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평소 심나연은 부대에 머물 경우 퇴근과 동시에 통신기기의 알림을 죽여 놓곤 했다. 김윤조 외에 다른 에스퍼들은 담당 의료진과 연구진이 따로 있기에 심나연이 직접 긴급 출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개인 GPS가 작동 중이기에 정 긴급하면 직접 숙소로 찾아오겠거니 했다.
어제 퇴근할 때도 별 탈 있을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김윤조는 햇병아리들 가르치는 중이라 사고 칠 일이 없고, 사소한 부상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재생 프로그램 돌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을 뿐인데.
동도 트지 않는 이른 새벽.
마지막 불침번의 교대가 이루어지는 시각에 심나연은 연구실로 불려 나왔다. 정확하게는 헌병대가 가져다 놨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한 채로 설명을 기다리는 중에 체육복에 군용 깔깔이만 덜렁 입은 최정이 똑같이 잠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강 소령이랑 김 준위랑 화해했나 봐.”
“……뭐?”
“장교 1단지에서 민원이 쏟아져. 아파트 무너진다고.”
“그래서?”
“중장님이 지금 국회 참석차 자리에 안 계시니까 네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장교 아파트에 들어간 걸 중장님이 알면…… 알지?”
“내가 뭘 어떻게 해?”
“불러서 욕이라도 좀 해. 네 특기잖아.”
무책임한 소리만 남기고 최정은 성난 장교들을 달래러 헌병대와 함께 단지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나연의 앞에 환장할 바퀴벌레 한 쌍이 나타났다.
꼭두새벽부터 전투복을 차려입고 들어오는 둘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원래도 비행할 때면 강수혁이 김윤조를 신줏단지 모시듯 끌어안고 다니긴 했는데, 연구실 바닥에 잘 착지해 놓고서도 김윤조를 놓지를 않았다.
이건 또 뭔 지랄들이람. 화해했다니 뭐 나쁜 일은 아니다. 또 무슨 짓으로 장교 아파트를 뒤집어 놓았는지 자세히 듣지 않아도 훤했다.
“재생 프로그램은 알아서 돌려.”
최정이 당부한 말과 달리 새벽이라 화낼 기운도 없는 심나연은 간이 의자에 쭈그려 앉은 채로 턱으로 인큐베이터를 가리켰다. 그런데 강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재생 말고. 다른 거.”
“뭐?”
심나연은 사정만 빨리 청취하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무슨 일이든 나중에 하자고 할 셈이었다.
“우리 페어링 다시 할 거야.”
망나니가 뜻밖의 개소리를 찍찍 뱉었다. 자다가 깨서 멍한 중에도 기가 막혀서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금 말한 거, 다시 말해 봐.”
“김윤조랑 다시 페어링한다고.”
뻔뻔한 개망나니 놈은 이쪽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검은 전투복에 하얀 전투복을 아주 결혼 예복처럼 차려입은 망할 놈들이 13미터짜리 특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벙커형 지하 연구실에 있으면서 서로를 놓칠세라 깍지 손을 꼭 잡고도 모자라 서로 들러붙을 기세로 끌어안고 있었다.
준위 놈은 그나마 이쪽의 눈치를 보면서 상대를 밀어내려고 하는데, 망할 소령 새끼가 눈치도 없이 자꾸 제 짝지를 끌어당겼다. 서서히 정신이 들면서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페어링 해제한 지 만 72시간이 간신히 지났거든?”
“우리 화해했어.”
뭔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강수혁이 뻔뻔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반대로 심나연의 안면은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불편한 심기를 파악한 김윤조가 팔꿈치로 옆에 선 등신의 옆구리를 팍 찍었다.
“왜 그래, 자기야?”
“얼씨구?”
심나연이 감탄하자 김윤조는 조용히 시선을 대각선 아래로 깔았다. 귀가 빨개졌는데, 그때 가이드를 자동으로 인식한 연구실 AI가 현황 그래프에 수치심 표시를 띄웠다.
