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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58/216)

58화

끅, 끄윽, 끅.

하도 울어서 흐느낌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눈물은 간신히 멎었지만 숨은 계속해서 껄떡거려서, 코이는 자전거의 핸들을 두 손으로 잡고 헐떡이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하아아…….

떨리는 한숨을 뱉어 내자 그친 줄 알았던 눈물이 또 한 차례 주르륵 흘러내렸다. 코이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팔로 두 눈을 문질렀다. 킁, 코로 숨을 들이마셨지만 꽉 막혀서 도무지 숨통이 트이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바짝 마른 입 안으로 다시 공기를 들이켜는데.

“어머, 너 꼴이 그게 뭐야?”

높은 음성에 코이는 멈칫했다.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한 것은 몇 초 뒤였다. 느릿하게 돌아본 얼굴에 상대방은 놀라 숨을 삼키며 한층 더 높아진 소리로 물었다.

“세상에, 어떻게 된 거야? 이제 학교 그만 두고 노숙자가 되기로 했니?”

코이는 멍한 얼굴로 다가오는 에리얼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팔로 고등학교의 퀸은 학교 밖에서도 완벽했다. 치어리딩 훈련을 할 때 언제나 그러듯이 지금도 머리를 포니테일로 높이 묶고 몸에 달라붙는 핑크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녀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조깅을 하고 있었는지 귀에 건 이어폰을 한 짝씩 떼면서 코이에게 가까이 온 에리얼은 퉁퉁 부은 데다 흙과 먼지가 묻어 엉망이 된 얼굴을 확인하고 눈에 띄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너, 아이스하키 고릴라들한테 맞았니?”

“아, 아냐.”

코이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 안 그래, 걔들은 상관 없, 콜록.”

잔뜩 메고 쉰 목소리가 흘러나와 급히 기침을 하자 에리얼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생수병을 꺼내 내밀었다.

“마셔, 새거야.”

코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재촉하듯 병을 흔들어 보였다.

“고마, 워.”

흐느낌 사이로 겨우 말한 뒤 병을 받아 든 그는 뚜껑을 열어 조심스럽게 입술을 댔다. 에리얼은 팔짱을 낀 채 물을 마시는 코이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잘 마셨어.”

입을 훔치며 반쯤 남은 생수병을 내밀자 에리얼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너 가져.”

“어, 응, 그래.”

머뭇거리며 다시 병을 가져간 코이를 에리얼은 찡그린 얼굴로 보더니 곧 고개를 한쪽으로 기우뚱하고 말했다.

“하긴, 그 고릴라 놈들은 덩치는 그래도 마음은 약해서 누굴 때리고 그러는 건 못 하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코이에게도 들릴 만큼 큰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이 듣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코이가 코를 훌쩍거리자 에리얼이 그 소리에 다시 그를 쳐다봤다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럼 그 꼴은 어떻게 된 거야?”

“……그냥.”

코이는 흐느낌이 남은 숨결 사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냥, 내가 혼자, 넘어진, 거야. 바퀴가, 미끄러져서.”

그 말에 에리얼이 코이 옆에 있는 자전거를 보더니 오우, 하고 질렸다는 듯 감탄사를 뱉었다.

“그거 굴러는 가니? 아니면 지금 내다 버리러 가는 거야?”

“아, 아냐.”

코이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쓰고 있는 거 맞아. 아직 괜찮아, 앞으로 1년은 더 쓸 수 있을걸.”

“1년 뒤에도 네가 살아 있다면 말이지.”

에리얼이 단호하게 지적했다.

“그 자전거를 계속 타다간 조만간 목이 부러져서 죽을걸.”

“그,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아.”

코이의 말투를 흉내 내어 비꼬았던 에리얼은 한 차례 코이의 전신을 훑어보더니 물었다.

“넌 집이 어디니?”

“어? 어, 저기, 버드아이 뒤쪽…….”

코이가 더듬거리며 한쪽을 가리키자 에리얼은 흐응, 하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코이는 슬슬 이제 간다고 말해도 될까, 슬그머니 그녀의 눈치를 봤다.

에리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비탈을 구르면서 바퀴가 잘못됐는지 올라탈 수 있기는커녕 핸들을 붙잡고 가는데도 자전거는 계속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아버지가 올 시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 고물 자전거를 끌고 집까지 가려면 아마 새벽에나 도착할지도 모른다. 코이는 당장 쓰러져 눕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어서 에리얼과 헤어져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기…….”

간신히 입을 열었을 때, 갑자기 에리얼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어쩔 수 없네, 따라와.”

“어, 어?”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해하는데, 먼저 돌아선 에리얼이 그를 보고 말했다.

“따라오라고, 어서. 빨리.”

그리고 에리얼은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코이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떡하지? 지금부터 열심히 가도 늦을 텐데. 대체 어딜 가는 거야? 왜? 난 어서 쉬고 싶은데…….

