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특작부 소속이라는 이유로 모 개망나니의 행각에 철저하게 단련된 심나연과 최정을 놀라게 하려면 적어도 동네 뒷산을 무너뜨리거나 여당 대표의 위장 내벽을 뜯어내든가, 혹은 항모 전대를 단독으로 작살내야 한다. 항공우주국 따위야 떼로 덤벼도 가소로웠다.
각국 정상과 군부들이 다 뛰어들면서 온, 오프라인에서 개싸움이 일었다. 인류의 존속 운운하더니, 막상 살 구멍이 생겼다 싶으니 어떻게든 자국 혹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싶어서 발광하는 꼴이 우스웠다.
주도권을 두고 계속 이어진 신경전을 끝낸 건 역시나 강수혁이었다.
“상황 정리 빨리 안 하면 연두부만 데리고 집에 간다?”
그에 더해 집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대한민국 영토, 영해에서부터 100km 이상 거리를 두고 발생하는 모든 게이트에 대한 대응 요청을 무시하겠다고 윤조가 덧붙였다.
자국의 안녕만을 위해 인류를 버릴 거라는 반박에 수혁은 각국 정상이 보는 화상 회의 카메라에 대고 오로라 중지를 날렸다.
“시발, 너희들은 내가 서울에 생긴 G형 게이트 처리할 때 뭐 하나라도 보태 준 거 있냐? 지금까지 처리해 준 것만도 고마워해. 이 뻔뻔하고 양심 없는 바퀴벌레 새끼들아.”
오만불손한 태도에 난리가 갔다. 강수혁을 못 믿겠다고, 또 저런 위험한 에스퍼를 계속 봐줘도 되냐고 따지는 멍청이도 있었다. 그들은 강수혁에게 대고는 감히 못 할 말을 한국 측에 대고는 마구 해 댔다.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느니, 전 인류를 적으로 돌리고도 살아남을 것 같으냐느니. 외교 창구가 각종 항의로 난리도 아니었다.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우리 한국 정부는 강수혁에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강수혁에 대한 어떤 행위도 불문에 부칩니다.’
한마디로 ‘알아서 해라. 대신 우린 빼 줘.’였다.
다른 수단으로 김윤조를 이용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로아무아의 보고에 따라 김윤조가 강수혁을 ‘조종’할 수 있으니 김윤조에게 ‘모종의 조치’를 하면 강수혁을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냐는 논지였다.
은밀한 논의가 오가던 무렵, 몇몇 국가의 국방부가 하룻밤 사이에 폭삭 주저앉았다. 습격자는 당연히 뚜껑이 열린 트리플 S급 에스퍼였다. 그는 심지어 계략을 꾸미던 실무 담당자와 그를 후원하던 각국 국방부 관계자 및 정치인을 모조리 납치하여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에 꼭대기에 매달아 놓았다. 더불어 빨간 스프레이로 지독한 악필 경고도 휘갈겨 놓았다.
【연두부 사랑 나라 사랑】
유사 이래 가장 파격적인 시위에 전 세계 SNS가 폭발했다. 방송국들은 일제히 긴급 속보를 전하면서 자국 내 한국 전문가를 불러 도대체 ‘연두부 사랑 나라 사랑’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나라 사랑의 나라는 아무래도 한국이 아니겠냐? 그렇지만 연두부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곧 테러 피해자의 공통점이 전부 강수혁에 대한 강력한 제제를 요구하던 강성파였음이 밝혀지곤 통제 불가능한 에스퍼를 두고 부정 여론이 들끓었다.
권위주의에 물든 각국 정부나 정치, 경제적 상류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 같은 초강력 에스퍼의 존재를 껄끄러워했다. 직접 테러를 당한 소수 외에, 강수혁에게 특별히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권력과 재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거부감을 가진 상류 계층에서 딱히 누군가가 나서서 선동 혹은 주동을 하는 장면도 없었다. 암묵 속에서 은밀히 공유되는 위기감이었다.
표면으로 드러냈다가 군대도 막을 수가 없는 최강 에스퍼의 테러 목표가 되기보다는, 물 밑에서 각자가 가진 사회 영향력을 총동원해 강수혁을 위험 분자로 낙인찍으려 했다. 마치 인류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미워하면 무슨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바본가?”
특작부 본부에서 정리하여 올린 세계 여론 동향 보고서를 훑은 심나연이 코웃음을 쳤다.
“이런 걸 신경 쓰는 애면 그런 짓을 안 하지.”
“그러니까 말이야.”
최정이 덩달아 혀를 찼다.
생존에 위협을 받은 인간은 누구나 공공의 적을 원했고, 지배 계층은 그런 심리를 교묘하게 잘 이용하여 그들에 대한 비판적 정서나 혁명 기미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인류의 구원자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원한을 사는 영웅이 회의감을 이기지 못해 무너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물밑에서 파도를 쳐 해일을 일으키는 프로파간다는 한국발 소식이 강력한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계 각국 출신 회원 수 1,570만 명을 상회하는 강수혁 비공식 팬 사이트 운영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특작부 소식통에 의해 밝힌 바에 따르면 ‘연두부’가 강수혁이 김윤조를 부르는 별명이며, 또한 모종의 경로로 입수한 ‘사실’에 따르면 두 사람이 이미 작년에 동성 결혼으로 법적 부부 지위를 획득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이 파격적인 소식이 프로파간다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특보! 강수혁-김윤조 작년 결혼!’
