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퍽!
흙먼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윤조는 주먹으로 바닥을 연거푸 내려쳤다. 레이더로 이쪽 상황을 주시하던 기지에서 무장한 경비병 셋이 우르르 달려왔다.
-김? 괜찮습니까?
부축을 위해 내민 손길을 거부하며 스스로 일어섰다.
“괜찮습니다.”
거칠게 답한 윤조는 망할 에스퍼 놈이 저를 팽개쳐 버리고 날아간 방향을 노려봤다. 치핵이 불거진 항문 같은 하늘을 향해 쌍 중지를 날리며 뇌에 힘을 주었다. 동조율을 맥스로 높였으나 돌아오는 반향이 없었다.
윤조의 가이드 시스템이 일종의 텔레파시이긴 해도 기본적으로 전자적인 보조가 있어야 원활하게 작동한다. 흉악한 G형 게이트 새끼가 어마어마한 똥구멍으로 싸지르는 설사처럼 더러운 전파 덕분에 동조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가 없었다.
“텔레패스를 요청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텔레파시가 연결되었다.
-강 소령님은 무슨 생각으로 혼자 간 거죠?
연결 즉시 말을 건 사람은 역시 장세인이었다.
“자기만 쫓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데 그게 말입니까, 방귀입니까. 가이드한테 에스퍼를 걱정하지 말라니요? 잘도 그렇겠다고 하겠습니다.”
괜히 장세인을 향해서 언성을 높였다.
-G형이 강 소령을 노리는 이유가 뭔데? 강해서?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수혁이 마지막으로 보였던 감정은 강렬한 역겨움이었다. 흉측한 거대 괴물을 향한 것치곤 뭔가 묘하게 떨떠름한 구석이 있었다. 그게 마음에 크게 걸렸다. 반드시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강 소령님은 나도 못 털어요.
“압니다. 제가 가야죠.”
이럴 때 텔레포트 능력자가 있으면 좋을 텐데.
이곳 사막에서 발생한 다중 게이트는 발달하지 못하도록 강수혁이 초장부터 마구 휘저어 놓았기에 플라이와 슬라임을 토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정은 다르다. 이미 플라이 떼와 슬라임 무리가 온 도시를 휘젓고 있었다. 남태평양에 걸친 중남미와 호주가 특히 엉망이었다. 로아무아가 굳이 기를 쓰고 귀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유럽 에스퍼들은 전부 남미로 몰려갔고, 아시아 에스퍼들은 전부 호주와 태평양 일대에 퍼져 있다. 북미 에스퍼들은 태평양 연안 게이트만으로도 벅차다. 여기까지 핵탄두 수송을 맡은 임 중위도 당연히 돌아갔을 거다.
-저 찾아요?
몸을 돌리기 무섭게 임성준이 나타났다. 헬멧을 쓴 그는 1미터 거리에서 윤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른 손에는 큰 군용 하드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아직 있었습니까?”
-그게 아니라 방금 다시 온 겁니다. 이거 김 준위에게 직접 전달하랍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장 대위님 통해서 통지 주세요. 이쪽은 최우선 특송 대상이라서요. 전달할 물건 없으십니까? 없으면 갑니다. 온 사방이 전투 중이라 보급이 급해서요. 충성.
케이스를 건네자마자 대충 거수한 임 중위가 즉시 사라졌다. 아니 무슨 중위가 준위한테 거수하냐고 따져 묻을 여유도 없었다. 텔레포트 파동에 흔들린 흙먼지를 보며 뒤늦게 거수를 붙였다가 내렸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강대한 진동과 함께 폭풍이 휘몰아쳤다. 경계하던 미군과 윤조는 동시에 자세를 낮췄다. 근거리에선 거의 끊기는 일이 없는 군용 통신기가 지직거리면서 오작동을 일으켰다.
쿵. 쿵.
안은 채로 몸이 들썩였다. 가늠할 수 없는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땅을 두드린 덕분이었다. 흙먼지를 머금은 거친 돌풍이 연거푸 불어닥쳤다.
