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야자수가 드문드문 이어지는 평화로운 군인 가족 주거지의 드라이브 웨이에 닿자마자 윤조는 열불을 토했다.
“으아아아악!”
인근 앞 건물 유리창을 가린 블라인드가 잇달아 올라갔다. 항상 전투태세인 직업 군인 가족답게 이웃 주민은 이상 상황을 즉시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중에 두엇은 이미 군 당국에 보고하는지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윤조에게 말을 걸거나 다가오지는 않았다.
“으아아악! 시발! 존나 못해 먹겠네! 으아아아악!”
총을 든 이웃이 나타났다. 무시무시한 샷 건을 든 중년 부인은 총구를 아래로 내린 채 이쪽을 주시했다. 다른 곳에선 비번으로 추정되는 미군 남성이 군용 언더웨어에 티셔츠만 입은 상태로 레이저 건을 들고 접근했다.
AI가 경고했으나 꼭지가 돈 윤조에겐 그것들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저런 것들을! 인류의 희망이라고! 진짜!”
진짜 장선욱이 왜 미치고 팔짝 뛰는지 알 것 같았다. 최정이 왜 나날이 늙어가는지, 지금 이순간 김윤조만큼 절절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을 거다.
에스퍼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구제 불능이다. 정말이다! 저것들과 공존의 인류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이 아니라면 벌써 화형식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윤조가 제일 앞장서서 불을 질렀을 거다. 장작불이 활활 타올라도 저 미친 에스퍼 놈들은 ‘따뜻하네?’ 이러면서 에너지바나 씹겠지!
발광하는 윤조를 향해 레이저 건을 든 해병이 가까이 접근했다.
-저는 미 해병 상사, 파커슨입니다. 그쪽의 관등 성명을 밝히십시오.
군인이 외쳤고 윤조는 핏발 선 눈을 그를 향해 들었다. 흉악한 눈길에 상대는 당연히 총구를 들었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 선 중년 아줌마도 샷 건을 장전했다.
우지끈, 쿵!
신중한 상대 중 당장 총을 발사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등 뒤에 멀쩡히 달려 있던 목제 대문짝이 털썩 쓰러졌다. 안 봐도 뻔했다.
“어라?”
한 손에는 에너지바를 다른 한 손에는 일그러진 문고리를 든 강수혁이 척척 걸어 나와 윤조 뒤에 섰다.
“총 내려.”
비번인지라 팬티 바람인 미 해병은 당연히 귀에 군용 인이어가 없었다. 하지만 강수혁이 말하자마자 상대 군인의 총구가 아래로 향했다. 한국말을 알아들어서가 아닌, 강제 조치였다. 더불어 길 건너편 아주머니의 샷 건은 아예 공중에 둥둥 떴다.
당황한 미군이 어떻게든 총을 들어 공격하려고 했다. 상황이 복잡해지려는 중이었다. 귀찮은 한숨을 푹 쉰 후에 윤조는 AI를 통해 영어로 대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신고가 더 빨랐다. 마을 초입에서 군용 트럭 두 대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중 뒤에 오는 차는 대(對) 외계 지성체용 중형 레이저 건을 장착하여 사수가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윤조는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곤 뒤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강수혁의 배를 팔꿈치로 세게 찍었다.
“아, 귀찮게.”
수혁은 먹던 에너지바를 놓고 양손을 들었다. 에너지바는 보이지 않은 손에 들려서 우물거리는 입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트럭에서 우르르 내린 미 해병이 윤조와 수혁을 둘러싸고 총을 겨누었다. 리더로 보이는 자가 험악한 얼굴로 지시하자 한 사람이 나와서 두 사람 안면에 스캐너를 가져다 댔다. 결과가 금방 떴다. 리더는 당황한 채로 총구를 내리도록 하고 상황 종료를 알렸다. 그러곤 대단히 당황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실례했다며 수혁과 윤조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뭐래?”
