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세 사람은 바로 심 박사의 개인실로 향했다. 윤조가 도청과 카메라 보안 사항을 챙기는 사이 수혁은 귓속이 가려운지 손가락으로 계속 후볐다.
“간지러워 죽겠어. 귀 뜯을까?”
어깨를 움찔대면서 내내 인상을 쓰는 걸 보니, 저러다가 기어이 달팽이관까지 뽑아낼 것 같았다. 보다 못한 윤조가 심 박사가 애용하는 쪽잠용 소파를 가리켰다.
“누우십시오. 귀 파 드리겠습니다.”
“이거 써라.”
심 박사가 펜라이트와 큐렛을 주었다. 윤조가 소파 끝에 앉자 수혁이 냉큼 윤조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귀에서 엉겨 붙은 피딱지를 파내는 동안 심 박사는 테스트 결과를 빠르게 정리해 훑었다.
“역시 너희 둘 사이에 동조 혼선은 없었네. 인큐베이터나 연구실 내에서 작동된 스피커도 없어.”
당연했다. 아무리 신뢰하는 심 박사 작품이긴 해도 신개념 프로그램을 트리플 S급과 연결된 채 테스트할 수 없다. 테스트 전에 페어링을 완벽하게 끊었다.
“시설 밖에서 들렸어. 처음에는 낮게 들리더니 마지막엔 너무 크게…… 거기! 거기 간지러워! 으…… 시원하다.”
귀에 꽂힌 큐렛 끝이 빙글빙글 돌아가자 수혁은 나른한 한숨을 쉬었다.
“피딱지 말고도 귀지가 많네요. 더럽습니다.”
파낸 걸 티슈에 닦은 윤조가 돌아누울 걸 지시했다. 몸을 돌린 수혁이 윤조의 아랫배에 얼굴을 댔다.
“계속해서 확인 중인데 아직 너 말고 신호를 감지한 에스퍼는 아직 없어. 장세인도 못 들었다고 하고.”
“S급 텔레패스인 장세인 대위님이 못 들었다면, 그 외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봅니다.”
윤조의 말에 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래. 의문은 쟤가 트리플 S급이라서 들은 건지, 아니면 외계 혼혈이라서 들은 거냐는 거지.”
“외계 혼혈이라서 트리플 S급이니까 결국 같은 얘기 아니야?”
귀 파는 사람의 배에 얼굴을 묻은 변태가 웅얼댔다.
“엄연히 다르지.”
“어떻게 다른데?”
“…….”
막상 이유를 묻자 심 박사도 그럴싸한 뭔가를 대지 못했다.
“일단 신호는 정상적으로 발신했으니까요.”
양 귀를 야무지게 판 윤조가 수혁의 귓바퀴를 잡고 남은 걸 확인했다.
“다 됐습니다. 추가 테스트 시에 소령님은 사격용 이어플러그에 헬멧도 착용하십시오.”
“알았어. 하지만 피 나면 또 파 줄 거지?”
다 끝났다고 어깨를 툭툭 쳤으나, 수혁은 일어날 생각 없이 도리어 팔을 윤조 허리에 감았다.
“네. 얼마든지요. 그러니까 일어나십시오.”
“조금 더 있어도 되잖아.”
산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가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애정결핍에 뻔뻔함이 합쳐진 결과였다. 다른 때라면 윤조도 받아 주었을 거다.
“네가 애냐? 망할 새끼야. 할 일이 천지인데 어디서 어쭙잖은 수작질이야. 산적 같은 게 토 나오게.”
“왜 욕을 하고 그러…… 일어나십시오.”
테스트로 고막이 터진 사람을 상대로 고운 말은 못 할망정, 굳이 거친 욕설을 해야 하냐고 항변하려던 윤조는 제 창조주의 반쯤 돌아간 눈을 보고는 즉시 어리광쟁이를 다그쳤다. 미적거리는 상대를 휙 밀어서 소파 밑으로 굴러 떨어뜨렸다. 그제야 수혁은 불만이 그득한 채로 일어섰다.
“왜? 뭐? 이제 여덟 시간 쉰다며?”
“쉬긴 뭘 쉬어? 우린 바빠!”
성질을 버럭 낸 심 박사가 패드를 툭툭 치더니 쑥 내밀었다.
