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릭 미 업 이프 유 캔-203화 (203/216)

“애쉬!”

갑자기 애슐리가 하얗게 질려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무릎을 꿇고 구역질을 해 대며 몸을 웅크리는 그를 보고 코이는 놀라 소리치며 달려갔다.

“애쉬, 왜 그래? 정신 차려, 애쉬!”

거듭 이름을 불렀으나 애슐리의 발작은 더욱 심해질 뿐 나아지질 않았다. 급기야 호흡곤란까지 일으키는 그를 보고 코이는 하얗게 질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더욱 당황하고 말았다.

없어.

아무리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찾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엔젤이 사라졌어.

코이는 패닉에 가까운 상태로 간신히 떠올렸다. 자신이 애슐리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엔젤은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남아있는 건 엔젤을 끌고 왔던 남자와 애슐리와 자신뿐이었다. 그나마 남자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였다.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는 애슐리를 두고 급히 프런트에 연락을 하려는데, 벌떡 일어선 코이를 애슐리가 붙잡았다. 놀라 내려다본 코이에게 애슐리는 치미는 구역질을 억지로 삼키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전, 화.”

“어?”

끊어지는 소리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코이가 황급히 몸을 숙여 귀를 기울이자 애슐리가 거친 숨결 사이로 간신히 단어를 뱉어 냈다.

“내, 휴대, 전화, 테이블, 위에.”

겨우 들어 올린 손끝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내 그의 휴대 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다급하게 달려간 코이는 낚아채듯 휴대 전화를 가져와 애슐리에게 내밀었다.

“여, 여기.”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애슐리가 휴대 전화의 화면을 열었다. 몇 개의 버튼을 누르자 곧이어 상쾌한 바람이 느껴지고, 가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넓은 집 안 곳곳에 설치된 환기 시설이 일시에 가동되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연신 애슐리는 구역질을 해 댔다. 더이상 나오는 게 없는데도 급기야 위액 섞인 침을 뱉어 내는 그를 보고 코이는 어쩔 줄 몰라 하다 부랴부랴 컵에 물을 따라 돌아왔다. 그동안 바닥에 엎드린 채 괴로워하던 애슐리는 벌써 의식이 사라져 있었다.

“애쉬!”

서둘러 그를 끌어안은 코이가 물을 먹이려 했으나 컵을 기울여 봤자 물은 입가로 흘러내릴 뿐 도무지 목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연거푸 이름을 부르며 몸을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때, 휴대 전화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씨? 괜찮습니까? 밀러 씨?

거듭된 음성에 코이는 황급히 전화를 받아 대답했다.

“저, 애쉬가 지금 정신을 잃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잠깐 멈칫했던 상대방이 말했다.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짧게 설명해 봐요.

코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털어놓았다. 엔젤에 관한 얘기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극오메가의 향기를 맡은 뒤 이렇게 됐다는 얘기를 하자 곧 그녀는 대답했다.

- 금방 가겠습니다. 구급차는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코이에게 누구냐고 묻지도, 자신이 누군지도 설명하지 않은 채 그는 전화를 끊었다. 코이는 당혹스러워졌으나 애슐리가 먼저 전화했던 상대인 만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말한 대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그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코이는 전화를 받았던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녀를 본 순간 삽시간에 코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녀의 얼굴은 그때보다 훨씬 나이가 들긴 했지만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넌 사실은 애슐리 밀러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니?〉

바로 애슐리 아버지의 비서였다.

& & &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바로 거실에 밀어닥친 사람들이 다짜고짜 애슐리를 에워쌌다. 코이는 어쩔 틈도 없이 그들에게 밀려 밖으로 떨려나 버렸다. 다시 그들을 밀쳐 내고 애슐리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그런 코이를 누군가 붙잡았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역시나 그녀가 코이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노, 놓으세요.”

코이는 반사적으로 겁에 질렸으나 간신히 성대를 쥐어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코이의 가장 아픈 곳을 찔러 왔다.

