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아니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길게 말하래서 길게 말함.”
“이봐요, 강수혁 소령!”
언성이 점차 높아지더니 곧 삿대질이 날아들었다. 어떻게든 강수혁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야당 의원들은 얼씨구나 불을 더 지피려 들었다.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예의를 갖추세요!”
“이런 무례한 사람을 국민적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특작부의 기강이 이렇게 해이해도 됩니까?”
아주 야단법석이었다. 사회를 맡은 여당 의원이 나무 봉을 내려치며 주변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그때 장선욱이 끼어들었다.
“강 소령에게 말씀하실 때는 표현을 정확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를 질타하는 겁니까?”
“질타가 아니라 강수혁 소령을 잘 모르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장선욱이 반드르르한 톤으로 답했다.
“조용히들 하시고, 일단 장선욱 중장에게 설명을 듣겠습니다.”
“장 중장, 똑바로 해명하십시오. 그게 아니면 특작부 내 기강 문제가 될 겁니다.”
여당 의원이 어시스트 하자 야당 의원이 으름장을 놓았다.
“방금 보셨다시피, 강수혁 소령은 트리플 S급인 만큼 여러모로 특별합니다. 사고방식이 일반인과는 전혀 다르며, 성격 또한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트리플 S급인 만큼 평범의 범위에서 많이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희 특작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가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여기 있는 김윤조 준위입니다.”
장선욱이 갑자기 윤조를 소개했다. 모든 시선이 일시에 이쪽으로 몰렸고, 윤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까딱 숙였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특작부 소속 가이드 준위 김윤조입니다.”
“이 자연스러움, 보셨지요? 김 준위는 일반인에 특수부대 하사 출신입니다.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이 일반인입니다. 그렇기에 강수혁 소령의 특별한 점을 잘 이해하고 또 군 체계에 잘 들어맞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가이드 프로젝트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가이드의 강점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긴 했다. 하지만 장선욱의 태도는 장성급 군인이 아니라 꼭 경험 많은 쇼핑 호스트 같았다.
“군 입대 하기 전에는 명문대 재학생이었고 군 입대를 하고 나서도 각종 작전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이런 재원이 가이드가 되어서 강수혁 소령을 서포트한 이후로 강 소령의 능력 컨트롤이 특별히 향상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김윤조 준위에게 물어봐야겠는데요. 개인적으로 강수혁 소령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여당의 두 번째 어시스트가 들어왔다. 윤조는 냉큼 마이크를 켰다.
“강수혁 소령은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트리플 S급으로, 단독으로 G형 게이트와 F형 게이트를 처리할 화력이 있다고 많은 전문가가 판단하고 있습니다.”
“단독 행동이 가능하다는 말은 단독 행동을 지지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강수혁 소령이 대단한 화력을 보유한 것은 사실이나, 방금 장선욱 중장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인간과는 다소 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 화력을 개인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는 건 곤란합니다.”
전형적인 국정 감사답게 아까 했던 말을 하고 같은 발을 말 또 해야 했다.
이번엔 아까와 달리 강수혁이 김윤조를 빤히 봤다. 그러곤 상체를 숙이고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너무한 거 아니야? 그건 네 얘기잖아.”
얼른 마이크 끝을 잡은 김윤조는 강수혁에게 다시 속삭였다.
“이 답변도 예상안에 있었습니다. 다르게 말하고 싶으시면 그때 수정하셨어야죠.”
“이따가 두고 보자. 인간과 거리가 먼 에스퍼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지.”
조용히 읊조린 강수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상체를 세웠다.
“둘이서 뭘 그렇게 속삭입니까? 국회 감사를 자꾸 우습게 보고 있어요!”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강수혁 소령의 기본적인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김윤조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놨다. 장선욱이 하는 짓과 똑같아서 수혁은 내심 정치 감각이라는 게 거짓말을 잘하는 능력인가 했다.
“강수혁이 그렇게 비인간적이라면 우리 군에 왜 둡니까?”
이번엔 변화구가 들어왔다. 국제 공동 관리 쪽으로 유도하려는 심산 같았다.
“우리 군에 두지 않겠다면,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장선욱이 대답했다.
“강수혁은 우리 군이 가진 최대 전력입니다. 관리가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해내야지, 어렵다고 놓아버리면 우리 군 전력 70퍼센트를 포기하자는 얘깁니다. 강수혁 소령의 부재 시 국내 상공에 다시 게이트가 나타나면 누가 막으러 갑니까?”
“그건 나중에 논의하고, 일단 우리 군이 강수혁 소령을 감당할 수 없다면 국제 공동 관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방금 질문한 의원은 우리나라 국방력 강화를 대단히 싫어하는 모 섬나라와 연이 깊다고 비서 장교가 개인 스크린으로 메시지를 띄웠다. 하여간 외국 자금줄의 사주를 받은 놈들이 양당을 막론하고 너무 많다.
“이 자리는 강 소령의 거취를 정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장선욱이 반론했다.
“국정 감사에서는 뭐든 다 물어볼 수 있습니다. 국민에게는 알 권리가 있습니다.”