“여기, 여기, 이 지점과 이 지점에서도 들리는지 확인해.”
심 박사가 특정한 좌표는 대부분 위성 궤도 상에 있었다.
“꼭 지금 해야 해?”
“그래, 지금 해야 해.”
왜냐고 물으려던 수혁은 심 박사의 광기 어린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하기 싫으면 관둬. 이따가 온 세상에 네가 외계인 혼혈이라는 걸 밝히고 당당하게 테스트하면 되지.”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수혁은 구시렁대면서 헬멧을 집어 들었다. 윤조도 심 박사 심기를 고려하여 얌전히 지시대로 따랐다.
“저도 인큐베이터에 다시 들어갑니까?”
“아니, 여기서 인큐와 무선 연결해. 무선 접속 코드 넘길게.”
넘겨받은 접속 코드를 이용해서 바로 인큐와 연동했다. 심 박사가 넘긴 좌표를 확인한 윤조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좌표 선정 기준을 모르겠습니다.”
“없어. 기준.”
“예?”
“귀 파면서 시시덕대는 꼴이 보기 싫어서 대충 찍어서 내보낸 것뿐이야.”
“…….”
이쪽의 묵묵한 시선을 심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 넘겼다. 하여간 성질 더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이, 방금 누가 소리쳤어?
벌써 위성 궤도까지 올라간 수혁이 실전 시 사용하는 통신으로 말을 걸었다.
“아니요. 아직입니다.”
-그런데 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지?
“예?”
-방향이…… 저쪽에서 들리는데?
전투복과 연동한 AI가 수혁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좌표를 보내왔다. 뉴질랜드에서 한참 동부에 있는 남태평양 해상이었다.
-이쪽에서도 들리는데. 여기도, 저기도.
남극해 인근 여러 지역 좌표가 주르륵 떴다. 어떤 것은 남미 해안에 가까웠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끼리 선으로 연결하면 남반구 반을 아우를 수 있었다.
“저는 아닙니다.”
“프로그램 에러인가? 아니면 위성 장비 고장? 그쪽에는 위성이 지금 없는데.”
“칠레에 있는 전파망원경 때문에 생긴 신호 교란이 아닐까요?”
“아니. 거긴 이쪽 테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시설 전체 전원을 아예 껐어. 어디서 날아오는 신호지?”
심 박사가 패드를 두드리더니 금방 포기하고 연구실로 달려갔다. 윤조도 뒤를 따랐다.
-심, 이상 신호가 잡히고 있어.
연구실 앞에서 노리스와 로아무아를 만났다. 다른 직원들도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쪽 기기에 이상 신호가 계속 잡혀. 테스트는 별일 없이 끝났다고 했잖아.
재클린 국장까지 뛰어왔다. 그는 내내 우주 항해 프로젝트와 우주선 개조에 매달려 있어서 이쪽으로는 발걸음을 잘 하지 않았다.
제자리를 찾아간 직원이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이상 신호가 계속 잡힙니다.
-남극해, 남태평양, 남대서양에서도 발생. 점점 북상합니다.
-각국에서 테스트 일환인지 문의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대외 연락을 맡은 직원이 헤드셋에 달린 마이크를 주먹으로 잡으면서 물었다. 재클린 국장의 시선이 금방 심 박사에게로 향했다.
“아까 테스트 이후로 추가적인 신호 발산은 없었어요.”
-뭐가 되었든 이쪽은 아니라고 해.
재클린 국장이 지시하자마자 윤조는 수혁이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김윤조.
“네, 소령님.”
-각국에 알려. 멸망하기 싫은 국가는 전면전 준비해서 당장 남극해로 튀어오라고.
“예? 전면전이요? 갑자기요?”
전면전이라는 단어가 윤조의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연구실에 오가던 모든 말소리가 뚝 끊겼다. 신호를 감지한 장치들이 내뱉는 각종 기계음, 전자음만 가득했다.
심 박사가 패드를 조작하여 윤조와 수혁 간의 대화를 스피커로 돌렸다.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전면전이야?”
-소름 돋는 느낌이 딱 그 새끼야.
“그 새끼가 누구입니까?”
말을 끝내기 무섭게 갑자기 고주파가 울려 퍼졌다.
키이이이―피이이잉―.
“전파 공명 현상 같습니다…… 윽!”
