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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168화 (245/256)

168화

키이이이이이에에에에――!

관통당한 중형 게이트에서 요란한 비명이 터졌다. 빛의 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형 게이트를 찢어발기며 움직인 창은 인근을 휘젓다가 벼락 무늬를 남기며 남극을 향해 휙 이어졌다.

키이이이이이――!

펑! 펑! 퍼퍼펑!

빛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대규모 공중 폭발이 일어났다. 마이크로 게이트는 휘말려서 증발하고 막 성숙을 마친 중형은 물 폭탄처럼 연이어 터졌다.

수혁이 있는 위치를 시작으로 찢어발겨진 게이트 필드 사이로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지상이 보였다. 즉시 하강을 시작했다. 막대한 출력의 잔재가 긴 꼬리가 되어 뒤따랐다.

게이트 지역을 통과하자마자 통신부터 확인했다.

‘김윤조!’

대답이 없었다. 위를 보니 최대 출력으로 내려친 일격이 무색하게 게이트는 징그럽게도 빠르게 하늘을 잠식하고 있었다. 위성과의 연결은 여전히 불통이었다. 윤조의 깡통도 응답이 없었다.

당장 항공우주국으로 가려고 했다. 막상 그쪽을 바라보던 수혁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직 거기 있을까?

제가 생각하기에 아니었다. 최저씨와 아줌마는 몰라도 김윤조는 가만히 있는 성미가 못되었다. 겉으로는 얌전히 보여도 누구보다 다혈질이다. 지상 어딘가에서 뽈뽈 대고 있을 김윤조가 게이트나 외계 괴물에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아무래도 여기 있다는 티를 크게 내야 윤조가 제 위치를 발견할 거고.

‘대륙 곳곳에서 보이도록 요란하게 게이트를 조지면 되겠네.’

수혁은 다시 출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징그러운 게이트를 향해 폭사했다.

펑펑!

형광 불꽃놀이가 온 하늘을 수놓았다.

* * *

가이드 둘을 태우고 초고속으로 비행 중인 기체 전방 우측에 갑자기 거대한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직후 게이트가 줄줄이 터지더니 최신식 제트 엔진이 뚫지 못하는 수준의 대기 폭풍이 몰아쳤다.

삐! 삐! 삐!

기체 계기판 전체에서 붉은 경고 마크가 떴다. 폭풍에 휘말려 평형을 잃고 빙글빙글 돌던 기체는 점점 고도를 상실하고 있었다.

-탈출해야 해!

로아무아가 외쳤다.

-지금 긴급 사출은 안 됩니다!

긴급 탈출 버튼을 누르는 것은 금물이었다. 이대로 나가 봐야 낙하산이 제대로 펴질 가능성도 희박하고 자칫하다가 추락하는 기체에 부딪혀 죽는다.

-콘트롤을 이쪽으로 돌리겠습니다!

윤조는 전투복을 통해 기체를 즉시 해킹했다. 첫 폭풍에 의해 빠르게 위험 범위에서 떠밀려 나면서 평형을 잃었어도 기체 유압 계통 이상은 없었다. 윙 플랩도 멀쩡했다. 운이 매우 매우 좋았다.

콘트롤을 장악하자마자 윤조는 순전히 제 시각과 공간 감각에 의지하여 매뉴얼 조종을 시도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바람의 방향을 기체 움직임과 떨림으로만 감지하면서 기체 엔진 4구 각각의 출력과 출사 방향을 미세 조종하여 강력한 바람이 부는 구역을 벗어나자마자 윙 플랩을 이용해 기체 평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앞에 앉은 로아무아는 양옆으로 거칠게 흔들렸다.

다급한 노력에 힘입어 빙글빙글 돌던 하늘과 땅이 제 위치로 돌아갔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번엔 땅이 성난 기세로 둘을 향해 돌진했다.

-우리 추락하는데에에에에?

로아무아가 반쯤 비명을 질렀다.

-알고 있습니다. 고도를 올릴 겁니다.

-빠, 빨리 좀 할래? 히으으윽!

땅이 그야말로 코앞까지 쇄도하자, 앞 좌석에 앉은 가이드의 목과 어깨가 바싹 굳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윤조는 모든 힘을 다해 조종간을 끌어당겼다. 운용한계를 넘어선 날개 플랩이 요란하게 펄럭였다.

삐―삐삐―삐삐삐삐―――!

경고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기어이 연속음으로 바뀌었다. 이젠 정말로 끝이다 싶은 순간이었다. 앞으로 쏠리던 고개가 갑자기 뒤로 휙 넘어갔다. 조종석 헤드레스트에 뒤통수가 퉁퉁 튀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던 땅은 사라지고 대신 불길한 색으로 가득 찬 하늘이 훅 가까워졌다.

추락하던 기체는 클라이맥스처럼 극적으로 기수를 들어 올리기에 성공했다. 가파른 포물선을 그리면서 꼬리 날개가 지표면에 흙먼지를 일으켰다. 게이트 전쟁에 최전방에 선 항공우주국 보유 기체라 튼튼하게 만든 최신예 기종다운 퍼포먼스였다.

-후우.

천하의 마우리 전사 로아무아도 이번만큼은 정말로 무서웠는지 안정 고도를 찾자마자 긴 한숨을 뿜으며 식은땀을 닦았다.

심장이 폭발할 듯 뛰는 건 윤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머리는 냉정하게 돌아갔다. 지표 추락을 간신히 면했는데 다시 게이트에 잡아먹힐 수 없다. 게이트에 너무 가까워지기 전에 기수를 다시 꺾어 적정 고도를 유지했다. 제트기 순항 모드에서 허락하는 가장 낮은 고도였다.

