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오포드가의 귀공자-28화 (28/36)

28.

시간이 흐르자 거대해보이던 모닥불도 조금씩 불꽃이 사그라들었지만 축제분위기는 사그라들줄을 모른채 한창 달아올라있었다. 이리타와 헤어진후 그곳에서 벗어나 여관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리타의 말을 전부 다 수긍할수는 없지만 생각이 많다는 것은 정곡을 찔린 셈이랄까.. 옳고 그른게 명확하고 생각은 단순명쾌하고 거침없이 돌격하는 이리타에 비하면야 나는 정말 생각이 많은 걸지도...

그나저나 아시리안은 대체 어디로 간거지? 아시리안을 찾아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순간 퍼엉-하고 밤하늘을 향해 쏘아올려진 폭죽소리에 얼굴이 저절로 치켜올려졌다. 다시한번 퍼엉- 소리를 내며 눈부시게 터지는 빛의 소용돌이를 보며 다시 복잡한 시선을 내리고 걷기 시작했다.

위태해보인다는 말에 깜짝 놀란것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또하나의 나자신을 들킨것 같았기 때문.. 내가 하은준인지, 아르휜인지... 왜 어째서 선명하리만치 고통스러운 두개의 삶을 가지고 살아가야하는지..  회색빛안개에 둘러싸여 누군가에게 등뒤를 떠밀려 억지로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것같은 기분만큼은 사실이니까..

아시리안과 다시 만난것조차 알수없는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폭풍같은 운명이 조종하는대로 힘없이 흔들릴뿐인 잡초처럼..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둠속에서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버렸다.

마치 아무것도 없이 모래폭풍만이 휘몰아치는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걷는지 알수없던 꿈속의 나자신처럼 ..

그래..이리타의 말이 맞아. 나는 조금도 즐겁지 않았던거야.

영화관에 앉아 화면속에서 벌어지는 즐거운 일을 봐도 그게 내현실은 아닌것처럼.. 그저 나는 구경꾼이었을뿐이야....

"멍청하게 서서 뭐하는 거지?"

전음이 아닌 아시리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자 어두운 거리에 홀로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목소리는 아시리안의 목소리인데...모습은.......??!!!

"....설마.................아시리안...??.."

눈을 크게 뜨고 내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쪽에 서있는건 ... 아마 아시리안이 맞을테지만 아시리안의 모습이 아닌 낯선 모습..

“.....대..대체 그 모습이!!!”

"뭐냐, 그 눈은? “

아..아시리안....?!!! 그...그 모습은 대체 뭐야!!..

길게 휘날리는 보라빛 머리카락과 은회색 눈동자라니.. 그게 어디 인간이 가질수 있는 외모로 보여?

다들 축제를 즐기러 가서 텅비어버린 을씨년스러운 거리가 퍽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만약 아시리안이 이 눈에 띄게 화려하고 범상치않은 외모로 그 축제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마족이란걸 들키기 이전에 갑자기 나타난 엄청난 미모의 남자때문에 충분히 난리가 났을테니까.

"내가 말한 변신이란 결코 그렇게 튀어보이란 소리가 아니었단 말이야!!! 이 바보변태!!“

"바보변태?!! 나와 함께 춤추고 싶다고 하길래 내가 기껏 모습까지 바꿔줬더니, 또 뭐가 불만이야!!!!“

보라빛의 머리카락을 허공에 멋들어지게 흩날리는 신비할만큼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투덜거리는 것때문에 그다지 위엄은 없어보이는 아시리안이 짜증을 내자 나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내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는거야. 아시리안이 마족이라는거 들킬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한데, 보란듯이 그런 외모로 나타나서는!!!!!

“아예 이마에다가 [나는 마족이오]라고 써붙이지그래!!!!"

“뭐야? 이 건방진 인간놈이!!!”

아시리안과 내가 거의 동시에 소리치는순간 하늘 높은곳에서 다시한번 폭죽이 펑하고 커다랗게 터졌다.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린 하늘로 고개를 꺽자 눈부신 빛의 무리들이 허공에서 흩어져내리는게 시야에 한가득 차오른다....아름답다.. 빛무리가 별똥별처럼 떨어져내리는 밤하늘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내렸을때는 아시리안과 말싸움하던 중이라는것도..말싸움한 이유도 폭죽소리에 이은 잠시간의 침묵속에 사라져버린후였다.

