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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10/216)

10화

한숨과 함께 어깨를 늘어뜨렸을 때였다.

“도와줄게.”

어?

처음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눈을 깜박이며 올려다보자 애슐리가 예의 미소 지은 얼굴로 말했다.

“도와준다고. 뭐부터 할까? 청소부터?”

“뭐, 뭐? 왜?”

이번에는 확실히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코이는 자신의 귀가 들은 소리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애슐리 밀러가 나를 도와서 청소를 한다고? 갑자기 왜? 무엇 때문에?

뭔가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해.

먼저 의심부터 들었지만 그것 또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건 자신에게서 얻어 갈 게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가정이었다. 애슐리 밀러가 코너 나일즈에게 뭔가를 얻어 갈 건 먼지 한 톨도 없을 것이다.

집 안의 먼지마저도 저 녀석이 더 많을 거야.

자조적인 유머를 덧붙인 코이는 실없이 웃어 버리기 전에 정색을 하고 애슐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역시 안심할 수 없었다. 얻어 갈 건 없어도 아무 의도가 없이 저런다는 건 역시 믿기 어려웠다.

“난 이유 없는 친절은 믿지 않아.”

그가 잔뜩 경계하며 말했다. 애슐리의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가 사라졌다. 둘은 침묵 속에서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후, 먼저 한숨을 내쉰 것은 애슐리였다.

“실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그럼 그렇지.

“뭔데?”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묻자 잠깐 머뭇거리는 것 같던 애슐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과제 말이야.”

“과제?”

뜬금없는 소리에 코이는 눈을 깜박이며 그가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애슐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 마르티네즈 선생님의 그 팀 과제 말이야. 우리 둘 다 A+을 받았던.”

“아, 아아.”

그제야 코이는 무슨 얘긴지 깨닫고 가벼운 감탄사를 흘렸다. 이제 애슐리가 뭘 물어보고 싶은 건지도 알 것 같았다. 역시나 애슐리는 꽤나 고민스러운 듯 느릿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내 이름 왜 넣었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코이는 그 얼굴을 보자 조금은 가슴이 후련해졌다. 더불어 약간의 심술이 생겨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그게 왜? 불만이라도 있어?”

“이상하잖아.”

애슐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코이는 처음으로 그의 민얼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생소함을 느꼈다.

“너도 말했잖아, 이유 없는 친절은 믿지 않는다고. 왜 그랬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팔짱을 낀 애슐리가 코이를 내려다보았다. 어서 말하라는 듯이. 코이는 그에게 기가 죽지 않으려 최대한 몸을 쭉 폈다. 그래 봤자 애슐리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한껏 고개를 쳐들어야 했지만.

“별거 없어. 같은 팀이니까 이름을 넣은 것뿐이야.”

“굳이?”

여전히 애슐리는 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코이는 잠깐 고민했다가 솔직히 대답했다.

“팀별 과젠데 혼자 했다고 하면 혹시 점수를 받지 못할까 봐 그랬어.”

“다른 녀석들은 이름 잘만 빼고 냈던데?”

“그건 그 녀석들이고.”

코이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어쨌든 팀 과젠데 혹시 마르티네즈 선생님이 제대로 팀원이 참가하지 않았다고 점수를 깎으면 어떡해.”

그만큼 나한텐 중요한 과제였는데 넌 그냥 내빼 버렸지.

뒤늦은 원한을 되새기며 노려보자 애슐리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화나지 않았어?”

“맞아. 그래서 이름은 내 걸 위에 썼어.”

코이의 대답에 애슐리가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곧이어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허리를 꺾어 가며 유쾌하게 웃어 대는 그를 코이는 어리둥절해하며 바라보았다.

“내가 빚을 졌네.”

한참 만에 애슐리가 여전히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됐어, 날 위해서 한 거니까.”

코이는 선뜻 말했다. 내심 아까 도와주기도 했고, 하고 덧붙였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다만 방금의 말은 이제 그만 가라는 뜻으로 한 건데 애슐리는 나가긴커녕 그 자리에 선 채 가게 안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이제부터 청소할 거지? 같이하자.”

“뭐?”

진심이었어?

