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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159화 (236/256)

159화

“여기…… 우주잖아요.”

윤조는 젓가락을 놓쳤다. 쓰던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에 특수 무기처럼 조심스럽게 접시 가장자리에 안착했다. 외부인이 봤으면 무슨 귀신 곡할 노릇이냐고 눈을 휘둥그레 떴을 테지만, 특작부 소속은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심 박사가 입에 든 걸 급하게 삼켰다.

“그나마 태양계 안이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라그랑주 포인트라, 이거 우주 망원경 쏘는 자리 아냐?”

최정의 물음에 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쏜 적외선 망원경이 거기 있지. 지금은 퇴역한 지 한참 됐어. 후속기 쏜다고 말은 많았는데 경제 위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무산되었나 그래.”

-무산되진 않았네. 비밀리에 진행되었지.

장선욱이 이어 말했다.

-방금 미국 측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에 따르면, 당시 통신 회사가 미국 항공우주국에 자금 지원을 해서 결국 쐈네. 망원경 작동이 성공하면 외부 발표를 할 거였네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위성은 작동 불능 선고를 받고 폐기되었네. 항공우주국 기밀 자료엔 그렇게 되어 있지. 하지만 작동 불능이 아니었고 실제로 폐기된 것도 아니었어.

들통 채로 파스타를 소여물처럼 흡입하던 수혁이 화상을 향해 인상을 썼다.

“아니 이게 무슨 죽은 사람이 점 찍고 나타나는 소리야. 비밀로 쏜 위성이 뒈졌는데 사실은 안 뒈졌다?”

-허허. 동감일세.

대통령이 웃었다.

-맞아. 그거야. 항공우주국은 폐기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예 작동을 안 한 게 아니었어. 지구와 통신이 불능일 뿐, 망원경 자체 전파 발신 기능은 멀쩡했지. 통신 불능이라 제어가 안 되니 셧다운도 안 돼서 그냥 자연적으로 작동 불능이 되도록 둘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그 망원경이 100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렇지.

심 박사 말에 장선욱이 긍정했다.

“그런데 온 우주에 강력 전파를 발산하는 천체가 얼마나 많은데 먼지의 먼지도 안 되는 전파망원경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적외선 수집하는 거대 거울일 뿐입니다.”

윤조가 반박했다.

-후원한 통신 회사 CEO가 행동력 빠른 또라이인 점이 문제야. 망원경에서 일정 신호를 발산하는 장치를 심었네. 항공우주국은 후원자를 무시하지 못했고 아니 아예 처음부터 한패였을 수도 있네. 당시엔 우주 어딘가에 있을 외계 문명 탐색이 낭만이었으니까.

“윤조 말이 맞아요. 지랄 똥을 싸도 먼지는 먼지예요. 지구 사이즈 망원경으로 신호를 쏴도 태양계 밖에서 보면 태양 이전에 목성 선에서 정리되는 선이라고요.”

심 박사가 콧방귀를 뀌었다. 장선욱이 한숨을 쉬었다.

-지성체만 알 수 있는 소수(Prime number)를 초강력 출력으로 적외선 발산 중이야. 끝없는 우주에서 우리 은하, 우리 태양을 발견한 건 큰 우연이겠지만. 일단 태양계를 발견한 순간 적외선 신호 감지는 어렵지 않은 거지.

“그러니까 먼지 같은 작은 땅덩이에 우리 있다고 어서 오라고 확성기로 온 우주에 동네방네 떠들었다, 이겁니까. 지나가던 외계인 중 누군가가 올지 안 올지, 오면 어떤 놈이 올지 모르면서요?”

최정이 되물었다.

모두 할 말을 잊었다.

“하, 시발. 개좆같네.”

열 받은 에스퍼가 쌍소리를 했다.

대통령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냐고 장선욱이 다그쳤으나 정작 수혁 주변에 있는 이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 본인도 강 소령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냥 두라며 장선욱을 말렸다.

“사고 친 놈 따로 뺑이 치는 놈 따로. 이게 시발 뭐 하는 짓…….”