“넌 여전히 아무 도움도 못 되고 있지 않니? 네가 있었는데도 주니어가 저런 꼴이 되어 버렸잖아.”

너무나 사실이었기 때문에 코이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단지 억울한 감정만으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도 없었다.

“애쉬에게는 제가 필요해요.”

“아니, 주니어에게 필요한 건 의료진과 뒤처리를 맡을 고용인들이지. 바로 저 사람들 말이야.”

비서는 한 차례 그들에게 눈짓을 던진 뒤 다시 코이를 응시했다.

“넌 비켜나 있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더는 버틸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입술을 깨무는 코이를 올려다봤던 비서가 그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코이의 옆을 스쳐 가려는 비서에게 코이가 입을 열었다.

“애쉬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건가요? 그건 말해 줄 수 있죠?”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절박함이 더 강하게 깃들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본 비서에게 코이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애쉬는 알파인데 오메가의 페로몬에 저렇게 발작을 일으킨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오메가나 알파는 서로의 페로몬을 맡으면 발……정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애쉬는 왜 저러는 거죠?”

민망한 단어를 입에 올리기 껄끄러워 다소 주저하며 언급하자 그녀는 가만히 코이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초조해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손을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난 코이에게 비서는 손을 내밀더니 불현듯 뺨을 쓰다듬었다. 놀란 코이가 얼어붙자 그녀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멋진 남자가 됐구나, 코너 나일즈.”

생각지 못한 상황에 코이는 즉시 반응하지 못하고 눈만 깜박거렸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예전엔 감히 내 눈을 마주 보지도 못했는데, 기특하네.”

뒤늦게 코이는 그녀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흔들어 손을 떨쳐 내 버렸다.

“제 질문에 먼저 대답해 주세요. 애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죠? 왜 오메가 페로몬에 저렇게 이상 반응을 보이는 건가요?”

다소 날카로워진 음성에 비서는 놀란 척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곧 허공에 뜬 손을 거둬들이고 대신 자신의 단발머리를 어깨 뒤로 쓸어넘겼다.

“보통의 알파라면 그래, 오메가 페로몬에 저렇게 혐오스러운 반응을 일으키진 않지. 극알파라고 해도 다를 건 없고.”

“……그럼, 그게 극오메가의 페로몬이라서.”

“그건 아냐.”

조심스러운 코이의 추측을 비서는 단칼에 잘라 냈다.

“주니어는 어떤 오메가의 향을 맡든 저런 반응을 해. 견디질 못하지. 오메가 페로몬에 발작을 일으키는 알파라니 정말 어이없지만 사실이란다.”

그녀의 말을 전부 다 알아들었는데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어째서? 왜? 다른 알파들에겐 그런 일이 없는데.

왜 애쉬만?

“애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코이의 떨리는 음성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그건 주니어에게 직접 들으렴. 내가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으니.”

“저기요!”

그대로 돌아서려는 그녀를 코이가 다급하게 불러세웠다. 걸음을 멈춘 비서가 돌아보자 코이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애쉬가 눈을 떴을 때, 혹시 페로몬 향이 남아 있거나 하면…… 또 이렇게 반응할까요?”

자신감 없는 질문에 비서는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마 그렇겠지? 오메가 향을 맡으면 항상 이랬으니까.”

그대로 돌아서려던 비서가 아, 하고 멈춰 섰다.

“저기요, 가 아니라 버니스란다. 미스 버니스.”

자신의 이름을 알려 준 뒤 그녀는 선뜻 걸음을 떼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남겨진 코이는 멍하니 서서 그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 & &

애쉬가 오메가 향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다니.

코이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걸어갔다. 부산한 사람들 틈에서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짐이 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애슐리가 깨어나면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긴 후 자리를 떠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그는 한참을 걷고 난 뒤였다.