어색해져서 아시리안을 힐끔 바라보자 아시리안도 다시 나와 다투고 싶은 마음은 없는건지 입을 다물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보는것만으로도 숨이 막혀버릴것같은 아시리안을 몇발자국앞에 두고 마음은 아련하게 떨려오는데 심장만이 두근,두근,두근,두근 거세게 방망이질 쳤다.

"....이쪽으로 와"

아시리안이 내쪽으로 손을 내밀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자 두근,두근거리던 심장이 움찔,하고 파르르 떨린다.

다시한번 머리위에서 펑,하고 터지는 폭죽소리와 함께 하늘위에서 퍼져내리는 빛의 소용돌이가 은은한 빛을 전신에서 뿜어내는 것같은 아시리안을 비추고 ..나는 아시리안쪽으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가 내밀어진 손을 마주잡았다.

허리를 단숨에 휘어감은 손이 조금 떨어져있는걸 못참겠다는듯 와락 끌어당겨서 아시리안과 찰싹 달라붙은 자세가 되자 전신이 긴장으로 굳었다. 지난번엔 그런짓도 하고.. 찰싹 안겨서 잠들어버리기까지 했으면서.....이건 그냥 단지 춤일뿐인데도 주체할수없이 떨렸다.

"춤추자고 제안한건 너일텐데?“

잘근, 귓볼을 깨물며 속삭이는 말에 굳은 어깨를 움찔하는 사이 아시리안이 조금씩,조금씩 움직였다.

귓가에 부드럽게 감겨드는 희미한 음악소리에 맞춰 음을 타듯 리드하는 아시리안에게.. 다정하게 안겨서 춤을 추고 있으니까 연인처럼 느껴져서..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과 달리 아시리안과 바짝 달라붙은 몸은 뻣뻣하게 굳어서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 이러면 닿기 싫어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긴장한게 풀어지지가 않았다.

“....돌덩이처럼 굳었군."

"..........미.미안.."

뻣뻣하게 안겨서 굳어있는 귓가에 아시리안이 낮게 혀를 차듯 비꼬는 소리가 들렸다.

"..흥, 우선권 운운하는 벌레놈과는 찰싹 달라붙어 잘도 안겨있더니"

“프란은 친구야.”

“친구?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 그래야 네놈의 마음이 편해질테니까. 그 벌레놈이 어미새처럼 보호하려 드는걸 즐기고 있잖아? ”

“그런적 없어!!!”

이리타의 말에 이어 아시리안까지 그런 말을 내뱉는게 화가 나서 아시리안을 확 밀치려하자 아시리안이 내팔을 아플만큼 꽉 쥔채 나를 노려보았다. 삼킬듯이 노려보는 아시리안의 눈빛에서 도망치듯이 시선을 내리자 쿡, 하는 비웃음소리가 들렸다.

“정곡을 찔린건가.”

다시한번 '펑'하고 폭죽소리가 터졌다. 밤하늘에 눈부시게 흩어지는 빛의 소용돌이처럼 내마음속의 뭔가가 파삭..하고 부서져 허공으로 산산히 흩어질것만 같다..

“........놔줘.. 춤은, 이제 끝났잖아.”

고개를 숙이고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아시리안이 머리위에서 대답했다.

“그래, 끝인것같군. 하지만 춤이 끝났다고 네가 할 일이 끝난것은 아닐텐데. 인간?”

한겨울에 얼음물을 끼얹는것처럼  차갑고 신랄한 말투에 흠칫 놀라서 쳐다보자 아시리안은 소름끼칠만큼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곧 주변의 사물이 흔들, 형체를 잃어가고 희미하게 들리던 음악소리도 옅어진다. 그리고 어두운 어딘가의 숲속인듯 빽빽히 들어선 나무들만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와서야 움켜쥔 내팔을 내팽개치듯 내려놓았다.

어둠속에서 아시리안의 모습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보라색머리카락과 은회색 눈동자가 검푸른 머릿결과 다크블루의 시선으로....변한게 없는건 나를 노려보는 눈빛. 화가 많이 났다는것은 알겠는데...아시리안이 왜 화를 내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설마 지금 나보고 춤을 못춘다고 화내는건 아니겠지..그런데 프란의 얘기는 왜 한거지..?