수혁이 언성을 높이면서 엉덩이를 떼려는 찰나 윤조가 그의 어깨를 누르면서 벌떡 일어섰다.

“결국 인간 때문이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몇 사람이 싸지른 똥을, 전 지구가 함께 갚고 있는 거네요.”

-말조심하게. 지금 우리끼리만 있는 게 아니야.

주변을 의식한 장선욱이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윤조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들렸지만 무시했다. 대신에 윤조는 언성을 조금 더 높였다.

“다시 말하면 똥을 미리 치웠으면 이런 일이 없었다, 맞습니까?”

-100퍼센트 확신은 못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도 절대로 못 하지. 그런데 김 준위, 자네까지 왜 그러나.

“그러니까! 지금 똥을 찍찍 싸지른 새끼 하나 때문에! 지구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말씀이시죠!”

기어이 고함을 지르는 윤조를 보고 장선욱이 말을 잊었다. 최정과 심 박사가 눈과 입을 동그랗게 뜨고 윤조를 봤다. 수혁마저 멈칫했다.

“아니 바늘로 백만 번 찔러 죽여도 모자랄 좆같은 관종 새끼가 100년도 전에 쏜 망원경 때문에! 작동도 똑바로 안 하는 고물 때문에! 고작 그거 때문에! 하! 시발! 시바알!”

분통을 참지 못한 윤조가 발치에 있는 빈 들통을 쾅 걷어찼다.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진 들통이 벽면에 날아가 부딪히면서 남은 파스타 국물이 사방에 튀었다.

“미친 새끼 하나 때문에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새끼 어디 있습니까? 좌표 요청합니다.”

-진정하게. 그걸 또 알아서 어쩔 거야.

“숟가락으로 살을 한 포씩 떠서 박제해 세계 각국을 돌면서 효수할 겁니다. 그래서 ‘아, 한 치 앞을 모르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구나’라는 교훈을 DNA 단위로 뿌리 깊게 새길 겁니다.”

-…….

저쪽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윤조가 심 박사를 밀치고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좌표 주십시오. 아니면 직접 알아보러 쳐들어갑니다.”

어디로 쳐들어간다는 목적어를 생략했다. 하지만 어디인지 묻지 않아도 다들 잘 알았다. 수혁이 “본토?”라며 자리에서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대(對) 게이트 시대는 인류를 비롯한 모든 테란에게 잔혹한 시절이다. 까딱하다가는 야만적인 야생 논리가 사회를 휩쓸기 쉽다. 게이트 초반에는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 그렇게 되었다.

당시 개도국 대부분이 군국주의로 돌아섰다. 그 일부는 인권이고 뭐고 챙기지 않고 오로지 생존만을 추구하다가 자멸했다. 그도 아니면 혁명이나 내전이 터져서 국가 기능이 상실되었다. 그런 중에 시스템을 유지하는 소수 국가가 모여서 게이트에 대항하고 있다. 그 주축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망할 놈의 미국이다.

필요악.

세계 경제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공룡은 공산품뿐만 아니라 식량 생산국로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나라가 쓰러지면 연쇄 효과가 전 지구를 강타할 것이며, 다른 나라 또한 경제 혼란 속에서 경제 파탄과 식량 부족으로 몰락할 수 있다. 미국을 가장 싫어하는 중국조차 미국이 갑자기 쓰러지는 걸 원치 않는다.

세븐 홀 사건이 터졌을 때 제일 먼저 지원을 보낸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물론 지원을 핑계로 각종 프락치 짓을 해서 결과적으로 생존 미국인에게 감사는커녕 막대한 분노를 사긴 했지만. 어쨌거나 두 공룡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한국에겐 미국 몰락은 단연코 최악의 시나리오다.

-진정하게. 마음은 이해하네만 지금 그럴 일이 아니야.

-대통령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럴 때가 아닙니다.

-진정하세요.

보다 못한 대통령이 나섰다. 총리에 국방부 장관까지 한 마디씩 덧붙였다.

-무엇보다 100년 전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참 전에 죽었을 겁니다.

“……무덤은요?”

-회사가 미국 동부에 있었답니다. 사는 곳도 인근이었을 테니 무덤도 그 근처겠지요.

