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16)

“애쉬.”

코이가 작게 중얼거리자 애슐리 역시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코이, 안녕.”

곧이어 그는 으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코이는 그가 몸을 돌려 과자를 둘러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방학을 하고 나서 그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심장이 콩닥거리며 뛰어 댔다.

애슐리가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올 때까지 코이는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그를 보고 있었다. 몇 개의 과자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애슐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독립기념일인데 안 쉬어?”

“응? 응.”

코이는 황급히 바코드를 찍으며 대답했다.

“우리 집은 이런 날 모여서 식사하고 그런 거 안 해.”

“……흐응.”

애슐리는 애매모호하게 말을 흐렸다. 코이가 비닐을 꺼내 과자를 담았다.

“너는? 부모님 안 오셨어?”

코이의 물음에 애슐리는 카드를 꺼내 건네줬다.

“우리 집은 이런 날 모여서 식사하고 그런 거 안 해.”

코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리자 코이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멈칫한 애슐리에게 코이가 웃으며 말했다.

“너랑 나랑 공통점이 있네.”

애슐리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농담을 한 게 아닌데. 사실 비꼰 것에 가깝다. 스스로를 비꼰 건지 코이를 비꼰 건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코이는 해맑게 웃으며 변함없이 반짝이는 눈동자로 애슐리를 올려다보았다. 진심으로 기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왠지 그 모습이 부담스러워 애슐리는 카드를 받자마자 봉투를 들고 돌아섰다.

“아, 애쉬, 잠깐만! 잠깐 기다려 줘!”

주차해 둔 차에 올라타려는데, 가게에서 뛰어나온 코이가 소리쳤다. 애슐리가 멈춰 서자 급하게 달려온 그가 뭔가를 내밀었다.

“이거.”

“……이게 뭔데?”

코이가 내민 것을 받아 드는 대신 묻자 코이는 신이 나 말했다.

“독립기념일이라고 주는 기념품인데, 너 가져.”

어서, 하고 재촉하는 바람에 애슐리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괴상하게 생긴 분홍색 인형을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자 코이가 한층 더 높아진 음성으로 물었다.

“귀엽지?”

“…….”

애슐리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다시 인형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무리 봐도 너무 못생긴 인형이었다. 거기다 심술궂은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이런 건 공짜로나 주지 어떻게 돈을 받고 팔겠는가.

하지만 애슐리는 차마 솔직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코이의 표정이 너무나 너무나…….

행복해 보여.

“풉.”

그 얼굴을 보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애슐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고 코이는 어리둥절해하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뺨에는 홍조를 띠고,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내고, 입은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채였다.

“그래, 귀엽네.”

말을 하고 나서 애슐리는 흠칫 놀랐다. 다행히 자신의 말을 수습할 필요는 없었다. 코이가 실눈이 될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먼저 말을 한 것이다.

“그렇지? 너무 귀엽지? 실은 이거, 한정판이라 다 나갔거든. 손님이 안 갖는다고 해서 내가 가지려고 하나 숨겨 둔 건데…….”

“뭐? 그럼 괜찮아, 안 줘도 돼.”

“아냐, 아냐.”

코이는 두 손을 저으며 애슐리가 내민 인형을 밀어냈다.

“너한테 주고 싶어. 가져가.”

“응?” 하며 거듭 권유하는 코이의 얼굴에 애슐리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 고마워.”

마지못해 인형을 받자 코이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때 애슐리는 보았다. 코이의 양쪽 귀가 작게 파닥거리는 것을.

……아.

하마터면 그 귀를 만져 볼 뻔했다. 반쯤 손을 들었던 애슐리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다시 내렸다. 코이가 눈치채기 전에 그는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럼 이만 갈게.”

“응, 잘 가. 조심해서 가. 행복한 독립기념일 보내길!”

코이는 밝게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애슐리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 때까지도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애슐리의 카이엔이 부드럽게 커브를 꺾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더 이상 룸미러에 코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애슐리는 흘긋 조수석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코이가 준 못생긴 인형이 놓여 있었다.

“대체 눈이 어떻게 된 거야.”

애슐리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어째선지 웃고 있었다.

