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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미 업 이프 유 캔-178화 (178/216)

178화

“정말?”

“와, 대박 섹시하겠다.”

머릿속으로 젖어 있는 코이를 상상하며 누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황홀해하는 그녀의 얼굴에 넬슨은 화가 치밀었다. 내심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가 그런 찌질이한테 넘어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그 새끼 처바를 때도 그 소리 나오는지 보자고.”

그러자 다른 녀석이 아첨하듯 웃으며 그의 비위를 맞췄다.

“당연하지, 넬슨을 누가 이길 수 있겠어?”

“맞아, 넬슨은 최고야. 자, 건배!”

소리를 지르며 술을 마셔 대는 녀석들을 보고 넬슨은 그나마 속이 좀 풀렸다. 품에서 약을 꺼내 테이블 위에 쏟아 내자 모두가 와아아, 함성을 질렀다. 여기저기서 가루를 흡입하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보고 있던 넬슨에게 가게의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잠시…….”

* * *

끼이이, 녹이 슨 뒷문은 불쾌한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밖으로 나가자 클럽 안의 쾌쾌한 공기와 다른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넬슨은 은은한 지린내가 풍기는 클럽의 뒷골목으로 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곧 그의 시야에 슈트 위에 코트를 걸친 어마어마한 장신의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몇 걸음 뒤로 벤테이가가 서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해 몇 차례 눈을 깜박였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클럽의 뒷문을 비추는 어두운 전등에 기대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넬슨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애, 애슐리?”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나 상대방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넬슨이 환상을 보고 있을 리는 결코 없으니까.

“날 만나고 싶다고 한 게 너야? 왜, 왜?”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지만 벌써 늦었다. 성대를 타고 흘러나온 겁먹은 음성에 애슐리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이유를 모르진 않을 텐데.”

“뭐?”

미간을 찌푸렸던 넬슨은 문득 깨달았다.

“설마, 너…… 그 찐따 새끼 때문에 이러는 거야?”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애슐리의 표정이 어떤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심상치 않았다. 넬슨은 눈치를 보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이거 진짜냐? 너같이 바쁜 자식이 그 새끼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대체 니들 뭐냐? 네가 고등학교 때 그 찌질이랑 어울렸던 것도 어이없는데, 너 알고 보니까 그런 찐따랑 코드가 맞는 거 아냐? 너도 찐따에 찌질이구나.”

말을 하다 보니 술술 터져나왔다. 급기야 배를 잡고 웃기까지 한 넬슨에게 애슐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겨우 넬슨이 웃음을 멈추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는 입을 열었다.

“넌 여전히 쓰레기고.”

“뭐라고?”

냉소가 깃든 목소리엔 경멸과 조롱이 가득했다. 고작 한 마디뿐이었지만 넬슨의 속에 불을 지르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아직 그의 몸안엔 약의 기운이 가득했다. 그것은 넬슨에게 터무니 없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넬슨은 욕설과 함께 애슐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훨씬 큰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하고 둔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애슐리의 몸이 비틀거리고, 그 모습을 본 넬슨의 얼굴에 쾌감이 번졌다. 제대로 남자의 턱에 주먹을 꽂은 만족감이 온몸에 자신감이 넘치게 했다. 덩치가 아무리 커 봐야 실전이랑은 관계없다. 고작해야 체육관에서 근육이나 키울 게 분명한 변호사 나부랭이가 싸움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고작 한 대를 맞았을 뿐인데 애슐리는 뒤로 물러나더니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저것 봐, 저런 새끼들 다 허당이라니까. 그렇게 확신하고 나자 그는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씨발 새끼야, 거봐, 감히 나한테 개겨? 너 같은 놈들은 내 주먹 한 방이면 그냥 끝이라고. 집에 가서 질질 짜지나 마라, 겁쟁이 자식아. 코너 나일즈 그 병신 새끼한테도 전해, 내일 당장 여기로 와서 나한테 빌라고. 그러지 않으면 너나 그 자식이나 똑같이 내가 처발라 줄 줄 알아, 찐따 새끼들아!”