하지만 에리얼의 말을 무시하고 가 버릴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저만큼 달려갔던 에리얼이 다시 돌아왔다.

“뭐 하고 있니? 어서 오라니까.”

“저, 저기…… 난 이만 집으로 갈까 하는데…….”

용기를 내어 말하자 에리얼은 제자리 뛰기를 하며 지적했다.

“버드아이까지 가려면 자전거로 가도 20분은 걸릴 텐데 그걸 끌고 걸어가겠다고? 정말 노숙자가 되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맺지 못하는 코이에게 에리얼이 말을 이었다.

“빨리 와, 이렇게 낭비할 시간 없어.”

그녀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10분 정도만 가면 우리 집이야. 일단 와.”

에리얼은 다시 달려가며 소리쳤다.

“빨리 안 쫓아오면 정말 길에서 밤을 새우게 될 거야!”

경고처럼 외치는 음성에 코이는 화들짝 놀라 핸들을 고쳐 쥐었다. 에리얼은 순식간에 저만큼 가 버렸다.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코이는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따고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 뒤로도 에리얼은 서너 번을 되돌아왔다. 코이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에리얼은 괜찮아, 하고 가볍게 넘겼다.

“어차피 이만큼은 달려야 돼. 넌 어서 쫓아오기나 해.”

그리고 그녀는 다시 저만큼 달려갔다. 코이는 숨을 헉헉 몰아쉬며 열심히 뒤를 쫓았다.

에리얼이 향한 곳은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는 제각각 모양이 다른 집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는데, 대부분 불이 꺼진 채라 사방이 음산하고 고요하기만 했다.

코이는 띄엄띄엄 불을 밝히는 가로등을 따라 조용한 주택가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낡은 자전거의 끼익거리는 불쾌한 쇳소리가 유독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아.

에리얼의 자취를 찾아 두리번거렸던 그는 곧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주택의 차고가 열리는 것을 발견했다. 쏟아지는 불빛에 멈칫하고 멈춰 서자 그 안에서 에리얼이 나왔다.

“이쪽으로 와, 어서.”

멀거니 서 있는 코이를 보고 에리얼이 팔을 흔들었다. 코이는 어어, 하고 황급히 지친 걸음을 재촉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차고에는 두 대의 차가 들어와 있었는데, 에리얼의 차는 집 앞 도로에 세워 둔 상태였다. 시키는 대로 코이가 차고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자 에리얼은 낚아채듯 그것을 가져가 벽에 기대어 놓더니 다른 쪽을 가리켰다.

“저걸 쓰도록 해.”

“어?”

의아해하며 돌아본 방향에는 잘 닦인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아주 새것은 아니었지만 코이의 것에 비하자면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제품이었다. 어리둥절해져 눈만 깜박이는 코이에게 에리얼은 직접 자전거를 끌고 와 그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내가 면허 따기 전에 타고 다닌 건데 아직 쓸 만해. 안 쓴 지 좀 됐지만 성능은 문제없어. 아빠가 개라지 세일 할 때 판다고 점검해 놨으니까 믿어도 돼.”

“어?”

코이는 또 한 번 같은 감탄사만 반복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나한테 이런 좋은 자전거를 그냥 준다고? 왜?

얼떨떨해하며 눈만 깜박이는 코이에게 에리얼이 재촉했다.

“자, 얼른 타 봐. 괜찮은지 보게. 어서.”

“어, 어어…….”

에리얼에게 떠밀리다시피 자전거를 끌고 나온 코이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자전거에 올라탔다. 처음엔 갈지자로 휘청거렸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중심을 잡자 자전거는 놀랄 만큼 부드럽게 움직였다.

우와.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탄성을 내뱉었다. 10년이 넘게 수시로 바람이 빠지곤 하는 오래된 자전거를 꾸역꾸역 몰고 있었는데 지금 에리얼이 준 자전거는 차원이 달랐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고 쉽게 잘 나갈까.

“됐어?”

다시 처음 위치로 돌아오자 그때까지 지켜보던 에리얼이 물었다. 코이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응. 그, 그런데 정말이야? 나한테 이걸 주는 거야? 그냥?”

“그래.”

코이가 왜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에리얼이 답을 내놓았다.

“네가 이 고물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또 무슨 사고라도 나면 우리 부엔 정말 아무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걸. 그거에 비하면 싸지.”

“아.”

코이는 단박에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지나친 호의였다. 에리얼이 그만큼 치어리딩 팀에 애정을 쏟고 있다고 생각하자 오직 성적 때문에, 그것도 한참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입부서를 낸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고마워.”

어렵게 말했지만 에리얼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그녀는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덧붙였다.

“네가 가랑이 사이에 할라피뇨를 달고 있다 하더라도 일단 우리 팀에 들어왔으니까 서로 돕는 건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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