“주거 구역에서 난동 에스퍼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답니다. 신고가 있으면 일단 출동 의무가 있어서 확인차 온 거라, 다른 뜻은 없답니다. 그리고 미안하답니다. 인근 주민에게 잘 설명할 테니 걱정하지 말랍니다.”
윤조는 리더에게 오히려 소란을 일으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혹시 방금 소란으로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자신이 직접 사과하겠으니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흩어진 해병에게 상황 설명을 들은 길 건너 중년 부인은 마음이 풀어지다 못해 오히려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윤조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트리플 S급이 유명하긴 했다.
상황이 정리된 후에야 심 박사가 느릿느릿 나왔다. 리더는 심 박사를 알아보고 눈인사를 건넸다.
“소리 다 질렀으면 들어와. 동네 부끄럽게. 나라 망신은 망나니 놈이 먼저 시킬 줄 알았더니 네가 먼저 저지르냐?”
이제 막힐 귀와 코도 없었기에, 윤조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수혁은 소동에 총을 들고 뛰어나왔다가 이젠 너나 할 것 없이 휴대 단말기 카메라를 들이대는 주민과 해병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들어왔다. 아주 슈퍼스타 나셨다.
거실에 들어서는데 에너지바 부스러기에 뒤덮인 수신기가 착신 신호를 발신했다. 심 박사가 냅다 달려가 자판에 손을 댔다.
“영감탱이, 고민 좀 세게 했나 본데. 이제 보냈네.”
희희낙락한 반응과 함께 심 박사는 파일을 신나게 열었다. 심 박사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수혁이, 왼편에는 윤조가 붙었다.
특수 보안 키가 덕지덕지 붙은 파일은 심 박사가 생체 코드를 넣고도 따로 암호 키를 받아 실시간으로 장선욱의 단말기와 연동하면서 동시에 열어야 했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나자 드디어 간단한 폴더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E3750-SSS 강수혁]
등록 코드와 함께 이름만 간단하게 적힌 폴더명 앞에서 셋은 숨을 죽였다.
“후우.”
떨린 한숨과 함께 심 박사가 폴더를 열었다. 강수혁의 이력 파일, 및 작전 파일과 함께 [미친새끼]라는 폴더가 있었다. 앞선 문선 내용은 심 박사와 김윤조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건가 본데? 진심이 듬뿍 담겨 있네.”
심 박사가 폴더를 가리켰다.
[미친새끼] 안에 [개망나니]라는 폴더 하나와 문서 파일이 수십 개 있었다. 문서는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하나를 열어 보니 그날 강수혁이 친 사고에 관한 장선욱의 절절한 스트레스 일지가 나왔다.
세 쌍의 눈이 문서 내용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가 그중 두 쌍은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로 이동했다. 오른쪽에 있는 거구의 에스퍼는 미간을 팍 구기더니 성질부터 냈다.
“꼰대 일기를 뭐 하러 읽어. 일단 폴더부터 눌러 봐.”
[개망나니] 폴더를 열자 이번에는 아까 [골칫덩이]라는 폴더와 함께, 날짜가 훨씬 이른 문서 파일이 주르륵 이어졌다. 역시나 강수혁이 친 각종 사고로 인해 장선욱의 수명이 어떻게 단축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이었다.
다시 [골칫덩이]를 열었다. [이새낄어쩌지]라는 폴더와 함께 같은 형식 문서 파일이 이어졌다.
“어쩐지 좀 불쌍한데.”
심 박사가 유일한 폴더를 다시 눌렀다. 뒤이어 [골칫덩이], [때리고싶다], 이후에 [무서운중2병], [이걸확], [비행7세], [괴력똥강아지], [분유흡입기] 등등 온갖 폴더가 나오더니 마지막에 [강수혁]라는 이름이 나왔다.
[강수혁] 폴더 안에는 문서뿐이었다. 드디어 끝에 닿은 것이다.
“여기 내 생일.”