얼마나 세게 잡혔던건지 팔이 아파와서 시큰거리는 부위에 손을 가져다대는 나를 보고 순간 눈살을 찌푸리는가 싶던 아시리안이 내팔을 신경질적으로 잡아챘다. 푸른빛에 감싸이는순간 아픈 부분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아시리안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 괴롭혀야 분이 풀릴까..하는 시선이지만 그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품고있는것같은 눈빛.

“그래서, 그 벌레놈의 다정함에 대한 보답으로 선심쓰듯 한번 안겨줄 생각인가?”

그게 무슨.. 하다가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채 소리를 질렀다.

“무..무슨 말을 하는거야!! 프란은 친구라고 했잖아!!! 너같은 변태랑 틀려!!!”

“아하, ‘변태’라 이거지, 그런데 가엾게 됐군. 그 변태에게 안기겠다고 약속을 한건 바로 너니까.

그리고 지금이 약속을 지킬 시간이다. 자. 그럼 옷을 벗어주실까. 인간"

분해서 아시리안을 노려보자 아시리안이 소름끼칠만큼 냉혹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이유까지야 모르지만 아시리안은 내게 화가 나있고 지금 나를 일부러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 좋아. 좋다고. 어디 마음대로 해봐.

아시리안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일단 상의를 벗으려고 상의자락을 치켜올리는데 아시리안이 차갑게 말을 내던졌다.

"그건 필요없어, 하의를 벗는 수고만 해주면 될것같군. 인간. 어차피 여자도 아니면서 설마 밋밋한 가슴까지 만져야 흥분할수 있다고 말하는건 아니겠지? "

“만져달라고 한적 없어!! 니가 멋대로...!!!”

확, 얼굴이 붉어진채 말을 채 잊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아시리안이 아무렴 어떠냐는 오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입다물고 옷이나 벗어라. 인간”

벗어올리던 상의자락에서 굳어버린 손가락들을 떼어냈다. 수치심과 분함 때문에 부들부들 손끝이 떨려왔다. 바지를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끌어내리는 나를 아시리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을뿐이었다. 옷을 벗어내리는 움직임에 바스락, 소리를 낼뿐인 침묵속에서 조금의 배려도, 일말의 따스함도 담겨있지 않은 냉혹한 시선앞에 이내 하체만 벌거벗은채 서버렸을땐 울지않으려 이를 악물어야했다.

아시리안앞에 아래를 보인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형벌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견디려 이를 악물고 아시리안을 노려보자 아시리안도 저걸 어떻게 요리한다지..이런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빨리 끝내줘.”

노려보며 말하자 아시리안이 쿡, 비웃음을 지었다. 그저 입이 웃고있을뿐 눈은 전혀 웃지 않은채로.

“원하는대로”

아시리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명을 지를새도 없이 허공으로 발이 드린다. 밧줄에 거꾸로 묶이듯 세워져서 짧은 머리카락이 전부 땅바닥의 잔디에 닿을듯 말듯 거꾸로 치솟고 온몸의 파가 역류하듯 얼굴로 열이 몰렸다. 몇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거꾸로 세워진 나를 냉혹하게 응시하는 아시리안에게서 머리카락들이 각기 살아있는 각각의 생명체처럼 하늘하늘거리고, 마치 메두사의 뱀처럼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들을 보며 경악으로 눈이 크게 떠졌다.

“시..싫어...........이런건...!!! ... ”

움직이지 않고 냉폭한 표정으로 서있을뿐인 아시리안대신 난폭한 머리카락들이 양팔과 양다리, 사지를 제각각 휘어감았다.

“무슨, 무슨 짓이야!!”

“섭섭한걸, 그런걸 바란게 아니었나?”

거꾸로 들려져서 상의자락이 가슴위까지 내려와 드러난 맨가슴을 한바퀴 두바퀴 빙글빙글 휘어감은 것들이 탐욕스럽게 유두를 비틀었다. 끝을 꼬집히듯이 괴롭히다가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는것처럼 양쪽 돌기를 허공으로 잡아당겨지는 아픔에 비명이 새어나왔다.

"으하..악.!!!시..싫어!!!..이런건..싫단...!!!"