-좌익 플랩이 고장 났습니다. 방금 무리한 기동으로 연료 소실도 큽니다.

윤조는 냉정하게 보고했다.

튼튼하긴 해도 어쨌거나 인간이 만든 철제 날틀이다. 날틀은 원래 섬세하기 이를 데 짝이 없어서 조금만 무리해도 고장 나기 일쑤였고, 최신예 기종도 그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대기 폭풍에 휘말리고도 멀쩡히 나는 측면에서 기특하달까.

-게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왔네요. 목표 지점 보다 훨씬 북쪽입니다. 남은 연료로는 태평양 연안까지 못갑니다.

-어쨌거나 살았잖아.

로아무아는 제 부족이 모시는 신을 향해 양손을 펼치며 감사를 표했다. 그래 봤자 전방 상향엔 온통 게이트뿐이다. 마우이 신화 속 신이 게이트를 타고 내려왔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착륙하려면 지금 착륙해야 합니다.

-연료가 허락하는 곳까지만이라도 가는 건 어때? 어차피 추락할 기체를 살린 거니까.

가다가 연료 떨어지면 공중에서 기체 버리고 낙하산으로 내리잔 소리였다. 사출용 가스를 확인했다. 주조종석, 부조종석 둘 다 멀쩡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대령님은 괜찮습니까?

-공수 작전은 내가 제일 자신 있는 분야야.

로아무아가 엄지를 척 들었다.

-그런데 아까 그 빛은…… 역시 강인가?

-그럴 겁니다.

그럴 만한 위인이 지구상에 그 외에 또 있을까. 어마어마한 출력으로 하늘을 반으로 쪼개 놨다.

-언제 봐도 대단해.

-이쪽에서 통신을 시도해 봐야…… 위성이 고장 나서 불가능하겠군. 지상 레이더도 잡히지 않고 말이야. 그가 이쪽을 발견할 가능성은 없나?

-희박합니다. 발견했으면 연료 부족 걱정은 안 했을 겁니다.

강수혁이 만약 둘을 발견한다면 즉시 기체에 달라붙어 윈드실드를 박살 내고 윤조를 끄집어내고도 남는다. 아직 기체가 날아가고 있다는 건 강수혁이 이쪽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했더라도 안에 윤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든 텔레패스를 찾아서 제 동조 신호를 증폭 발산하는 쪽이 빠르다. 그렇지 않고서는 강수혁에게 접근할 수도 없다.

그를 증명하듯 후방에서 강력한 폭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진동과 전파에 계기판이 흔들리자마자, 로아무아와 윤조는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시야에 한계가 있으나 연이어 번쩍이는 하얀 벼락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네 남자친구가 화가 많이 났나 본데?

-아마도요. 훈련 길어지는 걸 싫어하거든요. 식사 시간도 한참 전에 지났고요.

-게이트 놈들, 하필 굶주린 벌집을 건드렸네.

-그러게요.

농담에 답하면서도 윤조는 내심 우려스러웠다. 저렇게 날뛰다가 혹여 체력이 고갈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원래에도 막대한 출력을 자랑하는 트리플 S급 에스퍼긴 했다. 하지만 단번에 초대형 M형을 박살 내는 건 윤조가 동조를 통해 아주 세심하게 보조해야 가능했다. 현재 온통 게이트 천지이므로 마구잡이로 날뛰어도 낭비되는 에너지 없이 전부 게이트 파괴에 사용되고 있으나, 게이트가 계속해서 생기는 상황이라 단순한 소모로 이어지기 쉽다. 중형은 이쪽이 파괴하고, 소형과 마이크로는 각국 에스퍼 부대와 지상군에게 맡겨야 하는데.

‘지상에 외계 지성체가 상륙하기 전에 최대한 사전 제거하려는 건가?’

인류에 대한 특별한 자애가 발동한 건 아닐 거다. 그보다 강수혁에게 중요한 건 한 손에 꼽을 만큼 소수의 안위다. 최정 대령과 심 박사는 항공우주국 지하 방공호에 있다. 장선욱과 특작부는 지구 반대편에 있다. 거기까지 게이트가 거기까지 뻗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방공호에서 나온 걸 알았네.’

일부러 저러는 것이 분명했다. 그 덕에 죽을 뻔한 건 차치하고 일단 강수혁이 멀쩡하게 날뛰고 있는 걸 알았으니 어쨌거나 방공호를 나온 소득이 있었다.

사상 최강의 에스퍼가 벌이는 미친 원맨쇼 덕분에 게이트 생성 속도가 약간 느려졌다. 갑작스럽게 지구 운명을 건 전면전에 돌입한 각국 군대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뒤에서 불어닥치는 바람 덕분에 예상한 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날아올 수 있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발견하여 무동력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랜딩기어가 모조리 부러져 동체 착륙을 했지만, 연료가 없어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착륙 지점 인근 사막에 마침 공군 기지가 있었다. 대공 방어용은 아니었고 퇴역기를 보관하는, 비행기의 무덤이었다. 거기서 이쪽의 비상착륙을 포착하고 헬기를 띄웠다. 어쨌거나 사막 한가운데서 두 발로 뛰는 면했기에 다행이었다.

기지 인근에 이르러 헬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출 때였다. 누군가의 텔레파시가 윤조에게 말을 걸었다.

‘김 준위, 나예요.’

낯선 텔레패스라기에는 뇌 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장 대위님?’

텔레파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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