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나무장작은 이쯤하면 됐지?"
품안에 모아온 나무장작을 우수수 쏟아내며 프란이 말하자 데런이 귀족인데도 이런일이 꽤나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게 모아온 나무들로 모닥불을 피우며 대꾸했다.
"이정도면 아침될때까지 넉넉하게 쓸수 있겠어. 그건 그렇고 이쪽 숲은 조용하네, 여기까지 올동안 심심하게 오크한마리도 안보이고 말이지"
"마물들의 거의 대부분이 에오포니아의 남쪽과 북쪽에 집결되어있으니까, 뭐.. 다른 나라들은 모르겠지만."
따분하다는듯이 하품을 하며 이리타가 대답했고 프란이 이리타를 못마땅한듯이 흘겨보았다. 이리타의 옆에는 우리 주위를 둘러선 길다란 나무들의 하나인것처럼 존재감이 없어보이기도 하고 유달리 튀기도 한 다크엘프 시오니가 팔짱을 끼고 묵묵히 서있다.
어쨌든 프란..그 흘겨봄의 원인이 설마.. 여자라고 아무것도 하지않고 편안하게 쉬고있다고 눈치를 주는 그런건 아니겠지.. 우리가 고용인들이고 이리타가 고용주라는 사실을 제발 자각을 좀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쳇..그건 다시 말해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위험하다는 얘기잖아"
그 위험한 쪽으로 가야되는게 내키지않은듯 툴툴거리는 케드릭의 말에 이리타가 싱긋 그쪽을 향해 이를 반짝 빛내며 웃었다.
"그.래.서, 용병까지 고용한 거잖아? 이제 와서 불만이면 당신은 돌아가, 나는 아르만 있으면 되거든"
이리타,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면서 왜 약올리듯이 프란을 보는데? 애인이 아니라 친구사이라고 이제 알법하건만 아마도 그 대단한 오해와 함께 프란을 약올리는 쪽에 상당히 맛을 들린것같다. 이런경우 아니라고 부정하는게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것같아서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무는쪽을 택했다. 이제 진실의 여부따윈 저 우주 멀리 날라가버린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위험한 쪽을 향해 여자하나와 흔치않은 다크엘프가 가는 이유는 뭘까?
몹시 궁금하지만 말해줄 생각같은건 없겠지?"
뭔가 가시가 있는 프란의 말에 이리타가 싱긋 웃었다. 저 반짝이는 눈.. 왠지 걸렸다!! 라고 즐거워한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러나 왠지 지금 이리타의 눈빛이 낚시하다가 금붕어가 걸린 낚시꾼처럼 반짝반짝 거리긴 했어..
"어머, 눈치도 빠르셔라. 알면 됐어. 잘생긴 호모씨"
"알려주지 않는다고 예상까지 못하는건 아니고, 다크엘프와의 이룰수 없는 연애에 도피행각중?"
"오호호홋, 어쩌나, 완전 틀리셨네, 잘생긴 남자들은 왜 모두 호모냐고 투덜거리던거 못들었어? 참고로 말해주자면 시오니는 아르가 무~척 마음에 드는것 같아"
켁!! 두사람의 말씨름에 졸지에 희생양이 된 나는 나와 함께 희생된 시오니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선채 팔짱을 끼고있는 검은 피부의 표정없는 다크엘프 시오니는 이리타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쯤은 시오니와 이리타가 어떤 사이인걸까..라고 궁금증이 들어 조금 길게 바라보았나보다. 이리타에게 쓸데없는 말하면 죽어, 이런 눈빛으로 노려보던 시오니가 내시선을 눈치챘는지 갑자기 시선을 들어서 눈이 허공에서 딱 마주쳤는데.. 홱 구겨지는 표정으로 아예 눈까지 감아버리자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저 반응은 무슨뜻이야..대체...나같은 놈하고 엮이는게 엄청 재수없고 밥맛이다..... 이런 뜻?... 이거보세요. 시오니..나도 이런 오해가 기쁘지는 않거든요?
