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엔젤.
본명은 뭘까, 문득 궁금해졌지만 코이는 묻지 않았다.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이라 달리 다른 걸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는 본명을 묻는 대신 엔젤, 하고 입 안에서 뇌까렸다. 엔젤은 그런 그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돌아섰다.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그가 먼저 걷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코이는 뒤에서 따라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씩 그를 돌아보거나 넋을 잃었다. 긴 코트에 워커를 신고 있는 그는 키가 코이보다 약간 작았으나 마찬가지로 큰 편에 속했고, 몸은 호리호리해 마치 모델처럼 보였다.
걷고 있는 거리는 어제와 다를 바 없었으나 그의 존재로 일상은 너무나 쉽게 비일상으로 바뀌었다. 마치 공기처럼 가볍게 걷고 있는 그를 보면서 코이는 여전히 얼떨떨하기만 했다. 코이가 정신을 차린 건 문득 그들이 제법 먼 거리를 걸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저기, 잠깐만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자 엔젤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괜스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던 코이는 내심 침착하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
“꽤 걸어온 거 같은데…… 어딜 가는 건가요? 너무 멀리 가는 거 같아서요.”
“왜? 급히 돌아가야 할 이유라도 있어?”
엔젤이 부드럽게 물었다. 코이가 그런 건 아니지만, 하고 대답하자 그는 웃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럼 좀 더 걸어도 괜찮지? 오랜만에 나왔거든.”
“어…….”
당황했던 코이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애슐리가 돌아올 시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자신도 그저 뒹굴기만 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을 듯했다. 생각해 보니 그도 이렇게 아무 목적 없이 거리를 걷는 게 꽤 오랜만이었다.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고, 엔젤이 입을 연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였다.
“넌 얼마 만에 나왔어? 난 두 달.”
“두 달이나요?”
코이는 깜짝 놀라 그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엔젤은 빙긋이 웃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다들 날 가둬 두질 못해서 안달이거든. 지금도 우리 뒤에 네 명이나 따라오고 있잖아. 그 녀석한테도 전부 보고가 들어갔을 테니 지금쯤 헬기를 타고 날아오고 있을걸? 내가 남자와 둘이서 걷고 있다니 또 어떤 놈팡인가 싶어서.”
“가둬요?”
엔젤의 말은 모두 놀랄 만한 것들 뿐이었으나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그 대목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던 코이는 황급히 다시 엔젤에게 시선을 돌리고 물었다.
“괘, 괜찮아요?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경찰에…….”
“걱정하지 마. 감히 날 감금할 수 있는 놈은 세상에 없으니까.”
엔젤이 담배 연기를 후, 뱉은 뒤 말했다.
“이제 여기서의 볼일도 거의 끝났으니 슬슬 떠나야지. 시간도 다 되었고.”
긴 머리칼을 이마 뒤로 쓸어 넘긴 그가 코이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인 거야, 알겠지?”
뜻밖의 말에 코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를 모른 체하라니, 이유도 알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으나 엔젤의 태도는 완강했다.
“약속해, 절대 나를 알은체하지 않겠다고.”
빨리, 하고 그가 재촉했다. 코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엔젤이 빙긋이 웃더니 갑자기 고개를 기울였다. 가볍게 입술이 닿고,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코이를 향해 엔젤이 말했다.
“착한 아이네.”
돌아선 엔젤이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코이는 방금 전 그가 키스를 했던 입술을 멍하니 쓰다듬다가 황급히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나란히 걷고 있자 그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너무나 강렬히 느껴졌다. 하지만 엔젤은 이런 일 따위는 다반사라는 듯이 무심하게 앞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네 얘기를 좀 해 봐, 냄새를 못 맡으면 그동안 페로몬 조절은 어떻게 하고 있었어? 네가 오메가라는 걸 아는 사람도 없겠네?”
갑자기 엔젤이 물은 말에 코이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어…… 네.”
당연하다. 자신도 몰랐으니까.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기분으로 코이가 말을 이었다.
“저, 저한테서 페로몬 향기가 나는 건 아니죠……? 그런데 어떻게 제가 오메가라는…….”
“극오메가.”
코이의 말을 고쳐 준 엔젤이 덧붙였다.
“일반적인 오메가라면 이런 유대감은 느껴지지 않지. 너도 느꼈잖아? 그러니까 날 붙잡은 거 아냐?”
그건 맞지만 이유가 단지 그뿐이라니, 너무 빈약했다.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코이의 말에 엔젤은 간단히 답을 내놓았다.
