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소란하던 유치장 안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란 것은 넬슨만이 아니었다. 코이 또한 당황해 두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넬슨의 반응은 그것보다 더 격렬했다. 사색이 되어 입을 딱 벌리고 굳어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허를 찔려 넋이 나간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런 넬슨의 반응이 더욱 의심을 부추겼는지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말들이 쏟아졌다.
“맞아, 고등학교 때 네 부하였다면서? 우릴 꺼내는 것 따윈 아무것도 아니겠지!”
“어서 연락해, 빨리하라고.”
“이렇게 여기서 밤새울 거야? 뭐라도 하라고, 빨리. 애슐리 밀러가 나타나 우릴 풀어 준다면 네 말은 전부 믿어 줄 테니까.”
“그래, 나도 믿을게.”
“나도.”
여론은 하나로 통일되었다. 마치 지금이 그의 허세를 무너뜨릴 기회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모두가 똑같은 마음으로 넬슨을 다그치고 있었다. 그에겐 달아날 구멍이 없었다. 그저 불안하게 눈동자를 데굴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 뿐이었다.
“……야, 너희들 진짜.”
한참 만에 넬슨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는 쓴웃음을 짓더니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참을성이라곤 없다니까. 알았다, 알았어. 내가 연락해 볼게.”
한 차례 녀석들을 둘러본 넬슨이 한숨을 내쉬더니 덧붙였다.
“그런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여기서 빨리 나가기는 어려울지도 몰라.”
“어째서?”
누군가 물은 말에 넬슨이 이번엔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 몰라서 물어? 너희들도 알다시피 오늘은 금요일이라고. 금요일 밤이지. 이런 날 애슐리 밀러 같은 극알파들이 뭘 하겠어?”
모두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페로몬 파티가 있는 날이야?”
그제야 넬슨이 다시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애초에 우리가 왜 모였었는지 기억 안 나? 내가 한탕 크게 했다고 너희를 불렀잖아. 이번에 들어온 약을 대 주고 너희들 몫으로 남겨 놨다고.”
누군가 머뭇거리다 물었다.
“그럼 그 약은…….”
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극알파들에게 공급한 약이야. 아마 지금쯤 애슐리 밀러도 잔뜩 약을 먹고 아무 오메가한테나 박아 대고 있을걸.”
모두가 조용해졌다. 넬슨이 보란 듯이 밖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일단 그래도 너희를 위해서 얘기는 해 보지 뭐. 어쩌냐, 운이 없다고 생각해야지.”
이어서 그가 경찰을 불렀다. 변호사를 요청하는 그의 모습을 모두는 반신반의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 * *
간신히 신원 조회를 하고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두어 시간이 지나서였다. 코이는 경찰이 묻는 대로 대답을 하고 서류를 작성한 뒤 다시 유치장에 처박혔다. 아마도 날이 밝은 다음에야 여기서 나갈 수 있을 모양이다. 코이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유치장 안은 고요해졌다. 넬슨은 물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약효가 떨어진 건지 일부는 우울해했고, 일부는 잠이 들었으며, 또 일부는 벽에 머리를 박아 댔다. 그런 어수선한 광경 속에서 코이는 지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넬슨이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사적으로 흠칫 놀랐으나 넬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씨발, 담배도 못 피우고.”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못 들은 체하고 눈을 피하는데, 넬슨이 말을 걸었다.
“괜히 수리하러 왔다가, 어?”
키득거리며 웃는 모습에 코이는 내키지 않는 시선을 향했다가 다시 떨구었다. 넬슨은 그런 그의 반응엔 아랑곳없이 멋대로 말을 이었다.
“하필 재수도 없지. 금요일, 이제 토요일이네. 주말에 일하는 것도 열받는데, 어? 유치장에서, 어?”
이게 모두 자기 탓인데 남 일처럼 말하고 있다. 코이는 꾹 참고 어서 여길 나가기만 빌었다. 그런 코이의 속마음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 넬슨이 떠들어 댔다.
“좀만 기다려 봐요, 곧 애슐리 밀러가 우릴 꺼내 줄 테니까. 아, 주말만 아니었으면 바아로 그냥, 어? 여기서 나가는 건데.”