한참 욕을 하며 떠들어 대는 넬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애슐리는 걸으며 코트 주머니에서 스마트 키를 꺼내 눌렀다. 동시에 삐빅, 하는 단조로운 소리와 함께 벤테이가의 트렁크가 열렸다. 그가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내는 모습에 그때까지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넬슨의 욕설이 잦아들었다. 애슐리가 꺼낸 것은 아이스하키 스틱이었다.

“뭐, 뭐야, 너?”

당황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애슐리는 한 손에 아이스하키 스틱을 든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그의 거대한 그림자를 보며 넬슨은 달아나지도 못하고 굳어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고작 두어 걸음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선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정당방위야.”

그때 넬슨은 깨달았다. 어째서 저토록 잘 나가는 상류층의 남자가 세단이 아닌 밴을 타고 다니는 건지.

퍽, 섬뜩한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지고, 넬슨이 비명을 질렀다.

* * *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를 듣자마자 코이는 반갑게 몸을 움직여 소리가 난 방향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종일 집 안에만 있었다. 더 이상 걱정을 끼치기는 싫어서 코이는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만약 애슐리의 뜻을 거스르려 했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떨결에 여기 들어오게 된 거라 코이가 가진 옷은 당시 입었던 옷 한 벌뿐이었는데 그나마도 넬슨과 싸우다 여기저기 찢어져 못 입게 되어 버렸다. 다음 날 그걸 입고 나가 옷을 사려던 계획도 눈을 떠 보니 애슐리가 그걸 버려 버린 다음이라 불가능해졌다. 그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어쩔 수 없이 화이트 셔츠를 빌려 입고 있었지만 훤히 드러난 아랫도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입을 옷을 사 오겠다고 약속했던 애슐리에게 감사해하며 반갑게 그를 마중 나갔던 코이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애슐리의 얼굴을 보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코이.”

그를 보고 애슐리는 미소를 지었으나 코이의 얼굴에서는 환한 미소가 사라지고 대신 당황한 표정이 역력히 떠올랐다.

“어떻게 된 거야?”

전날보다 늦게 온 애슐리의 턱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본 그는 금세 하얗게 질려 묻고 말았다. 코이의 옷을 사 오느라 늦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사색이 된 얼굴에 애슐리는 그를 끌어안으려던 팔을 내리고 걸음을 옮기며 먼저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어땠어? 별일 없었지?”

“어…… 응.”

코이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속으로는 자신의 따분한 일상을 시시콜콜 늘어놓는 것보다 애슐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심각한 얼굴로 뒤를 졸졸 따라오는 코이가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나왔으나 애슐리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화분은?”

“아, 응. 창가에 뒀어.”

전날 애슐리는 그에게 작은 화분을 선물했다. 코이가 화초를 키우다 본의 아닌 사고가 계속 생겨 에리얼에게 주었다는 말을 기억했던 모양이다. 코이는 기쁘면서도 꺼림칙한 기분에 선뜻 받지 못하고 주저했다.

<이건 괜찮을 거야, 꽃이 피지 않는 거니까.>

애슐리의 말에 그제야 코이는 안심하며 아직 아무것도 나지 않은 화분을 받아 들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종일 그는 화분을 돌보고 집 안을 청소하며 시간을 보냈다. 애슐리는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올 테니 내버려 두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신세를 지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깨끗한 집 안을 본 애슐리는 기뻐하기보다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거 안 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 응. 하지만……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고…….”

애슐리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그와 다르자 코이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물론 애슐리는 그가 자신을 위해 뭔가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잘했다고 칭찬하면 코이는 신이 나서 몸이 갈리도록 열심히 온 집 안에 윤을 낼 것이다. 애슐리는 코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안정하는 쪽이 더 기뻤다.

뭔가 할 일을 만들어 줘야겠군.

양쪽이 다 만족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애슐리는 드레스룸으로 향하며 코이에게 들고 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옷이야, 입어 봐.”

“아, 고마워.”

휑한 아랫도리에 뭔가를 걸칠 생각을 하자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애슐리는 그런 코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더니 곧 안으로 들어갔다. 코이는 서둘러 가까운 빈방으로 들어가 쇼핑백 안의 옷을 꺼냈다.

“……어?”

한껏 웃던 그의 얼굴이 옷을 보자 당황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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