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178화 (255/256)

178화

18. 에필로그

최신형 제트기가 죽은 사막 위를 날았다. 한때는 사막 식생의 최고봉을 자랑했던 이곳은 2년 전 다중 게이트와 함께 사상 최강의 G형이 출현하였다. 최악의 게이트가 뿜는 방사능에 11기가 넘는 전략핵 폭발 여파로 인해 바퀴벌레조차 버린 죽음의 땅을, 수색기는 일주일 두 차례 비행 중이다.

조종사는 멋진 콧수염에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자였다. 호탕한 웃음을 자랑하는 그는 수색 비행에서만큼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처럼 엄숙했다. 긴장을 풀기 위한 농담도 건넬 수 없어 부조종사는 입을 뚝 다물어야 했다. 기내엔 묵직한 엔진 소음에 초호화 전자 장비가 내는 기계적인 비프음뿐이었다.

오늘은 알파 구역 수색 날짜였다. 2년간 벌써 400차례 이상 수색했다. 처음엔 인원만 수백 명이 동원되었고 날아다닌 기체만 해도 사십 여기에 달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정확하게는 성과를 낼 만큼 넓게 수색하기 불가능했다. 방사능 오염이 너무 심해서 고작 5분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기체 손상이 심각하기 때문이었다.

2년이 지난 현재도 방사능은 여전했다. 대신에 수색기의 방사능 자폐 기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적어도 1시간 비행은 가능했다. 덕분에 수색 효율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하지만 희망은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들었다.

만약에 살아 있다면 지금까지 전혀 발견되지 않을 리가 만무했으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수색 발견 가능성은 점차 작아졌고, 밝은 전망을 품은 사람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일주일 두 차례, 순전히 어느 특수한 개인의 욕심에 의해 수색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 선 대단한 인물이라도 미군 자원을 2년이나 차출할 수 있는 배경에는, 그 특수한 개인이 사실상 인류를 구원한 영웅과 영웅을 도운 또 다른 구원자의 원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막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텔레파시를 통해 지켜보았던 그는 획기적인 방어 시스템을 고안했다. 새로운 방어 시스템은 지난 2년간 여진처럼 수시로 발생한 다중 게이트를 허탈할 정도로 손쉽게 해결했고, 나아가 인류에게 탈(脫) 게이트 시대에 관한 희망을 부여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계량이 필요했는데, 그건 원천적인 개념을 정립하고 실질 개발 및 배치까지 광범위하게 손을 댄 개인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협조에 대한 대가로 그는 생존자 수색을 요구했다. 적어도 사망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말 것도 강경하게 주장했다.

어느 개인의 정신적 안녕이 인류의 안녕한 미래와 직결된다면, 아무리 무리한 요구라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로 멸망의 위기에서 도움을 받은 나라라면 더더욱.

부조종사가 수색 요구 당사자이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만든 특수 수색 레이더와 스캔 장치를 계속해서 모니터링했다.

-알파01 진입.

알파 구역은 G형을 향한 다중 핵 공격 직전 수색 대상이 마지막 신호를 보낸 좌표 반경 10킬로미터 내였다. 2년 전 첫 수색을 시작할 때 5분 비행에 맞게 구역으로 쪼개 수색했다. 하지만 성과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관련 잔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젠 핵폭발에 의한 증발 가능성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체 혹은 남은 전투복 잔해라도 찾지 않으면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사람이 인류의 미래를 쥐고 있는 턱에 그걸 공공연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부조종사는 수색에 드는 자원과 장비를 다른 곳에 써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군 상부는 이 정도 자원은 새 방어 시스템에 대한 사소한 비용으로 여겼다. 그렇다고 한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희생되는 전투 병력과 비전투 병력, 그리고 명예도 없이 죽어가는 민간인 유해를 이렇게 수색한 적이 있는가? 떠올리면 은연중에 불만이 솟아올랐다.

수색기가 알파01 구역 상공을 세 바퀴 돌았다. 늘 그렇듯 레이더와 스캔 장비에선 어떤 특정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 의미 없는 수색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알파01 이상 없음.

-확인. 알파02로 항로 변경.

늘 똑같은 보고에 조종간을 쥔 남자는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는 수색을 포기하지 않는 극소수 중 한 명이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미 유언까지 녹음한 후에 마지막 수송기를 조종했던 그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게이트가 바로 코앞에 있는 상태에서 거대한 수송기에 맨몸으로 달려들어서 앞 유리창을 뜯어냈다면 믿겠어? 어떤 에스퍼도 그렇게 터프하진 않아. 그럴 능력이 없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야. 헬멧도 없이 G형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그걸 생눈으로 보고는 절대로 못 믿지. 증발? 좆 까라 그래. 하하하하하하.’

언젠가 수색에 의문을 조심스럽게 드러냈을 때, 조종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호탕한 웃음을 감춘 채 제 목숨의 은인이 남긴 잔해라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수색기 캡틴으로서 이보다 적합한 인물은 없었다.

-알파02 이상 없음.

-확인. 알파03으로 항로 변경.

이제 알파03에도 이상 없음을 확인하면 귀환하여 쉴 수 있다. 제트기 제염 작업 및 정비가 완료되는 이틀간 쉰 다음, 브라보 구역 수색 작전에 나선다. 벌써 4개월째 이어진 일상이었다.

-알파03 이상 없…… 어?

