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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170/216)

170화

순간적으로 굳어졌던 애슐리의 표정이 이내 허탈하게 바뀌었다.

“이제 조를 줄도 알게 됐구나, 코이.”

“어?”

의아해하는 코이에게 애슐리는 대답 대신 물었다.

“하나만 더 물을게, 코이.”

“응, 그래.”

코이는 어서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후다닥 대답했다. 하지만 애슐리는 조금 시간을 끈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런 거…… 전에도 했었어? 그러니까, 섹스 프렌드.”

코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하게.

“아니.”

거짓말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똑바로 애슐리의 눈을 쳐다보면서 코이는 덧붙였다.

“처음이야, 이런 건.”

애슐리의 얼굴에서 완전히 영혼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내가 뭔가 잘못 말한 걸까? 급히 머릿속을 뒤적이는 코이에게 애슐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하고는 이런 걸 하는 거구나.”

그 말을 코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우리 둘 다 어른이 됐잖아.”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돼.

코이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애슐리는 달랐다. 애슐리는 그래, 하고 작게 속삭이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이어진 키스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배려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거친 키스에 코이는 숨을 헐떡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애쉬가 속아넘어갔어.

더 이상 베타라느니 서툴다느니 하면서 코이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그 증거로 애슐리는 거침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코이의 아래쪽 구멍을 난폭하게 문질러 댔다. 질척이는 마찰음에 코이가 자지러졌지만 애슐리는 멈추기는커녕 곧바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꽉 눌린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이제 나이도 웬만큼 찼으니 어느 정도 성에 관한 지식은 쌓았다. 어떤 식으로 애무를 하는지, 전희가 어떤 건지도 안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을 대입해 본 적은 없었다. 그 순간 코이는 스스로가 지금껏 섹스에 관해 전혀 현실적이지 못했다는 걸 인정했다. 변명을 해 보자면 지금껏 먹고살면서 돈을 모으느라 그런 쪽으로는 여유가 없었기도 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여전히 애슐리에 대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와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침없이 안에서 움직이는 손가락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애슐리였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떻게든 이물감을 견뎌 보려 애쓰는데, 갑자기 애슐리가 키스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데.”

그는 몸을 떼고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코이의 안은 너무 빡빡했다. 경험이 있는 것치고 너무 탄력이 없어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기껏해야 손가락 두 개를 넣은 게 전부인데 빠듯하게 당겨 오는 압박감에 과연 자신은 고사하고 누가 여기에 성기를 넣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거기다 코이 또한 쾌감보다는 통증을 느끼는 게 여실히 표정에 드러났다. 거기다 두려움까지 엿보이는 그의 커다랗게 뜬 두 눈에 애슐리는 순간적으로 코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뭐, 뭐가?”

때마침 코이가 물었다. 애슐리는 그 음성에 희미하게 깃든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법정이었다면 그는 가차없이 상대를 까발리며 뼈까지 발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코이였다. 그의 이성은 거기서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본능과 감정과 욕망이 뒤섞여 도무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거기다 코이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몽롱한 시선과 재촉하듯 조여드는 속살에 애슐리는 곧 항복하고 말았다.

성자라도 이 유혹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이의 안에서 멈춰 있던 손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코이가 흠칫 놀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했다. 조금만 안을 쓰다듬어도 금세 전율하며 아래가 흠뻑 젖어들었다.

너무나 많이 젖었다.

애슐리는 손을 타고 흘러넘쳐 시트를 적시고 있는 애액에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굵은 손가락이 한 개 더 늘어났다. 엄지로 회음을 지지하고 세 개의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자 안이 점차 느슨해지며 벌어지는 게 느껴졌다.

“으, 으으…….”

코이는 이를 악물고 참으려 했으나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프기도 하고 거북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묘하게 설렘 비슷한 감각이 느껴졌다. 금세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손만으로는 안 된다. 더 깊이, 더 거칠게 배 속을 채워 줬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애, 애쉬…….”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애원했다.

“넣어 줘, 이제 그만…… 손은 그만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만은 확실히 알았다. 코이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내려다본 애슐리가 손가락을 뺐다.

“보여, 코이?”

보란 듯이 손을 들어 보인 그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나 젖었어.”

