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항공우주국의 각 연구실은 모두 크레이지 독에 관련된 보조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었다. 심 박사가 향한 곳은 그중 우주선에 탑승할 우주인 생존 지원 연구가 진행되는 특정 연구실이었다.
거기엔 특작부에서 이용하던 장비들이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최중요 극비 설비인 윤조 전용 인큐베이터까지.
인류의 희망.
크레이지 독 프로젝트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멸망이 한층 성큼 다가올 거다.
“지구 밖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서 네 프로그램을 좀 손볼 거야.”
이번 크레이지 독 프로젝트가 여태껏 해 왔던 작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작전이기에 당연히 그를 위해 특수한 프로그램을 짜는 건 당연했다.
작전 수행 당사자로서 기본 절차인 사전 검토 및 확인을 위해 인큐베이터에 접속한 윤조는 마운트를 위해 업로드된 작전 프로그램을 불러들였다.
“이건…….”
심 박사는 말하지 않아도 의문을 알아챘다.
“전파 발생 물체가 그것들을 끌어들인 결정적 요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도해서 나쁠 건 없잖아.”
“실패하면 제가…….”
윤조가 수혁을 슬쩍 쳐다봤다. 수혁은 그의 수상한 태도에 팔짱을 꼈다.
“실패해서 문제가 더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전파 발생 물체 제거에 성공하면? 전파가 제거되었다고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있나?”
심 박사가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말로 전파 발생 물체가 외계 괴물을 끌어들였다는 보장이 있냔 말이야. 그것이 지구와 인류의 존재를 외우주에 대고 떠들고 외계 괴물은 이미 우리 존재를 알고 일방적인 방문을 이어 가는 중이지. 전파를 끊는다고 그것들이 지구와 인류에 대한 흥미를 잃을 거란 보장이 없잖아.”
전파 발생 물체만 제거하면 모든 상황이 나아질 거란 막연한 착각에 사로잡혔다가 심 박사의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근 80년 만에 외계 지성체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어. 단편적이고 일방적이라 소통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지만. 어쨌든 그들과 연결 고리가 생긴 이상 그것을 통해서 적어도 그들이 왜 지구에 왔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근본적인 대책을 논하지.”
“의식이 통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의도치 않은 전파 발생으로 그들을 불러들였으면, 쫓아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심 박사의 시선이 윤조를 향했다.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잖아. 하지만 네가 싫다면 안 해도 돼.”
“하겠습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수혁이 갑자기 뭔가를 번뜩 깨달았다. 그는 즉시 능력을 개방했다. 위협이라기보다는 진심의 표출로 보였다.
“안 돼. 내가 반대야. 김윤조, 너 인큐베이터에 눕기만 해 봐, 가만히 안 둔다.”
막대한 에너지가 연구실 전체에 흘러넘쳤다. 민감한 전자 장비들이 일제히 경고음을 울렸다. 각자 작업에 몰두하던 전문가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었다. 이쪽을 주시하는 면면마다 불안이 가득했다.
-경비를 부를까요?
“경비를 불러서 어쩌게? 군대를 불러도 못 막는 놈인데.”
심 박사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경고했다. 자극해봐야 오히려 멀쩡한 설비만 박살이 날 확률이 높다. 그러면 프로젝트 이행에 차질이 생긴다.
“진정하십시오. 여기는 실내입니다. 민감한 장비들이 많아요. 소령님의 출력은 단순 발산으로도 데미지를 가할 수 있습니다.”
윤조가 수혁을 말렸다. 훈련과 작전을 거듭하면서 수혁의 출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진정하게 생겼냐? 네 머리에 또 위험하고 이상한 짓을 하겠다는 거잖아.”
“이상한 짓이 아닙니다. 그리고 위험 부담도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가까이 다가온 수혁이 위쪽 팔뚝을 잡았다. 거구에 어울리게 손도 커서 힘을 꽉 주자 엄지와 중지가 거의 닿으려 했다.
윤조를 노려보는 홍채 테두리를 따라서 진줏빛 광채가 일렁였다.
“보험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저지르는 겁니다.”
“보험에 믿는 구석이 여기 어디 있어? 온 사방에 한심한 멍청이투성이인데!”
현존 인류 최고의 두뇌 집단 베타클럽, 천재 중의 천재로 손꼽히는 천체물리학 및 군사기술 전문가들이 모인 연구실이었다.
“혹시 나도 포함이야?”
한심한 멍청이에 본인이 해당하는지 아닌지 확실히 하려는 심 박사를 윤조가 팔을 뻗어 말렸다.
“뭐가 어떻게 될지 아줌마도 모른다고 했잖아.”
“저 좀 보십시오.”
걱정과 의심을 감추지 못하고 버럭대는 에스퍼를 향해 윤조가 옅게 웃음 지었다.
“뭐…… 뭐야? 무섭게 왜 웃어?”
의뭉스러운 미소를 마주한 수혁이 긴장했다.
“소령님입니다.”
“응?”
입꼬리를 한껏 올린 윤조는 팔을 잡은 수혁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갰다. 살짝 쥐자 질기고 탄탄한 전투복을 쥐어짜던 손아귀가 스르륵 풀렸다.
“제 믿을 구석은 강수혁 소령이시라고요. 제가 위험해지면 어떻게든 살려낼 거잖아요.”