표정이 없는거야 시오니처럼 아시리안도 마찬가지지만.. 무수히 다양한 심술을 부리고 심사꼬인게 있으면 쉴새없이 투덜거리는걸로 감정을 표현하는 말많은 아시리안에 비해 시오니는 표정도 없고 말도 없으니 감정이 없는건가..싶기도 하고 꽤 친해지기 애매한 부류가 아닐까 싶다. 나를 마음에 들어하든 들어하지 않든,
데런과는 데런이 성격이 좋아서 쉽게 편해진 반면 시오니와는 아직까지도 쉽게 말을 섞을수가 없었다. 굳이 내가 말을 걸기 어렵다라는거 보다는 상대쪽에서 귀찮게 말걸면 죽어, 이런 삭막한 분위기인거다.
전에 산적질을 했으니 스튜라도 끓여보라고 프란이 큰소리로 말하는 통에 케드릭의 전직업이 범죄자였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는 본의 아니게 만천하, 아니 일행에게 모조리 공개되고 산적일 했던거하고 스튜 끓이는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케드릭이 프란의 닥달에 못이겨 마지못해 끓여준 스튜는 우습게도... 맛이 꽤 좋았다.... 그래도 함께 움직이는 일행인데 무슨 약점잡은 사람처럼 케드릭을 이리저리 부려먹는 프란의 행동때문에 맛있다는 말은 목구멍에 칼이 들어와도 케드릭에게 못하겠지만....................................정말 맛있어요. 케드릭, 산적하기전엔 혹시 요리사?
"설겆이는 내가 할게"
프란이 또 케드릭을 부려먹을까봐 설겆이는 내가 하겠다고 얼른 말한거지만 프란의 날카로운 시선은 두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외모와는 전혀 걸맞지않게 트림을 하며 이까지 쑤시는 아름다운 레이디 이리타를 향해 가있었다.
마치 안일어나냐,라고 으르릉거리는 시선, 그 시선을 못본체하며 아, 배부르다..라고 배를 두드리는 이리타... 어쨌든 여러가지로 지켜보는 내가 다 민망하다.
처음에는 멀쩡한 사람들 다 놔두고 팔이 하나밖에 없는 케드릭을 닦달하더니 이제는 고용주라는것도 저 뒷전에 내팽개치고라도 시커먼 남자들가운데 유일한 홍일점인 레이디를 막 부려먹을라고 그러고.... 보니까 싫어하는 사람의 순서대로 일을 시키는것같다. 마이동풍격인 프란이 본격적으로 이리타와 한바탕하기전에 데런이 일어섰다.
"그럼 내가 도와주지"
다행히 데런까지 나서자 설겆이를 누가 하느냐에 대한 살벌한 신경전은 멈추었지만 프란과 이리타 저둘은 붙여두고 가는게 심히 불안하다.. 데런과 내가 없는 사이에 케드릭을 땅바닥에 말라붙은 개똥처럼 생각하는 프란과 시오니를 멀뚱하게 서있는 배경나무들하고 별반 다르지않게 생각하는것 같은 이리타가 때는 이때렷다 하고 신나게 다툴 가능성이 매우...매우 크기 때문이다.
가까운 근처의 개울가로 가서 설거지를 하며 데런이 프란과 처음 만났던 얘기- 처음에 프란을 보고 뭐, 이런 놈이 다있나, 했다는 데런의 얘기를 듣고 배꼽잡고 웃었다. 나도 처음에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와이번고기등을 구워먹은 얘기등을 해주었다. 말을 요목조목 재미있게 잘한다기 보다 데런은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면이 있었다.
데런이 해주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다보니 어느새 설거지는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물속에서 건져낸 그릇들을 잔디위에 물기가 빠지게 엎어논후 손을 씻으려고 찰랑거리는 차가운 물속에 두손을 담갔을때 데런이 말을 걸었다.
"프란이 찾고있다는 사람이 너라는걸 알았을때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손을 씻다가 멈칫, 했지만 고개를 들지는 않은채 마저 씻어내고 양손에 물을 담아 세안을 했다.
"...그래?"
"프란같이 자기중심적인 녀석이 누군가에게 헌신한다는건 그다지 어울리는 광경은 아니지.."
"...나한테 과분한 친구라는건 알고있어."
