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릭 미 업 이프 유 캔-211화 (211/216)

& & &

아이스하키 톱스타, 알고 보니 게이?

“아니라고!”

아침에 방으로 배달된 신문을 보자마자 빌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당황해 인터넷 뉴스를 열어 보니 빌의 얼굴이 곳곳에 떠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 코이와 호텔 방에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으로.

그것만이 아니었다. 기사는 조목조목 하나같이 빌을 환장하게 했다.

부상을 핑계로 잠적했던 빌 걸리버, 사실은 연인과?

호텔 방에서 밀회를 즐기는 모습 파파라치에게 찍혀

“아냐, 이 개새끼들아!”

빌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사진에 담긴 이들은 틀림없이 코이와 자신이었다. 줄곧 그의 뒤를 쫓아다니던 파파라치가 기어이 일을 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걸로 짐작되는 건물은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호텔에 있는 동안 그 건물을 매일 보면서도 설마 그곳에서 사진을 찍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파파라치의 카메라는 허블 망원경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있지?

빌은 당장 매니저에게 연락해 잘못된 보도를 정정하려 했다. ‘빌이 동부에 온 이유는 그가 좋아하는 ‘여성’에게 구애하기 위해서이고, 사진이 찍힌 상대는 그녀와 빌을 둘 다 알고 있는 친구로서 고민 상담을 해 준 것뿐이다.’라는 말을 전했으나 그다음에 나온 기사는 더욱 가관이었다.

상대는 고교 동창으로 밝혀짐

상대는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다고. 사실 둘의 관계는 그때부터?

연인을 감싸기 위해 실체도 없는 여성에게 구애하러 왔다는 거짓말까지…

“으아아아!”

빌은 이러다 대머리가 될 것 같았으나 머리를 움켜쥔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어째서 이런 일이?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코이와의 통화 내용이었다. 코이는 빌의 전화로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으나 기사를 본 애슐리가 그에게 전화를 했었고, 당시엔 아무것도 몰랐던 코이는 솔직하게 사실을 전달했으며 애슐리 또한 납득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빌을 위로하며 전화를 끊은 덕에 그쪽에 대해서는 안도했지만 어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함에는 변함이 없었다.

종일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수습을 위해 날뛰던 빌에게 전화가 온 것은 어스름이 깔릴 즈음이었다. 호텔 프런트에서 걸려 온 전화에 마지못해 받자 직원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 방문객이 있는데 만나시겠어요? 애슐리 밀러 씨라고 합니다.

순간 놀라 굳은 빌에게 그가 덧붙였다.

- 할 얘기가 있다고 하시는데요. 방문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건너편에서 들리는 말의 의미를 빌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애슐리 밀러라는 이름만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다.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수화기 너머에서 부르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애, 애슐리 밀러라고요? 변호사?”

- 네,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하시는데요.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참을성 있게 반복하는 말을 듣고 빌은 급히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아픈 뺨을 문지르며 머리를 굴렸다. 코이의 말에 따르면 애슐리는 상황이 어찌 된 건지 인지하고 있다. 어쩌면 변호사로서 조언을 해 주러 온 건지도 모른다.

조심스러운 희망을 품는데, 갑자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 빌?

“애, 애쉬?”

난데없는 음성에 빌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인데도 불구하고 빌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 빌에게 애슐리가 말을 이었다.

- 우리끼리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 올라가도 될까?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냉정하고 차분했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음성에 빌은 거리감을 느꼈으나, 반면 그래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코이와의 통화까지 뒤따라 떠오르자 근거 없는 확신이 그에게 자리잡았다.

맞아, 우린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잖아.

어릴 때의 기억이 그를 희망에 부풀게 했다. 으흠, 급히 헛기침을 한 빌은 다시 직원에게 전화를 넘겨 흔쾌히 방문을 받아들였다.

“네, 좋습니다. 그리고 샴페인도 하나 갖다주겠어요? 아무거나 좋습니다.”

전화를 끊은 빌은 후, 숨을 뱉은 뒤 두 손바닥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대충 어질러진 실내를 치우며 오랜만에 동창을 만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 이럴 땐 친구가 최고지. 같이 술이나 마시면서 지난 얘기도 하고.

하필 코이랑 그런 기사가 나가게 된 건 사과해야겠지.