고막을 찢는 고주파가 휩쓸고 지나자마자 연구실 내 모든 기기가 일제히 아우성쳤다. 개인 단말을 확인한 사람마다 얼굴에 절망감이 스쳤다.
-이런!
노리스가 헛바람을 뱉었다. 그를 중심으로 싸한 공포가 퍼졌다.
-큰일이야. 지금 동시다발적으로…….
노령의 가이드가 말을 미처 끝내기 전에, 연구실 전체 스크린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발광하는 스크린에는 온통 [경고]라는 문구뿐이었다.
-적색경보! 본토가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적색경보! 본토가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직원은 즉시 방공호로 대피하십시오! 적색경보! 본토가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적색경보!
항공우주국 관리용 AI가 대피 방송을 시작했다.
-빌어먹을! 무슨 일이야!
재클린 국장이 고함쳤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누구라도 상황을 설명하라고 윽박질렀다. 대답 대신에 강수혁의 목소리가 온 연구실에 울려 퍼졌다.
-김윤조, 아줌마 데리고 방공호로 가.
“소령님? 지금 무슨 상황입니까?”
-지체하지 말고 얼른 가. 토 달지 말고.
장난기가 하나도 없는 명령에 윤조는 즉시 심 박사를 두 팔로 번쩍 안아 들었다.
“어어?”
놀란 심 박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긴급 상황이라 패스워드 없이 움직이지 않도록 잠긴 연구실 유리문을 걷어찼다. 안전유리가 그물 모양으로 쩍 갈라졌다. 그걸 어깨로 쳐서 뚫었다.
팍삭!
유리문이 산산이 흩어졌다. 윤조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정신을 번쩍 차린 재클린 국장이 뒤이어 소리쳤다.
-모두 저 가이드를 따라서 대피한다! 전체 뛰어!
연구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윤조를 따라 뛰었다. 안긴 심 박사는 끝까지 챙긴 패드로 우주 항해 쪽 프로젝트팀을 참관 중이던 최정에게 연락했다.
“야! 당장 방공호로 와! 나랑 윤조는 가는 중이야! 뭔지 몰라도 큰일 났어! 수혁이가 피하래! 방공호에서 만나.”
안 그래도 그쪽도 지금 대피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분이 지나기 전에 방공호에서 만났다.
유사시에만 사용하는 방공호에 비상 전력이 들어왔다. 불이 켜지고 외부와의 비상 연락을 위한 단말과 각종 장비가 시동했다. 속속들이 도착한 항공 우주국 상주 직원들이 각자 위치를 잡았다. 곧 메인 스크린에 조정 화면이 떴다.
방공호 내에선 AI와의 통신이 쉽지 않았다. 윤조는 방공호에서 사용하는 회선을 하나 잡은 후 AI와 연결하였다.
“박사님, 최정 대령님, 저 모두 방공호에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말로 설명이 안 되니까 봐.
응답한 수혁이 전투복 카메라 화면을 전송했다. AI가 뇌를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을 본 윤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창백하게 굳은 채로 침도 차마 삼키지 못했다.
“뭔데?”
곁에 있던 심 박사가 굳은 윤조를 밀치고 수혁이 전송하는 화면을 패드로 연결했다.
“시…… 시발?”
“너까지 왜 그래? 자꾸 그러니까 무섭잖아.”
옆에 붙은 최정마저 심 박사 손에 들린 패드 화면을 보고 얼어붙었다.
메인 스크린에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혁이 보낸 화면과는 달랐다. 수혁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고, 방공호 메인 스크린 영상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화면이었다. 둘이 각도가 달라도 비추는 대상은 같았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무지개색. 혹은 이도 저도 아닌 마구 뒤섞인 색. 거대한 메인 스크린이 비추는 하늘엔 온통 소용돌이 천지였다. 롤리팝 같기도 하고, 구식 대형 단추 같기도 하고, 혹은 솜씨 나쁜 직공이 짠 둥근 패치워크 깔개 같기도 했다.
-총 25…… 아니 27개…… 아.
화면 아래 붙은 작은 표식을 확인한 재클린 국장이 탄식했다.
남극해 인근에서부터 남미 대륙의 남태평양 연안을 지나 북미까지, 거대한 게이트 융단이 깔리는 중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방공호에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