미국 동부는 40년 전 일곱 개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사건으로 모든 땅이 싹 리셋되었다.

“끝까지…… 시발 놈이네요.”

싸늘한 조소에 수혁이 나섰다.

“김윤조.”

“어느 미친놈의 독단적인 미친 짓거리 때문에 전 지구가, 인류가, 제가…… 이게 뭐냐고요. 죽은 사람들은 소실될 무덤도 남기지 못했어요. 하다못해 안녕이라고 인사도 못 했다고요.”

세포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소각장에서 사라진 인류가 근 10억에 이른다. 그리고 방사능 오염으로 기형으로 태어나 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사멸한 생명도, 죽음이, 외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외마디 비명도 채 끊지 못하고 증발한 짐승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인간 형상을 한 망할 광대의 어리석은 꿈에 희생될 이유가 없다.

“저는 못 참겠습니다. 화가 나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습니다.”

시큰거리는 콧등과 떨리는 눈 밑을 감추기 위해 전투복 낀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누가 참으래?”

“예?”

“또라이 새끼는 흔적도 없이 갔지만 항공우주국은 아직 있잖아. 깡통이 동부 괴멸 이후에 미 남부로 본부 옮겼대. 좌표 설정 끝.”

수혁이 윤조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놀란 최정이 파스타 접시를 내던지며 달려들었다.

“안 돼! 안 돼애!”

심 박사가 윤조의 다른 쪽 팔을 덥석 잡았다.

“야야, 다시 생각해. 우리가 지금 같은 편과 싸울 때가 아니야.”

“놓지?”

수혁이 어울리지 않게 상냥한 톤으로 권했다.

“빡친 내 손에 인류 전체가 멸망하는 것보다는 그쪽 시설 하나 붕괴되는 게 낫지 않아?”

그러면서 싱긋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미친 개망나니 그 자체였다.

-빨리 미국에 통보해! 거기 직원들 모조리 대피시켜!

눈치 빠른 대통령이 장선욱을 비롯한 참모진에게 향해 고함쳤다.

“하. 어쩔 수 없네요. 꿩 대신 닭이라고. 주동자는 갔지만 공범이 남아 있으니 말이죠.”

윤조가 심 박사의 손을 슬쩍 밀어 뗐다.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둥실 뜨더니 저절로 열린 현관문 밖으로 스르륵 날아갔다. 테이블에 두었던 헬멧 두 개가 휙 날아가 각각 제 위치를 찾아 잠겼다. 두 사람이 빠르게 상승했다.

왜애애애앵!

멀리 하와이 주둔군 본부에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비상 사태를 통보 받은 주둔군이 비상사태에 돌입했고 뒤이어 전투기가 날아올랐고, 레이저 중화기가 하늘을 향해 번뜩였다. 하지만 소닉붐을 일으키며 동쪽으로 직진하는 에스퍼와 가이드를 막기엔 부족했다.

부아아앙!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미 헌병대 지프와 장갑차를 보며 최정이 허탈하게 웃었다.

“가만히 보면 김 준위도 만만치 않아.”

“저 또라이 새끼들 덕분에 500억 광고는 다 날아갔는데 어쩌냐?”

“광고가 문제야? 우리 모가지부터 걱정해.”

집 안에 있는 데도 어디선가 날아든 붉은 레이저 포인트 십수 개가 심나연과 최정에게 쏟아졌다.

심나연은 제 패드에 생체 코드를 입력 후 통신기에 두고 덮개를 닫았다. 이후 주먹으로 통신기 케이스 한복판을 쾅 내리쳤다. 그러자 패드에 의해 활성화된 케이스 내 소형 폭탄이 터졌다. 푸쉭! 대왕 조개처럼 꽉 닫힌 케이스 틈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패드까지? 살벌하네.”

“기밀 파일이 들어있거든. 우리 똥강아지 출생의 비밀은 지켜야지.”

-멈춰!

열린 현관문을 통해 고함을 치며 들어온 미 헌병대가 들어와 실탄 총구를 내밀었다. 최정과 심나연은 저항 없이 두 손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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