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수혁이 산더미 같은 음식을 거의 혼자서 다 해치울 때였다.
거대한 프로펠러 수송기 한 대가 굉음과 함께 고공을 선회했다. 직후 알록달록한 낙하산 무리가 융단처럼 펼쳐졌다. 낙하산 하나마다 초대형 텅스텐 빔이 달려 있었다.
쿵. 쿠쿠쿵. 쿵.
달린 화물에 비해 낙하산이 턱없이 작았다. 활짝 펴졌으나 속도를 약간 늦추는 정도였다. 덕분에 쏟아진 텅스텐 빔들은 사막에 다트처럼 내리꽂혔다.
뒤이어 다른 수송기가 선회를 시작하더니 이번에도 텅스텐 빔을 쏟아냈다. 그렇게 도합 12대가 수백 기의 텅스텐 막대를 쏟아내고 사라졌다. 이후 좀 더 작은 수송기가 선회를 시작하더니 붉은 신호를 깜빡이며 공군 기지로 향했다.
“핵미사일 도착했답니다. 빈 미사일에 조립하여 원하는 시점에 텔레포트 한답니다. 담당 텔레포트는…… 임성준 중위입니다.”
막 남은 와플을 입에 쓸어 담던 수혁이 한쪽 눈썹을 슬쩍 올렸다.
“소령님과의 작전 경험을 높게 평가했답니다. 더불어 S급 실력도요.”
“잘도 그러겠네. 고작 폭탄 하나 날리는 게 뭐 대단하다고.”
텁텁한 입을 시원한 커피로 씻어 낸 수혁은 주변에 있는 미군 소속 취사병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거기 남은 S급이 그거 하나뿐인데 그걸 굳이 여기까지 보냈네. 텔레파시 비상망인지 뭔지도 장세인이 하고 있잖아. 역시 공짜로는 안 되겠는데, 이거.”
“국방 서비스 비용 계산할까요?”
“어, 비싸게 받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까부터 이동형 기지국을 자처하던 텔레패스가 사색이 되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수혁은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집힌 채로 허리에서 덜렁거리던 전투복 상의를 도로 입었다.
“헬멧은요?”
“잃어버렸어.”
수혁이 전투복 수축 버튼을 누르면서 대답했다.
“지원 요청하겠습니다. 규격에 안 맞아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윤조가 텔레패스를 보는데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헬멧 쓰면 네 위치 파악이 힘들어져. 통신도 안 되는데 괜히 귀찮기만 해.”
“그래도…… 후, 알겠습니다.”
이미 인근 방사능 수치가 일반인 기준 치명적인 수준에 이르렀는데도 터프하기 짝이 없는 에스퍼는 맨피부를 드러낸 채로 바람을 맞았다.
크르르릉.
우레가 터졌다.
확장을 거듭하던 G형이 드디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고름을 잔뜩 머금은 화농 같은 방사능 구름이 아래로 쑥 내려왔다. 주변이 평탄한 사막 지형이라 장애물이 없기에 휘몰아치는 바람이 자연스럽게 초대형 토네이도로 발달 중이었다.
‘자연스럽게……라.’
윤조는 제 상념에 쓴웃음을 지었다.
다중 게이트가 발달하는 중에 토네이도가 생성되지 못한 건, 수혁이 안에서 갖은 폭풍을 일으켜 바람을 흩뜨린 탓이었다. 더불어 작은 게이트는 인접한 다른 게이트에 잡아먹히면서 저들끼리 발달 경쟁을 했기에 토네이도가 지상까지 내려오기 전에 저절로 소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늘 중간에서 시작하여 지평선까지 닿은 G형 때문에 멋대로 설치는 돌개바람이 사라졌다. 공기가 한 방향으로만 몰아치기 시작했다. 허연 모래를 품은 거대한 바람기둥은 토네이도라고 칭할 것이 못 되었다. 숫제 지상 허리케인이었다.
빈 식기를 실은 트럭이 날개를 다 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취사병과 텔레패스는 수혁이 잡았다. 그들을 모래 폭풍의 범위에서 훨씬 후방으로 날려 보냈다.
텅스텐 빔 꽁무니에 달린 낙하산들이 깃발처럼 휘날렸다. 고개를 양방향으로 뚜둑뚜둑 꺾은 에스퍼가 그쪽을 향해 팔을 한번 그었다. 보이지 않는 진공의 칼날이 낙하산 선을 모조리 끊었다. 흰 줄과 빨간 줄이 그어진 낙하산이 빙글빙글 돌며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주변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상큼한 동그라미가 돌풍에 휘말린 코스모스 무리 같았다.
“이제 시작할까.”
“네.”
간결한 대답과 함께 윤조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수혁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의 왼발등을 디디자마자 미친 가속도로 삽시간에 게이트 인근으로 날아갔다. 폭주하는 두 사람을 따라 인근에 있던 퇴역 전투기 수십 대가 날아올랐다.
G형이 열리기 전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
윤조는 큰 원을 그리며 주변부 정찰을 수혁에게 요청했다. 두 사람의 몸이 G형을 중심으로 크게 한 바퀴 도는 동안 윤조가 시선을 던질 때마다 헬멧 스크린에 타격점이 표식이 주르르 떴다. 그것은 고스란히 수혁에게 전달되었다.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비행하는 두 사람을 퇴역 전투기 떼가 스크루 궤적을 그리면서 뒤따랐다. 수혁이 대각선 후방으로 빠지면서 자유로운 오른팔을 휘둘렀다. 꺼진 엔진에 조종사를 태우지 않은 빈 전투기들이 가속을 시작하더니 윤조가 지시한 타격점을 향해 날아들었다.
귀를 찢은 폭음이 흥분한 퍼커션의 팀파니 폭주처럼 이어졌다.