-……왓……더?
노이즈가 더 많은 회선을 통해 누군가의 탄식이 들려왔다. 기척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늘어진 게이트 중심부를 뚫고 어마어마한 기둥이 내려와 지표에 닿았다. 한 개도 아니었다. 하나가 더 내려오고 있었다.
존재적 공포 앞에서 미 공군이 전부 얼어붙었다. 윤조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G가 뭐의 약자였지? 그랜드…… 기간틱…… 갓?
-저걸 어떻게…….
모두의 이성을 앗아간 믿을 수 없는 광경 속에서 작은 빛이 반짝였다.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잃지 않은 작은 별을 본 순간 윤조는 즉시 케이스에 제 생체 코드를 입력했다.
잠금을 풀자마자 자동으로 초소형 레이더와 안테나가 나오더니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작은 스크린 위에는 커피 자국이 난 노트 반 토막이 붙어 있었다.
S급 텔레포터를 퀵으로 쓸 사람은 딱 하나뿐이다. 쪽지를 휘갈긴 필체가 그걸 증명했다.
-G형 영향권에서는 가이드 동조 시스템 불능 → 임시 뇌파 확성기. 신뢰도 보장 불가. 최대 사용 3~4번 예상. 최대 출력 시 배터리 폭발에 유의.
미친 타이밍이었다.
전투복 케이블을 꺼내 확성기에 연결했다. 단순 연결에도 잡음이 끼여 꼭 싸구려 재질 확성기 같았다.
쿠구궁.
강수혁이 만들어 낸 빛의 창과 G형이 맞붙었다. 화가 난 G형이 발산한 전파가 대기를 찢었다. 뒤이어 몰아친 모래 폭풍은 너무나도 거세서 깨알 같은 모래 하나하나가 강력한 펀치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기껏 연 확성기가 도로 닫히려 들었다. 날아가지 않게 붙잡기도 힘들었다.
-가이드 김!
미군들은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로 이쪽으로 기어 왔다. 그들은 휴대용 특수 합금 방패 펼쳐 윤조를 엄호했다. 그들이 몸으로 바람을 막은 덕분에 윤조는 확성기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트리플 S급 에스퍼가 최대 출력으로 빗어낸 창은 G형에 비하면, 150층짜리 마천루 앞에 야구 배트 하나였다. 공격을 감행해도 핵탄두를 가져다가 꽂을 시간이 있을까? 회의적이다.
-대위님!
윤조는 장세인을 호출했다. 요청을 이미 파악한 장세인은 심 박사를 즉시 연결했다.
-윤조야!
-박사님!
심 박사와 거의 동기화 된 윤조는 확성기를 그 자리에서 뜯어서 회로를 개조하고 프로그램을 변경했다.
그러는 사이 두 차례 공격으로 열 받은 G형은 크레인 타워 같은 촉수를 뻗었다. 힘을 잃은 수혁의 비행 고도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짓눌려 죽기 직전이었다.
개조가 끝난 즉시 확성기 출력을 맥스로 올렸다. 그러곤 미군에게 눈치를 주었다. 인간 방패를 자처하던 미군들은 즉시 인이어 연결을 끊고 바닥에 엎드렸다.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윤조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부어 외쳤다. 수신 대상은 강수혁이 아니었다.
“야! 우주 괴물! 이 시발롬아!”
헬멧 안에서 터진 일갈은 즉시 특정 신호로 변환되었다. 군용 케이스에 꼭꼭 들어찬 뇌파 확성기의 출력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사용 당사자인 윤조의 뇌 속 전자칩마저 찌릿찌릿 울렸다.
가라앉은 빛을 쫓던 G형의 크레인 촉수가 움찔하더니 끝을 들고 공중을 더듬었다.
“여기다! 개새끼야! 시발!”
윤조가 중지를 바짝 추켜세우며 다시 외쳤다. 케이스에서 불꽃이 파박 튀었다.