과장되게 너스레를 떠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넬슨을 믿는다 해도 코이만큼은 절대 아닐 것이다. 정작 그의 속마음은 불안으로 터질 것 같았다. 넬슨이 이렇게 가까이에 앉아 있다니, 당장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마땅하게 눈에 들어오는 곳도 없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놀란 코이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벽에 바짝 몸을 붙이자, 어렴풋이 약에서 깨어난 여자가 배시시 웃었다.
“당신, 꽤 잘생겼네. 난 미남이 좋아아.”
몽롱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갑자기 그에게 쓰러졌다. 당황한 코이는 황급히 그녀의 몸을 받았다. 의식을 잃은 건지 곯아떨어진 건지 완전히 늘어진 몸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나자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한사코 외면하고 있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넬슨이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그러게, 제법 생겼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음성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듯이 느껴진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넬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작게 속삭이는 음성이었으나 코이의 귀에는 명확하게 들려왔다. 코이는 온 힘을 다해 못들은 척 시치미를 떼고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넬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넬슨이 불쑥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야?”
순간 철렁 심장이 내려앉았다. 맥박이 요동치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코너 나일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코이는 상상하기조차 무서웠다.
그렇다고 달아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갇혀 버렸다. 눈앞에 길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결과 또한 그리 좋지 못할 것이다. 또다시 넬슨에게 괴롭힘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자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어떡하지.
그만 공황상태에 빠져 버릴 것 같은 공포심이 들었을 때였다. 불현듯 유치장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어.”
어렴풋이 탄성이 들려왔다. 코이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가 놀라 그대로 굳었다. 당황한 것은 코이만이 아니었다. 느릿느릿 움직였던 유치장 안의 사람들 또한 점차 두 눈을 크게 뜨거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장 격하게 반응한 것은 코이의 옆에 앉아 있던 넬슨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났지만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발소리가 그치고, 쾌쾌하고 더러운 유치장 너머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남자가 멈춰 섰다.
밝은 베이지색의 코트 아래로 짙은 회색의 스리피스 정장을 빈틈없이 갖춰 입은 그는 놀랄 정도로 키가 컸다. 슈트를 입고 있음에도 전신에 잘 짜인 근육과 굵은 흉통은 단번에 눈에 들어와 그를 더욱 커보이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몸이 날렵해 보인 것은 그의 차림새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자정이 지난 시간임에도 은빛에 가까운 백금발은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넥타이조차 비뚤어지지 않았다.
마치 지금 막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남자는 단정한 이마와 보기 좋게 선이 그려진 짙은 눈썹 아래 진한 보라색의 눈동자로 그들을 응시했다. 그에게서 풍기는 설탕처럼 달콤한 페로몬 향기를 모두가 맡을 수 있었다. 단 한 사람, 코이만 제외하고.
애슐리 밀러.
누군가 그 이름을 속삭였다. 그러자 눈앞에 서 있는 환상이 불시에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때까지 넋을 놓고 있던 모두가 여기저기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술렁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두서없는 말들을 이어 가는 사람들 속에서 넬슨이 득의양양하게 소리쳤다.
“이것 봐, 내 말이 맞지? 올 거라고 했잖아, 내가 뭐라고 했어? 이제 날 믿겠냐고, 이 멍청한 새끼들아!”
그가 거친 소리를 내뱉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머뭇거리며 넬슨의 눈치를 살폈다. 눈앞에 애슐리 밀러가 나타났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혹시 실수했다가 자기만 여기서 못 나가게 되는 건 아닐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넬슨만이 기고만장해져 요란하게 떠들어 댔다.
“이야, 애쉬. 역시 와 줬구나. 파티는 어때? 약은 모자라지 않아? 내가 바로 나가서 필요한 만큼 준비해 줄게.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어?”
넬슨이 계속해서 말을 늘어놓았지만 애슐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여전히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 자리에 서서 천천히 안을 둘러볼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한곳에 시선을 고정했을 때, 그만 코이는 놀라 숨을 멈추고 말았다.
설마.
심장이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설마, 그런.
꼼짝도 하지 못하는데, 유치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니, 너 말고.”
신이 나 제일 먼저 밖으로 나가려던 넬슨을 향해 손을 뻗은 경찰이 안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았다. 잠자코 지켜보던 애슐리가 고개를 기울여 뭔가를 속삭였다. 여전히 시선은 한 명에게 고정한 채로.
애슐리의 말을 듣고 시선을 따라간 경찰이 코이를 향해 소리쳤다.
“코너 나일즈,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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