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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미 업 이프 유 캔-196화 (196/216)

196화

애슐리가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가 뺐다. 가볍게 밀친 것만으로도 코이는 그대로 넘어가 침대 위에 누워 버렸다. 반으로 무릎이 접혀 침대 아래로 늘어진 코이 위로 애슐리가 몸을 기울였다. 한쪽 무릎을 침댓가에 올리고 위에서 코이를 내려다보는 애슐리의 얼굴은 흡사 가면처럼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코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달아나고 싶어졌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달려오는 차를 보면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행인이 되어 버린 듯 그는 그대로 누운 채 애슐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애슐리의 시선이 천천히 코이의 몸을 살폈다. 남아 있는 흔적이 하나라도 있으면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없었다. 속옷까지 모두 벗기고 코이의 알몸을 샅샅이 훑었는데도 새로운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안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애슐리의 분노는 이제 방향을 잃고 사방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애, 애쉬.”

코이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애슐리의 눈동자에 금빛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코이는 그만 몸을 일으켜 달아날 뻔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대로 애슐리를 밀치고 달려나가기만 하면 된다. 애슐리에게 곧 잡힐 거라든가, 아무리 세게 밀어 봤자 그는 꿈쩍도 하지 않을 거라든가, 모든 계획이 성공한다 해도 그 뒤엔 어떻게 할지 등등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코이의 팔을 세게 움켜쥔 애슐리가 난폭하게 목을 물어뜯었다. 한껏 이를 세워 질겅거리는 감각에 코이는 저절로 비명이 나와 버렸다.

“아, 아파, 아파, 애쉬! 그만해!”

연거푸 소리쳤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어깨를, 가슴을, 팔을, 곳곳을 물어 댔다. 흡사 코이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코이는 이토록 그가 무서워진 적이 없었다. 사색이 된 채 떨고 있는 코이의 곳곳을 물어 댄 애슐리의 눈동자가 완전히 금빛으로 뒤덮였다.

러트가 온 걸까?

코이는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으나 그의 생각은 틀렸다. 애슐리는 완전히 제정신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더욱 그를 미치게 했다.

“왜.”

자신이 물었던 자리에 코를 묻고 깊이 숨을 들이켰던 애슐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반응이 없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렇게나 페로몬을 쏟아부었는데 코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히 발현을 했을 텐데. 어째서 전혀 동요하지 않는 거지? 왜 내 페로몬에 반응하지 않아? 어째서?

“그건.”

코이가 마른침을 삼켰다. 애슐리의 말과 색이 뒤바뀐 눈동자로 상황을 눈치챈 그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난, 베타니까…… 미안.”

허, 하고 애슐리의 입에서 기가 막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때 그건 분명히 자궁이었어. 이 배 속에 내 아이가 있을 텐데.

그런데 아니라고? 내가 착각한 거라고?

“거짓말하지 마.”

애슐리는 악문 잇새로 뇌까렸다. 곧이어 그가 이를 세우고, 코이의 귓바퀴를 깨물었다.

“아…… 악!”

지금까지와 다른 비명이 입 안에서 터져 나왔다. 애슐리가 몸 곳곳을 깨물어 대는 것도 아팠지만 이번엔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금세 여린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코이가 처음으로 버둥거리며 애슐리를 밀어내려 했지만 애슐리는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귀를 물고 빨아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심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허망함으로 뒤엉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표식이.”

그는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표식이 남지 않아…….”

코이는 크게 뜬 눈으로 그를 보기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처럼. 하지만 애슐리의 눈은 여전히 귀에 못 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의 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저 흔한 상처일 뿐 표식이 아니었다.

“아, 아야, 아파, 그만해, 그만하라고!”

코이가 연거푸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애슐리는 몇 번이나 그의 귀를 반복해서 물어뜯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표식은 남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는 만신창이가 된 코이의 귀와, 울고 있는 얼굴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

애슐리는 탄식처럼 짧은 숨을 내뱉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그만 웃고 싶어졌다.

