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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화 (169/216)

169화

한동안 둘 사이엔 그저 거친 숨소리만이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애슐리는 흔치 않게 동요를 숨기지 못하고 코이를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엔 불안과 초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으나 지금 애슐리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순식간에 타오른 질투가 그의 이성을 완전히 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나를 만났을 때 코이는 모든 게 처음이었는데, 그동안 누굴 사귀고 몇 번이나 섹스를 나눴을까.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코이에게 모든 걸 가르쳐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분노로 전신에서 페로몬이 쏟아져 나왔으나 코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그는 변이하지 않는다. 그의 무반응은 마치 애슐리가 무슨 짓을 해도 코이를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왜?”

간신히 억눌린 음성으로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왜, 알파와 잔 거야? 위험하다는 걸 몰랐어?”

예상치 못한 물음에 코이는 당황했으나 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긴, 베타가 남자와 자려면 그게 가장 쉽긴 하지.”

코이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애슐리가 멋대로 답을 내 준 것에 내심 구원받은 기분을 느꼈으나 애슐리의 기분은 정반대였다. 부정하지 않는 그의 반응에 애슐리는 바닥까지 추락해 버렸다.

“그 자식을 좋아하긴 했어? 그랬겠지, 네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잤을 리는 없으니까.”

자문자답했던 애슐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코이.”

“으, 으응.”

황급히 대답하자 애슐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층 낮아진 음성으로 물었다.

“날 좋아했던 건 내가 남자라서야? 그러니까, 너한테 원래 그런 성향이 있었던 거냐고.”

코이는 이번엔 선뜻 답하지 못했다. 당황해 눈을 깜박이며 급히 생각을 떠올렸다. 그의 말은 반만 맞았다. 아마도 자신에게는 원래 애슐리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애슐리만 그리워하며 여기까지 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고백의 말을 꺼내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코이는 마음을 굳게 먹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 마…… 그랬던 거, 같아.”

힘겹게 내보낸 목소리에 애슐리는 잠시 반응이 없었다. 멀거니 코이를 내려다보던 그의 얼굴이 점차 허물어졌다.

“하…… 하하…….”

맥없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코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잠시 웃던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코이.”

“어, 응.”

이번에도 코이는 서둘러 대답했다. 애슐리가 혹시 또 떠나 버리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해하면서. 애슐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소리가 뭔가에 막힌 것처럼 둔하게 들려왔다.

“그 자식들도 나처럼 버림받았어?”

코이는 순간 온몸이 굳어졌다. 할 말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애슐리는 아주 조금이나마 만족했다. 자신이 상처받은 것처럼 코이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었다. 괴로워했던 건 나뿐이다. 계속해서 코이를 그리워했던 것도 애슐리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넌 또 날 버리겠지. 난 여전히 가진 게 많으니까.

“애쉬.”

코이는 위기감에 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숙인 채 반응이 없는 애슐리에게 그가 말을 이었다.

“지난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하던 걸 마저 하면 안 될까?”

어떻게든 그를 붙잡아야 했다. 하지만 유혹의 말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코이로서는 이렇게 서툴고 촌스러운 제안밖에는 할 수 없었다.

잠자코 움직이지 않던 애슐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코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진한 보라색 눈동자에 그만 시선을 빼앗겼다. 검은빛에 가깝게 물든 보라색에 언뜻 금빛이 내비쳤다. 그가 입술을 비뚤어뜨렸다. 눈은 여전히 코이에게 고정한 채로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날 네 딜도로 쓰고 싶다는 거야?”

“뭐?”

코이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눈만 깜박거렸다. 제정신이었어도 즉각 이해하지 못했을 말을 이런 상황에서 듣고 보니 더더욱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코이는 그냥 자기가 떠올린 말만 했다.

“나랑 끝까지 못 할 이유가 없잖아, 이제.”

지금이 아니면 절대 기회가 없을 것이다. 코이는 절박감을 숨기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

“너도, 페로몬을 뺄 상대가 필요하니까, 서로 잘된 거 아냐?”

애슐리의 얼굴에서 완전히 표정이 없어졌다. 짧게 나타났다 사라졌던 금빛 눈동자가 점차 더 자주 자리를 차지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코이는 알지 못하는 채로 한발 더 나아갔다.

“앞으로 나하고 페로몬을 빼자.”

다른 사람하고는 빼지 마. 코이는 본심을 숨기고 말했다. 불안과 초조로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숨조차 죽인 채 그저 기다리기만 했던 코이에게 한참 만에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너, 그게 무슨 의미인 줄이나 알아?”

조용한 목소리였으나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코이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알아.”

애슐리의 침묵은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줬다. 너무나 충분해서 태연한 얼굴과 목소리마저도 꾸며 낼 수 있었다.

“섹스 프렌드도 친구잖아.”

순간 애슐리는 또다시 멍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코이의 표정은 너무나 진심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아.

애슐리는 그제야 후회했다.

내가 왜 친구 같은 개소리를 지껄였을까.

혀를 깨물고 싶어졌으나 이미 너무나 늦은 일이었다.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만약 그가 물러난다면 코이는 어떻게 할까.

다른 알파와 자려고 할지도 몰라.

대체 지금까지 자신이 왜 이렇게 참았던 건지 스스로가 바보스러워졌다. 난 네 몸을 걱정해서 그렇게 참았던 건데 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구나.

하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 지금은 더 급한 게 있었다. 다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보통 알파하고 나는 달라.

코이를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게 낫다. 에리얼에게도 말하지 않았던가. 코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그렇다면 다른 알파와 자든 말든 상관없지 않은가? 코이가 행복해지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행복하게 해 줘도 되는 거잖아.

“코이.”

애슐리가 낮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코이는 이번엔 대답하지 못하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전히 그의 얼굴에 시선을 머무른 채로 애슐리가 경고했다.

“후회하지 마.”

“안 해, 절대로.”

코이는 주저없이 맹세했다. 애슐리의 긴 속눈썹이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코이 역시 눈을 감자 이어서 입술이 겹쳐졌다. 한껏 입을 벌리고 그의 혀를 받아들이는데, 애슐리가 코이의 엉덩이로 손을 옮겼다. 슬쩍 허리를 들어 그가 만지기 편하게 공간을 만들자 선뜻 안으로 들어온 애슐리의 손이 그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하아, 짧은 비명처럼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애슐리는 계속해서 코이의 혀와 입술을 빨아들이며 엉덩이를 주물렀다. 코이는 배 속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성기가 아닌 배가 이렇게 간지럽고 욱신거리다니 이상했다. 원래 섹스란 이런 걸까? 어떤 매체에도 나오지 않은 정보에 코이는 그저 어리둥절해진 채 휩쓸릴 뿐이었다.

애슐리가 손가락에 힘을 줘 엉덩이 한쪽을 잡아당겼다. 생각지 못한 부위가 벌어져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긴 손가락 끝이 그곳에 닿는 순간 저절로 등을 젖히며 눈을 감고 말았다.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천천히 코이의 벌어진 구멍을 쓰다듬었던 애슐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사이를 두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래가 젖는구나, 코이.”

코이는 열에 들뜬 시선으로 애슐리를 바라봤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코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로, 얼마나 많이 해 봤어?”

이런 반응은 오메가라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애슐리가 알기로 그는 베타다. 베타도 아래쪽이 젖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쪽으로 아주 익숙하다면.

애슐리가 어째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코이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빨리 다음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배 속이 점점 더 간지럽고 애슐리가 건드려 놓은 구멍이 화끈거렸다. 코이는 본능적으로 아래를 문지르며 작게 소곤거렸다.

“시험해 보면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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