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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47/216)

47화

“그건 말도 안 돼!”

곧바로 정색을 하며 소리친 코이의 반응에 애슐리는 멈칫했다. 이렇게 강한 반발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그는 내심 동요했다.

“……왜?”

사이를 두었다가 흘러나온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으나 코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거듭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가 없어. 그게 그러니까, 그 친구는 남자란 말이야. 내 친구도 남자고. 둘 다 남잔데 어떻게 좋아해?”

나름 합리적이고 교과서적인 대답을 한 코이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 애슐리가 자신에게 동의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어쩌다 좋아하게 된 상대가 남자인가 보지.”

“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코이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혹시나 하고 애슐리의 표정을 살폈지만 농담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진지한 그의 얼굴을 보고 코이는 혼란에 빠졌다.

애슐리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어떡하지? 뭐라고 해야 돼? 애쉬 말이 맞는다고 해야 되나?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 뭔가 있을 거야, 뭔가, 뭔가.

코이는 안절부절못하다 급하게 말을 꺼냈다.

“오메가나 알파도 아닌데. 우린, 아니, 걔들은 둘 다 베타라고.”

황급히 말을 고친 코이는 조마조마해하며 눈치를 봤다. 들킨 건 아니겠지?

애슐리는 가만히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질색을 하거나 놀란 기색은 전혀 없었다. 내심 불안해하는데,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그게 왜 문제가 돼?”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코이는 당황해 입을 벙긋거렸다.

“아니, 둘 다 베타라니까. 한쪽이 오메가나 알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베타인데,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이상하냐고.”

애슐리가 계속해서 따져 물었다. 말문이 막힌 코이가 버벅거리고 있는데,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오메가나 알파면 괜찮고 베타면 안 되는 이유가 뭐야? 오메가나 알파면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까? 그럼 번식을 해야만 좋아할 수 있는 거야? 그 대단한 페로몬이 뭐라고, 그거에 미쳐서 관계를 갖는 거야말로 그냥 본능일 뿐이잖아. 그게 정말 진심으로 그 상대를 좋아하는 게 맞아? 발정기가 되면 아무하고나 자면서, 그건 당연하고 괜찮은 거냐고.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알파나 오메가가 아니면 이상하다고 하면서.”

아냐.

코이는 애슐리의 말에 넋을 잃은 와중에 단 하나만을 떠올렸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애슐리가 갑자기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놀란 코이가 급하게 뒤로 물러나자 애슐리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입을 열었다.

“코이.”

그는 말을 이었다.

“난 그게 이상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

애슐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코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엔 어딘가 절실함마저 엿보였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형질은 중요한 게 아냐. 누굴 좋아하는 건 아주 자연스럽게 생기는…….”

“수, 수업에 늦겠어.”

애슐리는 심각한 어조로 다시금 코이를 설득하려 했지만 코이는 다급하게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코이!”

애슐리가 그를 불렀지만 코이는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몸을 돌려 수업이 있는 건물을 향해 달려가면서, 그는 줄곧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안 돼, 이런 마음은.

애슐리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친절하게 대답해 준 것뿐이다. 자기라고는 상상도 안 할 테니까.

거기다 생각해 봐, 어떻게 나 같은 게 애슐리 밀러를 좋아해.

오메가고 베타고, 형질의 문제는 그다음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코너 나일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엔 애슐리가 틀렸다. 절대 코이는 애슐리를 그런 감정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냥 동경하고, 선망하는 것뿐이다. 그게 다였다. 결코 그 이상일 수는 없었다.

절대, 절대로.

*

애슐리는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코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달려가고 있겠지만 그래 봤자 몇 걸음이면 바로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슐리는 코이를 붙잡는 대신 느리게 발을 옮겼다. 방금 전 코이의 반응을 떠올려 보면 앞으로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강하게 부정할 줄은 몰랐는데.

애슐리는 자신이 코이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반성했다. 항상 웃으면서 좋아한다고 하니까 마음을 깨닫게만 하면 순순히 털어놓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완벽하게 빗나갔다.

순식간에 사색이 됐던 그의 얼굴을 떠올린 애슐리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이유는 몰라도 코이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견고했다. 그것을 넘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게 하면 훨씬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지나가던 아이가 애슐리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무시하고 지나쳤다. 지금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방법을 바꿔야겠어.

*

하아아.

혼자 카페테리아에 앉아 과제를 하던 코이는 무심코 긴 한숨을 뱉어 냈다. 종일 긴장했던 탓에 머리까지 아파 왔다. 다행히 이후 애슐리는 평소와 같은 태도였다. 혹시 아까 멋대로 끊어 버린 대화를 다시 꺼내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해했던 코이는 마지막 수업이 끝났을 즈음에는 기진맥진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케이트 연습이 남아 있었다. 애슐리가 훈련을 하는 동안 언제나처럼 카페테리아에서 기다리며 코이는 과제를 하려고 했으나 오늘은 좀처럼 집중이 되질 않았다.

