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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50/216)

50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코이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날 뻔했지만 애슐리에게 팔이 잡혀 움칠한 게 전부였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설레던 심장이 다른 이유로 빠르게 뛰어 댔다.

“내, 냄새 나?”

고개를 든 애슐리에게 코이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애슐리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그리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코이 냄새.”

“나한테서 냄새 난다고?”

소스라치게 놀란 코이의 음성이 높아졌다. 이번에도 애슐리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황한 코이가 황급히 물었다.

“어, 어떤?”

잔뜩 긴장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음.” 하고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던 애슐리가 대답했다.

“맛있는 냄새?”

“어?”

멍하니 눈을 깜박이자 애슐리가 웃음을 지었다. 그때까지 굳어 있던 머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뒤늦게 코이는 그가 장난을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게 뭐야.”

그제야 편하게 웃음을 터뜨린 코이에게 애슐리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정말이야. 난 항상 코이가 먹고 싶은데.”

코이는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나는. 별로 맛없어.”

애슐리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코이를 내려다봤다.

“그래? 맛있을 것 같은데.”

다시 애슐리가 몸을 숙였다. 아까 숨결이 닿았던 곳에 이번엔 입술이 닿았다.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코이가 놀라 굳어지자 애슐리가 입을 벌리고 그의 목을 깨물었다.

“아야.”

사실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작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오히려 그 자리가 너무 간지러워 급히 물러나고 싶었지만 여전히 애슐리에게 두 팔을 잡혀 있었기 때문에, 코이는 한껏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마.”

코이가 다급하게 말하자 애슐리가 슬그머니 이를 세웠다. 부드러운 마시멜로를 한 입 베어 물듯 지그시 목을 물었던 그는 잠시 동안 그대로 멈춰 있었다. 코이는 간지럽기도 하고 왠지 부끄럽기도 해서, 그를 밀어내려 바르작거렸다.

“그만해, 정말. 간지럽다고.”

어깨를 밀어 대는 손을 잡아 꼼짝도 못 하게 하는 건 너무나 쉬웠다. 애슐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자리에서 코이를 안을 수도 있었다. 코이는 자신이 무슨 짓을 당하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애슐리는 충동을 참고 얼굴을 들었다. 물론 이를 떼기 전 입술을 대고 세게 빨아들이는 것만은 참지 못했다.

하얀 목에 자신이 남긴 붉은 자취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본 애슐리가 시선을 돌려 코이의 얼굴로 향했다. 코이는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얼굴로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역시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애슐리는 일부러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더 먹어도 돼?”

핫, 하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코이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황급히 대답했다.

“안 돼. 난 음식이 아니라고.”

허겁지겁 그의 손에서 빠져나간 그는 탈의실 겸으로 쓰고 있는 창고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잠깐 기다리라거나 금방 오겠다거나 그런 말조차 하지 않았다.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힌 창고의 문을 바라보며, 애슐리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방금 전 느꼈던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아…….”

여전히 입술에 손가락을 댄 채로 그는 탄식했다.

“더 먹고 싶다.”

*

코이가 나온 것은 15분이나 지나서였다. 고작 해야 항상 입는, 때 묻고 목이 늘어진 셔츠에 낡은 청바지일 뿐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건지 애슐리는 훤히 알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와, 난 네가 엄청 차려입고 나오는 줄 알았어.”

“미, 미안.”

코이는 황급히 사과했다. 당황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던 그는 곧 애슐리의 모습을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

평소 편안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주로 입던 애슐리는 오늘 전혀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푸른빛이 도는 셔츠는 단추를 두어 개 풀고 있었고, 회색에 가까운 짙은 초록색의 슬랙스 아래로 발목이 보였다. 신발 또한 평소의 운동화가 아니라 세피아 색 로퍼였다.

언제나 왁스를 발라 넘겼던 머리칼은 오늘 자연스럽게 내려와 있었는데, 눈을 가린 커다란 검은 선글라스까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거기다 밝은 회색의 재킷까지, 그런 모습의 애슐리는 처음이었다.

“왜 그래?”

애슐리가 미소 짓는 얼굴로 물었다. 코이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어, 저기…… 오늘은 좀, 달라 보여서.”

“그래?”

애슐리는 그렇게만 말했지만 그런 코이의 반응은 내심 만족스러웠다. 그는 전날 밤 잠들기 전부터 이 순간을 벼르고 있었다. 이렇게 공작새처럼 꾸미는 건 별로 성격에 맞지도 않았고 아버지와 연관된 일이 아니면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만약 아버지 비서가 이 일을 안다면 바로 그에게 보고를 할 것이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지금도 하나하나 다 보고하고 있을 텐데.