“우리 이제 영원히 함께, 같이 살기로 했어. 김윤조가 어제 청혼했거든. 이따가 반지 사러 갈 거야. 그 전에 페어링부터 다시 살리려고 하니까 협조 좀 해.”
아니 이게 뭔 외계 괴물 강강술래 하는 소리야. 자기가 잠이 덜 깼나 싶었다. 심나연은 손바닥으로 제 이마를 팍팍 두 번 때리고 시선을 김윤조에게 던졌다.
“방금 내가 환청을 들은 것 같은데. 김윤조, 너도 들었어?”
“네……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딴에는 단정하게 답한다고 하지만 눈빛이 사정없이 떨리는 게, 본인도 뭔가 한참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는 티가 팍팍 났다. 반대로 개망나니 상판에만 흐뭇 만발이었다.
“큰일이네, 이거. 우리 부대에 지랄염병이 유행하나 보다.”
“죄송합니다.”
“아니 뭐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어쨌든 둘이 화해했다고? 알았으니까 이만 썩 꺼져.”
심나연은 지긋지긋함을 담아 입구 쪽으로 턱짓했다.
“아줌마. 못 들었어? 우리 다시 페어링한다고.”
“안 돼. 안 해 줘. 못 해 줘. 돌아가.”
짜증이 치민 심나연은 망할 새끼를 노려봤다.
“왜애?”
미친 망나니 새끼도 덩달아 눈에 불을 켰다.
“강수혁 소령님. 자네 애인의 상태 이상을 제때 눈치도 못 채고 희희낙락 휴가 갔다가 느닷없이 돌아와서 내 책임도 아닌 일을, 되돌려 놓으라고 아주 땡깡을, 땡깡을 있는 대로 부리고 내 속을 환장하게 뒤집어 놓으신 지 한 달도 안 되었어요. 한 달이 뭡니까? 열흘은 되었나? 그리고 엄연히 있는 절차 무시하고 바로 꼰대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사람 우습게 만들었지? 그런데 내가 왜 그쪽 말을 들어야 하지?”
“지난 일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맙시다. 넘치는 인류애 이럴 때 좀 발휘하지?”
망나니 새끼가 뻔뻔하게 나왔다.
“이일류우애애?”
“언제는 이모라고도 했잖아. 이모답게 좀, 이럴 때 너그럽게 편이 되어 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망할 놈이 뚫린 입이라고 막 짖어 댄다. 벅차오르는 분통을 감당치 못한 심 박사가 갑자기 팔을 둥둥 걷었다.
“강수혁, 이리 와. 오늘 너, 내가 책임지고 보낸다.”
“어디로?”
“저세상으로.”
사자후와 함께 심 박사가 들고 있던 패드를 패대기쳤다. 이렇게 사망한 패드가 올해만 해도 벌써 여섯, 아니 일곱 대였다.
심 박사가 대형 콘솔 아래서 아주 크고 묵직한 케이스를 끌어냈다. 척 보기에도 라이플 보관용이었다. 그 안엔 프로토타입으로 보이는 신형 샷 건이 있었다. 함께 보관된 탄약은 일반 총탄이 아니라 거대한 주사기였다. 은색 실린더 끝에는 식당 젓가락만큼 크고 굵은 바늘이 위험하게 번쩍였다.
철컥철컥.
평생 패드보다 무거운 물건은 들어 본 일이 없는 두뇌형 에스퍼가 주사기를 아주 능숙하게 장전했다. 어마어마한 구경을 자랑하는 더블 배럴 총구 끝이 1미터보다 짧은 거리에 있는 에스퍼를 향했다.
탕!
무지막지한 크기라도 근본적으로 주사 총이니 공기 가압식일 텐데도 발사 충격이 권총만큼 셌다. 그만큼 힘도, 속도도 빨랐다. 물론 트리플 S급 에스퍼는 날아오는 주사기보다 날쌨다.
쾅!
날아간 주사기는 벽에 서 있던 철제 캐비닛을 작살 냈다. 주사 총이 아니라 그냥 살상용 총이라고 봐도 무방한 위력이었다.
“어쭈, 피해?”