결국 미리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급히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온 그는 부랴부랴 자전거를 찾아 그 위에 올라탔다. 애슐리가 차를 세워 둔 곳에 가서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가는 도중 뜻밖의 얼굴과 마주쳤다.

“어, 코이.”

저녁 훈련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빌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빌만이 아니었다. 아이스하키 팀 주전을 포함한 모두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오늘은 훈련이 좀 빨리 끝난 모양이었다. 코이가 눈으로 애슐리를 찾으며 멈춰 서 있는데, 빌을 비롯한 무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시간까지 여기서 뭐 해? 과제?”

“어? 어어.”

틀린 말은 아니라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다른 녀석이 말을 받았다.

“너 마르티네즈 선생님 과제 했어? 야, 너무 많지 않냐?”

“그 선생님은 항상 많잖아. 우리가 그 선생님 과제밖에 안 하는 줄 아나 봐.”

“이거 인권위에 고소해야 하는 문제 아니냐?”

자기들끼리 멋대로 떠들어 대는 걸 끼어들지도 못하고 그냥 보고만 있는데, 문득 시야에 기다리던 얼굴이 비쳤다.

“애쉬.”

저절로 풀어지는 얼굴을 어쩌지 못하고 헤실 웃는 코이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봤던 빌이 오, 하고 말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뭐 하다 나왔길래?”

무슨 상상을 했는지 히죽거리는 그의 뒤통수를 아프지 않게 때린 애슐리가 물었다.

“너희야말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안 가고 다 모여서.”

그러고 보니 다른 녀석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어느 새 항상 모여 다니는 팀의 주전들만 남은 걸 깨닫고 코이는 화들짝 놀랐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나 봐.

빌 대신 다른 녀석이 애슐리에게 말했다.

“나오다가 보니까 코이가 지금 가고 있어서 얘기하고 있었어.”

“코이는 지금까지 남아서 과제를 했대. 굉장하지?”

우와우와 시끄럽게 쏟아지는 악의 없는 말들을 들으며 쑥스럽게 웃었을 때였다. 빌이 갑자기 코이에게 말을 걸었다.

“코이, 너도 오는 거지? 애쉬네 파티.”

“어…….”

갑작스러운 얘기에 코이가 눈을 깜박이자 빌이 주근깨가 있는 얼굴로 장난스럽게 웃었다. 코이가 그들 사이에 끼는 건 당연하다는 듯이. 그 웃음이 기뻐 코이가 막 대답을 하려 입을 열었을 때였다. 그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애슐리가 끼어들었다.

“코이는 못 와, 주말엔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거든. 그렇지?”

“어…….”

코이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의 말이 맞다. 주중에 스케이트 연습을 하는 대신 주말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가게를 봐야 한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시선에, 코이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응…… 맞아, 난 안 돼.”

“됐지? 그럼 가자. 안녕, 코이. 잘 가.”

코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애슐리가 인사를 했다. 이번에도 코이가 뭔가 반응을 하기 전에 그는 먼저 걸음을 돌렸다. 다른 녀석들 또한 덩달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안녕, 코이.”

“주말 잘 보내.”

“잘 가!”

제각각 날아온 인사에 코이는 그저 멀뚱하게 서서 “어, 응, 그래.” 등으로만 답했을 뿐이었다. 애슐리를 포함한 아이들이 코이만 남겨 두고 자기들끼리 휴대 전화를 돌려보고 웃고 떠들어 대며 멀어졌다. 혼자 남아 멀거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코이는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고 허겁지겁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어차피 못 간다고 말하려고 했었잖아.

애슐리가 미리 거절해 준 게 다행이었다. 내가 우물쭈물 똑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니까 그런 거야. 다음부터는 확실하게 말하자.

“후우우.”

일부러 소리 내어 깊은숨을 삼켰다 내쉬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코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숨 막히는 고요 속에서 코이는 간신히 떠올렸다.

가 버렸구나, 애쉬도.

오늘 스케이트 연습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그걸 위해서 남아 있었는데, 물론 이유는 짐작이 갔다.

나랑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는 걸 들키기 싫었던 거겠지.

애슐리는 비밀로 하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무리의 다른 녀석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걸 보면 확실했다. 코이에게 친절을 베풀긴 하지만 역시나 그와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이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지면 창피할 것이다.

다행이다. 애쉬의 집에서 스케이트 연습을 할 거라고 말하지 않아서.

괜스레 눈가가 달아오르고 코끝이 찡해졌다. 두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끌고 축 처진 발걸음으로 걸어가면서 훌쩍, 코를 들이마셨다. 그러자 눈시울이 금세 시큰해졌다.

코이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남은 손으로 두 눈을 훔쳤다. 고작 이런 걸로 울다니 정말 이상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까.

고작 파티에 오지 말라는 말을 들은 것뿐인데.

코이는 문득 떠올렸다. 내가 이렇게 가슴 아픈 건 파티에 오지 못하게 한 것 때문일까 아니면 애쉬가 날 부끄러워해서일까? 둘 다 맞지만 또 틀렸다. 그에겐 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애쉬가 날.

혼자 두고 가 버려서.

그때였다.

“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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