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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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건 뭐였을까?
코이는 자신의 좁은 침대에 한껏 웅크리고 누워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계속해서 오락가락하는 기분을 그때는 사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지만 집에 돌아와 정신이 들고 보니 이상했다.
사춘기라면 수시로 그렇게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코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수업에서나 배웠던 사춘기의 감정 변화를 그도 그 나이 때 겪긴 했었다. 하지만 그걸 분출할 환경이 안 됐고, 참고 무시하다 보니 그냥저냥 흘러가 버렸다. 그게 이제야 겉으로 드러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또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왜 애쉬랑 있을 때만 그렇게 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사춘기의 감정이란 분노와 기쁨과 또 다른 감정이 극과 극으로 오고 가야 하는데 그가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기쁨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오직 애쉬를 향해서만.
이상하다. 왜 이러는 거지.
코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누웠다. 지금도 그렇다. 단순히 애슐리를 떠올린 것뿐인데도 귀가 까딱거리는 걸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코이는 열심히 파닥거리는 귀를 황급히 붙잡았다. 이게 문제야, 이게. 그는 애슐리가 이따금 자신의 귀를 빤히 쳐다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럴 때면 반드시 귀가 움직이고 있었고,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벌써 애슐리가 미소를 지은 다음이었다.
애쉬는 그런 걸로 날 놀리거나 하진 않지만.
코이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양쪽 귀를 꼭 붙잡았다.
그래도 창피해.
여태 애슐리한테 잘도 좋아한다고 떠들어 댄 주제에 이제 와서 이렇게 부끄럽다니. 그저 귀를 움직인다는 것 자체만 창피한 건 아니었다. 그 귀가 애슐리에게 열심히 반응한다는 사실을 들키는 게 부끄러웠다.
갑자기 왜?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에게만 반응하는 사춘기라니, 들어 본 적도 없다. 괜히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역시나 코이의 예와는 맞지 않는다.
친구라서 그런 걸까?
코이는 귀를 붙잡은 채 생각에 잠겼다. 친구하고 있으면 다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것 아닐까? 그러고 보면 애쉬도 아이스하키 팀 애들하고 있을 때 수시로 웃고 그랬잖아.
그렇구나, 친구니까 당연한 거야.
결론을 내자마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친구끼리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막 그러나?
애슐리나 다른 애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쑥스러워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봤다.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만 이러는 건가?
다시 의문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대체 왜? 뭐가 문제야? 왜 애쉬만 보면 이렇게 가슴이 뛰고 막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지?
애슐리와 친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코이는 그를 볼 때마다 좋아서 안절부절못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훤히 눈에 보였는지 애슐리도 몇 번이나 웃으면서 자기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다. 귀가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코이는 온몸으로 기쁨을 드러내곤 했으니까.
그때마다 코이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렇게 너무나 당당히 네가 좋다고 말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가빠질까.
만약에 애슐리가 지금 또 자기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코이는 예전처럼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간지러웠다.
으아! 입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한껏 몸을 둥글리는데, 머릿속에 불현듯 애슐리의 얼굴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코이.
좋아해.
화악, 얼굴이 달아오르고 피부가 따끔거렸다. 기억 속에서 그는 벌써 아까의 장면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스낵바에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애슐리의 맑은 은청색 눈동자가 코이에게 고정되었다. 코이는 숨을 죽인 채 그가 할 말을 기다렸다. 다정하게 코이의 뺨을 쓰다듬은 애슐리가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미소 짓는 입술로 속삭였다.
나랑 사귀자.
“이런 말은 안 했다고!”
코이가 비명을 지르며 침대를 팡팡 두드렸다. 동시에 얇은 매트리스 아래에 깔린 싸구려 프레임이 내지르는 요란한 소음에 그는 황급히 손을 멈추고 자신이 때렸던 자리를 마구 문질렀다.
이상해, 너무 이상해.
아무리 친구를 사귀는 게 처음이라도 알 수 있었다. 이건 너무 이상한 감정이었다. 친구들끼리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걸까? 게다가 사귀자니, 뭐야? 그런 건 여자 친구가 될 사람한테나 할 소리지.