그래서 애쉬는 베타인 게 오히려 더 좋다고 했던 걸까?

그러면 그동안 페로몬은 도대체 어떻게 빼고 있었지? 지금까지 상대는 그럼 다 베타였던 걸까? 도무지 하나도 모르겠어…….

애슐리가 깨어나면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그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만약에 엔젤의 말이 사실이라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정말로 오메가라면 애쉬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거야.

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더 이상 애쉬랑 함께 있을 수 없게 될지도…….

거기까지 떠올렸을 때, 갑자기 몸 안쪽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코이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피가 역동하며 맥박이 몰아쳤다. 현기증이 일어나고 숨이 가빠지는데, 흥분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흘러넘쳤다.

언젠가도 이런 감각을 느꼈던 적이 있다. 혼자 열에 들떠 며칠을 앓았을 때, 그저 이상한 독감에 걸렸을 뿐이라고 생각했었던 바로 그때 그 감각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히트사이클이 오면 알게 될 거야.〉

그 순간 엔젤의 말이 떠오르고, 눈앞이 하얗게 변색되었다.

에리얼은 초조해하는 얼굴로 거실을 서성거렸다. 그녀의 집 안엔 놀랍게도 페로몬 향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몇 차례 거실을 빙빙 돌다 걸음을 멈출 때면 시선은 언제나 한쪽으로 향했다. 바로 페로몬 향기가 흘러나오는 방향이었다. 코이가 틀어박혀 난생처음 히트사이클에 끙끙 앓고 있는 방을 바라보며 에리얼은 또 한 번 끓어오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녀는 열이 오르는 것 같은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갑자기 코이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마침 그녀는 기사를 완성하고 업데이트를 하던 참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반갑게 친구의 전화를 받았으나 귀에 들어온 목소리는 뜻밖의 것이었다. 잔뜩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음성에 놀란 에리얼이 다급하게 회사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다 간신히 그를 찾았을 때는 벌써 히트사이클이 한참 진행된 다음이었다.

이건 분명히 오메가의 페로몬 향기야.

그녀는 새삼스레 떠올렸다. 예전에 맡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잘 알았다. 틀렸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믿기 어려운 것은 다른 이유였다.

어떻게 코이가?

지금까지 그는 틀림없이 베타였다. 그렇지 않다면 약을 먹고 향을 감췄다는 얘긴데, 절대 그건 아니라고 에리얼은 단정했다. 코이가 자신을 속일 리가 없었고, 그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게 지금까지 향이 나지 않았을까? 혹시 저건 변이인 걸까? 결국 애쉬 그 개자식이 코이를 변이시켰나?

모르겠어.

지끈거리는 머리 탓에 결국 두통약을 먹고 만 에리얼은 초조해하며 다시 코이가 있는 방을 쳐다보았다. 긴급하게 약을 먹였으니 조만간 가라앉을 것이다. 얘기는 그 때 들을 수 있겠지.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은 주름이 새겨진 미간을 힘주어 문질렀다.

*

처음 경험하는 열기에 코이는 자꾸만 입 밖으로 신음을 흘렸다. 배 속이 근지러워 손을 넣어 마구 긁어 대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속수무책으로 끙끙 앓는 소리만 내며 온몸을 뒤틀 뿐이었다.

애쉬, 애쉬, 애쉬.

입 안으로 계속해서 같은 이름만 되뇌었다. 애슐리가 여기에 있었다면 당장 원하는 것을 줬을 텐데. 배 속을 가득 채우고 안을 쑤셔 줬겠지. 그랬으면 이 열기가 사라졌을까. 모르겠다.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떠오르는 건 오직 욕구뿐이었다. 이렇게 욕망으로 온몸이 들끓는 것은 처음이었다. 급기야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침대 위에서 시트를 쥐어뜯었다.