코이는 멍한 얼굴로 그를 보기만 했다. 무릎을 세우고 반쯤 일어선 애슐리가 그의 젖은 손을 앞섶으로 가져갔다. 코이의 시야에 애액으로 흠뻑 물든 애슐리의 손이 스스로의 성기를 쥐는 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크기로 부풀어 있었다. 배꼽에 닿을 정도로 꼿꼿이 일어선 성기는 붉게 달아올라 정맥이 두드러져 보였다. 애액에 젖은 손이 끝이 쿠퍼액으로 젖어 있는 길고 묵직한 성기를 천천히 문질렀다. 시야에 가득 찬 그 무시무시한 크기에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코이는 수치심을 한사코 억누르며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무릎을 열어 안을 훤히 내보이자 애슐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천천히 그가 몸을 숙이고, 코이는 두 팔을 벌려 끌어안을 준비를 했다.

하아, 하아.

기대와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여 저절로 숨결이 거칠어졌다. 순간 달아나고 싶어졌으나 한사코 참았다. 아래쪽에 뭉툭한 것이 닿았다. 처음 느끼는 이물감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는데, 직전에 멈춘 애슐리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물었다.

“정말 할 수 있겠어? 넌 내 걸 제대로 보는 것조차 못 했잖아.”

진심으로 묻는 걸까? 코이는 문득 떠올렸다.

만약에 여기서 못 하겠다고 하면 그때처럼 애쉬는 그만두려고 할까?

그러자 코이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할 수, 있어.”

자신의 목소리를 귀로 들으며 코이가 말을 이었다.

“그때랑 달라. 벌써 10년이나 지났다고. 난 이제 어른이야.”

거듭 강조하자 애슐리가 이죽거렸다.

“그래, 나와 헤어져 있는 동안 못 해 본 게 없겠지.”

빈정거리는 말에 코이는 순간 튀어나가려던 진실을 간신히 삼키고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에리얼의 당부 때문이 아니었다. 이 순간 진실을 알게 되면 애슐리는 또다시 물러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과 키스하고 자는 건 참을 수 없어.

“아…… 으…… 윽…….”

이를 악물었지만 신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저 끝이 조금 들어온 게 전부인데 금방 눈앞이 깜깜해지고 압박감에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하아, 애슐리가 숨을 내뱉었다. 초조한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가 말했다.

“힘 빼 봐, 미끄러지잖아.”

“어, 어어?”

무슨 말인지 몰라 그냥 눈만 깜박거렸다. 애슐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코이의 양쪽 엉덩이를 잡아당겨 구멍을 억지로 벌렸다.

“코이.”

“으, 으응.”

얼떨결에 대답하자 애슐리가 말했다.

“네 못생긴 인형 이름이 뭐였지?”

“어…….”

난데없는 물음에 코이는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애슐리는 진심으로 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뚫어져라 보고 있는 시선에 코이는 그러니까,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앨리…… 핑…….”

단어를 모두 내뱉기도 전에 먼저 묵직한 뭔가가 그의 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까맣게 내려앉았다가 다시 환해졌다. 잠시 방심한 틈을 타 귀두를 밀어 넣은 애슐리가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잘했어.”

어느 쪽을 칭찬한 건지 알 수 없었으나 더 깊이 생각할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곧이어 애슐리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 으윽.”

코이는 눈을 꽉 감고 어떻게든 통증과 압박감을 잊어 보려 애썼다. 앨리핑, 그래, 앨리핑은 어떻게 됐을까? 저택을 떠나면서 쓰레기와 함께 모두 버렸겠지? 다른 인형들도 함께였을 테니까 외롭진 않았을 거야. 더 좋은 걸 줬으면 좋았을걸. 지금이라면 그래도 더 나은 걸 줄 수 있지 않을까? 아, 아파, 아파…….

자신도 모르게 달아나려 했으나 곧바로 애슐리가 그의 허리를 잡아 제지했다. 꼼짝도 못 한 채로 신음을 흘리는데,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늦었어, 코이.”

그리고 그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진작에 달아났어야지. 내가 그렇게 많은 기회를 줬는데.”

아득한 머릿속으로 애슐리의 음성이 속삭이듯 내려앉았다.

“이제 넌 평생 어디에도 못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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