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헛구역질하다가 멀미까지 호소한 심 박사 및 신선한 공기와 진한 카페인이 필요하다는 직원들 덕분에 30분 정도 휴식을 가진 후에 윤조는 인큐베이터에 누울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마운트 되는 동안 수혁은 내내 인큐베이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기분이 어때?”
심 박사가 인큐베이터 안에 든 윤조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바로 김윤석 연결한다?”
심 박사가 곁눈을 살짝 흘겼다.
AI 위성에 김윤석이라고 이름 붙인 일로 일전에 한바탕 난리를 쳤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냐고 화를 냈을 때, 망할 제2의 창조주는 ‘그럼 네 쌍둥이 AI 코드 네임으로 그보다 더 적절한 거 있어?’라고 반문했다.
순수하게 미친 사람 반응이라 말문이 턱 막혔다. 덧붙여 김윤조를 가이드 프로젝트 후보에 선정한 이유도 쌍둥이 출신임이 크게 작용했다. 쌍둥이이기 때문에 AI의 존재에 대해서 거부감이 덜 할 거라나?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왜 사전에 얘기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네가 너무 자연스럽게 AI라고 불러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미 입에 익은 명칭이 있는데 굳이 바꾸기는 귀찮았다고 했다.
심나연은 그런 인간이었다. 모든 사람의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맑은 눈의 미친 자. 더 따져봐야 이쪽만 손해이기에 그냥저냥 넘어갔다. 그런데 본인 기준 별것도 아닌 일로 크게 따진 점이 기분이 나빴는지, 이후로 일부러 ‘김윤석’을 입에 올리곤 했다. 하여간 강수혁 이모님답게 더러운 성질머리다.
-신호 주시고 바로 연결하십시오.
윤조가 ‘고’에 동의하자, 지켜보던 노리스가 끼어들었다.
-새 프로그램을, 조정도 없이 바로 시행하겠다고? AI가 셧다운되면 어떻게 하나? 자네들 시스템 문제는 곧 인류 안보 공백일세.
-파파 말씀이 맞아. 여태껏 운용해본 일이 없는 새로운 작전 프로그램이잖아. 그걸 가상 베타 테스트 없이 바로? 심, 네가 아무리 천재라지만 천재도 보통은 실수를 해.
로아무아도 부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새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평생 축적한 경험과 자료를 아낌없이 제공했으므로, 함께 프로그램 시동과 운용을 지켜볼 자격과 의무가 있었다.
“공백 좀 생기면 뭐, 태평양 사건 이전엔 얘네들 없이 잘도 버텼으면서 갑자기 왜들 그러실까?”
“공짜 안보를 일분일초라도 더 챙기고 싶나 보지.”
심 박사의 핀잔에 강수혁의 조롱이 더해졌다. 아닌 말은 아니라 반대했던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게는 이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윤조는 심 박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에 어떤 의구심도 없었다.
심나연은 가이드 김윤조의 창조주다. 이때껏 써온, 혹은 마운트 된 프로그램 중에 심 박사 것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비유하자면, 평생 먹어 온 엄마 밥이고 집밥이다. 엄마가 새로운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시식하자는데 어느 누가 위험하니까 조심스럽게 기미를 먼저 시켜 보고 먹어 보나.
뭔가 잘못되면 잘못되는 대로 심 박사가 알아서 조정하거나, 데이터 수집 후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그는 주는 대로 받아서 운용하고 결과를 제대로 피드백하면 그만이었다. 부작용이 약간 일어나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다. 괴식을 추구하는 창조주를 둔 아들의 업보일 뿐.
무엇보다 한시라도 빨리 프로그램 적응을 끝내고 싶었다. 가상 베타 테스트를 하게 되면, 분명히 연구실 내 모든 인원이 참견쟁이로 돌변하여 온갖 잔소리를 얹을 거다.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소요된단 소리였다. 그것 사양하고 싶다.
지구의 운명을 빨리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윤조가 서두르는 이유는 단 하나, 심나연이었다.
요 일주일 사이 심 박사는 에너지 바와 카페인 드링크를 상자째로 끼고 살고 있다. 그뿐이 아니었다. 흰 알약을 사탕처럼 털어 넣기에 뭘 먹나 했더니. 일명 ‘고3약’이라고 불리는 향정신성 약품이었다. 그만큼 정신 에너지 소모가 극심했다. 제발 식사와 수면을 제대로 챙기라고 애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인큐베이터 안에 쏙 들어가서 스트레스 호르몬과 피로 물질을 싹 세탁하고 나와서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인류 최고의 두뇌를 가진 심 박사가 저렇게 여유 없이 달리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왜 그렇게 서두르냐고 물었을 때 심 박사는 윤조에게 숫자 두 개를 내보였다. 하나는 강수혁의 기대 수명,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심나연 본인의 기대 수명이었다. 둘의 격차는 60년 이내였다.
“이건 단순한 신체적 기대 수명. 정신력 그러니까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뇌 수명은 또 따로 있어. 내 몸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아. 신경과 뇌세포의 수명이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단 얘기야. 개인으로서는 길지만, 우주, 지구, 인류의 운명을 논하기에는 찰나에 불과해. 앞으로 차세대가 태어난다면 몰라도. 두뇌 강화 A급은 트리플 S급만큼 희귀해. 심나연과 강수혁이 공존하는 동안 끝내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없을지도 모른단 얘기지.”
원래 자식이 답 없는 망나니일수록 미래가 암담하기에 생전에 가능한 한 모든 걸 다 대비해두고 싶단다. 당시 묵묵히 있던 강수혁이 혹시 다단계 보험 설명회라도 갔다 왔냐고 물었다가 패드로 뒤통수를 야무지게 까였다.