깜짝 놀라 묻자 그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천장은 어떻게 할까? 저건 내가 닦는 게 낫겠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던 코이는 까마득한 높이에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응, 하고 대답했다.

“잠깐 기다려, 걸레 빨아 줄게.”

코이는 그길로 달려 나가 청소 도구를 들고 돌아왔다. 아까와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애슐리는 코이에게서 걸레를 받아 천장을 닦기 시작했다. 발판도 없이 팔을 쭉 뻗어 얼룩을 닦는 그의 모습에 코이는 잠깐 자괴감을 느꼈으나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할 일이 많았다. 그는 서둘러 엉망이 된 진열대를 닦으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

애슐리의 도움으로 청소는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이내 가게 안은 이전처럼 말끔해졌으나 문제는 군데군데 빈 진열장이었다. 냉장고의 맥주도 다섯 개나 없어졌다.

이게 다 얼마지.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이제 끝이야?”

애슐리의 음성에 코이가 고개를 들었다. 청소를 시작할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애슐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코이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완벽한 애슐리 밀러를 보며 힘없이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만 가도 돼. 도와줘서 고마워.”

“천만에. ……빈 물건들은 괜찮아? 못 쓰게 된 것도 많던데.”

“어쩔 수 없지 뭐.”

말을 끝내자마자 다시금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말이 없이 잠자코 있던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금요일에 파티를 열 건데.”

갑자기 무슨 소린지 의아해하며 올려다보자 애슐리가 말을 이었다.

“과자랑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거든. 여기서 사 가고 싶은데, 계산해 줄 수 있어?”

“……그래, 그럼.”

코이는 좋을 대로 하라는 듯 손을 흔든 뒤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대로 계산대에 엎드려 버리는 그를 보고 애슐리는 돌아서서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그가 계산대로 돌아왔을 때 코이는 그새 잠이 들어 있었다. 애슐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계산대 옆의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메시지를 남기고 그 옆에 100달러 지폐를 다섯 장 놔두었다.

딸랑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코이가 화들짝 놀라 일어섰을 때 남아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황급히 계산대를 돌아 나온 그의 시야에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카이엔의 모습이 들어왔다. 잠시 그대로 서 있던 코이는 다시 계산대로 돌아섰다가 뒤늦게 돈과 메모를 발견했다.

뭐지? 500달러나?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던 그는 급히 애슐리가 남긴 게 분명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거기엔 몇 가지 품목이 쓰여 있었는데, 물건의 종류와 개수가 중구난방이었다. 고개를 갸우뚱했던 코이가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가게 문을 닫고 손해 본 물품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남은 재고를 파악했을 때였다.

*

다음 날 평소와 같은 시간에 학교로 간 코이는 내심 가슴이 두근거리는 채로 주변을 살폈다. 언제나 애슐리와 그 패거리들은 눈에 띄었기 때문에 바라지 않아도 마주치곤 했는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시간을 확인한 그는 내심 초조해져 괜히 사물함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두리번거렸다. 혹시 오늘 또 결석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문득 주변의 공기가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이것도 익숙한 것이었다.

애슐리 밀러가 온 것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던 코이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곧바로 달갑지 않은 얼굴 또한 함께 발견했다. 넬슨 패거리가 애슐리 무리들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얼씬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후퇴다.

코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다 이내 등을 돌리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어제 일도 있었으니 분명 넬슨은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지금 걸리면 어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혹독한 괴롭힘을 당할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넬슨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곧 학기가 끝나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

가게로 또 찾아오면?

불안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건 또 다른 얘기였다. 일단은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게 먼저다. 코이는 숨을 헐떡이며 수업이 있는 건물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

“어.”

문득 애슐리가 흘린 탄성에 함께 있던 녀석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뭐 있어?”

“뭔데? 뭐야?”

두리번거리며 묻는 녀석들을 두고 애슐리는 한동안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도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가 무슨 상황인지 알게 된 것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넬슨과 눈이 마주친 순간 상대가 움칠 놀라며 허겁지겁 다른 녀석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애슐리는 코이가 왜 그렇게 열심히 달아났는지 이해했다.

“……흐음.”

턱을 쓰다듬으며 뭔가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에 친구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며 서로를 마주 보았으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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