떨떠름하게 미간을 구기는 상대를 빤히 응시하던 윤조는 다소 누그러진 입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소령님은 항상 제 기대를 능가하시니까요.”
허풍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진심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기습 뽀뽀에 당황한 에스퍼가 말을 잇지 못했다.
북태평양, 시베리아, 도미니카 등 대형 게이트 외에도 크고 작은 작전과 훈련에 나서면서 강수혁에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기가 막히는 작전을 무작정 던졌다. 솔직히 완벽한 성공은 기대도 안 했다. 실패하면 게이트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거고, 뒤는 다른 에스퍼 부대가 맡으면 된다. 수혁 본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으나, 윤조는 내심 제 작전의 50퍼센트만 수행해도 성공이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윤조는 강수혁의 실질적 능력치 이내가 아니라 잠재력을 바탕으로 작전을 짰다. 능력을 전체 활성화했을 때 신체 밖으로 그냥 방출되어 낭비하는 에너지가 아까워, 할 수 있다면 오버로드 에너지를 모아 플라즈마 검으로 응축해 보라고 했을 때 수혁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했다.
그것이 시베리아 초거대 M형을 단숨에 자른 거대한 빛의 창이었다. 하와이 앞바다에서 두 번 시도 끝에 10미터짜리 검을 생성했을 때도 대단히 놀랐다. 뜬구름 같은 얘기를 빠르게 이해하고 실행할지도 몰랐고, 되더라도 크기가 작거나 혹은 불안정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강수혁은 고작 두 번의 시도 끝에 바로 실전 적용이 가능한 수준의 플라즈마 검을 만들었다.
그뿐인가.
실전에 들어서 초거대 M형 게이트를 자르는데 검 하나로는 쉽게 안 끝날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양손으로 동시에 검을 만들어 내더니, 기합 한 번에 창공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창을 생성했다.
어마어마한 출력은 5초 정도로 지속 시간이 대단히 짧았다. 하지만 5초는 게이트를 자르기에 충분했다. 그런 출력을 내고서도 수혁은 방전되기는커녕 잔해를 불태우고 하와이까지 귀환 후, 밤새 윤조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해내는 에스퍼가 바로 강수혁이다. 알면 알수록 늘 새롭고 늘 놀랍다.
“제가 무엇을 저지른다면 다 소령님을 믿어서 그러는 겁니다. 소령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제 믿음에 대한 책임을 지십시오.”
“무슨 궤변이야.”
입매를 문지르던 수혁은 밑도 끝도 없는 탓에 기가 막혔다. 또 뭔가를 저지르겠다는데 화도 안 났다.
“구해 주실 겁니까. 아니 구해 주셔야 합니다.”
“애초에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어?”
“없던데요?”
희멀건 두부 낯짝이 뻔뻔하게 정색했다.
“이런 망할 새끼를 봤나.”
“착하고 성실한 저를 망할 새끼로 만든 것도 다 소령님입니다. 책임지십시오.”
윤조는 일그러지는 수혁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손바닥에 힘을 주자 불퉁한 입매가 오리처럼 톡 튀어나왔다.
쪽.
가볍게 입을 맞춘 후에 눈을 깜빡이는 제 에스퍼를 향해 씩 웃었다.
“믿습니다.”
눈에 힘을 준 수혁은 그대로 상대의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 하찮은 궤변을 늘어놓는 망할 입술을 확 물어 버렸다. 반사적으로 벌어진 윤조의 입 안에 혀를 집어넣었다가 입술을 강하게 빨면서 놓아주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인큐 부수고 너 끄집어낸다? 그걸로 나중에 따지기 없어.”
“네. 알겠습니다.”
단단히 어르고 나서도 떨어지지 않는 팔을 윤조가 슬며시 밀어냈다.
삑―.
알림음과 함께 인큐베이터가 열렸다.
“바로 시작하시죠.”
언제 애교를 떨었냐는 듯이 멀끔한 낯을 한 윤조가 제 창조주를 돌아봤다. 하지만 심 박사는 거기 없었다.
“우웨에엑!”
연구실 구석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허리를 숙인 심 박사가 바닥에 대고 헛구역질 중이었다. 근처에 있던 직원이 기겁하며 옆으로 피했다.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그러니까 마늘 버터에 에너지바 끼운 샌드위치 드실 때부터 위장염 조심하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을…….”
“그게 아니라 너희 때문이거든! 이 쪽팔리는 놈들아!”
소리친 심 박사는 차마 이쪽을 못 보겠는지 패드로 얼굴을 가리고는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강수혁의 출력에 쫄았던 직원들도 하나같이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이었다.
-저것이 페어링 에스퍼에 대한 가이드의 에로스적 접근법인가. 가벼운 접촉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작전에 대한 순순한 동의를 받아내다니. 상당히 효율적이군.
-미친 게이 커플의 소름 돋는 애정 행각을 그렇게 평하시다니. 파파 노리스의 비위를 쫓아가기 힘드네요.
내내 연구실에 있던 노리스는 아주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수혁과 윤조를 번갈아 보면서 평가를 늘어놓았고, 어느새 나타난 로아무아는 그 옆에 서서 오만상을 구긴 채로 진저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