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강수혁 외의 에스퍼 전력까지 계산한 겁니까?”
“네. 강수혁을 제외한 국내 모든 전투 병력과 전투 자산을 합산해 평가한 결론입니다. 참고로 이 계산에는 전술핵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회의장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트리플 S급을 단순히 S급 세 명을 합한 정도로만 생각했던 의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좌장으로 보이는 의원이 마이크를 켰다.
“장선욱 중장. 지금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특작부 소속 소령과 준위가 지금 국회를 상대로 협박을 하고 있는데.”
아까와는 달리 확연히 작아진 목소리였다.
“지금 회의장에 계시는 분들은 알 겁니다. 머리 위로 압박감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강수혁 소령이 불쾌감을 느낄 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공격 의사가 아니라 단순한 감정 변화에도 이만큼의 출력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런 화력을 보유한 에스퍼에게 단독 행동을 허락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것에 더 이상의 이견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장선욱의 발언에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운이 좋게도 강수혁 소령은 한반도에서 태어나 자라 우리 문화에 익숙합니다. 그가 우리나라에 호의를 가졌기에 우리 군과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혹여 우리나라에 크게 실망하거나 다른 나라와 친숙해져 그가 우리 국적을 포기하고 이민 혹은 망명을 택한다면 우리로서는 제지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가이드가 있는데도요?”
“당장은 저지할 수 있겠으나 만능은 아닙니다. 가이드에도 유효 수명이 있습니다.”
그 말에 강수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김윤조에게 속삭였다.
“저거 무슨 말이야.”
“불로불사는 아니란 소립니다.”
“아.”
강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뭐. 나도 모르는 유효 기간이 있나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기대 수명이 소령님보다는 짧기는 하겠지만요.”
“짧아? 왜, 가이드 프로젝트 때문에?”
“그보다는 소령님 기대 수명이 지나치게 깁니다. 현재 100년이 훌쩍 넘습니다.”
“나는 또 뭐가 그렇게 길어?”
“본인 재생력을 잘 생각해 보세요.”
두 사람이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장선욱의 발언이 끝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당 의원이 발언권을 받았다.
“강수혁 소령에 관해서는 현행 유지가 제일이란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강수혁 소령이 우리나라에 애정을 가지고 머무는 동안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그의 부재 상황을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또한 에스퍼가 영원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고, 강수혁 소령 역시 유한한 존재이기에 그에게만 기대서는 안 됩니다. 국방에 지속적인 투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에스퍼 병력을 계속해서 지원하여 제2, 제3의 강수혁을 만들어 국방력 손실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장선욱은 끝까지 특작부에 대한 투자를 주장했고 여당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내세울 것이 없었던 야당 의원들이 더 이상 말꼬리를 잡지 못하자 그렇게 감사가 끝이 났다.
한편, 국회방송은 사상 초유의 관심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국회방송의 인터넷 생중계 채널은 순식간에 몇십 만 명의 시청자가 몰렸고 채팅창은 발언하는 국회의원을 비출 때마다 중계 똑바로 하라는 악플이 달렸다. 심지어는 방송국으로 항의 전화를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PD는 다급하게 달려와 화면 조정을 지시하는 국장의 감시 아래 감사가 이루어지는 내내 실시간 중계 화면 한쪽에 강수혁과 김윤조를 띄워야만 했다.
그 덕에 웬만한 영화배우 뺨치는 강렬한 인상의 미남과 그를 가까이에서 보조하는 두부상의 미남이 감사 현장을 장악하고 마구 휘젓는 영상이 각종 클립으로 편집되어 SNS를 강타했다. 뉴스에도 기자들의 스틸 샷이 쉼 없이 올라오면서 가장 많이 본 뉴스란을 완전히 도배했다.
강수혁은 F형 게이트 사건 이후로 계속해서 유명세 상한가를 찍고 있었기에 인기의 체감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다. 이번 국회 감사의 스타는 바로 김윤조였다.
딱딱한 프로필 사진과 이름 나이 외에는 하나도 알려진 것이 없는 일반인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협박을 일삼는 위험한 트리플 S급 에스퍼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서 크게 화제가 되었을뿐더러, 외모에 엄격한 국민 기준을 단번에 통과하여 온갖 미디어에 오르내렸다. 특히나 국회 감사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중에 강수혁과 함께 걸어 나오는 짤막한 뉴스 클립 조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널었다.
-둘 다 다리 왤케 길어?
-내가 입으면 땅개 쟤들이 입으면 모델
-덩치 케미 오진다 진짜;;;;
-수혁이 형, 우리 누나가 형한테 질척대고 싶대서 내가 처리했어
-내 애인 1호와 내 남편 1호가 사이 좋아서 참 행복해요^^
-└술 취했으면 들어가서 주무세요
동영상 댓글엔 남녀 막론하고 주접이 한창이었다.
대중을 사로잡은 둘의 매력 포인트는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공식적인 감사 자리에서도 거침없이 구는 자신만만한 태도와 함께 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강수혁의 플러스 포인트였고 무엇보다 국가 전력의 70퍼센트 담당설이 공식화되면서 어마어마한 경외심을 불러왔다. 더불어 그 정도로 싸가지 말아 먹은 에스퍼가 파트너인 가이드를 매우 의식하며 사소한 지시도 잘 따르는 점이 뭇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제가 썩은 건가요? 있지도 않은 드라마가 막 펼쳐져
-강수혁 남편감으로 완벽 그 자체 같음 다른 사람에겐 까칠하고 파트너에게만 완전 다정해 상남자의 표본
-김윤조 애인은 되게 힘들겠다 강수혁이랑 경쟁해야하잖아 아무리 남자라도 저런 포스를 어떻게 이겨 나는 포기
-└김 가이드 애인 있어요?
