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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155화 (232/256)

155화

강수혁이 성을 내든 말든 군입들은 꺼질 생각이 없었다. 추가로 사 온 고기까지 저녁 내내 실컷 먹은 후에 각자 맥주와 칵테일 펀치를 들고 마당 내 적당한 위치로 흩어졌다.

겉모습은 불콰하게 취한 파티 놈팡이 모임인데 오가는 대화는 아니었다.

-외계 지성체와 공존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맥주병을 비우던 롭슨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공존은 무슨. 웬만한 사람은 인근에 있기만 해도 방사능으로 뒈지는데.”

수혁이 냉소했다.

-에스퍼가 주류가 되면 또 다르겠지. 방사능 내성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 봤자 A급 에스퍼도 접촉하면 중증 화상을 입어요. S급은 그나마 낫지만.”

노리스의 반박에 심 박사가 재반박했다.

-자네는 어떤가?

“누구, 나?”

수혁을 향해 노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슬라임에 피부가 녹는 속도보다 재생 속도가 빨라.”

-자네 같은 자가 인류의 주류가 된다면 그때는 공존이 가능할 걸세.

“안 죽을 뿐이지, 안 아픈 건 아니라고.”

-생존 문제만 해결되면 고통은 문제 되지 않아. 독에 당하면 죽으면서도 뱀과 전갈 같은 맹독성 생물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생태계 파괴는 어쩌고요? 인류는 진화 중이지만, 무수한 동물과 식물은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하고 있다고요. 특히 해양 생물은…… 고래를 보기 힘들어졌어요. 남극해에나 가서야 극소수의 생존 고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죠.

로아무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방사능 제염 작업에 매진해도 지구 전체에 뿌려지는 막대한 악영향을 전부 무마하긴 불가능했다.

-얼마 전에 마지막 기린이 수명이 다했다고 했나? 코끼리도 전 세계 동물 보호소에 남은 열 마리뿐이고.

역대 G형 게이트 중 하나가 아프리카 세렝게티 한복판에서 터졌다. 막대한 재난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인간과 함께 무수한 동물을 쓸어갔다. 현재 생존한 아프리카계 동물은 세계 각지 동물원과 보호소에 있던 개체의 후손이었다.

-인류 문명은 조금씩 쇠퇴하고 있어요.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다음 세기에…… 모든 자원이 고갈되고 나면 우린 훨씬 원시적인 사회로 돌입할 겁니다. 지구 최후의 문명이 될지도 몰라요.

에이브리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외계인이 과연 우리한테 뭘 원하는 걸까요?

-원하는 게 있기나 할까? 저들에겐 우리의 존재 자체가 악이어서 없애고 싶은 건 아니고?

-변소로 쓰는 걸지도 모르죠.

제법 고차원적인 탐구에 저질스러운 가능성이 끼어들었다. 롭슨이었다.

-변소?

-M형 생각해 보세요. 딱 그렇게 생겼잖아요.

“실컷 먹여 놓으니까 더럽게 왜 이래?”

강수혁이 미간을 구겼다. 깔끔한 성격이라 이런 화제가 좋을 리 만무했다.

-롭슨 말도 일리가 있어.

의외로 노리스가 롭슨의 역성을 들었다.

저들은 카르다쇼프 척도(Kardashev scale, 총에너지 사용량에 따라 구분한 우주 문명의 척도로, 현재 인류는 0.73단계) 제2단계에 진입한 지 오래되었을 걸세. 항성의 에너지를 온전히 사용하는 등급이지. 그렇지 않으면 게이트 생성, 이용할 에너지를 댈 수 없을 테니.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서 저들 또한 물질적 변화를 겪었을 거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실패작이 다량 발생했을 테고 말일세.

-그럼 지구가 쓰레기 처리장이라고? 차라리 악의 소굴이 낫겠네요.

로아무아가 진저리를 떨었다.

“슬라임이 외계인 똥처럼 생기긴 했지.”

심 박사까지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롭슨이 싱글벙글이었다.