"친구.. 그래. 친구라 이거지. 누군가에게 지는걸 못견뎌하는 프란이 자신이 첫번째가 아닌 남자를 그렇게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찾아다니다니..놀랐다고 한 이유는 정확히 말하자면 그거야. 나는 적어도 프란이 그렇게 찾아다닌 상대이니만큼 서로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줄 알았거든"
비난하는게 아닌 심드렁한 말투였지만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듣기에는 속이 좀 쓰다.
대답없이 다시한번 차가운 물을 찰박하고 얼굴에 끼얹는 사이 마치 혼잣말하듯 데런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좀 봐달라고 하는거야. 그녀석이 너를 과보호하려고 하는것을.."
....그건 무슨 뜻이지?
"어쩌면 나중에 좀 무리를 하더라도 떼를 좀 쓰는거라고 생각해"
무리를 한다라....? 데런을 슬쩍 돌아보자 데런은 어느새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릇들을 챙기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고 물어도 더 이상 말해줄것 같지 않아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시선이 우뚝 멎었다. 어..........저..새는...?
"그만 가자고, 아르"
"...어.....그래.."
대답을 하고 일어서려다 다시 새가 앉아있는 나무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아도 새가 빤히 쳐다보는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듯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아...............뭐..뭐야..........설마..!!
나를 빤히 지켜보던 새가 갑자기 푸득 날아오르자 급한 마음에 벌떡 일어서려던 나는 지잉, 하고 울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으며 잠시 휘청, 했다..
"..왜그래?"
내가 따라오지않자 앞서걸어가다 멈칫 멈춰선 데런이 묻자 나는 급하게 대답했다.
"먼저 가겠어? 볼일이 있어서 나중에 뒤따라 갈께.."
볼일이라는 말에 아하, 하는 표정의 데런이 큰거든 작은거든 천천히 해결하고 오라고 말을 하고 먼저 돌아간후 나는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정신없이 뛰기시작했다.. 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삼켜지는 공기는 차가운데 토해지는 숨이 뜨겁다.
“잠깐!!..하악!!!!...기... 기다려!!!! ......기다려줘!!!!!!!!”
지하감옥에서도... 그리고 호숫가에서도.. 지금도 .....똑같은 새가 똑같은 눈으로 빤히 지켜보는데 그걸 우연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새가 아시리안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저 새가 아시리안과 관련이 있는것 같은 느낌은 지울수가 없었다.
나를..나를 보고 있었어? 계속 보고 있었던거야?
지하감옥에서 말을 걸때도.. 채찍에 맞고있을때 걱정하는것처럼 나를 보고있던것도..
호숫가에서 말을 걸었을때도.. 부리를 긁어주자 기분좋은 표정을 지었던 것도.. ...... 아시리안이었어............??!!!!.
잘게 떨리는 입술밖으로 토해지는 신음같은 숨소리가 오슬오슬한 저녁의 한기속에 흩어지고.. 이제 한계다, 싶어졌을때 뛰던 걸음을 멈춰섰다. 내의지로 멈춰선게 아니라 몸이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해서 멈춰섰을때는 얼마나 정신없이 달린건지 숨이 막히고 뱃속의 창자가 끊어지는 것처럼 복통까지 호소하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주변을 빙글 돌아보는데 빽빽한 나무들만이 가득찬 숲속엔 으슥한 어둠이 가라앉아있을뿐 조금전 그 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악...!!.....하악...!!...하아.........!!!.........할...말이.........................있..었..는데............."
등뒤의 나무에 털썩 - 떨어져내리다시피 지친 등을 기댔다.
"하아.....하아........하고싶은..말이........있단 말이야..."
등뒤의 나무를 손으로 집으려는데 생각지못한 날카로운 아픔에 읏, 하고 작은 신음을 흘리며 손을 가져와 보니 정신없이 뛸때 나뭇가지에 긁혔는지 깊게 패여 피가 나고 있었다. 생채기 난 손을 내버려둔채 나는 그 자리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자연발화하기 시작하는 인체처럼 온몸도 머릿속도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마에 달라붙은 젖은 머리카락에서 땀방울이 툭 떨어져내린다. 아무렇게나 주저앉은채 무릎을 세우고 허물어지듯 그위에 얼굴을 묻었다.