살아있는 수십마리의 뱀들같은 것에 잔인하게 능욕당하는 몸이 도마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몸부림쳤다. 아무리 버둥거리려해도 나를 휘어감고 있는 것들에게서 풀려날수가 없다. 허벅지사이로 스르르륵 기어오는 무언가에 다시 몸부림칠새도 없이 양다리사이의 물건을 조여오는 몸서리쳐지는 느낌에 일그러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걸로도 모자라 엉덩이사이의 골을 따라 가르고 들어와 입구를 살살 간질이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애원하는 눈으로 냉혹한 표정의 아시리안을 바라보았다. 이러지...........마.......이러지...........말란 말이야...

"아시리.............으하..아아악!!!!!!!!!!!!!!"

기어이 엉덩이사이의 깊은곳의 맞물린 사이를 강제로 벌리고 들어온 것이 제멋대로 요동치는 느낌에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비명과는 상관없이 가슴을, 몸을, 앞쪽의 페니스를 자극하는 제각각의 머리카락들은 미친듯이 움직이고 있을뿐,

“그..그만!!!!!!!!!”

간지럽히듯 내벽을 살살 문지르며 안을 들락날락거리는 것들이 쾌감의 포인트를 찾으려는듯 이리저리 움직여댄다. 그 끔찍한 기분에 입술을 꽉 깨물고 아시리안을 노려보았다. 아니, 노려보려 했지만 좁은 내벽을 자극하는 움직임에 다시 몸부림치며 어지러운 눈을 질끈 감았다.

앞을 자극하고 온몸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것들이 내몸을 장난감처럼 희롱하고 있었다. 다리는 강제로 벌려지고 안에 힘을 줄수도 없을만큼 꾸역꾸역 검은 물결들이 가득 메워져 내장까지 후비고 들어올것처럼 가득 차오른다. 그 끔찍함속에서도 한계치까지 몰린 욕망은 비참할만큼 부풀어있었다. 우유빛 끈적한 액체를 절망처럼 토해내자 거꾸로 들려졌던 몸이 그제야 잔디위에 털썩 쓰러져내렸다..경련이 일어나듯 파득파득 떨리는 몸을 휘어감은 머리카락들이 사르르 물러나고있었지만 엎어진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몸속에 박혀 꾸물거리던것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토할것 같았지만 정작 입밖으로 나온것은 내울음소리였다.

“벌써부터 울면 곤란하지. 인간.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아시리안의 목소리에 움찔, 놀란 순간 한쪽 발목에 감겨진 머리카락이 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시..싫어!! 엎어진채 잔디를 움켜쥐고 끌려가지않으려 저항했지만 몸은 속절없이 아시리안쪽으로 주르륵 끌려갔다.

억지로 끌려간 몸이 뾰족한 풀에 쓸리고 찔려서 따가웠다.

하지만 발앞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나를 내려다보는 아시리안의 시선만큼 따갑지는 않았다.

살아있는 뱀들에게 범해지는것도 같았던 끔찍함이 남은 온몸이 아직까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아시리안에게 장난감 취급당한 마음의 상처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멍청하게.. 반항따윌 하니까 그꼴이 되는거다”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내뱉듯이 말하며 내옆에 앉은 아시리안이 내몸에 손을 대려는것을 거부하려했지만 이내 푸른빛이 몸을 감쌌다. 풀에 쓸려난 생채기와 따끔거리던 아픔들이 사라지면서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차오른다. 내 몸에 난 상처는 작은것 하나도 못참으면서 ....마음에 난 상처는 왜 못보는거야. 잔인하게 상처입혀놓고... 사람 헤깔리게 왜 잘 해주는거야

“..... 힘들어서 기대고 싶은게 잘못이야..? 외로워서 의지하고 싶은것도 잘못이야..?”

“그래서 계속 푸른벌레놈따위에게 마음을 주겠다는 거냐?!!!”

프란문제로 화가 난것같아서 꺼낸 말에 아시리안이 다짜고짜 화부터 내자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프란이 내게 다정하게 대해준게,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있는게 이런 벌을 받아야 될만큼 잘못이란 말인가. 왜 화를 내는거야. 나는 친구도 가지면 안된다는 거야? ...너는 나를 장난감 취급하면서?  이렇게 멋대로 취급하면서? 억울하고 분하고 원망스럽고 화가 났다.

“내가 프란과 어떻게 지내든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야!!!”