애슐리는 지금의 즐거움에 집중하기로 했다. 함께 가게에서 나온 뒤 문을 잠그고 돌아선 코이가 기다리고 있던 애슐리에게 급히 다가갔다.

“다른 애들은 뭐 해? 잘 놀고 있어?”

파티를 연 주최자가 이렇게 나와 있어도 되는 걸까? 내심 궁금해 묻자 애슐리는 불쑥 비어 있는 코이의 손을 잡았다. 화들짝 놀란 코이를 모르는 체하고 차를 세워 둔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그가 대답했다.

“몰라. 안 가 봤는데.”

“그래도 돼?”

코이는 어떻게든 대화에 집중하려 했으나 자꾸만 애슐리에게 잡힌 손에 신경이 가서 쉽지 않았다. 애슐리는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하는 코이를 훤히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아버지 비서한테 말해 뒀으니까 알아서 할 거야.”

“그, 그렇구나.”

코이는 대답을 하면서도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그냥 손만 잡았어도 가슴이 뛰었을 텐데 오늘 애슐리는 너무 멋있었다. 평소에도 멋있는데 그보다 더 멋있어질 수 있는 거구나. 코이는 감탄하는 한편 이런 멋있는 애슐리 옆에 과연 자신이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죄책감이 일었다.

잔뜩 부풀었던 가슴이 가라앉으며 그만 의기소침해졌다. 애슐리에게서 슬그머니 손을 빼려 했지만 되레 꽉 붙잡혀 버렸다. 애슐리는 꼼지락거리던 코이의 손을 붙잡아 탈출을 방지한 뒤 일부러 물었다.

“왜 그래, 코이?”

“어? 어…….”

아무것도 아냐, 하고 말하려 했던 코이는 마침 눈앞에 보이는 차를 보고 멈칫했다. 항상 보던 카이엔이 아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곧이어 애슐리가 코이의 손을 잡은 채 다른 쪽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키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삐빅, 하는 가벼운 기계음과 함께 잠겼던 문이 열리는 둔탁한 소리를 들은 코이가 놀라 물었다.

“이게 네 차야?”

“아버지 차지, 정확히는.”

아까 손님이 했던 것과 같은 문답이었지만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애쉬는 다정하게 웃으며 코이의 물음에 대답했다. 코이는 작은 소리로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차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코이조차도 감탄할 정도로 우아하고 멋진 세단이었다.

“자, 타.”

조수석의 문을 연 애슐리가 말했다. 코이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숙여 안으로 들어갔다.

차 안은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화려했다. 좌석의 부드러운 가죽은 등을 대자마자 저절로 만족스러운 한숨이 나올 정도로 푹신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코이는 지금 탄 차가 여태껏 탄 차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센터콘솔은 물론이고 글로브 박스에 계기판까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고급스럽고 정신없이 번쩍거렸다. 차 내부의 손잡이를 감싼 가죽의 믿을 수 없는 부드러움에 감탄하며 쓰다듬는데, 애슐리가 차를 돌아와 운전석에 앉았다.

“뭐 해?”

“어? 어, 어.”

웃음기 서린 음성에 코이는 화들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급히 안전벨트를 매려고 하는데, 당황해서인지 차에 압도당한 탓인지 자꾸만 헛손질을 했다.

“잠깐만.”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하는 코이에게 갑자기 애슐리가 손을 뻗었다. 순간 숨을 죽인 코이의 몸 위로 애슐리의 팔이 올라갔다. 코이는 눈동자만 굴려 애슐리가 안전벨트 띠를 잡아 끌어당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애슐리는 그에게 몸을 기울인 채 안전벨트를 직접 버클에 끼워 주었다.

코이의 시야에 애슐리의 정수리가 들어왔다. 햇빛을 받으면 은색의 실처럼 반짝이는 머리칼이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다. 코이는 그 화사한 백금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20센티미터 넘게 큰 애슐리의 정수리를 볼 기회는 흔치 않다. 문득 그가 자신의 스케이트 끈을 묶어 주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의 설렘도 함께.

두근…… 두근…….

코이는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의 머리를 만져 보고 싶었다. 애슐리의 머리카락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뺨은 얼마나 따뜻할까. 턱은, 코는.

입술은.

그때, 갑자기 애슐리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고, 코이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애슐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천천히 입술이 열리는 것을 코이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키스할지도 몰라.

코이는 숨을 죽인 채 생각을 떠올렸다.

키스하고 말 거야.

애슐리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숨결이 그의 입술을 은근하게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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