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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46/216)

46화

뜻밖의 말에 다른 녀석들은 물론 코이도 놀랐다. 애슐리는 대수롭지 않게 햄버거를 집어 들며 말했다.

“거기가 제일 확실하지 않아? 올리면 다들 볼 거 아냐.”

“아, 그건 그렇지.”

빌이 동의했다.

“그런데 넌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아?”

슬쩍 덧붙인 빌에게 애슐리는 간단하게 일축했다.

“싫어하는 것과 관계없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잖아, 안 그래?”

그리고 그는 일부러 빌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거기다 글을 올리는 건 네가 할 테니까.”

“아니, 그건 그런데.”

빌이 뭔가 더 말을 하려고 했으나 다른 녀석들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애쉬 말이 맞아.”

“그래, 거기다 올리자. 다들 난리가 날 거야.”

“네가 올리는 게 낫지, 넌 그 사이트 수시로 들어가잖아, 네가 제일 잘할걸.”

“글을 쓴 적은 없다고.”

빌은 억울해하면서도 화면을 열어 게시판에 글을 써 넣기 시작했다. 빠르게 자판을 두드린 그는 순식간에 글을 올리고 휴대 전화를 내려놓았다.

“반응을 지켜보자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빌의 휴대 전화가 진동했다. 다른 녀석이 자신의 휴대 전화를 열어 확인을 해 보더니 오, 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야, 댓글이 벌써 달렸잖아. 우와, 조회 수도 엄청 빨리 올라가.”

“어디, 어디.”

“아, 이거다.”

뒤따라 다른 녀석들도 휴대 전화를 꺼내 확인하더니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다들 난리가 났네. 전교생 다 오는 거 아냐?”

“와, 사이트 엄청 느려졌어.”

“잠깐만, 뭐야 이거? 왜 안 돼.”

“어, 나도.”

“나도 안 열려.”

식당 안에 있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욕설과 함께 탄성을 내질렀다. 열리지 않는 게시판을 계속해서 새로 고침 하는 동안 식당에서 휴대 전화를 보지 않고 있는 건 애슐리와 코이뿐이었다.

코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가 애슐리한테로 시선을 향했다. 정작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맛없는 급식 햄버거를 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로 코이의 소심한 고민 글에 대한 얘기를 떠들어 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게시판에서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마저 모두의 화제는 애슐리 밀러의 파티에 관한 것으로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모두는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 식당을 나왔다. 식판을 내놓고 단체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애슐리에게 소리쳤다.

“애쉬, 파티 초대해 줘서 고마워!”

애슐리는 그쪽을 보더니 가볍게 손을 흔들어 대답을 대신했다. 높게 웃음소리를 내며 후다닥 달려가는 여자애들을 본 코이는 슬쩍 주변을 훔쳐봤다.

항상 그들이 지나갈 때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곤 했지만 오늘따라 애슐리는 더 짙은 동경과 부러움으로 가득한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애슐리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평소처럼 친구들과 농담을 하고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코이는 자신이 어쩌다 이 무리에 끼게 된 걸까 또다시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넬슨 무리의 괴롭힘도 사라지고 그토록 괴로웠던 학교생활이 너무나 즐거워졌다. 빌을 포함한 모두는 유쾌했고, 질 나쁜 장난도 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모두가 코이에게 아주 친절했다.

“그럼, 이따 보자.”

수업을 위해 각자 헤어지면서 서로 손을 흔들었다. 코이 또한 그들에게 손을 흔든 뒤 돌아섰다.

이번 수업은 애슐리와 함께였다. 둘은 나란히 수업이 있는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멀지 않은 길을 가는 동안 지나가던 아이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고 애슐리에게 알은체를 했다. 평소에도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유난했다. 아마 파티 때문일 것이다. 코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자코 땅만 보며 걸었다.

애슐리가 코이에게 말을 건 것은 오가던 아이들이 어느새 줄어들고 주변이 한적해졌을 때였다.

“코이.”

“응?”

반사적으로 대답하자 애슐리가 그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눈만 깜박이며 서 있는데, 그의 긴 손가락이 코이의 머리카락을 스치는가 싶더니 이내 떨어져 나갔다. 그다음에 그가 들고 있는 건 작은 나뭇잎이었다.

“묻어 있었어.”

“아, 어.”

뒤늦게 머리를 급히 털어 내자 애슐리가 소리 내어 웃었다.

“이제 없어. 떼어 냈으니까.”

유쾌한 웃음소리에 코이는 머쓱해지는 한 편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오늘 애슐리는 유독 많이 웃고 있었다.

기분이 정말 좋은가 봐. 코이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했지만 어쨌든 애슐리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면 그 또한 기뻤다.