“그래서 계속 그 푸른 벌레놈따위와 시시덕거리겠다고?!!!감히 내옆에서!!!!!!”

아시리안이 프란을 꼬투리로 잡아서 화를 내는 만큼 내 감정역시 오늘일과 그동안의 설움까지 다 합쳐져 격해질대로 격해졌다.

“내 마음따위 무슨 상관이야!!!옆에 있어도!! 나를 안을때도!! 내이름도 불러주지않는 주제에 프란과 뭘하든 신경쓰지 말란 말이야!!!!!!!”

“한심할만큼 눈치없는 멍청이같으니!!! 신경쓰이지 않았다면 따라오지도 않았다는걸 지금 몰라서 물어!!!!!”

화를 쏟아붓듯 격렬하게 소리치고 숨을 학,학 몰아쉬던 나는 멈칫,해서 아시리안을 바라보았다.

신경쓰여서 따라온거라고? 뭐가? 프란과 함께 시시덕거리는게? 왜?

아시리안도 화가 난 얼굴로 미간을 찡그린채였지만 더 이상 말싸움하고 싶지 않은건지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고 생각해선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 입을 다물더니 한참후 짜증스럽다는듯이 말을 내뱉었다.

“...언제까지 그꼴로 있을거지? 덮쳐달라는 거냐?”

옷을 벗으라고 한게 누군데!! 이꼴로 만든게 누군데!!! 새삼 분해져서 이를 악물었지만 아시리안이 나를 덮치겠다고 할까봐 벌떡 일어서서 얼른 바지를 주워입기 시작했다.

"휴우,,,아쉽다아아.. 축제가 하룻밤 뿐이라니, 너무 짧아. 더 놀고 싶다구"

로뎀마을을 떠나기가 무척 아쉬운듯 이리타가 여러번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것을 보며 우리는 모두 제각각 웃었다. 고용주가 저렇게 어린애처럼 노는것을 좋아해서야... 그래도 거의 새벽까지 놀고 들어왔으면서도 눈밑이 퀭한것은 케드릭밖에 없었다. 다들 쌩쌩한데 케드릭만 눈이 퀭한건 아마도 그 좋아하는 술때문인듯 싶지만..

"어라, 야. 아르, 그 사나운 애완동물은?"

"어머, 그러고보니 독수리가 없네?"

독수리주제에 꽤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오만한 독수리가 보이지 않는걸 뒤늦게 눈치챘는지 다들 한마디씩 물었다.

"아...저, 그게..."

내가 애매한 미소를 짓자 돈되는걸 꽤 좋아하는 케드릭이 그다운 추측성발언을 내뱉었다.

"뭐야. 아르, 그 독수리, 마을에 팔았냐?"

케드릭의 말에 내가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프란이 심플하게 대꾸했다.

“잘했어, 그렇게 사나운 애완동물은 골치아파”

그러다 눈이 할퀴어진다니까 그러네. 게다가 아시리안은 널 아주 싫어한다고. 블랙리스트 1순위에 올려놓은것 같던데..

"팔거면 나한테 팔지, 꽤 영리해보이던데"

"독수리 구이 먹고싶었는데.. 너무해, 아르"

어찌어찌 해명할 사이도 없이 내가 가엾은 독수리를 처리(?)해버린걸로 결론들을 내렸는지 제각각 불만들을 토로해서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굳이 말하자면 말도없이 사라졌으니까 가출한거다. 그 변태 독수리가...

아직도 내게 화가나서인지..아니면 성깔부리고 못된 짓 해놓고 면목없어서 나타나지 못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시리안이 계속 나타나지 않고 있는건 사실이었고 나는 아시리안을 전음으로 불러보지도 않았다. 왕변태놈에게 화가나서이기도 하지만..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나저나...어디로 간거야. 이 망할 변태 독수리놈...

"이봐"

원래 다른 종족들이 이렇게 도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족 아시리안 못지않게 인간을 이름으로 부르는걸 싫어하는 다크엘프 시오니가 웬일로 내게 말을 걸었다. 평소라면 반갑게 맞아주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기분역시 별로 안좋아서 [이봐]라는 말에 조금 불쾌해졌다. 그래서 대답없이 힐긋 시오니쪽을 쳐다보자 시오니가 뜻밖의 말을 건넸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수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건 저위에 있군"

하늘을 힐긋 시선으로 가리키며 하는 말에 따라 올라보려다 멈칫, 시오니를 바라보았다.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독수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그..그게 무슨 말..."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말을 타고 가는 다른 일행들에겐 들리지 않았겠지만 아무리 나직한 목소리라도 벼락이라도 떨어진듯 나는 깜짝 놀랐다. 무엇인지 모르겠다는건.. 마족이라는 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독수리가 아니라는건 알고있다는거 아닌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독수리의 냄새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독수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건....역시,마법인건가?"