기다리는것도 지겨워지려던 참이라는거... 그런거 변명이야.
죽여도 좋다고 한말같은거 거짓말이야...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 아시리안을,
더이상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 아시리안을, 보고싶지 않았던것 뿐이다.
나는..................그래서, ....가라고,...가버리라고....그렇게...........
"어이, 인간"
귓가에 꿈결처럼 들리는 말에 무릎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사라지지않는 뜨거운 미열속에서 몽롱하게 눈을 뜨고있어도 눈안에 맺혀있는 액채때문에 시야가 흐렸다...
그 흐린 시야로 나무둥치에 앉아있는 내게서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아시리안이 못마땅한듯이 찌푸려진 오만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있는게 보이자 나는 얼굴을 울듯이 일그러뜨렸다.
..............꿈.............................이...........................야.................
"꼴이 볼만 하군? 그건 눈물이냐. 콧물이냐.
오크만큼이나 지저분하고 더러운 놈 같으니"
시야가 더 흐릿해져서 아리시안의 형체도 희미해질만큼 눈동자에 물기가 그렁그렁하게 차오른다.
"죽고싶다고 하니 이몸이 몸소 죽여주기 위해 오긴 했지만.. ..이제라도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살려줄 용의도 있다. 물론 아직도 죽여달라는 소리를 내뱉는다면 지금 당장 네놈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 먹어치워주지."
... 너무 보고싶어서 만들어낸 환상이야...꿈......일........뿐.....이..........야..
"뭐냐. 건방지게 잘도 떠들어대더니, 너무 감격해서 혀라도 얼어붙었나?"
일어설 힘이 없어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아시리안에게 천천히 양손을 뻗었다. 동물원에 관람하러온 관객이 재롱피우는 원숭이를 보는것처럼 멀뚱멀뚱 쳐다볼뿐인 아시리안에게 나는 힘없이 속삭이듯 아시리안의 이름을 불렀다..
".......아시리안..................."
흐릿한 눈을 깜박거리자 맑은 액체가 다시 주르륵 뺨을 타고 흐른다.
미끄러지듯 턱아래로 떨어지는 뜨거운 물기를 느끼며 눈물을 닦아내려고 팔을 눈가로 가져가는데 몇발자국 떨어져있던 거리에서 서있던 아시리안의 모습이 환영처럼 그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아.......안돼... 앉아있던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세우고 급하게 일어서려는 순간 사라졌던 아시리안의 모습이 바로 내눈앞에서 파앗, 하고 나타났다.
"...........아..........“
"귀찮은 벌레같으니.. 감히 내이름을 함부로 부르.........손은 왜 그모양이야!!"
버럭, 짜증을 내며 손을 채가는 아시리안을 일어서려다 만 자세로 멍하게 올려다보는 사이 서늘한 푸른빛이 손등에 엉망으로 긁힌 생채기들을 천천히 치유한다.
"쳇..이 내가 벌레같은 인간 놈의 이따위 조잡한 상처나 치료하게 되다니.."
..아시리안, 미안하지만 벌레같은 인간의 조잡한 상처를 치료한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내 팔에 멍이 드는것도 싫어했다고..너는..
"울긴 왜 그렇게 울지? 눈동자에 구멍이라도 났나?"
"....그게 뭐 어쨌다는거야.."
아시리안을 올려다보며 말하자 잠시 나를 내려다보던 아시리안이 땀에 축축하게 젖어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마지못한듯 대답했다.
"...이렇게 눈물, 콧물 범벅인 흉한 꼴로 할말은 아니지... 열이 있군."
흉하다면서.. 드러난 이마에 아시리안이 살짝 입술을 가져다대자 몸을 오슬오슬하게 괴롭히던 한기가 싸아아아....흩어지고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체열이 조금 가라앉는다. 아시리안의 입술이 이마에 닿을때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아직 내이마에 입술을 댄채인 아시리안의 뺨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자 어둡고 푸른 불꽃이 꿈틀, 요동친다. 내의도를 파악하려는듯 힐긋 치켜올라간 사나운 눈초리에 멈칫, 손을 힘없이 떨어뜨리자 구겨진 미간의 골이 더 깊어진다.
