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이놈 봐라?”
손을 치켜든 중년 남자는 아연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윤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안 놔?”
정신 차린 쓰리 스타가 눈알을 부라렸다.
장선욱은 평소 계급장 떼고 놀기 일쑤인 심 박사나 최정 대령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수작전사령부의 전권을 쥔 최고 사령관이자, 천하의 강수혁 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장선욱의 손목을 잡는 데는 윤조 또한 남다른 각오를 해야 했다.
내심 저질렀다는 당혹감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대든 김에 확실하게 해 두는 편이 백번 낫다.
“강 소령님에 대한 부당한 구타를 멈추신다고 약속하신다면 놓겠습니다.”
기가 막힌 듯 헛바람을 들이킨 장선욱의 노기가 다른 이를 향했다.
“하극상이야? 강수혁이, 네가 가르쳤어?”
“아닌데.”
강수혁은 생사람 잡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얘 머리 고쳤다고 들었을 거 아냐. 이제 가이드로서 제대로 에스퍼를 지키겠다나 뭐라나. 어쨌든 나한테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안 봐줄 건가 봐. 나 이렇게 만들었다고 아줌마한테도 엄청나게 화냈거든.”
설명투에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솔직히 엄청나게 화낸 적은 없었다. 폭력적인 대우에 항의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윤조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장선욱이 팔에 힘을 뺐다. 그에 김윤조도 손아귀를 풀었다.
“이게 뭔 개뼉따구 같은 소리야.”
당황한 장군은 어이가 없는 눈빛으로 강수혁과 윤조를 번갈아 봤다.
“늬들, 페어링 해제했잖아.”
“그것과 관계없습니다. 저는 현재 대한민국 유일의 가이드로서, 국군 소속 에스퍼 보호와 지원이 최우선 목표입니다. 중장님께서 군인으로서 국민 보호의 마땅한 의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허허.”
기가 막힌 장선욱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원론적으로 나오신다? 보기보다 정치에 재능이 있어, 김 준위.”
신문 방망이를 조물조물 만지던 장선욱은 질린 듯이 뒤를 돌아섰다. 막 거리를 벌리는가 싶더니 별안간 신문 방망이를 다시 휘둘렀다.
“그런데 겁대가리가 없지!”
뻑! 뻑!
이번에는 김윤조까지 얻어맞았다. 그에 강수혁이 버럭거렸다.
“이 대머리 꿈나무 아저씨야! 툭하면 아파서 인큐 신세 지는 애인데 어디 때릴 데가 있다고. 차라리 나를 때려!”
“그래, 널 때려 주마.”
성이 끝까지 차오른 장선욱은 신문 방망이로 망할 놈의 입을 아주 얄밉게 난타했다.
“얼굴은 안 됩니다.”
김윤조가 끼어들어 강수혁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마크했다.
“망나니 정신 차리게 하라고 가이드를 만들어 놨더니. 이것들이 아주 등신 짝짜꿍을 벌이는구나. 뭐? 국민 보호에 의무가 있어? 시도 때도 없는 지랄에 상관 복장 터져 뒈지는 건 괜찮고? 아주 비 오는 날 먼지 풀풀 나게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더욱 화가 난 장선욱은 신문 방망이를 술 취한 망나니처럼 휘둘렀다. 어차피 대단한 타격도 아니기에 윤조는 강수혁의 두부를 얼싸안은 채로 등을 내줬다. 그러자 강수혁이 두 팔로 윤조의 등을 방어하려 들었으나, 마비가 덜 풀려 허우적대기만 했다.
성난 쓰리 스타가 슬슬 벗겨지는 정수리에 땀이 흥건하게 맺히도록 날뛰는 사이, 신문 방망이가 다 터져서 걸레짝이 되었다. 사바에 흩날리는 회색 쪼가리 속에서 강수혁은 마비가 덜 풀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이드를 향해 속삭였다.
“많이 아프지?”
제 어깨를 누르는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윤조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요. 소령님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깟 거 전혀 안 아픕니다.”
“김윤조.”
뭐가 그렇게 감격에 겨운지 에스퍼는 움직이지 않는 팔을 들려고 애를 썼다.
“나도 좋아해.”
서로를 위해 어떤 역경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이 이런 걸까. 윤조는 저를 향해 전신을 내던지는 상대를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애틋함을 확인하는 사이 별 세 개짜리 역경이 거친 숨을 토했다.
“야, 이 화상 새끼들아! 죽어! 죽어!”
힘이 먼저 빠진 건 아무래도 나이를 더 먹은 장선욱 쪽이었다.
형체도 제대로 남지 않은 신문 방망이를 내던진 그는 완연히 지친 표정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혼을 다해 분노를 불태운 노장의 실루엣이 어쩐지 흐릿했다.
“이따가 11시 30분. 국회 들어갈 거야. 둘 다 같이. 준비해.”
“네?”
이산가족처럼 부둥켜안고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장선욱을 쳐다봤다.
갑자기 확 늙어 버린 장선욱이 길고 긴 한숨을 토했다.
F형 게이트 이후에 특작부 특히 강수혁과 김윤조는 정치계의 화두였다. 아니 국가적인 화제였다. 다만 특수부대 소속이라 기본적으로 기밀이기에 둘에 관한 미디어의 과도한 관심을 최대한 막고 있었다.
