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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 말술이네. 넌 취하지도 않냐.”
야외 스탠드의 삼겹살 집은 성황이었다. 삼겹살은 싫은데 녀석이 억지로 데리고 왔다. 돼지고기 살점은 이미 바싹 타들어가
잔여물이 새카맣게 눌러 붙어 있는 불판 가에서 매캐한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나는 나무젓가락으로 그것들을 거둬내다
녀석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녀석은 이미 만취 상태였다. 나는 알코올 해독능력이 남보다 월등한 편이다.
내 얼굴은 시작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우리 테이블에 쌓여져 있는 초록색 술병들을 헤아려보았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여섯. 그리고 일곱 번째는 반쯤 비워져 있었다.
“으응. 나 잘 안 취해.”
내 잔에 자작하며 소주를 왈칵 들이켰다. 근처 테이블 중에 우리만큼 술병이 쌓여진 곳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11시였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풍은 도대체 어디쯤 온 것인가. 여름밤은 사람들로 인해 소란스러울망정 바람
때문에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장마의 불순물인 팡이실과 포자 따위가 공기를 눅진눅진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 오피스텔에
팡이실과 포자가 들러붙어 역겨운 색으로 그림을 그릴 터였다. 열이 오르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얼굴로 녀석이 쳇, 이
런 말을 하며 술을 들이켠다.
“야, 그만 마셔. 너 취했어.”
“알아. 나, 취한 거.”
“알면 그만 마셔. 너 무겁단 말이야.”
“씨발, 그렇게 무거운데 깔고 있을 땐 왜 암말도 안하냐?”
혀가 꼬이는지 웅얼웅얼 욕을 내뱉는 녀석에게 대꾸했다. 지렛대로 받치고 있는 거랑 같어? 녀석은 내 말에 피식피식
웃는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면서.
“다른 놈들도 안 무겁냐?”
“뭐?”
“다른 놈들도 너한테 지렛대 쑤셔대면 안 무겁냐고!”
“…….”
핏발이 선 눈으로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싸우는 줄 알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히익하며 놀란다. 나는
녀석을 바라보다 일어섰다. 계산을 하고 바이크에 앉아 헬멧을 눌러썼다. 아직도 의자에 앉아 비틀비틀하고 있는 녀석을
힐끗 쳐다보다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유흥가의 골목을 요리조리 피해 나갔다. 그제야 술기운이 속에서 치받고 있었다.
약간 어질어질해서 침을 삼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그 삼겹살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녀석은 아직도 의자에 앉아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네 녀석이 불쌍해서 다시 왔다는 듯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이 앉아 있는 의자를 발로
꽝 찼다.
“야, 고만 일어나. 데려다 줄게.”
비틀거리는 녀석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붉어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무어라고 구시렁거린다. 넌 일부러 둔한 척 하는
거야, 그렇지, 네가 모를 리가 없어. 알면서 우리를 놀리고 있는 거야. 그렇지. 구시렁구시렁 거리는 녀석을 뒤에 앉히고
그 몸이 쓰러지기 전에 재빠르게 바이크에 올라탔다. 휘청하던 녀석의 가슴이 내 등에 왈칵 쏟아지듯 기대온다.
“꽉 잡어. 떨어진다.”
“씨발……너 일부러, 우리를 놀리고 있어…….”
“자 이제 출발합니다!”
허리에 헐겁게 감겨오는 녀석의 팔을 꽉꽉 잡아 매어주고 바이크를 앞으로 밀었다. 자꾸만 헐거워지는 팔을 단속하듯
달리면서 내 어깨위에 축 늘어진 녀석의 얼굴을 어깨를 들썩이며 툭툭 쳤다. 그때마다 정신이 드는지 녀석은 팔에 힘을
주다가도 곧 흐물흐물 풀어졌다. 곡예 같은 레이스를 펼치며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땐 긴장한 탓에 삭신이 쑤셨다.