*

“애슐리이!”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뛰어드는 여자 친구를 애슐리는 익숙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와 만난 건 열흘 만의 일이었다. 몇 번이나 입술을 마주친 다음에야 비로소 에리얼이 말했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글쎄, 아빠가…….”

익숙하게 늘어놓는 부모에 대한 험담을 애슐리는 한 귀로 흘려들었다. 이런 식의 투정은 그의 아이스하키 팀 녀석들도 흔히 하는 소리다. 그런 투덜거림이 곧 가족에 대한 애착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애슐리는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 할 얘기가 없었고 불만 또한 가지지 않았다.

물론 그의 부모는 물질적으로 그에게 모든 걸 해 주고 있었다. 불만을 가지는 건 오히려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애슐리 또한 그들에게 불만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특별한 애착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친구들이 이런 식으로 부모에 대해 불평을 할 때는 조금 신기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구식인지를 늘어놓는 에리얼의 말속에는 그에 대한 애정 또한 가득 들어 있었다.

“어머, 이게 뭐야?”

선뜻 조수석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으려던 에리얼이 소리쳤다. 운전석에 앉으려던 애슐리가 멈칫했다. 그사이 벌써 에리얼은 조수석에 앉아 거기에 있던 인형을 주워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걸 구했어? 어머, 정말 못생겼다.”

에리얼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것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무심코 시선을 따라갔던 애슐리는 뒷좌석에 내동댕이쳐진 인형을 빤히 바라보았다. 에리얼은 그런 그의 기색은 전혀 모르는 채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래? 너네 집도 좋아.”

“그래.”

애슐리는 선뜻 말한 뒤 차를 출발시켰다. 차창을 열고 머리를 내민 에리얼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높은 소리로 환호했다. 애슐리는 평소처럼 에리얼에게 농담을 하고 웃었다. 모든 건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와아아!”

차에서 내린 에리얼이 신이 나 소리치며 곧바로 수영장을 향해 달려갔다. 뒤따라 운전석에서 나온 애슐리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가려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시선 끝에는 덩그러니 뒹굴고 있는 못생긴 인형이 있었다. 그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곧 차의 문을 열고 인형을 뒷좌석에 잘 앉혀 놓은 뒤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편안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못난 인형을 보자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져서, 그는 무심코 휘파람을 불며 걸음을 옮겼다.

*

“워후우!”

환성을 지르며 빌이 물속에 뛰어들었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물보라에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 댔다. 푸르르, 소리와 함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빌은 참았던 숨을 뱉으며 머리를 마구 흔들어 댔다.

“그만해, 미친놈아!”

“꺅! 하지 말라니까!”

주변에서 비명과 함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매트 튜브 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던 그의 여자 친구가 마시고 있던 음료를 그에게 건네주자 빌은 기다렸다는 듯이 쭉 그것을 들이켰다.

“아, 좋다.”

저절로 나오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젖혔던 그는 비치 체어에 길게 누워 있는 저택의 주인을 보고 그쪽으로 헤엄쳐 다가갔다.

“애쉬, 넌 안 들어와?”

“난 됐어.”

애슐리는 누운 채로 한 손만 들어 사양의 표시를 했다. 저택은 요란 법석 했다. 방학이 끝나기 전 아이스하키 팀 녀석들을 포함해 그들의 여자 친구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한바탕 놀아 대고 있었다. 부모도 없이 애쉬 혼자 사는 저택은 어마어마하게 큰 데다 수영장과 테니스장은 물론이고, 냉장고에는 언제나 먹고 마실 것이 가득해 휴가를 보내기엔 완벽한 장소였다.

“아, 이렇게 방학이 끝나네.”

다른 녀석이 애슐리의 옆 비치 체어에 앉아 탄식했다. 곧 화제는 대입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대부분 방학 전에 대입 시험을 치렀고, 늦어도 12학년이 되기 전에는 끝낼 예정이었다. 졸업반이 되면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되어 시험을 볼 여유가 전혀 없을 테니까.

“이번이 우리 마지막 시즌이야.”

누군가의 말에 애쉬 또한 그렇지, 하고 동의했다. 빌이 마시던 루트비어 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버팔로의 우승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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