“폐기물을 처리할 거면 그냥 다른 행성이나 위성도 있잖아. 하필 원주민 있는 별에 왜 버려?”

“폐기물을 처리할 미생물로 우리가 딱이잖아. 악을 쓰고 쓰레기 처리 중이니까.”

“일반인도 서러운데 이젠 쓰레기통 곰팡이네.”

최정이 툴툴댔다. 이쯤 되자 묵묵히 듣던 윤조마저 한 마디 안 보탤 수가 없었다.

“인간이 쓰레기통 곰팡이면 전 뭡니까?”

심 박사가 뭐가 자랑스럽다고 “너는 내가 만든 1등 곰팡이!”라고 외치며 엄지를 척 올렸다.

-미생물이라니까 생각나는데요. 100년 전쯤 프랑스 사람이 쓴 단편에 지구가 우주급 문명이 운영하는 진주 양식장으로 나왔습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거대 똥 덩어리를 도시 한복판에 두면 냄새를 견디지 못한 인간이 그걸 유리로 여러 겹 코팅했거든요. 그게 그들에겐 진주에 비견되는 보석이었죠. 어릴 때 처음 읽었을 때 꽤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혜안이 아닌가 합니다.

저들끼리 쑥덕대는 사이 인류와 외계인 사이에 놓인 에스퍼의 불쾌감이 불쑥 치솟았다.

“정말 비유를 해도 꼭. 술맛 떨어지게.”

진짜 비위가 상했는지 수혁의 손에 들린 빈 맥주병에 옅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윤조는 맥주병을 슬그머니 받아들었다.

하와이의 밤하늘은 별이 가득했다. 맑은 날이면 물먹은 별들이 총총하다 못해 아주 쏟아질 기세였다. 저 아름다운 것들이 사실은 치명적인 방사능을 내뿜는 핵융합 덩어리라니. 위험해서 아름다울 저것들에 대한 감상적인 탄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

“별이 참 예쁘네요.”

“저것들 다 핵 방사능 덩어리야. 그뿐인가, 저 어딘가에 괴물 놈들 소굴도 있겠지.”

“소령님도 술맛 떨어지는 말씀 그만하십시오.”

‘내로남불’ 끝판왕의 입을 막은 윤조는 막연히 하늘을 봤다. 모인 인물들이 기가 막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평양 외딴 섬의 아름다운 밤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수면에서 대략 60도 위쪽에 언뜻 보면 샛별로 착각하기 딱 좋은 발광체 무리가 나타났다. 무작위로 흩어진 다른 별들에 비해 줄에 엮인 듯 쭉 이어지는 행렬이 튀었다.

“저건 뭔데 저러고 있어?”

“100년 전에 어느 통신 회사에 올린 인공위성입니다. 우주 진출의 교두보였다나? 하지만 회사 파산하고 방치되었죠.”

“예나 지금이나 한심한 양반이 많았네. 저런 거 안 해도 우주에서 알아서 찾아와서 귀찮아 죽겠는데.”

삐딱한 수혁과 반대로 윤조는 맨 앞 위성을 따라서 일렬로 졸졸 따라가는 위성 무리를 귀엽게 바라보았다.

-어?

패드로 하늘을 찍던 롭슨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는 뭔가가 이상한지 열심히 화면을 두드리더니 그걸 가까이 있던 심 박사에게 보여 주었다. 선베드에 계속 누운 채로 롭슨이 내미는 화면을 본 심 박사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왜 살아 있어?”

-불명의 방해 전파 원인이 이거 같아요.

두 사람이 쑥덕대는 내용은 롭슨의 의식을 엿본 에이브리가 설명했다.

-저 위성에서 전파가 감지된다고 합니다.

롭슨이 들고 다니는 패드는 군용이기 때문에 카메라 성능이 탁월했다. 적외선 감지는 물론이고 안테나를 세우면 각종 전파는 거의 다 잡아냈다. 그걸로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을 찍다가 위성이 아직 활동 중인 걸 우연히 잡아낸 것이다.

-연구실로 가야겠어요.

