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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216)

3화

“분명히 메일을 보냈어요, 전. 오늘 새벽에 메일을 드린 다음에 잠들었는데, 정말인데.”

“흐음.”

선생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한 손으로 빠르게 비밀번호를 친 그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화면을 돌려 코이 쪽으로 보여 주었다. 거기엔 수많은 메일이 도착해 있었지만 정작 찾고 있는 메일 주소는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몇 번이고 메일 주소를 확인하는 코이를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선생이 물었다.

“확인했니?”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코이는 눈앞이 캄캄해져 다급하게 선생의 얼굴과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전 분명히 메일을 보냈어요, 마르티네즈 선생님. 제 메일로 확인도 시켜 드릴 수 있어요. 분명히 제 메일엔 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까요. 정말이에요, 이건 정말 말도 안 돼요!”

코이의 애원에도 선생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런 항의는 이미 질리도록 겪어 왔다는 냉담한 태도에 코이는 절망스러워졌다. 차분하게 코이를 바라보던 선생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오늘 밤까지 내게 메일을 보내렴. 그럼 과제를 받아 주마. 단.”

코이가 기뻐하기도 전에 그녀는 엄하게 덧붙였다.

“규칙은 규칙이니 A는 줄 수 없어. 이만 가 보거라.”

“네? 하지만…….”

“가라고.”

선생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애원해 볼 여지조차 없었다. 결국 코이는 탄식과 함께 돌아서고 말았다.

어떡하지?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장학금은 괜찮을까? 점수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내신은 어떡해? 그 메일이 왜 안 간 거지? 난 대체 왜 밤을 새운 거야?

정말 말도 안 돼……!

억울하고 기가 막혀 눈가가 시큰해졌을 때였다. 갑자기 선생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멈춰 섰던 코이는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마르티네즈 선생이 찡그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더니 덧붙였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하나뿐이야. 거기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반영해 주마.”

“네?”

코이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은 코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과제가 뭔지는 다음 수업 때 얘기해 줄 거야. 이번엔 기간에 맞춰서, 내용도 성실히 작성해 와야 한다. 알겠지?”

“아, 네, 네! 물론이죠, 마르티네즈 선생님!”

코이는 기뻐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은 이제 됐다는 듯이 손을 저어 나가라는 표시를 해 보였다. 코이는 입이 벌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환해진 얼굴로 복도에 나왔다.

저절로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걸어가며 그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메일이 가지 않았다니 정말 대형 사고였다.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받았다니 너무나 행운이 아닌가.

다음 과제는 뭘까.

그는 깊은숨을 들이켰다 내뱉은 뒤 각오를 새롭게 했다.

꼭 좋은 점수를 받아야지.

*

“이번 과제는 팀 과제다.”

놀란 코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칠판 앞에 선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발표는 하지 않을 거야. 대신 주제는 모두 같아. 두 명씩 조를 짜서 주제에 맞게 리포트를 써서 제출해. 점수는 두 명 동일하게 줄 테니까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하도록.”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주제가 같은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명씩 조를 짜야 한다니, 거기서부터 코이는 생각이 꽉 막혀 버렸다.

왜냐면 조를 짜서 함께 과제를 할 친구 따위, 코이에게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친구가 있었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코이는 제법 잘 지내는 중이었다. 물론 외롭거나 심심하다는 감정은 생겼으나 무리해서 친구를 사귀려다 오히려 심하게 골탕을 먹고 괴롭힘을 당한 뒤로는 차라리 혼자라서 외로운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낫다. 오히려 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라 친구가 있다 해도 함께 놀 시간 따위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스스로를 위안해 왔는데.

난데없이 눈앞에 거대한 벽이 생겨 버린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과제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친한 친구와 조를 짠다. 남는 아이들끼리 어떻게든 조를 만들어야 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어느 정도 호감이 있거나 말이라도 나눈 사이여야 제안을 할 수 있다.

결국 코이로서는 어느 쪽이든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야말로 먹이사슬의 가장 바닥에 있는 그에게 그룹 과제는 극약이었다. 패닉에 가까운 상황에 머리를 감싸 안았을 때였다.

“이번엔 임의로 조를 지정해 주겠다. 자, 이제부터 호명하는 대로 나와서 여기 상자에 있는 제비를 뽑아라. 거기 적혀 있는 이름대로 조를 짜서 과제를 완성하는 거야, 알겠지?”