"내가 손대면 움찔움찔 할정도로 싫어하면서 감히, 내얼굴을 만지다니 간이 크군"
이게 바로 뭐묻은개가 뭐묻은개 나무랜다는 속담이 딱 어울리는 기가막힌 경우란 거다. 홀딱 벗은 내몸을 묶어놓고 거꾸로 매달았다가 돌려세웠다가 하면서 성추행할때는 언제고 겨우 뺨을 조금 쓰다듬었다고 치한취급이라니... 뻔뻔함도 정도가 있다고.. 변태주제에.. 살짝 무안해져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 좀 만진다고 닳는것도 아니고..."
"....먼저 손대지 말라고 과도하게 신경질 부리던 인간이 너였다는걸 잊었나?"
그것가지고 아직도 꽁해가지고 삐져있는걸 보니까 쪼잔한 아시리안이 정말로 맞다 싶어서 풋,하고 어깨를 움츠리고 웃었다. 예민하긴 또 엄청 예민해서 뜬금없이 내가 웃자 그 기분나쁜 웃음은 뭐지? 라는듯 사납게 치켜져올라간 눈매가 조금 무섭긴 했지만 한번 터진 웃음은 물길을 막아둔 둑이 터져 흘러넘치기 시작한 폭포만큼이나 멈출수가 없다.
그대로잖아.. 그대로였어... 똑같아.... 변한건 없는거야. 그렇지..?
"하하하하하......"
한참 웃다가 왠지 조용해서 웃음이 아직 멈추지 않은채로 슬금 올려다보자 아시리안이 시선을 내리깐채 기묘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하하.....?.....아..하........하......아........................."
혼자만 웃어댔고 아시리안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라앉아있는게 신경이 쓰여서 웃음을 멈추는 찰나 서늘한 손가락이 웃음이 남아있는 입술을 매만진다. 그저.. 성적인 느낌보다는 신기한것처럼 조용히 만지고 있을뿐인데도 두근 ...하는 심장박동소리가 발칙하리만큼 크다..
집요하리만치 길게 쓰다듬어서 긴장으로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진 입술안에 미끄러지듯 들어온 두개의 손가락을 거부하지않고 혀로 휘어감았다. 무릎을 꿇고 서있는 자세라 고개가 한껏 위로 젖혀진 입속으로 유린하듯 들어온 손가락은 보이지 않는 은밀한 무언가를 탐험하듯 꼼꼼히 입안을 자극하며 다른손으론 뒤로젖혀진 머리카락을 애무하듯이 움켜쥔다.
"웃....으..............자..잠까................으...!!"
타액을 삼킬 틈도 주지않고 자극하는 손에 움찔,움찔 몸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입속에 들어와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을뿐이지만 농락하는게 입안이 아니라 좁은 항문을 뚫고 그속에서 움직이는것처럼 느껴져서 마치 범해지는것과도 같은 묘한 기대감, 혹은 두려움으로 눈을 살짝 감아내리는 순간 기묘한 열기를 비집고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 아르!!!!"
아, 프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목소리에 흠칫,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서자 내가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입안을 희롱하던 손가락을 빼낸 아시리안이 타액으로 범벅인 입술을 손등으로 닦는 내가 움직일 사이를 주지않고 성큼 다가섰다.
"아르!!! 어디있는거야!!!대답해!!!"
아시리안이 다가서는 만큼 나무가 등을 막고있어 아시리안과 나무사이에 갇히게 된 자세로 나는 당황해서 아시리안을 바라보았다.
"...흐응.. 아르가 너의 이름이지? 저인간.. 너를 애타게 찾는군"
말은 나직하지만 시선을 내리깐채 나를 내려다보는 아시리안의 눈매가 갑자기 사나워진게...화난것 같다.
아시리안....?....내시선을 붙잡은채 상의를 들추고 들어온 손이 가볍게 가슴을 쓰다듬는 것에 어깨가 움찔, 움츠러든다..
".......자..잠깐...........!!"
밋밋한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간지러운 손길에 자라목처럼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하자 아시리안은 나를 힐긋 내려다보며 귓가에 속삭였다.