입장을 바꿔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상대를 죽기 직전까지 패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빌은 애슐리를 믿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와 함께 나누었던 우정을 강하게 신뢰했다.

〈애쉬는 별 얘기 없던데?〉

해맑던 코이의 음성을 떠올리며 그는 다시금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드디어 초인종이 울렸을 때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오랜 친구와의 감동적인 해후를 끝내고 있었다. 급히 달려간 빌은 주저없이 문을 열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친구를 맞이했다.

“애쉬, 오랜만, 우억!”

힘차게 흘러나온 인사말은 미처 끝을 맺지 못한 채 비명으로 돌변했다. 퍽,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앞이 번쩍하고, 그는 코를 움켜쥐며 뒤로 휘청 물러났다.

“무, 무슨.”

간신히 정신을 차린 빌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를 쫓아 성큼성큼 실내로 들어온 남자는 분명 애슐리였다. 긴 코트에 빈틈없는 슈트를 걸치고 말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세련된 남자의 모습에 고등학교 때 숱하게 보아 왔던 앳된 모습이 겹쳐진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애슐리가 아이스하키 스틱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잠깐 애쉬, 진정해, 뭐 하는 짓이야!”

빌은 금세 사색이 되어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대체 그건 뭐야? 얘기를 나누자고 했잖아!”

“그래.”

필사적인 외침에 애슐리는 스틱을 고쳐 들고 말했다. 여전히 서늘한 음성으로.

“자, 이제 대화를 나눠 보라고. 내 스틱과.”

곧바로 애슐리가 스틱을 휘두르고, 빌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쌌다.

“야, 이 미친놈아!”

& & &

“코이!”

문을 열자마자 사색이 되어 뛰어들어 온 에리얼의 모습에 코이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맞이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혹시 괴한이라도 따라붙은 게 아닐까 싶어 급히 뒤를 살피는 코이에게 에리얼이 다그치듯 물었다.

“일이 있는 건 너잖아! 괜찮아? 아무 일 없었고?”

이리저리 둘러본 에리얼이 다시 코이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코이는 어리둥절해하며 아니, 하고 대답했다. 에리얼은 가만히 표정을 살피더니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파에 털썩 앉은 에리얼에게 허브티를 끓여다 준 코이는 뒤늦게 상황을 인지했다.

“하루 종일 난리였는데 전혀 몰랐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야 숨을 돌린 에리얼이 물었다. 코이는 괜히 민망해져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빌이 전화해서 알았어. 인터넷이고 뭐고 안 했으니까 전혀 몰랐지 뭐……. 빌이 많이 난처해졌겠더라고.”

에리얼은 굳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다른 문제니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 기자들이 널 찾아서 여길 습격할지도 몰라.”

“정말이야?”

코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애쉬는? 연락해 봤어? 뭐라고 해?”

“어? 아니.”

코이는 고개를 가로젓고 대답했다.

“애쉬가 먼저 전화했었어. 별 얘긴 없었고, 빌에 대한 걸 좀 물어보긴 했는데 다 이해하고 끊었거든. 애쉬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코이는 그렇게 말하고 미소까지 지어 보였으나 반면에 에리얼의 얼굴은 점차 하얗게 질렸다.

“그게 언제야?”

다그치듯 묻는 말에 코이는 어, 하고 눈을 깜박거렸다.

“글쎄, 점심 좀 지나서……?”

“휴대 전화 줘 봐. 아니지, 전화해. 지금 당장, 애쉬한테.”

얼떨떨해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전화를 걸었던 코이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받아.”

“빌도 마찬가지야.”

곧바로 휴대 전화를 내려놓은 에리얼이 벌떡 일어섰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가자.”

“어딜?”

다짜고짜 팔을 잡아끄는 손에 어리둥절해하며 이끌려 간 코이가 묻자 급히 현관을 향해 가던 에리얼이 뒤를 돌아보았다.

“빌한테. 그대로 두면 죽을지도 몰라.”

“빌이? 왜?”

놀라 소리치자 에리얼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내뱉었다.

“애쉬가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까.”

“뭐? 아니, 잠깐만!”

코이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애쉬는 다 이해했다고. 모두 오해라고 말했다니까?”

“네 말대로라면 다행인데 말이지.”

에리얼은 심각한 얼굴로 코이를 바라보았다.

“만약에 내 예상이 맞다면 애쉬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