코이는 한 번도 내 페로몬에 반응한 적이 없어.

그의 비어 버린 머릿속으로 불현듯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애슐리가 발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코이는 몇 번이나 그의 페로몬에 노출됐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코이는 결코 애슐리의 페로몬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애슐리는 코이에게서 아무런 향기도 맡지 못했다. 몇 번이고 숨을 들이켜고 몸 곳곳에 코를 묻어 확인했지만 어떤 페로몬 향도 나지 않았다. 그저 아주 희미한 살 내음과 자신이 쏟아부은 달콤한 페로몬 향기만이 넘쳐날 뿐. 그 사실이 애슐리를 완전히 돌아 버리게 만들었다.

분명히 느꼈었는데.

패닉에 가까운 상태로 그는 떠올렸다.

계속해서 났었잖아, 네게서.

날 유혹하는 페로몬 향기가.

애슐리는 정신이 나가 버릴 것처럼 멍해졌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 거지? 내가 미친 건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애쉬…….”

떨리는 음성으로 코이가 입을 열었다. 애슐리는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코이가 사색이 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아, 애슐리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지금껏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뚜렷이 깨달았다.

코이의 몸은 여기저기 크고 작은 멍과 잇자국이 남은 채였다. 모두 자신이 남긴 것이다. 그 위로 새로운 자국이 생겼다면 분명 알 수 있다. 당연하다. 애슐리는 코이에 관해서라면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전부 알고 있어.

저 두려움에 찬 두 눈도.

애슐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불쾌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코이가 자신의 아비를 보던 것과 같은 눈.

“……하아.”

애슐리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웃고 싶었으나 얼굴은 울 것처럼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 표정을 본 코이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애슐리가 울 리 없는데도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팔을 뻗었다.

“괜찮아, 애쉬. 난 괜찮아…… 아프지 않아, 정말이야.”

어떻게든 애슐리를 달래려 애쓰며 코이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것이 더 애슐리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엉망이 되었으면서 그는 여전히 애슐리를 위로하려 했다. 잘못했다고 사죄해야 하는 건 애슐리인데도.

“……사랑해.”

한참 만에 잠긴 음성으로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귓가에서 속삭인 음성에 멈칫했던 코이는 이내 그를 꼭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나도, 나도 사랑해. 나한텐 너뿐이야.”

코이는 절박하게 말을 이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내가 다른 사람이랑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내가 사랑하는 건 너뿐인데…… 믿어 줘, 부탁이야.”

제발, 하고 덧붙인 코이에게 애슐리는 완전히 기력이 빠진 듯한 음성으로 뇌까렸다.

“믿고 있어.”

여전히 맥이 풀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거, 의심하지 않아.”

하지만 코이는 더욱 불안해졌다. 애슐리는 그를 사랑한다고 했고 그의 진심을 의심하지도 않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그때와 지금은 다른데.

뭐가 달라?

문득 마음 한구석에서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은 둘 다 어른이고, 관계도 가졌잖아. 우린 서로의 전부를 가졌어. 코이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균열이 일어난 상태였다. 애슐리의 표정이 각막에 달라붙은 것처럼 잊히질 않았다. 그는 애슐리를 안은 채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베타라서 미안해.”

애슐리가 자신에게 아무리 페로몬을 쏟아 봤자 아무 소용 없다. 이 관계가 또다시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코이는 비참함을 느꼈다.

“너처럼 발현했으면 좋았을걸.”

“아냐, 코이.”

한탄하듯 중얼거린 말에 애슐리가 주저 없이 말했다.

“네가 베타건 오메가건 그건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 차라리 베타라면 잘됐어.”

코이가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정말?”

“그래.”

애슐리는 짧게 대답했다.

“오메가 페로몬 따위 필요 없어.”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안심하라는 듯 코이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애슐리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 여전히 코이에게서는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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