연이은 폭발을 피해 고도를 낮추었던 수혁과 윤조가 다시 상승하였다. 이번엔 초대형 수송기 편대가 날아올랐다. 전투기 자폭으로 인한 불꽃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료를 가득 실은 대형 항공기 다섯 대가 G형 게이트 가장자리에서 폭발했다.
쾅! 쾅! 콰콰쾅!
열 폭풍이 훅 끼쳤다. 대기 중력파로 인해서 수혁과 윤조는 땅에 처박히다시피 착지했다. 푹 파인 땅에서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승천하는 용처럼 위쪽으로 빨려 올라갔다.
두 차례의 공격으로 인해 G형 게이트 인근 토네이도의 상륙은 저지되었다. 뒤이어 쉬지 않고 계속해서 퇴역기를 날려 보냈다. 스텔스 도장을 한 퇴역기 무리는 꼭 화난 까마귀 떼 같았다. 뾰족한 부리를 앞세운 까마귀 떼는 서식 영역에 들어온 거대한 침입자에게 돌진했다. 연쇄 폭발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마이크로와 소형이 점점 소멸했다. 공격을 받은 중형과 대형의 형태가 잠시 흐트러지는 사이 사나운 G형이 그것들을 덥석덥석 잡아먹었다. 그 와중에도 기어이 살아남은 중소형 서너 개는 G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덕분에 형태를 보존했다. 살아남은 중소형이 G형의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주변을 서서히 도는 모습이, 마치 항성계 축소 버전 같았다.
아무리 강수혁이 인류 최강 용가리 통뼈라고 해도, G형을 맨몸으로 파괴할 출력은 없다. 딱 한 번 상대한 전적이 있으나, 솔직히 말해 게이트 파괴가 아니라 게이트 축출이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간신히 쫓아냈단 얘기다.
전투기와 수송기를 무수히 처박았으나, G형은 잠시 주춤할 뿐 발달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폭발로 깨진 다른 게이트를 흡수하면서 성장세가 빨라졌다. 조만간 중심부가 열리고 플라이도, 슬라임도 아닌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낼 거다.
쿠쿵. 쿠쿵. 쿠쿵.
맥박이 미세하게 잇단음표였다. 빠른 건 윤조 본인이었고 놓일세라 뒤따르는 건 곁에 선 강수혁이었다. 이윽고 박자가 한 번에 맞물린 심장 박동은 점차 커져서 진동이 흉곽 내부가 아니라 귓바퀴 언저리에서 울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말고 물을 것도 없었다. G형을 바라보며 수혁은 예전 일을 떠올렸다. 그러지 않기도 어려웠다.
다른 외계 지성체와는 급이 현저하게 다른 G형 괴물은 서울 상공을 찢어발긴 거대한 구멍 사이로 전신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겨우 다리 두어 짝이 다였다. 그것만으로도 지상 생물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번 G형은 서울과 달랐다. 단독으로 나타났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 G형은 얼쩡거리던 다른 게이트를 잡아먹고 세력을 무한히 넓혔다. 수혁의 가늠으로는 서울에 발생한 것의 세 배가 넘는 크기였다.
G형 지성체가 한 번에 다 빠져나올까?
“모르겠어. 다리만 봤거든. 몸통이 어떻게 생긴 건지는 모르겠어. 몸통이라고 부를 것이 있다면 말이야.”
상념을 전달받은 수혁이 육성으로 답했다.
“그때와 같은 다리라면 잘라낼 자신이 있어. 나도 실력이 늘었으니. 아마 두 개쯤은 가능하겠지.”
G형의 표면을 일부 베어 틈을 만들고 그사이에 핵탄두를 박을 작정이었다. 그럼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수월하게 다리를 끊어 버릴 수 있다.
“그러자고 핵탄두를 요청했냐? 무서운 놈이네, 이거.”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돌아갑니까?”
윤조가 반문했다.
어차피 여기 사막 일대는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더 될 거다. 막대한 제염 비용을 투입하지 않고 자연적인 반감기만 따지면 앞으로 200년 동안은 방호복을 입고도 발을 들이지 못한다. 그런 땅에 핵탄두를 10기쯤 처박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G형이 처맞고도 지구에서 안 나가면 어떻게 하는데? 핵탄두는 뭐랄까 인류 최후의 보루거든? 그게 무용지물이 되면 다들 미쳐 돌아갈 텐데. 괜찮겠어?”
“그때 되면 뭐 미치는 게 문제겠습니까. 미치기 전에 전부 다 죽을 건데요.”
“그건 그렇지.”
수혁이 윤조의 손을 잡았다. 전투 중에 왜 이러냐고 묻는 대신에 윤조는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닙니다.”
“든든하네.”
수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홍채 가장자리를 따라 진주색 오로라가 뿜어져 나왔다. 오로라는 점점 세력을 확장하더니 이내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에스퍼 특유의 검은 전투복 전체를 감쌌다.
“저놈은 너무 위험해. 너는 여기서 지켜봐.”
같이 가겠다는 고집은 피우지 않았다. G형을 상대로 함께 있어 봐야 수혁에게 짐만 될 뿐이다. 대신에 지상에서 동조를 통해 후방 지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전과 달리 수혁만 둥실 떠올랐다. 스르륵 풀리는 수혁의 손을 윤조가 단단히 잡았다. 몸을 돌린 수혁이 고개를 숙여 윤조의 헬멧을 붙잡고 입을 쪽 맞췄다.
“자기, 오늘 저녁 시간 있어?”
“퇴근을 일찍 하면 있고 야근이면 없습니다.”
“조기 퇴근하고 고기 먹자. 미국놈들 밥은 배만 차지 맛은 없어.”
“좋습니다.”
윤조가 웃으면서 날아오르는 수혁을 놓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