강수혁이 맨 위에 있는 문서를 하나를 꼭 찍었다. AI가 에스퍼의 심박수가 올라감을 알렸다. 그건 윤조도, 아마도 심 박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두는 다른 일지와 비슷하게 날짜와 날씨로 시작했다.
좀 특별한 점이 있다면 34년 전, 일지 날짜 기점으로 일주일 전 한반도 북부 한주(邯州) 시에서 발생한 MF 복합형 게이트를 언급했다는 점이었다. 그 게이트는 국지형으로 피해 범위는 여타 게이트에 비해 넓지 않았으나 매우 드문 복합형으로 꽤 유명했다.
XXXX년 XX월 XX일 날씨 맑음
한주 게이트 발발 7일째. 방사능 제거 작전을 위해 파견. 생존자 수색 명령도 있지만 사실상 희망은 없었음.
오전 06시 한주 북부 외곽에 약품 처리 시작함. 11시 중간 휴식 시간 후 작업 계속 시작. 20년 된 수정 아파트 한 동이 무너짐. 유기물 처리반이 자꾸 구토와 어지러움 증상 호소. 정신적 충격이 큰 듯. 당번을 정해 쉬게 하고 싶지만, 상부에서 지속 작업을 요구. 현장에 나와 보면 그게 아닐 걸 알 텐데. 현장 관리직만 피곤함.
16시 휴식 후 저녁 작업 시작. 유기물 처리 담당 소대장이 과로로 실신 대신 직접 현장 지휘.
17시 건물 파편 아래서 일가족 시신 발견. 기둥 사이에 있어서 형제 보존 추측. 가스가 차서 부풀었으나 상태는 비교적 양호. 수습 후 유기물 처리반으로 보냄.
17시 17분 유기물 처리반 반장이 급하게 호출. 유기물 장치가 심장 박동 발견.
17시 28분 유기물 처리반에 들러 심박 확인. 사망한 일가족 중 여자 복부에서 심박 발생. 즉시 초음파 검진, 살아 있는 태아 발견. 상부 보고 후 돔형 격리실 설치 시작.
18시 42분 에스퍼 생체 전문가 현장 도착. 시신 개복 시도. 헌병 보안대가 방사능 처리반의 접근 차단. 방사능 처리는 일단 중지 후 대기.
19시 04분 돔형 격리실을 중심으로 지진 감지. 방사능 처리반 모두 대피. 국지 지진 발생. 에스퍼 파동으로 추정. 인근 아파트 파편이 부유하며 격리실 완전 파괴, 지진과 파편 폭풍이 대략 8분 지속. 이후 처리반에 다수 사상자 발생. 격리실 인근 헌병 보안대 중 생존자 없음. 이후 처리반이 격리실 내 생존자 확인 중. 인큐베이터 내 태아 발견. 탯줄이 붙은 상태. 주변에 있던 생체 전문가는 형체도 없이 사망. 심각하게 우는 태아 중심으로 진주색 오로라 발생. 능력 과도 활성 상태. 안정을 위해 노력. 예민한 큰 조카를 달래던 기억이 나서 동요 부름. 의외로 효과 있음.
19시 21분. 상부에 긴급 연락. 상황 보고. 태아는 지쳐서 침묵. 진주색 오로라도 사라짐.
20시 33분. 에스퍼 전담 헌병대 출동. 인큐베이터 확보 노력했으나 실패. 태아에 접근 가능한 사람은 본인(장선욱 육군 중위)이 유일.
22시 08분. 헌병대 헬기를 통해 태아와 함께 특수 작전 사령부에 도착. 간단한 검진 결과, S급 에스퍼로 진단. 초유.
거기서 첫 파일이 끊겼다.
“어…… 음.”
“이게 뭐야? 시신이 애를 낳아?”
윤조는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침음을 흘렸고, 심 박사는 눈알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문서를 재독했다.
“뭐야. 나, 인간이잖아.”
수혁이 기쁜 듯이 목청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