"저인간에게 들키고싶지 않다면 지금부터 조용히 하는게 좋을걸?."
“..시..싫어!!”
저항하려는 내몸에서 상의를 확 단숩에 치켜올리고 아시리안이 놀란 나를 보면서 비웃듯이 말했다.
"싫은지 좋은지는 네몸에 물어보지. 거짓말을 하는 인간의 혀보다는 육체쪽이 더 믿을만하니까"
"무..무슨 소리야..하지마!!"
화르륵, 달아오른 얼굴로 아시리안의 가슴을 손으로 밀며 저항하자 손목을 잡아 나무위로 올려 머리위로 벗겨낸 옷가지로 갈라진 나뭇가지에 양손목을 묶는다. 프란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를 괴롭히고 싶은게 목적인지 나를 안고싶다는게 목적인지 알수없는 아시리안의 행동에 초조해져서 불안하게 쳐다보자 고개를 그대로 내려 지난번에 깨물린 자리를 할짝 붉은 혀로 핥는다. 몇 번을 델것처럼 뜨거운 혀로 가져다대자 심장부근이 욱씬,하고 저려왔다.
"...아...!!"
목을 움추리며 신음을 내뱉자 쇄골에서 가슴쪽으로 입술을 옮기며 아시리안이 중얼거렸다.
"...들키면 곤란하다고 한건 너다. 인간.. 겨우 이정도로 소리를 내면 안되지. 참아."
타액이 묻은 혀로 이리저리 굴려지는 작은 유두가 괴롭혀지는만큼 촉촉하게 달궈진다. 예민할대로 예민해진 부위에 미끈한 타액이 흠뻑 묻혀져 번갈아 희롱당하는 사이 아시리안의 손에 바지가 속옷과 함께 엉덩이 아래로 끌어내려졌다. 차가운 바람이 드러난 하체에 부딪치는걸 느끼며 쌀쌀한 공기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때문인지 몸이 가늘게 흔들렸다. 배꼽아래로 내려온 손이 다리사이를 열고 들어와 반쯤 흥분한 물건을 잡아오자 수치심과 쾌감이 동시에 나를 흔들었다.
"앗....!!"
"섰군. 겨우 만지기만 했을뿐인데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라니, 원래 민감한건가, 아니 거짓을 말하는 네혀와는 달리 몸이 너무 정직한건가?"
실컷 희롱을 당해 빨갛게 된 젖꼭지에서 입술을 떼어낸 아시리안이 귀를 잘근 물며 속삭이는 말이 앞을 자극하는 손놀림보다 더 야해서 화끈, 얼굴이 달아오르는사이 뭔가가 빽빽한 내부를 뚫고 순식간에 들어왔다.
"윽!!!"
비좁은 아래를 뚫고 들어온 손가락에 입밖으로 터지는 신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순간적으로 크게 떠진 눈동자의 한가득 물결치는것같은 아시리안의 검푸른 머릿카락들이 들어오고.. 이내 눈을 질끈 감자 긴장으로 부들부들 떠는 뺨을 혀로 할짝 핥아올리며 아시리안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쪽은 처음인가?"
한손엔 페니스와 고환을 한꺼번에 쥐고 굴리고 긴손가락으로 남자의 항문이나 집요하게 들쑤시면서 하는 사람의 말치곤 지나치게 냉정하고 건조하다. 울지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뺨으로 뜨거운 액체가 후드득 떨어져내렸다. 점점 한계를 향해 몰아부치듯 스피드를 올리며 빨라지는 움직임에 신음, 혹은 비명을 참아내느라 이를 악문채 새파랗게 질려가는데 아시리안이 내몸을 나무쪽으로 돌려세웠다. 양손이 위로 묶여진 자세로 주춤 한바퀴 빙글 돌자 손목을 휘어감아 묶고있던 천이 아플만큼 팽팽하게 당겨졌다.
깊은 어둠.. 고요한 침묵... 주변의 모든 사물들의 소리가 다 사라져간다...
프란, 케드릭, 데런등등이 나를 찾고있는듯 아르, 아르하고 부르는 소리도 점차 멀어지고....