-└└ 있지 않을까요? 저 외모에 엘리트인데
-강 에스퍼도 애인 있나? 에스퍼는 일반인이랑 잘 안 사귀던데
-누구든 국가 안구 복지를 위해서 2세를 남겨주길 안되면 정자라도 보관해
정작 당사자들은 그에 관한 자각이 없었다. 뉴스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은 비서 장교뿐이었다.
“이제 국정 감사 끝났으니까 놀아도 되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강수혁이 대뜸 말했다. 장선욱은 인상을 쓰면서도 국회 놈들이라는 거대한 똥 덩어리에게 빅 엿을 선사한 망나니의 공로를 인정해 주었다.
“군복은 눈에 띄니까 벗어 놓고 나가.”
군 이미지를 걱정한 장선욱이 환복을 주문했다.
“훈련복 입으라고? 아님 벌거벗으라고?”
가지고 온 옷이 전혀 없었다. 윤조도 그 부분이 걱정이었다.
“예모와 상의만 벗어 놓고 나가. 그리고 밖에서 하나 사 입어. 저 앞에 백화점 있어.”
장선욱이 귀찮은 듯 손짓했다. 아무런 생각 없는 강수혁은 당장 상의를 벗고 나가려고 했으나 윤조는 아니었다. 강수혁이 건네주는 상의와 제 상의를 소파에 놓은 후에 장선욱에게 다가갔다.
“뭐?”
빤히 보는 윤조를 향해 장선욱이 물었다.
“의복 구매비는 어떻게 할까요?”
“네 돈 써.”
“급하게 오느라 개인 단말기 두고 왔습니다만.”
“에이 씨. 내 카드 줘.”
인상을 쓴 장선욱이 비서 장교를 향해 턱짓했다. 그는 품에서 다목적 소형 단말기를 꺼냈다. 중장 카드를 불러들이더니 곧바로 윤조의 지문을 등록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윤조가 씩 웃었다.
“망할 도둑놈들.”
“적당히 쓰겠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 양복을 맞출 수 있으면 맞추고. 저놈은 순 군복뿐이야.”
장선욱이 강수혁을 보면서 지겹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꼰대가 웬일이야? 순 짠돌이가 옷도 사 주고? 왜 이래, 죽을 날 받아 놨어?”
“야! 이 새끼야! 싫으면 관둬!”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윤조는 카드를 냉큼 주머니에 넣은 후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강수혁을 문 쪽으로 떠밀었다.
“단말기 신경 쓰십시오. 유사시 그쪽으로 연락합니다.”
“알겠습니다.”
비서 장교의 배웅을 받으며 호텔 방을 나섰다. 1층 로비를 지나 드라이브 웨이에 들어서자마자 수혁이 윤조의 허리를 잡고 물었다.
“어느 쪽이야?”
“걸어갑니다.”
“음?”
“여기 보는 눈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냥 걸어갑니다. 한 블록 옆이에요.”
받은 단말기로 지도를 확인하면서 대답했다.
“다리 안 아프겠어?”
“저 특수부대 출신 군인입니다. 조금 걷는다고 안 지칩니다.”
이상한 질문에 윤조가 인상을 썼다. 그러자
“연두부라 지칠 줄 알았지.”
“어디까지나 소령님 대비 그런 거지 일반인과 비교하면 강합니다.”
“알았어. 그럼 자.”
허리를 놓은 강수혁이 이번에는 손을 내밀었다.
“이건 뭔데요?”
“손잡아.”
“예?”
“사람 많은 데서 너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
“미쳤습니까? 가족끼리 낮에는 이런 짓 안 한다고 말씀드렸죠?”
“아니 손잡는 게 뭐 어떻다고 그래.”
“밖에선 안 합니다.”
윤조는 내밀어진 손을 쌩 무시하고 척척 걸어갔다.
“너무하네.”
강수혁이 툴툴대면서 따라왔다.
호텔은 고급인 만큼 진입로를 비롯한 마당이 제법 넓어서 이용객 대부분이 차량으로 로비 앞까지 이동했다. 덕분에 밖으로 나가는 인도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시선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강수혁 소령이다!”
“헉! 어디? 어디?”
군복 상의를 두고 나왔으나 워낙 튀는 안면과 거구를 소유한지라 차를 타고 이동하던 사람들이 그를 단번에 알아봤다. 차창이 내려가고 대신에 휴대용 단말기가 내밀어졌다. 연신 찍어대는 사람도 있고 손을 내밀어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잘생겼어요!”
“멋있어요!”
심지어 서행하는 차에서 내린 사람도 있었다. 일반인이기에 강수혁은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지만, 신난 몇몇이 달려들어 악수를 청하려 들었다.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윤조가 나섰다.
“악수 좀 해 줘요.”
“에스퍼는 일반인 접촉 불가입니다. 악수만 해도 다칠 수 있습니다.”
“아.”
다친다는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대신에 수혁의 사진을 계속해서 찍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윤조는 깔끔하게 인사를 하고 강수혁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사람들을 지나쳐 호텔 초입을 완전히 벗어날 무렵 강수혁이 윤조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말했어? 악수한다고 안 다쳐. 지금은 컨트롤이 잘 되거든.”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럼?”
“모르는 사람이 내 에스퍼에게 손대는 거 싫습니다.”
윤조의 대답에 강수혁의 입이 시원하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