& & &

코이가 간신히 열기를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린 것은 꼬박 하루가 지나서였다. 약 기운 탓인지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각한 표정의 에리얼이었다. 그녀는 질문하는 대신 먼저 따뜻한 수프를 먹이고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좀 괜찮아?”

다정한 물음에 코이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앨.”

갈라진 음성으로 인사를 하자 에리얼이 묵묵히 그의 팔을 토닥거렸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코이는 물을 마신 뒤 겨우 입을 열었다.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 줘, 괜찮으니까.”

에리얼의 격려에 코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띄엄띄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엔젤을 만났던 얘기와 극오메가에 대한 얘기를 듣자 에리얼은 놀란 듯했지만 잠자코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애슐리가 오메가의 페로몬 향기를 맡고 기절한 것을 마지막으로 얘기를 끝내자 그때까지 듣기만 하던 에리얼이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엔젤이라는 사람은 이제 없어진 거야?”

응, 하고 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그냥 사라져 버렸어.”

“그랬구나.”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에리얼이 화제를 돌려서 물었다.

“넌 괜찮았어? 별일은 없었고?”

“어…… 응.”

코이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에서 갑자기 히트사이클이 터졌으니 에리얼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는 남은 기억을 더듬어 입을 열었다.

“몇 명이 달려들긴 했었는데 그럭저럭 잘 빠져나왔어. 내가 이젠 키도 크고 몸도 제법 괜찮아졌잖아. 예전 같았으면 정말 꼼짝없이 당했을 거야.”

보란 듯이 팔을 들어 보이며 하하 웃는 코이를 보고 에리얼은 마주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행이다.”

그녀는 다정하게 말했으나 곧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코이 또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아직 모르겠어, 코이.”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리얼이었다.

“지금까지 너도 네가 베타라고 알고 있었잖아? 그 엔젤이라는 사람의 말을 전부 믿는 것도 좀 그렇지 않니? 난생처음 본 사람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물론 그 사람 얘기대로라면 앞뒤가 맞긴 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혼란스러운 것은 에리얼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당황스러워도 당사자인 코이만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당분간은 여기 있어도 좋아. 어차피 방은 남고, 아직 같이 살 사람은 구하지 못했으니까.”

“고마워.”

코이는 여전히 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자신이 집세를 부담할 여력이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에리얼은 힘내라는 듯 코이의 손을 꼭 잡은 뒤 입을 열었다.

“애쉬는 아직 네가 오메가라는 걸 모른다는 거지?”

“응…… 아마도.”

코이는 자신감 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페로몬을 흘렸을지도 모르지만…… 애쉬가 알았으면 나한테 얘기했을 거야.”

과연 그럴까?

에리얼은 내심 의심하며 생각을 떠울렸다. 그녀가 아는 애슐리는 그렇게 솔직하고 정정당당한 인간이 아니었다. 예전엔 그랬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다. 음흉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에 아직 그 자식이 코이에 대해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어진 코이의 말은 그녀의 확신을 흔들었다.

“거기다 애쉬는 오메가 페로몬에 발작을 일으키는데, 나한테서 그런 향이 났으면 바로 이상 증세가 나타났을 거 아냐? 그런데 애쉬는 그런 적이 없었어.”

거기에 반박할 말은 없었다. 에리얼은 마지못해 그렇구나, 하고 말했으나 여전히 위화감은 남아 있었다. 꺼림칙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일단은 코이를 안정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더 필요한 게 없는지 물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쉬어, 코이. 몸이 나아지면 그때 생각하자.”

“……그래.”

코이가 어렵게 웃음을 지은 뒤 침대에 누웠다.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든 친구를 확인한 에리얼은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코이의 말이 맞아, 애쉬가 그렇게 페로몬 향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면 진작 모든 게 밝혀졌을 거야. 최소한 둘이 관계를 가졌을 때라도 페로몬 향을 맡았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성적인데도 여전히 에리얼은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정말 코이가 극오메가고, 애쉬가 그걸 알면서 숨긴 거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에리얼은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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