마치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시오니를 보며 심장이 불안하게 파닥거린다.

".....다른 일행들에겐..비밀로 해줘요.."

"...그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하긴...말없는 시오니가 입을 여는 경우는 극히 적다..

하루종일 아무말도 안할때도 있고.. 게다가 처음부터 알고있었으면서 지금까지 모른척 해주었다는건..

그저 남의 일에는 이러쿵저러쿵 떠들만큼 관심이 없다, 뭐..이뜻인지도 모른다.

".. 그나저나 너는 보기보다 특이한 취향의 친구들을 데리고 있군. 산적일을 했던 외팔이용병에 바람의 정령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인간귀족에 독수리로 플리모프할수 있는 무엇인지 모를 존재까지.."

....그건 당신이 할말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다크엘프씨.

우리 일행들 중에서 누가 젤 특이하다고 생각하는거야..

"...시오니, 당신은 독수리의 냄새같은것도 맡을 수 있나요?"

"엘프는 자연친화적인 존재다, 정령들의 모습까지도 볼수 있는데 자연의 냄새를 못맡는다는건 말이 안되지."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웬지 이 다크엘프양반..... 지금 잘난척 하는것 같아..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는 내감상을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대단하네요.."

"별로"

그까짓것쯤이야..하는 표정이긴 하지만.. 암만 봐도 잘난척 하는 표정맞는것 같은데..

나는 시오니의 말처럼 까마득한 하늘위에서 날고있으면서 내려오지도 않고 왠지 노려보는것 같은 아시리안을 힐긋 올려다보다 자연스럽게 시오니쪽으로 조금 붙어섰다.

왕변태에 못되게 구는 주제에 다른 사람이 내게 잘해주는것을 꽤 못마땅해하는 그 심술을 생각하면 삐져있어도 곧 내려오겠지...싶어서 아시리안의 표현에 의하자면 [살랑거리는 꼬리를 치듯] 시오니에게 달라붙는 그순간 뭔가가 머리위에 뚝 떨어져내리는 느낌에 에...뭐지? 싶어서 머리위를 만져보았다가 나는 곧 손에 묻혀진 것을 보고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이게...정말.....”

너무 분해서 목소리까지 부들부들 떨린다. 그런 나를 비웃듯이 유유히 푸른 창공을 날아가는 독수리의 뒷꽁무니를 보며 나는 아시리안이 말을 걸기전엔 안걸겠다는 다짐도 잊고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이 망할 변태독수리!!!!!!!! 당장 이리오지 못해!!!! 털을 몽땅 잡아 뜯어 버릴테닷!!!!!!!!!!!!"

내 머리위에다가 냄새나는 똥을 뿌직 갈기고 시침 뚝 떼고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독수리를 향해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는 나를 옆에서 시오니가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제 내게 그,딴,짓을 해놓고 머리위에 똥까지 갈겨논 이 만행을 도저히...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당장 내려와!!!! 이 망할 독수리놈아!!!!!!!"

앞서가던 일행들이 무슨일인가 돌아보다가 곧 무슨일이 내게 벌어졌는지 한눈에 눈치채고 다들 입가를 실룩거렸다. 어쨌거나...내가 엄청 화를 내고 있으니 감히 큰소리를 내서 웃지는 못하고 참고있던 웃음은 유달리 냄새를 잘맡는 시오니가 내게서 슬쩍 떨어지는걸 시작으로 이리타가 곧 배를 잡고 웃어댔고 케드릭 역시 하나뿐인 한손으로 말등을 퍽퍽 쳐대며 게걸스럽게 웃고대고 데런, 그리고 믿었던 프란까지 죽어라 웃어댔다.

이 망할..아시리안!!!! 죽었어, 이 변태독수리노옴!!!

그 머리털을 홀랑 뽑아서 대머리 독수리로 만들어 놓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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