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릭 미 업 이프 유 캔-208화 (208/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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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쾅쾅쾅쾅!

계속된 소음에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 벌써 10분이 넘게 이런 상태였다.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는 뻔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코이, 어서 이 문 열어.”

얇은 현관문 너머로 으르렁거리듯 날게 깔린 음성이 질러왔다. 코이는 한층 더 숨을 죽이고 몸을 웅크렸다. 이대로 있으면 갈 것이다.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 두 손으로 입까지 틀어막은 채 그가 포기하고 돌아서기를 기다렸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조금만 더.

그때 밖에서 뭔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이웃이 소음에 항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앞의 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뒷말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장 꺼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어, 이 망할 자식아!”

“…….”

방금 전까지 요란하게 울려 대던 문소리가 고요해졌다. 드디어 애쉬가 포기를 하려는 걸까? 돌아서서 가 버리는 발소리를 기대하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을 때였다.

쾅!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소음이 좁은 집안 가득히 울려 퍼졌다.

“히익!”

자신도 모르게 놀라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잠깐 사이를 두었던 애슐리가 다시 문을 걷어찼다. 방금 전까지 주먹으로 두드리던 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금방이라도 가냘픈 문은 부서져 바닥에 나동그라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코이는 달아나긴커녕 그대로 굳은 채 몸을 떨며 눈만 크게 뜨고 흔들리는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또다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문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균열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났다.

“……하아.”

복도의 어두운 불빛을 등지고 선 거대한 남자가 짜증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며 흘러내린 금발을 쓸어 넘겼다. 낡은 침대 위에 한껏 웅크려 있던 코이는 소스라치게 놀라 숨을 멈춘 채 크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몇 시간 전.

몸과 정신 모두 너덜거릴 정도로 피곤에 절어 있었으나 애슐리 밀러는 전혀 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집 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마지막으로 세탁실까지 열어 본 후에야 비로소 애슐리는 현실을 인정했다.

코이는 오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빠득,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자신의 고막 안쪽에서 들려왔다. 한동안 그 자리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그는 이내 발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잔을 꺼내 위스키를 따를 여유도 없이 뚜껑을 열자마자 병째로 들이켰다.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며 한 번에 3분의 1 가까이 비웠으나 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망할 페로몬 때문이다. 이토록 그를 괴롭히는 두통도, 끝없이 계속되는 불면도, 아니, 전부 다. 발현했을 때 이미 그는 완전히 끝난 것이다.

‘넌 가진 게 많잖아.’

틀렸어, 코이.

코이는 애슐리에게 가진 것이 많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 간 지 오래였다. 가장 먼저 코이를 잃고, 희망을 잃고, 앞날도 살아갈 의지도, 기억도, 이제는 감정조차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엉망인 그의 삶만큼 그의 머릿속 또한 그랬다.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건 아니겠지.

후회해 봤자 늦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애슐리는 조리대에 두 손을 얹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휴대 전화의 시계에 머문 채였다.

한동안 그렇게 아무 움직임이 없던 그는 자정이 지나자마자 곧바로 휴대 전화를 낚아채듯 들고 주방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애슐리는 충분히 기회를 줬고, 기다렸다. 그것을 놓친 것은 코이다. 이제 애슐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는 변명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애슐리는 순식간에 코이가 살고 있는 낡고 후진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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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는 사색이 되어 잔뜩 몸을 움츠렸다.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뭔가 말을 해야 했지만 목이 꽉 잠긴 것처럼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저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 애슐리는 주저없이 발을 옮겨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쾅, 주먹으로 벽을 때리는 소리에 코이가 화들짝 놀라자 그는 이를 갈며 내뱉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내 집에 와 있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그랬, 지만.”

코이는 떨리는 음성을 간신히 쥐어짜 말했으나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린 그를 본 애슐리의 얼굴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좋아, 일어나. 지금 당장 내 집으로 가자고.”

“자, 잠깐, 애쉬.”

코이가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벌써 애슐리는 그가 코끝까지 뒤집어쓴 얇은 모포를 가차없이 벗겨 낸 다음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참지 못한 진한 향기가 일시에 퍼져 나갔다.

애슐리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이 향이 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온몸을 두드려 대는 맥박과 달아오르는 몸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크게 뜬 눈으로 경악하듯 그를 내려다보는 애슐리의 시선에 코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가쁜 숨결을 내뱉으며 벌어진 입술이 그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미안, 애쉬, 나…….”

간신히 흘러나온 음성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껏 억지로 눌러 왔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대로 고꾸라질 뻔한 몸을 간발의 차이로 애슐리가 붙잡았다. 한층 더 진해진 향이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그야말로 눈앞이 하얗게 변해 버릴 정도였으나 애슐리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아픔에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최대한 숨을 모았다 얕게 내쉬며 말했다.

“됐으니까 나중에 해.”

고작 그렇게만 말한 뒤 애슐리는 다짜고짜 코이를 안아 들었다. 평소에도 걸음이 빨랐던 그는 마치 경보라도 하듯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고 계단을 한 번에 서너 개씩 밟아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차에 다다랐다.