들리는건 ..등뒤 가까이에 붙어서있는 아시리안의 숨소리와 두려움과 긴장으로 두근,두근,두근거리는 발칙한 심장소리뿐..
나를 돌려세웠을뿐 다른 움직임이 없어 살짝 고개를 틀자 허공에 떠있는 조그만 병에서 쏟아지는 액체를 받아내는 아시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향유...같은 건가보다...라고 생각하는 사이 흥건할만큼 액체를 적신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엉덩이의 양갈래 깊은 곳을 뚫고 침범해 들어왔다.
"............아.......................!!!...................................."
작게 터지는 신음에 서둘러 이를 악물고 익숙해질것 같지않은 이질감을 참아내려 묶여있는 양손에 힘껏 힘을 줬다. 나무둥치에 기대듯이 상반신이 굽은것과는 반대로 허리를 잡아채 움직이지 못하게 한 엉덩이사이로 점점 늘어나는 손가락의 개수만큼 비좁은 구멍의 부담도 커서 허리아래 하반신이 후들후들 떨렸다.
일부러 괴롭히는 것처럼 안을 들락날락하며 내벽을 문지르는 손가락...하아.....하는 숨소리마저 크게 느껴져 숨소리도 막으려고 팔에 수치심과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묻고 부서질듯 이를 악무는데 아시리안이 귓가에 속삭였다.
“너에게서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다.”
무슨 대답?..아시리안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몰라서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안을 괴롭히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손가락하고는 비교도 안될만큼 커다란게 차고 들어오는 느낌에 숨이 컥, 막혔다.
"서툴기 짝이없군. 힘을 빼"
나직한 목소리에 몸전체가 경직되듯 굳어버린 몸에서 힘을 빼려 숨을 천천히 내쉬는 순간 허리를 고쳐쥐며 단번에 쑥, 하고 굵은 불기둥이 좁은 통로를 뚫는다. 숨이 탁,막힐만큼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속에서 쥐어짜듯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아시리안....제..........제발....."
비좁은 항문을 꽂은건 그대로 둔채 아시리안이 내몸을 빙글 돌려세웠다. 안에 꽂혀있는 굵은 기둥이 한바퀴 빙글 돌자 눈이 뒤집힐것 같은 고통에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으로 고개를 젖혀 흐악, 하는 신음을 삼키자 간헐적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머리카락을 안심하라는듯 부드럽게 뒤로 쓸어넘긴다. 막 기절하려는 순간 휘청 넘어가려는 허리를 단단하게 받치듯 끌어안아준다. 위로 묶여있는 팔이 팽팽하게 당겨지는걸 몽롱하게 느끼며 눈물로 흐릿하게 차오른 시선을 들었다.
"멍청하긴.. 비명을 질러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들어올수 없고"
"....하지만........목소리가...들리는...우욱...!!!."
아르..!!..아르..!! 하고 아득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알수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더듬거리며 말하자 아시리안이 안에 든것을 한껏 밀어올리며 오만하게 말했다.
"지금 네놈하고 같이 있는게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지? 내가 만든 결계는 누구도 깰수 없다."
허벅지근처에게 걸리적거리며 걸쳐있던 바지를 완전히 벗겨내고 아시리안이 한쪽 허벅지를 쥐어 들어올렸다. 단숨에 빼냈다가 한꺼번에 깊숙이 뚫고오는 것이 주는게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만큼 아득한 정신이 가물가물해져왔다.
아시리안에게 붙잡혀 허공으로 치솟아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의 반대쪽 허벅지에 뜨겁고 미지근하게 혈흔이 흘러내리고...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것같은 통증때문에 꾹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후드득 떨어져내리는 눈물을 위로하듯이 혀로 할짝 핥아올리는 느낌에 감고있던 눈을 뜨자 뺨에 흥건한 물기를 할짝할짝 핥고있던 아시리안이 굶주린듯한 시선을 맞춰온다.
"....처녀였나"
처,처녀라니... 그게 뭐야.., 나는 남자라고....
긍정하는대신 화르륵 하고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자 그것으로 대답이 되었는지 기분좋은듯 쿡..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녀인줄 알았다면 부드럽게 대할걸 그랬군"
"...그...그런말 그만둬..."
아시리안이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말했다.