각종 정치 세력은 특작부를 놓고 계산에 들어갔고 그 덕분에 장선욱은 내내 국회에 들락여야 했다. 공식적인 국정 감사 자리가 아니라도 은밀하게 정치계 큰손과 물밑 접촉을 하고 또 국방부 및 각종 부처에 서류를 대고, 비공식적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힘겨운 문제는 아무래도 미국과의 국사 협정이었다. 강수혁의 위력을 직접 확인한 그들은 경제, 정치, 외교 다방면으로 압박을 했다. 목적은 하나였다.
강수혁을 내놓으라는 것.
물론 미국이 대놓고 가지진 못하고 태평양 연합에 무기한 파견하는 형식이었다. 태평양 연합은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기에 파견은 곧 강수혁에 대한 지배권을 미국에 넘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김윤조에 관해서는 국제 가이드 협약에 따라 정보를 공유하라고 압박이 들어왔다. 이쪽의 총대를 맨 것은 유럽 쪽이었다. 정보 공유 목적도 있겠지만, 미국의 정치 외교적 부담을 분산하기 위해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날뛰고 있는 건 아무래도 중국과 일본이었다. 경제적으로 밀접해도 군사적으로 서로서로 적군이나 마찬가지인 동북아 사이의 무력 균형을 한방에 깨트리는 게임 체인저를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들은 강수혁에 대한 영향력을 어떻게든 발휘하기 위해 미국과 한 손을 잡았다.
거칠게 말해 전 세계가 강수혁을 공동 관리하자고 난리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래 버티긴 힘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와야 하는데 내부의 적이 그걸 자꾸 방해했다.
얼토당토않은 요구에 대통령은 당연히 단칼에 거절하려 들었으나, 미국과 밀월 관계가 탄탄한 여당 대표 이청규가 자꾸 강수혁을 파견하자고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작부는 강수혁 자체가 논제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아 왔으나, 결국엔 미국 동맹과 태평양 연합을 둘러싼 국정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청규 탓이었다. 태평양 연합 강화와 국제 영향력을 내세워 차기 대통령으로 올라설 욕심이었다.
이청규가 하고 있는 가장 큰 착각은 강수혁이 그냥 힘 좀 센 군인이라고 여기는 점이었다. 이렇게 된 거, 강수혁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게 보여 주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나 싶었다.
“아랫목에 앉아서 입만 나불거리는 등신 새끼들이 강수혁이 소환하라고 발광을 하는 거, 지금까지 막아 왔는데 말이야. 슬슬 말로 하는 것도 힘에 부쳐서 말이지. 기왕 온 김에 얼굴만 비춰. 기선 제압용으로.”
“귀찮아.”
에스퍼의 어린이 같은 대답에 장선욱이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힘이 훅 빠진 눈빛이 섬뜩했다. 재빠르게 윤조가 나섰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늙은 장군의 시선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런데 왜 전투복 차림이야? 군복은?”
“갑자기 불러서 씻지도 못하고 왔어.”
강수혁의 대답에 장선욱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마비되는 바람에 비행 불가능하여 차량으로 이동했습니다.”
다시 윤조가 냉큼 덧붙였다.
“여기서 씻고 준비해.”
장선욱이 테이블 위에 있는 개인 통신기를 집어 비서 장교에게 연락했다.
“어이, 정복 있지? 강수혁이 하고, 김윤조. 치수 맞게 준비해서 올려 보내. 11시에 출발할 수 있게.”
지시 후에 장선욱은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비서 장교가 나타나 두 사람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보안을 위해 중복 예약한 객실이었다.
일단 너무 찝찝했으므로 바로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커다란 욕조라서 둘이 들어가고도 남았다.
슬슬 움직일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 말단이 무딘 강수혁을 대신하여 윤조가 전투복 탈의를 도왔다.
강수혁을 욕조에 밀어 넣은 후 온수를 틀고 윤조도 그 자리에서 전투복을 벗었다. 물이 슬슬 차오르는 욕조에 들어가자 강수혁이 반색했다.
“같이 씻게?”
“아직 마비가 덜 풀렸지 않습니까. 익사체는 사양입니다.”
“전에는 말이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더러웠거든.”
강수혁이 힘없는 손으로 반대편에 앉은 윤조의 발목을 건드렸다.
“지금은 안 그렇다는 뜻입니까?”
“음. 이제는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겠으니까. 내가 물에 빠지는 게 싫은 거잖아.”
정답이었다. 괜히 수도꼭지를 만졌다. 그러는 사이 상대의 긴 손가락이 윤조의 발꿈치를 휘감았다. 구부러진 무릎 관절을 펴서 상대의 탄탄한 허벅지 위에 발을 올렸다.
“아줌마는 그렇다고 해도 꼰대한테도 대들지는 몰랐어.”
“말로 해도 되는데 때리니까요.”
당연한 얘기를. 윤조는 욕조에 두 팔을 턱 걸쳤다.
“그 누구라도 소령님께 함부로 손대는 건 용납 못 합니다. 이번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멋있다, 김윤조.”
거친 폭력 속에서 자란 에스퍼는 아이처럼 웃으면서 제 가이드의 발을 가지고 물장난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