게으르게 스크린을 확인하던 부조종사는 별안간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옆 좌석에 앉은 조종사가 부조종사 앞에 있는 스크린을 곁눈질했다. 늘 단조로운 레이더 그래프에 뭔가가 떴다.

-선회 기동.

조종사는 즉시 기수를 돌렸다.

-아마도 바람에 무너지는 바위로 인한 진동이 잡힌 걸 겁니다.

부조종사는 여태껏 수십 차례나 있었던 일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도 추가적인 확인을 위해 스캔 장치 출력을 올렸다.

삐삑.

선회 중에 다시 신호가 튀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부조종사는 조종사를 보았다. 조종사는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고 헬멧을 썼다. 부조종사가 따라서 헬멧을 쓰자마자 기수가 2시 하향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면서 발신 좌표로 접근할 때마다 신호가 점점 강해졌다. 그와 동시에 방사능 농도가 치솟으면서 최신 장비 가동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레이더 범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스캐너에는 온갖 노이즈가 끼었다.

-메뉴얼 카메라 쓰겠습니다.

부조종사가 제트기 밑에 달린 정찰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방사능 차폐막으로 아주 둘둘 말아 놓아서 방사능 교란에는 강하지만, 렌즈를 통한 피폭까지 다 막을 순 없었다. 사용에 한계가 있단 얘기였다.

-피폭 수치가 치솟습니다. 이 이상은 카메라 내부가 터질 수 있습니다.

-얼마나 남았어?

-한 5분 정도?

-5분간 롤러코스터를 타겠군. 꽉 붙들어.

파일럿 전용 전투복이 콕핏에 결착된 상태라 두 팔 외에는 특별히 움직일 수도 없다. 그렇다고 경고가 무용지물은 아니었다. 최신 제트기가 갑자기 지상을 향해서 45도 각도로 돌진했다.

-오.

정말 오! 였다. 땅이 쏟아지는 광경에 아찔하기도 잠시 기수가 들어 올려지면서 수평 비행이 시작되었다.

같은 등급 제트기에게 허용된 최저 고도였다. 이보다 더 떨어지면 충분한 양력을 받지 못해 바로 추락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비행과 함께 카메라가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공포 발사속도를 훨씬 능가하는 샷이 지표면을 긁고 지나기를 반복하는 찰나였다.

삐삐삐삐-

레이더가 울기 시작했다. 포착 신호의 출력이 방사능 전자 교란을 능가한 덕분이었다. 출력이 변했단 말은 단순한 자연물의 신호가 아니란 뜻이었다. 소름을 동반한 전율이 콕핏을 뒤흔들었다.

-추적 발신기 낙하!

부조종사가 발신기를 떨어뜨렸다. 즉시 조종사는 기수를 최대한 들어서 방사능 오염지대를 벗어났다. 지상에 꽂힌 발신기 신호가 우렁찼다.

-변환 신호 발견! 변환 신호 발견! 지상 수색을 요청합니다! 발신기 좌표 전송합니다!

조종사가 희망을 담아 교신한 직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규모 지상 수색 부대가 즉시 오염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8시간에 걸친 수색 끝에 그들은 핵폭발 열기에 녹아 엉겨 붙은 거대한 바위 하나를 총 6대의 수송 헬기에 매달아 공군 기지로 운반했다. 앞서 제트기의 레이더가 발견한 신호는 그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막강한 방사능을 차폐하기 위해 바위 주변에 임시 격납고가 설치되었다. 격납고가 완성될 무렵, 수색 작전을 고집했던 특수한 개인이자 통상 코드네임 ‘트리플VIP’가 제 팀원과 함께 나타났다.

“내가 할게.”

개인용 중장갑을 입은 트리플VIP는 다른 사람을 모두 물리치고 직접 석재용 드릴을 들었다. 서너 군데 뚫자 바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서 중앙에 큰 틈이 생기면서 바위가 반으로 쪼개졌다.

쿵!

먼지와 파편이 튀는 중에도 트리플 VIP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도리어 석재에 깔릴 위험을 무시하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거칠게 쪼갠 삶은 달걀처럼 중간이 불룩하게 오른 남은 반쪽을 더듬던 그는 이내 석재용 소형 망치로 어딘가를 툭툭 쳤다. 부스스 떨어져 내리는 파편이 점차 증가했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손짓이 곧 광기로 번졌다.

쾅쾅쾅쾅쾅!

그는 미친 사람처럼 두드리다가 별안간 망치질을 멈췄다. 그러곤 두 손으로 껍질처럼 들러붙은 파편을 뜯어냈다.

파편 반대편은 매끈했다. 당연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피부에 붙어 있었으므로.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틈 사이에 억지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바위 파편을 더 뜯어냈다. 그러자 누군가의 왼쪽 광대가 드러났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광대를 슬쩍 만졌다. 그러자 손목에 장착한 패널에 생명 신호가 떴다. 살아 있다!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격한 외침이 격납고를 뒤흔들었다.

가용 인원 전체가 달려들어 바위를 제거했다. 파편이 떨어져 나갈수록 안에 든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전투복이 모조리 녹아 버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남자는 누군가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품에 안긴 이는 고개를 상대의 목과 빗장뼈에 묻은 채 아이처럼 안겨 있었다.

둘 사이에는 인공 코드가 연결되어 있었다. 서로를 놓아줄 수 없어 꼭 붙들어 잡은 것처럼, 제 생명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는 코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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