“너도 알잖아, 오메가나 알파는 일단 외모가 좋다는 거. 너 정도면 절대 베타일 수가 없을 텐데?”
가끔 오메가나 알파로 착각할 정도로 예쁘고 잘생긴 이들도 있긴 했지만 극소수였다. 하지만 코이는 절대 스스로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게다가 근거가 고작 얼굴이라니?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코이에게 엔젤은 단언했다.
“날 믿어, 난 못생긴 애들한테는 키스 안 해.”
“어…… 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코이에게서는 페로몬 향이 나지 않을까. 모두가 그를 베타로 알 만큼.
극오메가니까.
엔젤이 맞는다면 이것 또한 말이 된다. 극오메가는 약 없이 페로몬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었다. 극알파 또한 페로몬을 조절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고, 계속되면 뇌에 손상이 온다. 하지만 극오메가의 경우는 달랐다. 마음만 먹는다면 평생 동안 정체를 감추고 살 수도 있다.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코이를 보며 엔젤이 물었다.
“열감이 느껴진다거나 몸이 나른해진다거나 그런 적 없었어? 감기처럼 말이야. 하지만 감기와는 다른.”
문득 예전에 있었던 이상한 감기가 떠올랐다. 그것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자 엔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발현이었네. 우리는 발현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아. 그러니까 나이에 연연하지 마.”
“그게 발현이었다고요?”
코이가 또다시 놀라 그의 말을 반복했다. 엔젤은 반쯤 피운 담배의 재를 떨어 내며 입을 열었다.
“뭔가에 충격을 받았거나 심적으로 동요하는 일이 있었거나……. 갑자기 발현할 때는 그런 경우가 많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냐?”
〈네가 날 벌레 보듯이 봤던 날?〉
갑자기 애슐리가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했던 게 떠올랐다. 혹시 애슐리는 눈치챈 걸까? 어쩌면 벌써 페로몬을 흘렸던 건지도 몰라. 만약 내가 정말로 극오메가라는 게 맞는다면…….
갑자기 코이는 초조해졌다. 아직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만약, 이라는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다.
“왜 그래?”
갑자기 창백해진 코이의 얼굴을 보고 엔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코이는 급하게 눈을 깜박이다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저한테서 페로몬 향기가 나는 건 아니죠?”
이전에도 물었으나 코이는 다시금 확인했다. 엔젤은 짜증 내지 않고 대답했다.
“전혀 나지 않아.”
그나마 불안이 덜어졌으나 그렇다고 안심이 되는 건 아니었다.
“저, 히트사이클이 오지 않으면 저한테서는 영원히 향이 나지 않겠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알쏭달쏭한 말을 했던 엔젤이 갑자기 코이의 이마에 손을 댔다. 멈칫했던 코이가 그대로 있자 그는 곧 손을 떼고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까 입술이 따뜻하더라니. 열이 나네. 감기 기운은 없지? 몸이 나른하거나 피곤하진 않아? 평소보다 늘어지는 기분이라거나.”
“아, 네. 아침부터 좀…….”
“곧 히트사이클이 올 거라서 그래.”
명쾌하게 답을 내 준 엔젤이 덧붙였다.
“그게 오면 너도 네가 베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한층 더 큰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다. 또다시 애슐리의 말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오메가 페로몬 따위 필요 없어.〉
“히트사이클이 왔을 때도 그 페로몬 향을 감출 수 있나요?”
희망을 품고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아니, 그건 못 해. 극오메가라고 해서 만능인 건 아니니까.”
이번에도 엔젤은 주저없이 말을 이었다.
“만약에 숨기고 싶으면 남들이 모르는 곳에 혼자 처박히는 수밖에 없어. 좀 힘들겠지만.”
“그, 그럼 평소에 페로몬을 감추는 방법은요? 그건 알려 줄 수 있나요?”
코이는 절박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페로몬을 숨겼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정말로 오메가가 된 거라면 애슐리의 반응이 어떨지 전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코이가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엔젤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제일 쉬운 방법은…… 그래, 스스로 암시를 거는 거야.”
“암시요?”
엔젤은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했다.
“페로몬이 나오지 않는 주문이라고 생각해. 그걸 되새기면 페로몬이 새지 않게 되는 거지.”
“……그게 가능하다고요?”
“한번 해 보지 그래?”
반신반의하는 코이에게 장난처럼 대꾸했던 엔젤이 곧 시니컬한 말투로 덧붙였다.
“조심해, 그 암시가 깨지면 네가 가장 원하지 않는 사람까지 네 페로몬을 맡게 될 수도 있으니까.”
코이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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