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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71/216)

71화

몇 시간 전.

[애쉬, 오늘은 스케이트 연습 못 하게 됐어. 치어리딩 팀 회의가 있어서 그린 벨에 간대. 내일 봐. 미안. -코이]

코이가 보낸 메시지를 본 애슐리는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보냈다.

[잘 다녀와, 코이. 내일 보자. -애쉬]

메시지를 보내고 잠시 화면을 보고 있는 동안 미확인 표시가 사라지고 곧 다시 메시지가 들어왔다.

[응, 고마워. 내일 봐. -코이]

그제야 애슐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닫았다. 사실 이런 식으로 밤이 새도록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코이는 메시지를 받으면 꼭 답장을 했고, 그 때문에 인사를 먼저 했음에도 애슐리가 마주 인사를 하면 또 인사를 보냈다. 아마 그는 메시지가 오면 무조건 답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귀여워.

낮은 소리로 웃었던 애슐리는 여전히 웃음이 남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빙판을 지치며 훈련을 하고 있는 아이스하키 팀 녀석들이 보였다.

하아, 곧 입가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른 녀석들이 땀을 흘릴 동안 자신은 관중석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다니 몸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감독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현 전에는 훈련이 끝날 때쯤 코이도 연습이 끝나기 때문에 같이 애슐리의 집으로 가 스케이트 연습을 하고 헤어지는 게 일상이었는데, 발현을 하는 바람에 그동안 일정하게 해 왔던 스케줄이 어그러져 버렸다.

코이는 애슐리에게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 있으면 연습이 끝난 뒤 찾아가겠다고 말했으나 애슐리는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아무리 에리얼이 새 자전거를 줬다고 해도 그걸 타고 산을 오르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이겠는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고생스러운 일을 시킨다면 그건 절대 남자가 아니다.

또한 애슐리는 코이가 에리얼이 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사실도 달갑지 않았다.

가능한 한 빨리 코이에게 새 자전거를 사 줘야겠어.

그는 코이가 에리얼의 자전거를 소중하게 어루만지는 꼴을 봐 주기 힘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자전거를 멋대로 사 올 수도 없고, 무엇보다 코이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 때문에 기회를 엿보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등·하교 시간을 비롯해 최대한 코이를 자신의 차에 싣고 다니는 것뿐이었다. 물론 코이는 그놈의 자전거를 꼭 가져와 애슐리의 차 트렁크에 실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이쪽이 나았다.

모임이 끝날 때쯤 그린 벨에 데리러 갈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었다. 그린 벨에서 코이의 집까지는 거리가 꽤 됐고, 그나마 예전 자전거보다는 낫겠지만 새 자전거라고 해도 쉽지 않은 거리였다. 거기다 코이를 또 만나니까 좋고, 그 자전거를 코이가 안 타니까 좋고, 여러 가지로 장점뿐이었다.

어떻게 온 거냐고 물어보면 지나다 생각나서 들렀다고 해야지. 물론 코이는 믿을 것이다. 애슐리의 말이라면 뭐든 믿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가게의 문을 닫는 시간이 10시쯤이니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감독은 언제 내게 말을 해 주려는 걸까. 지루함에 지쳐 크게 기지개를 켰을 때였다. 발소리가 들리고, 감독이 그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팔을 접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자 감독이 곧 애슐리에게서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음, 많이 기다렸니?”

“1시간 정도요?”

일부러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 뒤 싱긋 웃자 감독은 멋쩍은 듯 마주 웃었다.

“아무래도 쉬운 결정은 아니라서 말이다.”

“네, 그렇겠죠. 각오하고 있습니다.”

역시 안 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아쉽지만 아이스하키는 이제 끝이다. 애초에 프로가 될 생각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곧이어 감독이 물었다.

“넌 이번 학년까지만 뛸 거지?”

“네. 대학 준비도 해야 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코이의 대학 시험은 어떻게 됐지? 잘 보진 않은 것 같았는데. 다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늦으면 대입 준비랑 겹쳐서 많이 힘들 텐데.

혹시 대학에 안 갈 생각인 건 아니겠지.

곧이어 그가 나사에 가고 싶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 애슐리는 마지막 생각을 제외했다. 대입 시험을 다시 준비해야 할 거야. 확인해 보자.

“애쉬, 우리가 논의한 바로는.”

감독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애슐리는 다시 그에게로 주의를 집중했다. 그는 목을 긁적거리더니 으흠, 헛기침을 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애슐리가 생각했을 때 감독이 입을 열었다.

“이번 시즌만 네가 팀에서 뛰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상과는 반대의 대답에 애슐리가 멈칫하자 감독이 계속해서 말했다.

“너에겐 마지막 시즌이기도 하고, 우리도 전력을 보강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그러지 않아도 이번 시즌이 끝나면 그만두겠다는 애들이 있어서 내년엔 교체를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는 걸 너도 알지? 고작 한 시즌이니까, 게다가 네가 경기를 뛴다고 해서 규칙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거기까지 말한 감독이 사이를 두고 덧붙였다.