‘세계 최강 에스퍼, 전담 가이드와 백년가약’
‘예물로 다이아몬드 팔찌? 김 준위도 동일 제품 착용’
‘하와이는 사실상 신혼여행지?’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를 파파라치 샷에 온갖 자극적 문구가 달린 뉴스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꼭 누가 준비한 모양새였다.
“중장님 말고 누가 있나.”
최정이 피식 웃었다.
통신사를 타고 빠르게 타전된 소식은,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세계 언론의 첫 페이지를 점령했다. 뉴스 전문 채널에선 쉬지 않고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동성 결연에 관해 대단히 늦은 행보를 보여, 동성 결혼 합법화를 아주 늦게 한 한국 현지 반응은 어떤지 등등 24시간 내내 떠들어 댔다.
그 과정에 한 학기도 채 다니지 않았던 윤조의 같은 학교 동기라든가, 초중고 동창들이 인터뷰를 통해 얼핏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특히 중학교 담임 선생이 나와 항상 모범생이었던 김윤조의 학창 시절에 대한 짧은 추억을 거론하며, 가이드가 되었다고 했을 때도 놀랐다는 말과 함께 결혼 정말로 축하한다고 수줍은 인사를 보냈다.
-윤조야. 선생님이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라. 어떻게 결혼하면서 청첩장도 안 보내느냐. 선생님 섭섭하다. 축의금 준비했으니까 나중에 귀국하면 연락…….
쾅!
기겁한 가이드의 주먹이 뉴스를 내보내던 센터 대형 스크린 중앙에 꽂혔다. 센터에서 일하던 직원 모두가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윤조를 봤다.
“아…… 죄송합니다.”
윤조는 얼어붙은 센터 직원을 향해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미안해서가 아니었다. 시뻘게진 얼굴을 들지 못했을 뿐이다.
“축의금 준대.”
쪽팔려 죽으려는 윤조와 달리 수혁은 싱글벙글 꽃 웃음만 뿌렸다. 그는 심 박사의 예비 패드를 훔쳐 김윤조 관련 인터뷰를 전부 저장했다. 동창들 인터뷰와 그들이 본인 SNS에 올린 간단한 추억이나 사진 등, 김윤조 관련 정보라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모조리 싹싹 긁어모았다. 강수혁의 개인적 의지였으나, 실질적 수집 행위는 AI가 대신했다.
-결혼 축하하네. 그런데 언제 했나? 관련 첩보를 전혀 확보하지 못해 솔직히 좀 놀랐다네.
두 사람 앞에 나타난 노리스는 대놓고 첩보 운운했다. 하여간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었다.
“작년 하와이로 이동 직전.”
-이런. 알았다면 축하 선물을 준비했을 텐데. 아쉽군.
무슨 선물일 줄 알고 덥석 받을까. 준다고 해도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윤조와 달리 선물이라는 소리에 수혁이 눈을 반짝였다. 나대려는 에스퍼를, 윤조가 뒤로 쓱 끌어당겼다.
“마음만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제독은 왜 여기 계십니까?”
-말 못 들었나? 나도 항공우주국에 파견되었네.
그는 제 가슴에 붙은 항공우주국 기밀 시설 출입증을 내보였다. 지금 세 사람이 있는 곳은 전파 발생 물체를 파괴하여 인류를 구원할 ‘크레이지 독’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는 항공우주국 중앙 통제실이었다.
“윤조 어떻게 하려던 놈들 자료, 영감님이 준 거야. 거기다가 영감님 덕택에 베타클럽 협조도 순조롭고. 고물 우주선 나 혼자 다 못 고쳐. 귀환 루트 짜는 것만으로도 바쁘단 말이야.”
심 박사는 다중 모니터와 패드를 오가면서 빠르게 수치를 확인하고 계산하느라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수혁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하는 다른 항공우주국 직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해하기 힘든 영감이네.”
수혁이 팔짱을 꼈다.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준비가 되어있으면서도 곧잘 도움이 준다.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태도는 알겠지만, 자국 내 입지를 갉아먹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이쪽을 돕는 저의가 뭔지 아리송했다.
-나는 순수하게 자네들을 많이 좋아한다네. 그렇게 미워하지 말게.
노리스가 허허 웃었다.
젊고 사나운 에스퍼와 그에게 지대한 흥미를 보이는 늙고 능글맞은 가이드를 지켜보던 윤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삼 박사에게 자신들을 부른 용건을 물었다.
“그래서 저희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조금만 기다려. 지금 급한 계산만 끝나면 바로…… 아, 됐다. 여기, 이거 이제 지켜보다가 이상 있으면 베타클럽이 알아서 보정할 겁니다. 가자.”
심 박사가 패드를 두들기다가 벌떡 일어섰다. 화면에 대단히 복잡한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었다. 두뇌 강화 A급의 미친 퍼포먼스를 지켜만 보고 있던 항공우주국의 두뇌들이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저마다 쌍욕 섞인 감탄을 뱉었다. 자신들은 2년은 골머리 썩을 계산을 어떻게 단 일주일만에 해치울 수 있냐고. 경외했던 베타클럽을 단순한 검산기로 쓰는 위엄에 혀를 내둘렀다.
“너희는 나 따라와. 영감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