방황하던 촉수의 끝이 이쪽을 향했다. G형에게서 아까와는 다른 전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출력이 너무 셌다. 뇌 속 전자칩을 뒤흔드는 확성기는 저 새끼가 마구 쏴대는 전파에 비하면 짜르봄바 앞에 딱총이었다. 그래도 괴물 귀에도 들린다는 점에서 기특하달까.
“시발롬아! 알아듣게 말해! 입을 찢어 놓기 전에!”
입이 있을까 싶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시비 트는 것이 주목적이니 뭐든 쌍욕이면 되는 거다.
기묘한 파장이 다시 흘렀다. 촉수가 이쪽을 향해 전진했다. 피할 능력이 없다.
팟!
-제가 보기엔요, 김 준위도 강 소령님만큼 미쳤어요.
어느새 나타난 임성준이 윤조와 확성기를 붙잡고 있었다. 달려들던 촉수를 중심으로 9시 방향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당황한 촉수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이쪽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었다.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촉수를 피해 이번에는 2시 방향으로 연거푸 이동했다. 당황한 촉수가 다시 주춤하더니 윤조를 찾고 있었다.
-오래 버티진 못합니다.
임성준은 이미 지친 상태였다. 각국 텔레포터 전체가 보급으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그나마 임성준이 S급이라 버티는 거였다.
“소령님이 회복할 시간만 벌면 됩니다. 힘내십시오. 야! 이 개새끼야! 여기라니까!”
다시 외치자 촉수가 움찔했다.
-너어느은? 너어어어어…… 너너너어는?
-아파아파아파아아파아파아아파아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 너어
이상한 의식이 들어왔다. 어린애 같은 의식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라 다른 엄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윤조의 시선은 G형 게이트 중심부를 향했다.
“나도 너 싫거든! 서로 싫은데 왜 남의 집구석에 쳐들어와서 남의 에스퍼를 건드리고 있는데! 이 좆같은 새끼야!”
-불렀어불렀어불렀어불렀어불렀어…… 불렀어…….
충격적이게도 대화가 된다. 윤조도 놀라고 윤조의 의식에 연결된 장세인도, 장세인을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모두가 술렁였다.
“부르긴 누가! 아무도 안 불렀어!”
양심 없는 거짓말이긴 했다. 하지만 인류 존폐 앞에서 양심 챙겨 가면서 싸울 순 없지 않나. 저 새끼가 재채기만 해도 이쪽은 대륙 멸망이다.
-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불렀어불렀어불렀어.
“어디서 거짓말하고 있어! 안 불렀으니까 지구에서 나가!”
-불렀는데불렀는데불렀는데불렀는데…….
더 유치한 반박을 하려던 윤조는 G형의 반응에 잠시 멍해졌다. 까마득한 크기를 자랑하는 괴물이 충격적이게도…… 시무룩해 했다.
-지금 이거 G형…… 맞죠? 제 착각 아니죠?
-저게…… 감정이 있었어?
장세인과 심 박사도 경악했다.
끔찍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다리 두 개 움직임이 느려졌다. 밖으로 뻗지 않고 주춤거리면서 게이트 중심부로 물러났다.
-누가 뭐라고 불렀는지 물어봐.
정신을 빨리 차린 심 박사가 말했다.
“왜 왔는데?”
-불렀어불렀어불렀어불렀어…….
“그러니까 누가?”
그때 촉수는 빙글빙글 돌더니 지상 어느 지점을 콕 찍었다. 거긴 수혁이 추락한 곳이었다.
“그…… 그 사람은 너 안 불렀어!”
-함께함께함께함께함께함께…… 같이…… 함께.
아래를 가리킨 촉수의 끝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그 빛깔은 꼭 오팔 같기도, 진주 같기도 했다.
기묘한 이미지가 윤조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검고 차가운 공간, 구슬 같은 별, 11차원을 넘나드는 세상. 영원을 살아가는 순수한 의식. 그건 지구의 기억이 아니었다. 지구보다 넓고 태양보다 오래된 기억이었다.
그제야 윤조는 깨달았다. 저 G형이 왜 지구에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