잘됐다고 생각하며 웃는데, 또 심장이 뛰고 가슴 부근이 간지러워졌다. 어. 당황한 코이가 멈칫했다. 하지만 두근거림은 멈추긴커녕 점점 더 심해졌다.

문득 애슐리가 웃음을 멈추고 그를 내려다봤다. 무슨 일이냐는 듯이. 여전히 웃음의 자취가 남아 있는 그의 얼굴을 코이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입 안이 타들어 가고 손끝이 저리고 온몸의 맥박이 쿵쾅거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도저히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저기, 애, 애쉬.”

“응.”

애슐리는 즉시 대답했다. 코이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급히 머리를 굴려 핑계를 만들어 냈다.

“저, 이건 내 친구 얘긴데.”

어렵게 꺼낸 서두에 애슐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나 말고 또 친구가 있어? 누구?”

“어? 어어?”

갑자기 정곡을 찔려 코이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파닥거리는 귀를 흘긋 본 애슐리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물론 나 말고도 친구가 있겠지.”

“어…….”

코이는 또다시 어리둥절해져 눈을 바쁘게 깜박거렸다. 애슐리는 그런 코이의 반응을 보며 일부러 덧붙였다.

“아주 많이.”

그렇지 않아, 애쉬. 나한테 친구는 너뿐인걸.

코이는 목구멍에 맴도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하지만 애슐리는 코이에게 친구가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전혀 사실이 아니었지만 기껏 코이를 아주 사교적인 친구라고 생각해 주고 있는데, 그런 애슐리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코이는 아주 작은 허세를 부리며 황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응, 저기, 그래서 그, 많은 친구 중 한 명이 말인데.”

더듬거리는 건 물론 중간에 목소리가 삑 하고 새어 나가기까지 했다. 코이는 패닉에 빠질 뻔했으나 다행히 애슐리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만약 애슐리가 아까 코이를 납치해 자신의 방에 감금했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지금 학교였다.

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코이가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요즘 고민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서, 애쉬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고.”

“뭔데?”

“어, 저기, 그러니까.”

차마 본인의 얼굴을 보고 말할 엄두가 안 나 코이는 땅만 바라보며 말했다.

“어, 친한 친구가 생겼는데, 요즘 저기, 볼 때마다 이상하다고. 전엔 그냥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러니까, 막 가슴이 뛰고, 손도 떨리고 그런다는 거야. 막 여기가 간질간질한 느낌까지 들고.”

애슐리는 잠자코 코이의 가마를 내려다보았다. 한사코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그가 괘씸하면서도 귀여웠다. 결국 귀여움이 더 커져서, 애슐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친구가?”

“으, 으응! 치, 친구가!”

코이가 화들짝 놀라 급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애슐리는 당장 그 상대가 나냐고 묻고 싶은 걸 참느라 잠시 입을 꾹 다물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내가 잘못 말했나?

코이는 그런 애슐리를 보며 또다시 불안해졌다. 이런 감정은 친구끼리 갖는 게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기분 나쁘다거나 하면?

“코이.”

드디어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뜻밖에도 목소리가 갈라져 나와 으흠, 헛기침을 하는 그를 코이는 내심 바짝 얼어붙은 채 바라보았다. 그가 대답을 할 때까지 코이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고작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 코이에게는 아주 길게만 느껴졌을 때, 마침내 애슐리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코이, 그건 그 친구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어?”

코이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도 모르게 애슐리를 올려다봤지만 그런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다, 당연히 좋아하지. 친구니까.”

황급히 대답하자 애슐리가 지적했다.

“그것과는 다르다면서?”

멈칫한 코이의 반응에 애슐리가 계속해서 물었다.

“넌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그렇게 가슴이 뛰고 간지럽고 막 그래? 아니,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할 이유가 있어? 친군데?”

몰라. 나한테 친구는 너뿐인걸.

코이의 생각을 눈치챈 듯 애슐리가 말했다.

“그럼 예를 들어서, 나는 항상 우리 팀 녀석들과 점심을 먹고 훈련도 하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 알고 있지?”

“응.”

“난 그 녀석들을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가슴이 뛰고 부끄럽고 그런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없어.”

“정말?”

“그래.”

애슐리는 단호히 말했다. 이어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오히려 기분 나쁘지, 그 시커먼 고릴라 같은 놈들한테 내가 그런다고 생각하면.”

“아…….”

코이는 멍하니 탄성을 흘렸다. 애슐리는 똑바로 그를 내려다보며 더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건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코이.”

알아채.

내심 애슐리는 애타게 바랐다.

눈치채라고, 코이. 네 마음을.

마주 선 둘 사이로 한 차례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둘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코이의 귓가에 자신의 심장 소리가 아주 천천히, 둔탁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애쉬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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