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수혁이 캐나다 항모 갑판에 착륙하자마자 캐나다 해군이 우르를 마중 나왔다. 손에 풀차징된 개인용 레이저 건을 든 채로.
“인큐베이터로 안내해.”
수혁의 말에 상대측에서 누군가 나섰다.
-당신은 현재 캐나다 벤쿠버 항모 전단에 있습니다. 당신의 가이드와 그 담당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의 바른 기계음이 답했다. 자동 통역기였다.
“오는 중이야.”
초음속으로 비행한 건 사실상 수혁뿐이었다. 가속도로 인한 충격을 의식 없는 김윤조나 일반인 신체를 가진 심 박사가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곧 도착해.”
-가이드가 도착하기 전까지 이동 불가능합니다. 대기하십시오.
“너희 측 가이드 조정 관리자도 데려와.”
수혁은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캐나다 항모에서 운용하는 인큐베이터와 가이드 전문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캐나다 인큐베이터와 전문가를 탈취해 제주도로 귀함할 생각이었다.
-대기하십시오.
기계음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시간을 끌수록 수혁에게 불리했다.
“인큐베이터 내오라니까.”
시간 끌기 싫어서 수혁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멈추십시오. 한 번 더 움직이면 발포합니다. 이건 마지막 경고입니다.
캐나다 해군이 그를 겨냥한 레이저 건 격발 장치에 손가락을 걸었다.
“해보자는 건가.”
평상시에도 개인 화기는 피부에 약간의 화상을 남길 뿐이다. 좀 따갑다 싶으면 금방 재생이 끝난다.
현재는 그런 따끔한 느낌도 안 들 것이다. 극도로 활성화된 상태에서 빛 형태로 오버로드되는 에너지가 방어막 효과를 내기 때문이었다. 그걸 저 캐나다 머저리들은 아직 모른다.
연이은 전투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도에 이른 상태였다. 그런 수혁을 말리고 달랠 인간은 지금 망가진 인큐베이터에 들어 있다. 수혁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퉁.
그때 강수혁과 캐나다 해군 사이에 누군가 나타났다.
임성준이었다. 분명히 아군일 놈은 어이없게도 등을 캐나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딜 봐도 강수혁을 경계하는 태세였다.
“강 소령님. 김 준위를 위해서라도 참으세요. 우리에겐 캐나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세요.”
임성준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깜냥도 안 되는 놈의 주제넘은 충고에 강수혁은 어금니를 빠득 깨물었다.
뭉그러진 연두부 새끼를 살리기 위해서 이러고 있는 건데. 하지만 임성준이 우려하는 바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일단 김윤조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신원을 밝히십시오.
캐나다 해군의 요청에 임성준은 등을 이쪽도, 저쪽도 아닌 쪽으로 틀었다.
“한국 특작부 소속 중위 임성준. S급 에스퍼입니다. 강수혁 소령님을 막기 위해서 왔습니다.”
S급이라는 말에 캐나다 해군이 놀랐다.
-착함 허가는 가이드, 가이드 관리자, 그리고 비에스퍼 1명에 한정합니다. 둘 다 즉시 퇴거하십시오.
“한국군은 캐나다군과 충돌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하지만 이분은 어, 지금 페어링 가이드가 위급한 상태로,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이기에 제가 말리러 온 겁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임성준이 해명하는 동안, 캐나다 측 에스퍼 4명이 나타났다.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순간이동은 아니었다. 투명화 능력자가 있는 듯했다. 그중에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에이브리, 텔레패서입니다. 제가 의식 확인을 통해 신뢰성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텔레파시 능력자가 그렇듯 에이브리도 여자였다.
무턱대고 뇌를 뒤지지 않고, 육성으로 미리 물어보는 점에서 에이브리의 신중한 성격이 드러났다. 캐나다 측도 우리 측만큼이나 충돌을 염려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제 뇌를 살펴봐도 좋습니다. 하지만 강수혁 소령님은 안 됩니다. 텔레파시 저항력이 있습니다.”