선생이 말을 마치고 한 차례 교실을 둘러보았다. 딱히 코이를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은 코이를 그나마 구제해 주었다.

겨우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을 때, 선생이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한 명이 나가 상자에서 작게 접혀 있는 쪽지를 하나 꺼내고, 그것을 받아 든 선생이 적혀 있는 이름을 읽었다.

서로를 확인시킨 뒤 선생은 다음 학생을 불렀다. 한 명, 또 한 명 호명이 계속되는 동안 교실에는 괜한 긴장감이 흘렀다. 코이 역시 내심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슬쩍 교실을 둘러보았다.

어느덧 절반 가까이 조가 만들어지고 코이를 포함해 남은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코너 나일즈.”

마침내 선생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코이는 순간적으로 놀라 황급히 일어나다 그만 의자에 다리가 걸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와르르 터지는 웃음소리에 무안해진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달리듯 급하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어서 이 순간을 끝내고 싶다.

코이는 상자에 손을 넣자마자 제일 먼저 닿은 제비를 꺼내 바로 선생에게 내밀었다. 급히 몸을 돌리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선생이 입을 열었다.

“코너 나일즈, 네가 뽑은 파트너는…….”

어쩔 수 없이 멈춰 선 코이의 귀에 그녀의 음성이 이어졌다.

“애슐리 밀러, 어디 있지?”

놀라 둥그렇게 뜬 시야에 한 손을 드는 아이스하키 팀 주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어서 선생이 말했다.

“그래, 둘이 한 팀. 자, 그리고 다음은…….”

곧 이름을 불린 다음 학생이 앞으로 나갔지만 코이는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

애슐리 밀러와 내가 같은 팀이라고?

하얗게 질려 숨을 멈춰 버린 코이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애슐리는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괸 채 휴대 전화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

“저, 저기, 애슐리…… 애쉬!”

급하게 덧붙인 애칭에 애슐리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코이를 돌아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그를 불러 세운 코이는 준비했던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과제 때문에. 너도 알지? 우리가 같은 팀이라는 거. 그래서 말인데, 과제를 어떻게 할지 같이 얘기를 나눠야 할 거 같은데.”

자료 조사를 어떻게 할 건지, 챕터를 어떻게 나눌 건지, 나눈 챕터를 각각 누가 맡을 건지까지 할 얘기가 많았다. 리포트를 마무리할 때까지 적어도 세 번은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고 수정을 해야 할 것이다.

코이는 애슐리의 빈 시간과 자신의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을 맞춰 최대한 효율적으로 과제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소는 학교의 카페테리아가 좋다. 따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쓸데없이 돈이 나가지 않는다. 그것도 자신의 아이디어에 애슐리가 전부 동의했을 때의 얘기지만.

내심 조마조마해하며 눈치를 보는데, 애슐리가 예의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랬지. 가만, 어떻게 하지?”

잠깐 생각하는 척 미간을 찌푸리고 허공을 쳐다봤던 그는 애석하다는 듯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웃어 보였다.

“수업이 끝난 후엔 연습이 있어서 말이야. 연습이 끝난 다음이라면 괜찮은데, 너무 늦겠지?”

“아니, 괜찮아. 그럼 몇 시면 될까?”

득달같이 대답하자 애슐리가 멈칫했다. 그 반응으로 코이는 자신의 반응이 애슐리의 예상과는 달랐다는 걸 깨달았다. 애슐리는 이 과제를 할 마음이 없었던 걸까? 왠지 불안해졌을 때, 애슐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많이 늦을 텐데.”

“괜찮아. 기다릴 수 있어.”

이렇게 된 이상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고집스럽게 말하자 애슐리는 드러내 놓고 암담하다는 양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그러니까…….”

의미 없이 한 손을 허공에서 빙글거리며 흔드는 그의 모습에 코이는 재빨리 말했다.

“코너 나일즈. 내 이름은 코너 나일즈야.”

“그래, 코이.”

선뜻 애칭을 부른 애슐리가 말을 이었다.

“과제 하나 정도야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 없잖아, 안 그래?”

싱긋 웃는 얼굴은 세상 사람들 대부분을 넘어가게 했지만 코이만은 예외였다.

“아니, 난 최선을 다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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