“우린 둘 다 남자잖아.”
코이가 소리를 내어 말했다. 그렇게 들썩거리던 심장이 조금씩 느려졌다. 자신의 목소리가 그를 현실로 끌어냈다. 맞아, 그리고. 코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애쉬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매트리스에 머리를 누였다. 요란하던 두근거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분은 가라앉았다. 코이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 애한테 고백하고 나면 이제 나랑 놀 시간은 없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너무 쓸쓸해졌다. 문득 에리얼과 함께 있던 애슐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내가 정신없이 달아났던 이유는 정말 뭐였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지만 마음은 더 무거웠다. 반대쪽으로 돌아누운 코이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혼자 기뻐했다가 슬퍼했다가 온갖 감정을 경험하고 있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건 이게 전부 다 애슐리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이게 친구끼리 느끼는 감정이 아니면 뭘까?
자신의 마음이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걸 상담할 상대도 없었다. 그에겐 처음 사귄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가 바로 애슐리였는데, 그에게 상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징그럽다고 싫어하면 어떡해.
만약에 이게 평범한 감정이 아니라면 그는 코이를 경멸할지도 모른다. 코이는 그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것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
다른 친구도 없고 상담을 할 만한 마땅한 어른도 주변에 없는 코이 같은 사람에게는 이럴 때 이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시스템이 있었다. 코이는 벌떡 일어나 휴대 전화를 꺼냈다.
학생들이 주로 과제를 할 때 이용하는 사이트에는 답변을 바라는 온갖 질문들이 올라왔다. 거기에는 부모의 이혼이라거나 이성 문제라거나 여러 가지 잡다한 고민 글들도 많았다. 지금 코이에게는 가장 필요한 공간이었다.
곧바로 사이트에 들어간 그는 질문 글을 올리기 전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뭐라고 글을 쓰면 좋을까?
안녕. 난 버팔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코너 나일즈야.
거기까지 썼던 코이는 화들짝 놀라 부랴부랴 썼던 글을 지웠다. 미쳤어, 미쳤어! 아예 운동장에 가서 코너 나일즈가 애슐리 밀러를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돌아 버리겠는데 어쩌면 좋겠냐고 광고판을 만들어라!
돈이 없어서 다행이야.
코이는 아직도 팔딱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만약에 돈이 있었다면 정말로 그런 미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가난뱅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뒤 그는 다시 정성스럽게 질문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게 지금까지 고생하며 써 왔던 수많은 과제나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고작 게시판에 질문을 남기는 건데 이렇게 힘들 수가 있을까. 코이는 몇 번을 고치고 고치고 소리 내어 읽어 보고 또 고친 뒤에야 비로소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남학생입니다. 최근에 친구를 사귀었는데 정말 멋진 아이예요. 항상 친절하고 저에게 무척 잘해 줍니다. 아이스하키 팀 주장인 데다 엄청나게 잘생겼고요. 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앤데 잘난 척하지도 않아요. 거기다 머리도 좋아서 전 과목 AP 수업을 듣고요. 대입 시험도 만점을 받았어요.
전 그 애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그 애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라요. 사춘기는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그냥 친구한테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건가요? 제가 친구를 사귀는 게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알려 주실 분 있을까요?
아이스하키 팀 주장이라는 말은 빼자.
소리 내어 글을 읽어 본 코이가 수정을 하려고 화면을 건드렸을 때였다.
[등록됨]
“어, 어어?”
순간 놀라 코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차! 현실을 깨닫자마자 그만 히익,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수, 수정, 아니, 사, 삭제.”
코이는 다급하게 두리번거리며 버튼을 찾았다. 서둘러 삭제 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를 쳤는데.
[비밀번호 틀림]
“뭐, 뭐라고?”
당황한 그는 이번엔 천천히 숫자와 알파벳을 번갈아 눌렀다.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숨이 가빠졌다.
[비밀번호 틀림]
“아악!”
급기야 코이는 머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어떡해, 어떡해! 울상이 되어 계속해서 떠오르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 동안 조회 수는 점점 더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