음주운전은 역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최우선 순위였다. 나는 재빠르게 후다닥 바이크에서 내려 휘청거리며
무게를 한쪽으로 쏟아내는 녀석을 부축했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침대에 던지듯이 녀석을 내려놓고 티브이를 틀었다.
딱 열두시 이십분이었다.
“오늘의 마감 뉴스를 마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예쁘장한 누나가 예의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후, 나 역시 한숨쉬며 푸욱 고개를 숙였다. 나와 티브이 속 앵커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니 어쩐지 우리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진다. 태풍은 어디쯤에 걸려 있는 걸까, 호남지방? 영남지방?
누가 지도를 펴놓고 태풍 루나가 어디쯤에 왔다고 일러주었으면 좋겠다.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힐
때였다. 무언가 끈적끈적한 것이 내 어깨를 움켜잡아 고개를 돌리니 녀석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와악!”
실핏줄이 일어선 녀석의 안구를 보고 그 표정을 보자 어릴 때 보았던 공포영화 속의 그로테스크한 장면 같아 소리를 빽
질렀다. 사실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소리를 질러야만 하는 장면이라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아마 그 영화를 만든 감
독도 그 장면에서 관객이 소리를 질러주었으면 하고 바란 것처럼 녀석도 내가 소리를 지르기를 원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틀린 모양이었다. 녀석은 인상을 찡그리고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날 쓰러트렸다. 훌렁
벗어 올린 셔츠가 팔에 감겨 있는 채로 침대에 쓰러졌다. 수갑이 채워진 것처럼 옷에 휘감긴 팔을 풀지 못하고 나는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벌려진 가랑이 사이에 놓인 나를 내려다보던 녀석이 내 머리를 들어 제 허벅지에 고여 준다.
녀석은 손으로 내 뺨을 쓸었다. 술에 잔뜩 취한 녀석의 숨이 내 얼굴에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젯밤에도, 아니 오늘 새벽에도 그 과정은 비록 달랐으나 역시 내가 녀석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고 녀석이 내 얼굴을 손
으로 쓸었기 때문이었다. 데자부, 같은 사람이고 같은 행동이었으나 분명 무언가가 다른 데자부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빤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자 갑자기 녀석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팔을 휘감고 있는 옷을 풀어버리고 나는 팔을 뻗어
녀석의 목을 감싸 잡았다.
“야, 백민후. 너 때문에 일기 예보 못 봤잖아.”
“일기 예보 보면 뭘 해. 보면, 네 마음대로 날씨가 바뀐 대냐?”
“누가 그렇대? 그게 아니라.”
나는 말을 멈추고 녀석의 목을 끌어내렸다. 상체를 팔꿈치로 지탱하며 나 역시 고개를 들어 그 거리를 좁혔다. 공간이
줄어들고 혹은 공간에 꽉 차버리며 우리의 얼굴이 맞닿고 있다. 나는 엄청난 비밀을 얘기하는 것처럼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 몰라?”
“알게 뭐야.”
“나는-”
내 입술을 막아버리며 말을 막아버리는 녀석의 머리칼에 손을 집어넣었다. 데자부, 분명 어제도 같은 사람, 같은 장소, 같은 위치에서 입술을 비볐는데 그 느낌이 데자부처럼 흐릿하게 불분명하다. 마치 민후와 벌였던 어제의 일을 민후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재연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시감. 나는 키스를 하며 이런 느낌을 사진에 담으려면 어떤 스킬을 써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도 변태 조영인 선생 밑에 있어야 할 듯싶다. 민후가 손을 내려 내 옆구리를 만진다. 키스를 하며 웃자 화를 내는 것처럼 거칠게 혀를 움직인다. 하지만 간지럽단 말이야. 그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푸하, 입술을 떼고 급박한 숨을 터트렸다. 목으로 가슴으로 입술을 묻어 내리는 민후를 저지시키듯 어깨를 감쌌다.
“그만해, 어제도 새벽까지 했잖어. 나 지금 아프단 말이야.”
“…….”