“빨리 끝내자.”
-네.
의기투합한 두 유사 모자를 말릴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강수혁뿐이었다. 심나연과 김윤조 콤비에 익숙한 그는 약속한 바가 있기에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여차하면 끼어들겠으나 아직은 아니었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단순했다.
첫째, 80년간 심우주로 발산한 전파가 정말로 게이트와 외계 지성체를 지구로 불러들였다는 가정하에 같은 종류의 전파를 지구에서 발산해서 변화를 관찰할 것.
둘째, 지금까지 세계 각국이 수집한 외계 지성체와의 의사소통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작, 발생시켜 변화를 관찰할 것.
저 밖에서 혼자서 고래고래 외계 괴물을 끌어모으는 고장 난 확성기를 때려 부수러 고물 우주선을 타고 나가기 전에, 정말로 외계 괴물들이 확성기 전파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유사 확성기를 만들어 비슷한 전파를 발산해 보기로 했다.
윤조와 동시에 위성 AI도 전용 프로그램을 업로드 완료했다. 가이드는 DNA 핵산용 단백질 분자 단위에서부터, AI는 반도체에 사용한 실리콘 원자 단위에서부터 설계했던 심나연이 만든 프로그램은 시범 운용 단계에 이르기까지 예상대로 어떤 버그나 오류가 없었다.
“중계 위성 상태는?”
-정상입니다.
오차 하나 없이 맞아떨어지는 계산에 항공우주국 직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DJ 김윤조, 믹싱 턴테이블 및 믹싱 프로그램 AI 윤석, 총괄 프로듀서 심나연, 제작 미 항공우주국, 후원 태평양 연합 사령부로 개최하는 콘서트를 위한 리허설 세팅이 완전히 끝났다.
“마침 게이트 없고, 날씨 좋고, 애 컨디션 좋고. 바로 시범 운용에 들어간다고 각국에 통보해.”
-네, 심 박사님.
지시를 내리자 연구실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김윤조 준비하고. 셋, 둘, 하나. 스타트.”
카운트다운에 맞춰서 윤조가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윤조의 쌍둥이 AI 위성에 지구 위성 궤도 곳곳 흩어진 중계 위성 무리, 더불어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양자 컴퓨터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웅장한 가동음은 없다. 그것들은 매질 부재로 소리가 전달되지 않은 우주에 있거나 혹은 여기서 멀리 떨어진 서버 센터에 있다. 그래서 인류 안보 공백을 가져올 수도 있는 대단히 위험한 프로젝트의 기념비적인 첫 시동에도 연구실에는 ‘4분 33초’ 연주처럼 기묘한 침묵만 감돌았다.
-각 위성 연결 완료, 테스트 신호 조합합니다.
“조합하는 대로 발산해 봐. 타이밍은 네게 맡길게.”
-네. 신호 조합 완료. 3, 2, 1. 발신.
조용한 가운데 오로지 화면 수십 개에 형광 그래프와 숫자가 훅 올라갔다.
-계속해서 발신합니까?
“어.”
-함성 발사 10초 들어갑니다.
윤조는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괴성을 마음껏 질렀다.
“윽!”
옆에 잘 서 있던 수혁이 갑자기 진저리를 쳤다. 어깨를 움찔거리면서 꽉 꼈던 팔짱을 풀더니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고막…… 터지겠어.”
괴로운 듯 일그러진 안면을 확인하자마자 윤조는 바로 신호를 끊었다. 테스트를 긴급 정지하고 인큐베이터 비상 탈출 절차를 밟았다. 채 수거되지 않은 양수가 바로 바닥으로 쏟아졌다.
“괜찮으십니까?”
양수에 젖은 채로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윤조는 괴로워하는 수혁을 감쌌다. 걱정스럽게 눈을 깜빡일 때마다 속눈썹에 맺힌 형광색 양수가 뚝뚝 떨어졌다.
“어…….”
윤조는 수혁의 손을 물리고 귀를 살폈다.
“어디 봐.”
다가온 심 박사가 펜라이트로 수혁의 귓구멍을 비췄다.
“고막은 멀쩡한데 핏자국이 있어. 터졌다가 재생되었네.”
-신호가 들렸단 건가?
노리스가 끼어들었다.
“그렇죠.”
심 박사가 펜라이트 단추를 신경질적으로 똑딱였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그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시커멓게 꺼져 피로가 뚝뚝 묻어나는 눈 밑과 대조적으로 눈빛 자체는 형형했으며, 입매가 하고픈 말을 간신히 참는 듯이 씰룩였다.
-위성에서 발신한 신호가 들린다고? 여긴 지표면도 아니고 여긴 수십 미터 지하야. 트리플 S급이라고 해도 말이야. 가능한 일인가?
로아무아가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페어링 가이드가 발산한 신호니까 교란되어서 들린 거겠지.”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은 심 박사는 일단 테스트 중지를 선언했다. 프로그램 자체는 멀쩡하게 작동했으므로 완벽한 성공이었다. 일주일 넘도록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혹사당했던 연구실 직원에게 8시간의 휴식을 주었다.
모든 사람이 연구실을 떠났다. 양수를 닦기 위해 남은 윤조와 그런 윤조 곁은 지키는 수혁에게 심 박사가 가까이 다가왔다. 연구실 CCTV를 자연스럽게 등진 각도로 선 그는 개인 패드에 뭔가를 휘갈겼다.
-네가 들은 걸 보니 외계 괴물 놈들이 전파 수신한 게 확실하네.
아까부터 부들대던 심 박사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