새로운 단서를 발견한 롭슨이 신나서 사라졌다. 곧 군용 지프 엔진 소리가 들리다가 멀어졌다.

“음주 운전 아냐?”

“자율 주행 되나 보지.”

“군용인데? 군용은 깡통 유지가 의무인데?”

“미군 장비잖아.”

최정과 심 박사가 만담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도 슬그머니 일어섰다.

-우리도 이만 가겠네.

-늦었어, 쉬어야지.

-즐거운 파티였습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롭슨이 발견한 걸 알아보러 가는 눈치였다.

“하여간 정보 하이에나들. 뭐 대단한 발견이라고.”

“방해 전파 제거한다고 바로 의식 탐지가 되나? 게이트가 열려야지, 게이트가.”

최정이 남은 맥주를 마시면서 혀를 찼다. 선베드에 누운 채로 하늘을 보던 심 박사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윤조야, 내 패드.”

“여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패드를 건넨 건 수혁이었다. 일어서진 않고 당연히 능력으로 띄워 보냈다.

“잠깐 이대로 들고 있어 봐.”

공중에 둥둥 뜬 패드 화면에 키보드가 떴다. 심 박사는 누운 채로 뭔가를 두드렸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화면을 보면서 검색하던 박사는 점점 몸을 일으키더니 이내 코끝이 닿을 정도로 화면에 집중했다.

“뭔데?”

의외로 엉덩이가 가벼운 최정이 심 박사 옆으로 다가가 화면을 응시했다.

“저 인공위성 보니까 생각난 게 있어서 말이야.”

“뭐?”

“150년 전에 말이야. SETI라고 외계인 탐지 프로젝트가 있었어. 처음에는 천문학자가 포함된 제법 진지한 프로젝트였는데 나중에는 온갖 어중이떠중이가 다 끼어들어서 어린애 장난이 되어 버렸거든.”

“그런데?”

최정의 물음에 심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답답한 듯 인상을 구기는 심 박사를 보는 순간 윤조는 깨달음의 탄성을 뱉었다.

“아!”

“윤조야, 지금 위치 추정 데이터 보내니까 수색해 봐.”

심 박사는 선베드에서 일어나기 위해 바둥거렸다. 선베드가 기우뚱 쓰러지면서 잔디밭에 데굴데굴 구른 심 박사는 그를 한심하게 보는 수혁에게 하늘을 가리켰다.

“네가 가서 좀 가져올래?”

“뭘?”

수혁이 턱짓했다.

“인공위성.”

“별걸 다……. 그래서 좌표는?”

“윤조야?”

“지금 찾고 있습니다. 발견했습니다. 좌표 송신합니다.”

윤조가 반사적으로 수혁을 돌아봤다.

이미 일어선 수혁이 하늘 어딘가를 응시했다. 어느 틈에 그의 전투복이 유령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저긴가? 가깝네. 좀만 기다려.”

전투복 착용을 마친 수혁이 헬멧을 낚아챘다.

저속으로 거리를 벌린 그는 이내 초고속으로 위성 궤도를 향해 상승했다. 주변으로 공기 마찰이 일어나면서 별처럼 환하게 빛났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수혁은 대형 택배 상자만 한 인공위성을 들고 나타났다. 우주에 오래 방치되었던 만큼 강한 방사능을 발산했다. 심 박사와 최정은 소지 중인 방호복을 입었으나, 윤조는 아니었다. 이만한 방사능은 게이트에 비하면 간지럽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역시.”

가정집 마당에 안착한 인공위성의 뚜껑을 열고 안에 있는 메모리를 확인한 심 박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메모리를 분석 중인 패드 화면을 내밀었다.

“이 새끼.”

“갑자기 왜 욕해?”

“너 말고 이 새끼.”

심 박사가 100년도 더 된 고물을 탕탕 두드렸다. 우주 쓰레기를 맞아서 곳곳에 흠집이 난 표면엔 하늘을 줄지어 날아가는 옛 통신 위성과 같은 표식이 찍혀 있었다.

“역시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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