“굼벵이처럼 느린데 어떻게 맞아.”
“그래?”
강수혁의 시답잖은 조롱에 열받은 심나연은 총구를 정확하게 김윤조에게 겨눴다.
“아줌마, 미쳤어?”
인정사정 두지 않고 발사된 두 번째 주사를 막으려고 강수혁이 손바닥을 급하게 내밀었다. 실린더 부분이 손바닥에 걸려서 멈추긴 했다. 대신 두껍고 긴 바늘은 강수혁의 손바닥을 완전히 꿰뚫어 그 서슬 퍼런 끝부분을 김윤조 눈앞에까지 들이밀었다. 김윤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저럴 줄 알고 김윤조를 쏜 것이긴 한데 막상 저렇게 막아 내니 희한하게 배알이 뒤틀렸다. 말썽꾸러기 아들을 갖은 고생 끝에 다 키워 놨더니 제 애인만 먼저 챙기는 기분이랄까. 동시에 실컷 고생해서 키운 모범생 아들이 어디서 개망나니 같은 걸 인사차 데려온 느낌도 들었다. 하여간 열받았다. 망할 놈의 자식들.
거대한 주사가 꽂힌 손바닥을 들어 보인 강수혁이 콧방귀를 뀌었다. 손을 털어 주사를 털어낸 그는 조롱 조로 따지고 들었다.
“그런 장난감으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줌마, 우리 쉽게 가자, 응? ……어, 어어?”
말을 하다가 말고 강수혁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수혁의 이상 상태에 놀란 김윤조가 얼른 그를 부축했다.
“이거 왜 이래? 아줌마, 이거 뭐야?”
“언젠가 이럴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개발해 뒀지. 망나니 전용 마취제. 양키 놈들이 쓰던 특수 마취제를 고도로 농축한 베이스에 내가 개발한 양념도 좀 쳤어.”
샷 건 개머리판을 허리에 척 걸친 심 박사가 거만하게 턱을 쳐들었다.
말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김윤조는 비틀거리는 강수혁을 조심조심 바닥에 눕히더니 별안간 눈을 사납게 떴다.
“너무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대에서 갖은 고생만 도맡아서 하는 분인데.”
“뭐어? 부운? 김윤조, 지금 쟤더러 ‘분’이라고 했어? 그리고 고생을 누가 했다고 그래? 저놈 때문에 내가 고생이지.”
“이렇게 약물 쓰고 총 쏘고, 그러지 않으셔도 좋게 말로 하면 알아듣습니다. 소령님, 괜찮습니까?”
“아니. 안 괜찮아. 아프다, 김윤조. 나 아파.”
망할 놈이 가당치도 않은 엄살을 부려 댔다. 아프다는 말에 가이드 눈깔에서 거의 불꽃이 튀었다.
“박. 사. 님.”
어금니를 사리물고 음정을 딱딱 끊는 꼴에 심나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김윤조가? 제 뼈와 살을 갈아서 만들어 낸 피조물이 지금 누굴 상대로 눈깔을 부라리고 있는가. 그것도 하필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패도 모자란 망나니 편을 들면서.
“나가.”
“아니 이렇게 사람을 다치게 하고 그냥 쫓아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해독제라도 주세요.”
“그런 게 있겠냐? 다른 놈은 스치기만 해도 저세상행인 약물을 정통으로 처맞고도 살아서 입을 나불대고 있는데.”
김윤조의 항의를 간단하게 무시한 심나연은 빈 총을 다시 장전했다.
“박사님, 너무하십니다!”
“김윤조, 너도 한 대 맞을래?”
미간을 향한 총구를 보면서 김윤조는 냉큼 양손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지금 드린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해 주십시오.”
“아니 어차피 아줌마도 나더러 잘해 보라고 했잖아. 이렇게 잘해서 왔는데 왜 그래.”
입만 살아 있는 놈이 계속해서 따발따발 따졌다.
“염병하네. 이것들이 오냐오냐하니까 내가 아주 물로 보이지? 페어링은 죽어도 못 해 줘! 다시는 오지 마! 이 화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