어렴풋이 눈을 떴던 코이는 자신을 조수석에 앉힌 애슐리가 곧바로 차를 돌아 운전석에 앉는 모습을 봤다. 곧바로 차를 출발시키며 그는 버니스에게 전화를 했지만 코이는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터진 히트사이클이 전신을 끓어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그는 신음을 흘리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진정해, 조금만 참아.”

애슐리는 그렇게 말했으나 그다지 진정성은 없었다. 그도 역시 자꾸만 달아오르는 몸에 벌써 몇 번이나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성을 잃고 차 안에서 코이를 덮쳐 버릴지도 모른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코이를 지켜야 돼.

무엇으로부터인지는 모른다. 그는 마치 뒤를 바짝 쫓아오는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기라도 하듯 미친 듯한 속도로 도로를 질주할 뿐이었다.

“밀러 씨!”

간신히 차를 세운 애슐리에게 버니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애슐리는 대답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직접 코이를 안아 들었다.

“스튜어드 박사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보다 괜찮겠어요? 스트레처 카트를 준비해 놨으니 거기로…….”

버니스가 빠르게 말했으나 애슐리는 그녀를 지나쳐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발견한 직원들이 다급하게 안내를 했다.

“저쪽입니다, 밀러 씨, 정말 괜찮습니까? 페로몬 향이 너무 강한데요.”

“밀러 씨, 그분을 카트에 내려 주세요. 밀러 씨!”

계속해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이어졌으나 애슐리는 멈추지 않았다. 간신히 그가 코이를 내려놓은 것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의사와 마주한 뒤였다.

하아아…….

침대 위에 누운 코이 주변을 의료진들이 감싸는 것을 본 후에야 비로소 애슐리는 뒤로 물러났다. 입에서는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숨을 쉴 때마다 폐 속 깊숙이 파고드는 페로몬 향기가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밀러 씨, 어서 나와요! 빨리!”

어느새 따라온 버니스가 소리쳤다. 순순히 그녀에게 이끌려 복도로 나온 애슐리는 흔치 않게 경직된 비서를 향해 낮은 소리로 뇌까렸다.

“괜찮아, 소리 지르지 마. ……머리가 울리니까.”

그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듣기 괴로울 정도였다. 곧바로 입을 다물었던 버니스는 슬쩍 병실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안에서 흘러넘치는 페로몬 향은 그녀도 아는 것이었다. 애슐리를 파티에 데려갈 때 질리도록 맡았던 바로 그 향기였다. 다만 한 명이 쏟아 내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할 뿐.

“설마, 저 아이가…… 이건 나일즈의 페로몬입니까?”

자신감 없이 사그라드는 음성에 마치 바람이 새는 것처럼 짧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던 버니스는 입가를 비뚤어뜨리며 냉소를 짓는 밀러의 얼굴을 목도했다.

“왜 아니겠어?”

가쁜 숨소리에 섞여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흔치 않게 등골이 오싹해지고, 이미 세상에 없는 또다른 밀러에게서 느꼈던 두려움이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 이제 그런 공포는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자신했던 버니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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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가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가 어떻게 된 건 아닌지 두려움을 느꼈던 그는 자신이 반사적으로 들이켠 숨소리가 고막을 울리는 감각에 간신히 마음을 놓았다.

아니었구나.

휴우,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병실 안에는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또 있었다. 왠지 모를 섬뜩함에 머뭇거리며 고개를 돌렸던 코이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소파에 앉은 남자가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시선이 맞닿자 그제야 반쯤 남은 위스키 글라스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그가 입을 열었다.

“안녕, 코이.”

낮고도 부드러운 음성은 분명 기억에 있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코이는 어째서인지 반가움보다 불안감을 먼저 느꼈다. 전화로 얘기했을 때와 다르게 왠지 그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그가 떠올랐을 때,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몸은 좀 어때?”

여전히 다정한 음성에 코이는 자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애쉬는 예전이랑 다르지 않은데 내가 왜 이러지. 자꾸만 떠오르는 냉혹한 얼굴을 억지로 떨쳐 내고 간신히 웃어 보였다.

“응, 괜찮아. 고마워.”

“다행이군.”

애슐리가 마주 웃었다. 이제 마음이 놓여야 했지만 코이는 전혀 그러질 못했다. 자꾸만 그의 반응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자꾸만 어색해하는 코이에게 애슐리는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이도 무사해, 걱정하지 마.”

코이가 반응을 한 것은 몇 초의 공백이 있은 뒤였다.

“……아이?”

한동안 코이는 멀뚱히 애슐리를 보기만 했다. 슬그머니 자신의 한쪽 뺨을 찰싹 때리는 코이의 모습에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현실이야. 네가 임신했다고.”

반응이 나온 것은 몇 초의 공백이 있고 나서였다. 그저 눈만 깜박이던 코이가 뒤늦게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임신? 내가? 어떻게?”

연달아 나오는 질문에 애슐리는 일부러인 듯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네가 오메가로 변이했으니까.”