-저는 A급 능력자입니다.
“저분은 S급도 못 뚫어요. 시도는 해도 됩니다만. 심기를 거스르면…… 그 이후 사태는 보장 못 합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당신부터.
원래 타군의 텔레파시 접촉은 극도로 제한되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런 제약에 얽매일 때가 아니었다.
에이브리가 텔레파시로 임성준을 조정해 어떤 짓을 벌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텔레파시에 저항력이 강한 강수혁이 극도로 활성화 상태에 있는 한, 혹시 모를 허튼짓에 대한 철저한 보복은 보장되어 있다. 그런 사실 또한 저 에이브리가 알아야 했다. 거리낌 없이 의식을 내어 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
임성준의 의식을 살핀 에이브리의 표정이 굳었다. 동시에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교의 안색도 굳었다. 병사들이 들었던 총구를 즉시 내렸다.
텔레파시를 통해 그들은 임성준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했다. 강수혁의 발광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일반 병사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주춤 뒤로 물러났다.
대신에 전투형으로 추정되는 에스퍼 넷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검은색 바탕의 전투복 위에 붉은 단풍잎 마크를 단 그들의 시선은 내내 강수혁에게 머물렀다. 일견 편안한 자세였으나, 전신에서 흐르는 예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장교가 앞장섰다.
임성준이 강수혁을 돌아봤다. 오버로드되는 빛이 약간 약해졌다. 그래도 건드리면 다 죽여 버리겠다는 태도는 여전했다. 캐나다 측도 그걸 이젠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일단 캐나다 측이 먼저 한발 물러선 상황이었다.
“강 소령님.”
임성준은 강수혁의 의사를 확인했다.
강수혁은 말없이 시선을 공중으로 던졌다. 위에서부터 망가진 인큐베이터와 심 박사가 천천히 함상으로 내려앉았다.
“빨리……헉……좀 가자. 한시가 급해.”
맨몸으로 근 35km를 비행한 심 박사가 덜덜 떨면서 빠른 이동을 종용했다. 강수혁은 캐나다 측을 위협하는 대신 말없이 심 박사와 인큐베이터를 앞세웠다.
의무실은 응급 상황 대응을 위해 갑판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장교가 입구 패널에 손바닥을 대자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비켜요.”
내내 조용히 있던 심 박사가 캐나다 장교를 비집고 달려들었다. 뒤이어 망가진 인큐베이터가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섰다.
-당신이 한국 측 가이드 관리자입니까? 나는 롭슨, 캐나다 측 관리인입니다.
대머리가 되기 직전의 중년 남자가 나섰다. 의무실에는 자동 번역기가 작동 중이었다.
이미 반이 뜯긴 뚜껑이 예고도 없이 날아가고 그 안에 든 하얀 몸이 둥실 떠올랐다. 의식이 없는 가이드는 열린 인큐베이터에 조심스럽게 안착했다.
-누가?
롭슨이 놀란 듯이 이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에이브리가 눈짓으로 아직도 진주색으로 빛나는 강수혁을 가리켰다.
지금은 자리에 없는 다른 병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롭슨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그는 강수혁을 대단히 의식하면서 낯선 인큐베이터를 살피는 심 박사에게 다가갔다.
“제 패널에 우리 측 가이드 전용 재생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인큐베이터에 접속해 업로드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심 박사와 롭슨이 인큐베이터 양측에서 빠르게 뭔가를 조작했다. 의무실 소속 의무병들은 인큐베이터에 각종 케이블을 연결하고 약물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는 동안 강수혁의 시선은 내내 인큐베이터 속 김윤조를 향했다. 그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고 캐나다 측 에스퍼들이 일정 간격으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임성준과 에이브리 및 안내한 장교는 그들 사이에 위치했다.
-접속 승인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업로드하십시오.
“지금 업로드합니다.”
심 박사의 말을 기점으로 인큐베이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인큐베이터에 가득 찬 양수를 헤집고 얇은 주사 바늘 두 개가 김윤조에게 접근했다. 목에 접속한 바늘로부터 각종 약물이 투입되었다. 뒤이어 얇은 전기 쇼크도 가해졌다.