“그래서, 대답은?”
무슨 ...하다가 아시리안이 다시 나타났을때 뭐라뭐라 떠들었던게 생각이 났다. 내가 아시리안에게 하고 싶었던 말도..
“....내가 잘못했어... 그리고.....구해줘서...고마워..”
다크블루의 시선으로 한참동안 나를 내려다본 아시리안이 내뺨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길게 쓸어내렸다.
지하감옥에서.. 저택에서..호숫가에서.. 키스하기 전에 그랬던것처럼.
떨리는 눈꺼풀을 감아내리자 천천히 입술이 겹쳐졌다.
지쳐서 숨을 헐떡거리며 쓰러지다시피 바닥에 엎어져있는 내게 아시리안이 가볍게 손을 가져다대자 아픈게 사라져서 한결 숨이 편해졌지만 한차례의 거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머릿속이 멍하다...
"......손.......풀어줘..."
지금도 늦었지만 빨리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멍한 머릿속에 조금쯤 남아있는채라 땅바닥에 얼굴을 묻은채로 말하자 인형처럼 널브러져있던 몸이 아시리안에게 끌어올려졌다.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고 앉은 아시리안에게 품에 안겨진채 나는 내말을 들은건지 안들은건지 아예 눈까지 감아내린 아시리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뭐.......이왕 늦은거.. 잠시 이러고 있는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지도....
억지로 안겨있던 자세처럼 뻣뻣한 몸의 긴장을 풀고 아시리안에게 편안히 몸을 기대고 얼굴을 묻자 어느새 눈을 반짝 뜬 아시리안이 벌거벗은 등을 쓸어내리며 귓가에 속삭였다.
"...한번 더 할까?"
"....시..싫어!!"
화들짝 놀라서 몸을 떼어내려하자 도망치는 팔을 콱 잡아채 품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며 불만섞인 어조로 투덜거린다.
" 울정도로 좋아한 주제에..."
기...기가막혀!!! 착각과 제멋대로의 오해도 저정도면 아주 중증이다. 강간범주제에!!
"더럽게 아팠어!! 아파서 운거.....!......아앗..!!"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하자 내가 미처 방어하기도전에 엉덩이를 음흉한 손으로 의미심장하게 움켜쥐며 귓가에 숨을 훅 불어넣듯 속삭였다.
"아프기만 한건 아니었을텐데?.. 지금 당장 다시 시험해줄수도 있지."
정말 다시 하자고 할까봐 겁에 질려 간지러운 숨이 닿은 귀를 방어하듯 막고 소리쳤다.
"돼.됐어!!, 이 변태야!!"
"....변.태?"
빠직, 이마에 힘줄이 솟은 얼굴로 엉덩이를 위협적으로 주물거리는 손의 악력에 으학, 하고 깜짝 놀라자 정말 다시할 생각은 없었던건지 능글맞은 변태영감처럼 씨익, 웃는다.......
인생을 오래산 어른같기도 하고.. 아직 덜 자라서 장난치는것과 괴롭히는걸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같기도 하고 ... 정말 못말린다니까.... 이 변태마족같으니... 변태스토커주제에..
.......하지만..............좋겠지............잠시........이러고 있는것도...
아시리안의 품안에서 눈을 살짝 감아내리는 순간 새의 깃털처럼 커다란 검은 날개가 포근하게 나를 감싸주는게 느껴졌지만 다시 눈을 뜨고 확인하고 싶지는 않아 그저 피곤이 밀려오는 눈을 감고있었다.
... 아시리안에게 검은 날개가 있다고 해서 놀랄일은 아니지.. 푹신한 오리털이불을 덮고있는것같아 오히려 기분이 좋다.
잠들락말락하는 귓가에 아시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봐, 자는거냐. 인간? 아니...아르......."
몽롱한 머리를 쓰다듬는 손의 느낌도.. 가만가만 속삭이는 말도 ...아르라고 불러주는것도 좋아서 잠결에 살짝 미소를 짓자 깃털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를 품은 무언가가 입술을 살짝 덮어내린다.
그래...잠시...이대로...이대로 있자... 이 품안은 너무 안심이 되서 더이상 악몽을 꿀것 같지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