순간 코이가 멈칫했다. 그 반응을 놓치지 않은 애슐리가 보일 듯 말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알고 있었군.”

코이는 입을 벙긋거리다 어쩔 수 없이 실토했다.

“네가 페로몬 쇼크로 기절했을 때…… 히트사이클이 왔었어.”

“앨의 집에서?”

곧바로 반응한 애슐리에게 코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길에서 갑자기 그렇게 돼서. 별일은 없었어. 앨이 도와줘서…….”

이번에는 애슐리가 침묵했다. 잠시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이 떠돌았다. 어쨌든 에리얼 덕에 상상하기도 끔찍한 불상사는 면했으니 감사해해야 한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렸던 코이의 히트사이클을 에리얼이 가로챘다고 생각하자 화가 치밀었다.

감정과 이성이 교차하는 지점을 지그시 내리눌러 현실로 돌아온 그는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코이가 먼저다.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다행이군.”

애슐리의 사무적인 음성에 코이는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아이라니 무슨 소리야? 임신했다니, 난 도무지…….”

당황해하는 그를 보며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넌 오메가니까 임신이 가능하지. 너와 내가 한 짓은 본래 임신이 목적인 거고.”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애쉬가 뭐라고 했었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내용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베타인 자신이 어떻게 임신을 한다는 건지, 애슐리가 착각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건 그가 아니라 코이 쪽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아…… 알고 있었어? 내가 오메가가 됐던 걸…… 설마, 이, 일부러 그…… 그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코이를 보며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꼭 그렇진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코이는 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물었다. 애슐리는 평소보다 느린 말투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때 러트가 왔었어. 주기와 맞지 않게 찾아와서 그랬는지 아주 짧았고 기억도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너와 섹스를 할 동안에는 이성이 없었어.”

차분하게 이어진 설명에 코이는 잔뜩 긴장해 귀를 기울였다. 그의 말에 허점은 없었다. 사실일 것이다. 애슐리는 물론 셰퍼드까지 엔젤의 페로몬에 얼마나 무기력하게 무너졌는지 실제로 보았지 않은가.

내가 극오메가라는 게 맞는다면…….

그렇다면 애슐리가 이성을 잃고 러트를 일으킨 것도 말이 된다. 그나마 기절하거나 하지 않고 짧은 러트로 끝난 건 코이가 페로몬 조절을 잘하지 못한 덕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내가 오메가가 된 걸 그때 이미 알았다는 얘기야?”

애슐리는 빤히 코이를 바라보았다. 평소엔 맹하게 보이다가도 가끔 이렇게 허를 찌르는 건 평소 그가 생각했던 코이의 사랑스러운 요소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래.”

애슐리는 이번에도 솔직히 대답했다. 그는 직업상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했지만 코이에게만은 예외였다. 사실을 전부 말하지는 않았으나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코이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고, 실망스러웠으나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말 안 했어?”

그는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붙잡고 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진작 말했어야지, 내가 오메가라는 것도, 임신했다는 것도 알았으면서…… 왜 지금껏 말하지 않고 숨겼어? 왜?”

“숨긴 건 아냐.”

“그럼 이건 뭔데?”

즉시 따지고 묻는 코이에게 애슐리는 뜸을 들이듯 느리게 말했다.

“타이밍을 기다렸을 뿐이야.”

“타이밍.”

“그래.”

코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단어를 반복하자 애슐리는 선뜻 말을 이었다.

“네가 오메가라는 걸 나도 확신할 수 없었어. 네게서 페로몬 향기를 맡긴 했지만 넌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고, 그게 아니면 네가 감추려고 하는 건가도 생각했었지. 기억나지 않아? 바로 전날 밤 넌 나한테 남자와 많이 자 봤다고 거짓말했잖아. 우리가 섹스를 한 다음 날도 그렇게 말했었지, 우리는 섹스파트너에 불과하다고.”

순간 코이는 자신이 친 덫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발을 잡혀 버린 기분을 느꼈다. 그 표정을 본 애슐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말해 봐, 코이.”

코이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가뜩이나 말주변이 없는데 궁지에 몰리고 나니 더더욱 생각나는 게 없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코이를 한동안 보고 있던 애슐리가 자, 하고 주의를 환기했다.

“어쨌든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도 너한테 말했어야 했는데 그건 내 잘못이 맞아. 그래서, 그럼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어?”

코이가 멍하니 눈을 깜박이자 복잡한 머릿속을 억지로 비집고 열듯 애슐리가 말했다.

“일단 의사를 만나서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야겠지? 네가 준비만 하면 의사는 지금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어. 다음 일은 그 뒤에 생각할래? 어떻게 할까?”

코이는 무심코 시트를 꽉 붙잡았다. 후, 떨리는 숨을 뱉어 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의사를 만나고 싶어.”

“좋아.”

선뜻 말한 애슐리가 휴대 전화를 들었다. 그가 전화를 하는 동안 코이는 그저 멀거니 눈만 깜박이며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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