망할 놈의 국민 타령. 정말로 국민이 궁금한 건 강수혁이 얼마나 빠르게 날 수 있는지, 정확한 신체 스펙이 어떻게 되는지,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가장 싫어하는 외계 괴물은 어떤 타입인지, 작전에 나서지 않는 평상시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혹은 부먹인지 찍먹인지 같은 질문일 가능성이 크다.
“강수혁 소령, 대답하십시오.”
야당 의원들이 다그쳤다. 하지만 질문이 너무 어지럽고 편파적이고 제멋대로 굴러가서 뭘 어떻게 대답하라는 건지도 불명확했다.
동문서답이든 뭐든 이쪽에 유리한 발언을 하기 위해서 김윤조가 마이크를 켤 때였다.
“비켜 봐.”
강수혁이 윤조를 살짝 밀치며 마이크를 차지했다.
“제일 좋아하는 건 김치찌개. 최근에는 된장찌개가 점점 좋아지는 중.”
또 헛소리 발사 중이었다. 장선욱은 이제 손깍지를 낀 채로 묵묵히 정면만 응시했고 비서 장교는 그저 스크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김윤조의 손이 수혁의 탄탄한 허벅지를 꽉 잡았으나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소용이 없었다.
“이봐요, 강수혁 소령! 아까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 무례하잖아요! 국민 앞에서 이게 무슨 짓……!”
반말을 이어 가는 강수혁에게 누군가가 삿대질을 하려다가 갑자기 차렷 자세가 되었다. 딱딱하게 굳은 모습이 대단히 어색했다. 김윤조는 강수혁이 능력을 사용했음을 눈치챘다.
“국민 핑계 대지 말고 잘 들어. 딱 한 번만 말한다.”
회의장 주변 공기가 급격하게 무거워지면서 위화감이 감돌았다.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가해지는 강한 압박에 여야를 막론한 의원도, 그들의 비서관과 국회 직원들, 그리고 중계하던 방송인들까지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트리플 S급 에스퍼에게서 발산하는 은은한 파동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침착을 유지하는 건 특작부 소속뿐이었다.
김윤조를 비롯하여 특작부 일행 중 누구 하나 강수혁을 제지하지 않았다. 능력을 발동시킨 이상, 괜히 말려 봐야 소동만 커진다. 차라리 망나니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두고 뒷수습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사위를 잠재운 강수혁은 불량한 태도로 시니컬한 말투를 이어 갔다.
“내가 이 망할 나라에 붙어 있는 이유는 딱 하나, 쌀밥에 된장 먹으면서 자라서다. 그런데 오래 먹으니까 슬슬 질리더라고. 아예 다른 동네 밥 먹으러 아주 뜰까 했는데 말이지. 가이드 김윤조가 생기면서 일단 자리 굳혔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경력이 풍부한 카메라 감독이었다. 그의 방송 카메라가 강수혁에게 맞춰지면서 잘난 낯짝이 국회방송 화면 전체를 차지했다.
“그리고 단독 작전 수행에 관해 자꾸 묻는데 8년 전 G형 게이트, 그걸 겪고도 모르나?”
에스퍼는 냉랭한 시선으로 주변을 차분히 돌아봤다.
“단독으로 게이트를 닫을 수 있다. G형도 가능하지. 대신 내 전부를 쏟아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주의력을 분산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게이트 유효 반경 내에 있는 인간이 전멸하든 말든 신경 못 쓴단 얘기다. 참고로 제주도 함대 전체가 F형 게이트 유효 반경 내였다. 거기 그쪽.”
강수혁이 가장 목소리가 높았던 야당 의원을 콕 찍어 가리켰다.
“제주도함을 조금 파손한 걸로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 연두부……가 아니라 김윤조가 스스로 희생하여 짜낸 작전이 아니었다면 파손이 아니라 완전 소실을 걱정했을 거다. 그러니 계산기를 두드릴 거면 똑바로 하기 바란다.”
“지금…… 국민 대표를 상대로 협박하는 겁니까?”
썩어도 준치라고 꼴에 부릴 배짱이 남았는지 지적당한 야당 의원이 구질구질한 반격을 감행했다.
“국민 대표라. 솔직히 난 국민이 누군지 모르겠는걸? 따뜻한 밥을 먹게 해 줘서 딴에는 이 땅 소속으로 살고 있는데 말이야. 선후 계산 못 하고 앞뒤 분간 못 하는 멍청이들을 대표랍시고 자꾸 성가시게 나오면 김윤조 보쌈해서 아예 떠나는 수가 있어. 다시 한번 말하는데 계산기 잘 두드려.”
“국민과 헌법이 무섭지 않습니까? 탈영 예고이며 동시에 국민 협박, 모독입니다. 기어이 죗값을 치러야 정신을 차릴 겁니까?”
“하. 끝까지 정신 못 차리네. 죗값? 그래. 주고 싶으면 어디 한번 줘 봐. 그런데 나를 상대로 어떻게 줄 건데?”
“일개 소령이 국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까?”
그때 강수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김윤조.”
“네.”
“아까 내 화력이 국군 전체 몇 프로라고 했지?”
“70퍼센트입니다. 최근 벌어진 전투를 바탕으로 가장 보수적으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과반이 넘는데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시 나를 제재할 방법이 있나?”
“소령님의 협조가 전제되지 않는 이상 군을 총동원해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대답에 좌중이 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