-뇌파가 감지됩니다…… 아, 소실.
“시발. 이젠 한계 시점인데.”
심 박사가 욕을 뱉었다.
-약물 농도를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롭슨이 제안했다.
“아니. 이 이상은 약물 거부 반응이 일어날 겁니다. 인공 양수도 희멀건 표준형이고.”
캐나다 장비를 쓰는 건 좋은데 서로 가이드 제작 과정이 달라서 기기를 완벽하게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귀측 인공 양수에 최대한 가깝게 조합해 볼 수 있습니다. 조합 프로그램 있습니까?
“조합 프로그램은 있어요. 그런데 즉석에서 임시 양수를 조합하려면 적합 매질이 다량으로 있어야 하는데. 남의 배에서 마땅한 적합 매질이 있을 리가…….”
혼자서 중얼거리던 심 박사가 갑자기 강수혁을 돌아봤다. 그의 시선이 의무병에게 향했다.
“링거 줄! 제일 큰 바늘로! ”
-여기.
의무병 하나가 잽싸게 직접 링거 줄을 가져왔다. 한쪽은 바늘이고 다른 쪽은 링거용 약물 팩에 끼워 넣는, 손가락 굵기의 플라스틱 막대가 달려 있었다. 심 박사는 바늘을 약물 주입구에 꽂고 플라스틱 쪽을 강수혁에게 내밀었다.
“야, 피 내놔. 있는 대로 많이.”
말없이 플라스틱 막대를 받아든 강수혁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걸 제 경동맥에 꽂았다.
“헉!”
경악성이 의무실에 가득했다. 하지만 놀란 사람은 캐나다 측 인물들뿐이었다. 영어 욕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는데 예의 바른 자동 번역기가 번역을 스킵했다.
-저래도 되는 겁니까?
“되는 모양인데요.”
에이브리의 기겁 가득한 물음에 임성준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기괴한 짓을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심 박사나, 그걸 또 말없이 해내는 강수혁이나. 같은 특작부 소속인 임성준이 보기에는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다. 도리어 김 준위가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치고는 저 둘이 너무 침착해서 두려웠다.
붉은 피가 긴 링거 줄을 타고 인큐베이터로 주입되었다. 예상대로 강수혁의 피가 섞이자 인공양수 흡수율이 올라갔다.
심 박사는 롭슨의 도움을 받아 임시 인공 양수를 빠르게 조합했다.
-지금 주입한 혈액이 1.7리터가 넘어갑니다. 에스퍼라도 2L 이상 소실은 권장치 않습니다.
2리터 이상 피를 소실하면 일반인은 즉사다. 재생력 강한 에스퍼도 소실 혈액량이 2리터를 넘어가면 죽진 않더라도 의식 불명으로 쓰러진다. 이후 완쾌까지 꽤 긴 시간의 요양도 해야 한다.
“괜찮아요. 저 새끼는 괴물이라. 목이 잘린 적이 있는데 도로 붙여 놓으니까 멀쩡히 살아난 적도 있고.”
심 박사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내내 김윤조를 보던 강수혁이 눈만 굴려 롭슨을 응시했다. 혈액을 다량으로 소실하는 주에도 의식이 멀쩡함을 안 롭슨이 경악했다.
-맙소사. 무슨 재생력이…… 이런 에스퍼는 여태껏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지구 생명체(Terran)가 맞습니까?
“시끄러워, 대머리. 이쪽 신경 쓸 여유가 있으면 아줌마나 도와.”
강수혁이 차갑게 응수했다.
말을 하는 바람에 뚫린 경동맥 상처로 혈액이 약간 흘렀다. 하지만 금방 본체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걸 본 롭슨과 다른 캐나다인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때였다.
삐삐삐.
“뇌파가 돌아왔어! 이제 심박만 돌아오면 돼!”
심 박사가 기쁘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