈게.”

“민후야.”

돌아서는 녀석을 붙잡았다. 꼭 이럴 때면 우리가 사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사귀면서 사랑을 키우고 있는 것만 같다.

 어제 아이스링크에서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스케이트를 탄 것처럼. 어쩌면 사귀고 있는 건지도 몰라. 지금 만나고 있는 건

 민후 뿐이니까. 민후의 멱살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살짝만 닿고 바로 떨어지는 것이 사귀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던 내 깜찍한 목표였는데 민후가 날 놓아주지 않는다. 입술을 아 벌리자마자 내 입안으로 들어오는 녀석의 혀가 뜨겁게

 내 혀에 휘감긴다. 나는 민후의 목을 꽉 끌어안고 민후는 내 허리를 꽉 끌어안고. 우리는 입을 꽉 맞물리고 키스를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애욕이거나 흠모거나. 어쨌든 상대에게 품는 가장 호의적인 단어들이 아닌가. 사랑의 형체가 아닌 흠모와 

애욕의 형체. 나는 모든 감정들과 부딪히며 그것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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