“네 러트 주기라거나 하는 애로 사항은 지내면서 지켜보도록 하자. 일단 교체는 바로 할 수 있게 준비는 해 둘게. 그게 막 갑자기 오고 그러진 않지?”

“네…… 아마도?”

애슐리는 두 손을 가볍게 들었다가 내렸다.

“아직 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전조는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억제제도 가지고 있고.”

“그래, 그렇다면야.”

애슐리가 일반적인 알파가 아닌 극알파로 발현했다는 사실은 코이와 아버지, 그리고 그의 비서만 아는 사실이었다. 극알파에게는 일반적인 억제제가 잘 듣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사실 억제제를 먹는 극알파 자체가 없기 때문에 효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그는 페로몬을 조절할 수 있고, 러트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러트를 대비해 감독은 방법을 준비해 놨다고 하니까.

“그럼 전 훈련에 참가해도 됩니까?”

애슐리의 물음에 감독은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끝날 시간이 다 됐으니 내일부터 훈련에 복귀하는 걸로 하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처음으로 웃으며 뒤따라 일어난 애슐리의 팔을 두어 번 두드렸다.

“곧 홈커밍 경기가 있으니까 말이야. 네 활약도 많이 기대하마. 마무리까지 잘해 보자.”

“네, 감사합니다.”

한 번 더 애슐리를 향해 웃은 감독이 돌아서서 걸어갔다. 잠시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애슐리는 고개를 돌렸다가 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훈련을 하던 걸 멈추고 애슐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그의 표정에, 애슐리는 웃으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곧 빌이 환호성을 지르고, 이어서 다른 녀석들도 놀라 애슐리와 빌을 번갈아 보다 뒤따라 함성을 지르며 두 팔을 열심히 흔들어 댔다.

‘감기가 낫긴 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대고 그는 계속 훈련을 빠지고 있었다. 감독과 논의 후 결정을 내린다는 말에 아이스하키 팀 녀석들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했다. 고작 며칠이었을 뿐인데, 꽤나 애슐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애슐리는 짐을 챙겨 나가려다 먼저 휴대 전화를 꺼냈다.

[코이, 내일부터 훈련에 다시 합류하게 됐어.]

문자를 찍고 있던 애슐리는 멈칫했다. 곧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보내려던 메시지를 지우고 휴대 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을 때, 마침 훈련이 끝났음을 알리는 코치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빌!”

관중석을 내려가며 소리치자 안으로 들어가려던 빌이 멈춰서 그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펜스로 다가온 빌에게 애슐리가 말했다.

“다시 합류하게 된 기념으로 그린 벨에 갈래? 내가 살게.”

“좋지. 야!”

곧바로 돌아서서 다른 녀석들에게 낭보를 전하며 멀어지는 빌의 뒷모습을 보며 애슐리는 생각했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치어리딩 팀에 합류하게 되겠지.

전통적으로 치어리딩 팀과 운동부는 사이가 가깝다. 에리얼과 사귀게 된 것도 그런 이유로 자주 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는데, 두 팀이 우연히 식당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자리를 합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충 시간을 끌다 코이와 함께 나오면 돼.

애슐리는 휘파람을 불며 짐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녀석들이 나오면 각자의 차를 타고 그린 벨로 갈 것이다. 계획은 완벽했다.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기 전까지는.

*

“이게 무슨 짓이야?”

애슐리가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에리얼 또한 입 모양으로 ‘나도 몰라.’라고 말했다. 싱글거리며 웃는 것은 치어리딩 팀의 아이들뿐이었다. 곧 그녀들의 작은 계략을 눈치챈 에리얼은 기가 막혔으나 지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날 수도 없었다. 일단은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심호흡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애슐리는 달랐다. 그는 지켜야 할 품위보다 지금 코이가 자신에게서 가장 먼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그것도 양옆에 치어리딩 팀 여자애들을 끼고서.

“너, 우리가 헤어졌다고 말 안 했어?”

으르렁거리듯이 이를 갈며 낮은 소리로 묻는 말에 에리얼은 미소를 지으며 악문 잇새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했지, 내가 미쳤어? 너 같은 새끼랑 아직도 사귄다고 쇼를 하게?”

“그럼 이 상황은 뭐냐고?”

에리얼로서도 알 수 없었다. 두 손을 들었다 놓은 그녀는 다시 억지로 웃으며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우린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자리 다시 잡을까? 치어리딩 팀끼리, 아이스하키 팀끼리.”

“일단 먹고 해도 되지 않아, 앨?”

재빨리 부주장이 끼어들었다. 다른 부원들도 맞아, 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이자 에리얼은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에 굴복했다.

“알았어, 그럼 그렇게…….”

“무슨 얘긴데? 뭐 회의해?”

이번엔 아이스하키 녀석이 끼어들었다. 에리얼이 대답하기 전에 부주장이 말했다.

“우리 응원복 바꿀 거거든. 새 디자인 고르려고.”

“그럼 그거 다 같이 봐도 되지 않아? 우리도 같이 골라 줄게.”

눈치 없는 아이스하키 팀 녀석이 또 말을 보탰다. 치어리딩 팀 애들도 곧바로 동의하고, 애슐리와 에리얼을 제외한 모두가 만족해하며 자리 이동은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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