갑자기 민후가 고개를 들어 나를 쏘아본다. 약간 덥다고 느끼면서 녀석을 밀어냈다. 에어컨을 켜기 위해 리모콘을 향해 뻗어가는 내 팔을 잡아채고 갑자기 날 벌떡 일으켜 세운다. 잡힌 팔을 비틀며 물었다.
“안 더워?”
“어제 우리 오래 했냐?”
“기억 안나? 네 지렛대 꺼질 때까지 했는데. 너 단기 기억상실증이지? 가끔 이상해.”
“얼마나 오래 했어.”
“음, 새벽 두시부터 새벽……네 시?”
눈에 쌍심지를 키며 민후는 있는 힘껏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침대에 완연하게 쓰러트리고선 위에 올라탄다. 맨 다리에 와 닿는 그의 청바지가 땀 때문에 쓸리고 있어 따가웠다. 몸을 비틀어대자 녀석이 포획한 먹잇감을 시식하는 것처럼 달려든다. 어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 같은 입술이고 같은 몸인데도 섹스의 느낌이 현저하게 다르다. 때론 그것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어제는 내 모든 체면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려 무장해제를 시키는 다정함을 보이더니 오늘은 미친것처럼 제 욕구 떨궈내기에 정신이 없다. 그 다급하고 왁살스러운 입술을 받으며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녀석의 어깨를 밀어 떨어트리려고 했으나 완강하게 더욱 옭아들기만 할 뿐이다. 그만해, 이봐, 그만하라고. 툭툭 노크를 하는 것처럼 민후의 어깨를 두들겼다. 입술을 떼고 혼란스러운 얼굴로 또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검은 인영에게 말했다.
“나 오늘도 하면 죽어. 아마도.”
“안 쑤실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다시 고개를 내 몸으로 숙여오는 녀석의 어깨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이건 쑤시고 안 쑤시고의 문제가 아니야. 너무 잦은 스킨십은 재미없단 말이야.”
“무슨 뜻이야.”
“맛있는 건 아껴먹는 법이라고.”
“…….”
민후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다 그 투기를 꺾는 것처럼 한숨을 쉬더니 내 몸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욱, 가슴과 배가 녀석의 무게에 짓눌렸다. 내 뺨에 제 뺨을 대고 민후가 중얼거린다. 나는 꿈틀거리며 녀석에게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아이스하키선수의 묵중한 근육을 뿌리 칠 수가 없었다.
“너 노래 잘한다며……그럼 노래나 불러.”
“무슨 소리야. 나 노래 못해. 비켜, 무거워.”
“어제 부른 노래, 다시 불러.”
“무슨 노래, 나 노래 한 적 없어.”
“불렀다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민후가 다시 몸을 일으킬 때 나는 그의 품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잽싸게 에어컨을 틀었다. 쪄죽을 것 같은 열기를 거둬낼 바람이 후욱 몸으로 쏟아진다. 아이고 이제 살겠다며 다시 드러누워 노려보고 있는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누가 그래? 난 노래 부른 적 없어. 노래는 무슨.”
불렀다면……. 어제 침대 위에서 나탈리 콜의 love를 불렀었지. 바로 민후 네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고 말이야. 나는 녀석의 손을 내려 내 뺨을 감싸게 했다.
“왜에, 내 목소리 다시 듣고 싶구나?”
“그래. 다시 듣고 싶어.”
피식피식 눈웃음을 치며 나는 다시 나탈리 콜의 love를 불러보았다. 엘 이즈 포더 웨이 유 룩 엣 미, 오 잎 포더 온리 원 아이씨, 브이 이즈 베리베리 엑스터리오너네리, 이 잇 이븐 모댄 애니원 유어도 캔. 조형기식 팝송에도 민후는 웃지 않는다. 녀석은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떤 치욕이나 새삼스러운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며 인상 피라고 손가락으로 볼을 쿡쿡 찔렀다. 웃지 않는 민후는 어제 그 민후가 아닌 것만 같다. 이것도 데자부일까. 술에 취한 민후가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쓸어 넘긴다.
엘 이즈 포더 웨이 유 룻 엣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