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강 소령님! 강 소령님! 야, 강수혁!”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밖으로 나가야 해!’
단순히 이동 필요성을 떠올렸을 뿐인데도 임성준이 나타났다. 텔레파시 덕분이었다.
“갑니다.”
임성준은 윤조를 데리고 함상으로 점프했다. 심지어 임성준은 윤조가 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는지도 이미 인지했다. 축구장 10배를 넘는 거대한 항모 갑판에서도 게이트가 잘 보이는 곳이었다.
항모 전대는 전속력을 다해 게이트 영향 범위에서 벗어나는 중이었다. 거대한 핵발전 엔진 두 개가 풀가동하면서 만들어 낸 속도는 어마어마해서 강한 해풍이 넓은 갑판을 휩쓸었다. 거친 항해로 인한 진동과 강한 해풍으로 인해 몸이 휘청일 정도였다.
임성준이 전투복에 장착된 케이블 고리를 빼서 가까이에 있는 쇠기둥에 걸었다. 윤조도 마찬가지였다.
케이블에 의지해 몸을 가눈 윤조는 곧장 시선을 전방 상향으로 던졌다.
이미 20km 이상 거리가 벌어졌다. 그래도 파란색 스포츠 음료수에 군청색 물감을 푼 것 같은 게이트의 형체는 여전히 거대했다. 그 위로 검은 초파리 같은 플라이와 노란색 박쥐 같은 초거대 플라이가 날아다녔다.
삐삐삐.
위성 신호가 불안정했다. 붉은 삼각형과 파란 사각형이 헬멧 스크린을 어지럽혔다. 강수혁을 가리키는 신호가 계속해서 깜빡였다. 위치도 제멋대로였다.
EMP(전자기 펄스) 전파의 수위가 낮아졌다. 상대로 위성 신호는 점점 강해졌으나, 게이트 인근에는 아직도 교란 전파가 강해서 강수혁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는 중에도 초거대 플라이는 요동을 쳤다. 조금 전 강수혁이 텅스텐 빔을 네 날개 중 하나에 갖다 박았다.
압도적인 크기 차이 때문에 날개 달린 소를 향해 이쑤시개로 덤비는 꼴이긴 했다. 하지만 이쑤시개 5개가 하필 겨드랑이 밑에 박혔다면? 상당한 타격이었다. 실제로 공격받은 날개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강 소령님 위치를 잡지 못해 텅스텐 빔을 날릴 수가 없습니다.”
임성준이 말했다.
“야! 강수혁! 시발! 대답 안 해? 강수혁, 이 개새끼야! 대답해!”
윤조의 언성은 아까보다 훨씬 높았다.
“이 빌어먹을 개새끼야! 대답하라고! 시바아알! 12시간 5번 한다고 했잖아! 지금 뒈지면 못해! 이 개새끼야!”
불안감에 울컥한 나머지 쌍욕이 튀어 나갔다. 위성 AI의 신호 강도도 정상을 훨씬 오버하여 설계 한계에 도달했다. 어느새 동조율도 100퍼센트를 넘어서고 있었다.
-동조율 103퍼센트…… 104퍼센트.
이건 피아가 구별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직전이었다. 그런데도 저와 한 몸을 이루는 에스퍼의 존재가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파! 아프다고! 그만해! 싫어!
두려움과 공포감이 훅 끼쳤다. 윤조의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저도 모르게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텅!
케이블이 끝에 닿으면서 윤조를 강하게 저지했다. 거의 넘어질 뻔했다. 케이블 고리를 빠르게 해체하면서 시선을 계속해서 게이트를 향했다.
“강수혀억! 돌아와! 돌아와! 여기야! 여기라고! 강수혁! 이 개새끼야! 돌아와!”
“김 준위, 진정하세요! 케이블 분리하지 않습니다!”
임성준이 달려들어 윤조의 손을 붙잡았다. 아무리 순간이동이 주력이라고 해도 S급이다보니 완력 자체도 윤조가 이길 수 없었다.
“강수혁 이 개새끼야아! 아프면 버티지 말고 돌아오라고! 시발! 누가 네 목숨까지 버려 가면서 지구 지키래! 너부터 챙겨, 이 좆같은 새끼야!”
달려갈 수도 없어 윤조는 숫제 울부짖었다. 흥분하다 못해 분루가 맺히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드론에 비해서 현저하게 작은 물체가 항모를 향해 돌진했다. 그건 윤조를 향해 선회도, 포물선도 아닌 직선으로 날아왔다. 강수혁처럼 대규모 화력은 발휘하지 못해도, 작전에 따라 얼마든지 공격이 가능한 임성준이 선제 공격을 위해 텅스텐 빔을 하나 끌어들였을 때였다.
-뭐? 강수혁 개새끼? 이 또라이 새끼가…… 무인도에서 멀쩡히 걸어 나오기 싫은 모양이지?
화난 음성이 들렸다.
“강수혁!”
-어쭈, 이제는 막 부른다? 내가 네 친구야? 소령이 네 친구야?
위계를 따지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윤조는 그저 그가 살아 있고 음속 비행이 가능할 만큼 컨디션이 좋다는 사실에 기뻤다. 동시에 깊은 빡침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주둥이 멀쩡하게 뚫려 있으면서 왜 대답을 안 하는데요?!”
-개새끼가.
주변을 선회하던 강수혁이 갑판에 착륙했다.
쿵.
강한 속도로 꽂히는 바람에 수십 톤의 충격도 견디는 항모 갑판에 손상이 갔다.
“좀 살살 착륙하면 안 됩니까? 그러다가 연골 다 나갑니다! 에스퍼용 인공 관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윤조는 열받은 채로 악을 썼다.
홱.
신속하게 헬멧을 벗은 강수혁이 낯짝을 사정없이 구겼다.
“야, 김윤조! 너, 당장 이리 와!”
윤조가 다리를 움직이기 전에 강수혁이 염력으로 윤조를 끌어당겼다. 반쯤 떠서 날아가나 싶더니 중간에 텅! 하고 멈췄다. 케이블 때문이었다.
“시발.”
남은 거리는 강수혁이 스스로 좁혔다. 케이블에 잡힌 채 갑판 위를 살짝 부유하는 윤조에게 성큼 다가온 그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윤조가 헬멧을 벗어 팽개쳤다. 성을 내며 다가오던 강수혁의 안면에 당혹감이 비쳤다.
완전히 활성화된 상태기에 강수혁의 두 눈은 완연한 오팔색이었다. 이마 라인과 콧대, 귓바퀴, 턱선을 따라 실선을 그은 듯 은은한 진주빛이 감돌았다. 몸 안에서 솟아나는 염력의 어마어마한 출력을 감당하지 못해 피부 위로 새고 있었다.
흰색 전투복 장갑으로 감싼 가이드의 양손이 에스퍼의 뺨에 닿았다. 그도 모자라 턱과 목을 더듬고 어깨와 팔을 훑었다. 허리까지 어디 하나 이상이 없는지 꼼꼼히 더듬는 윤조의 손목을 상대가 낚아챘다.
“헬멧은 왜 벗어? 시발, 게이트에 이렇게 가까운데 방사능 저항력도 변변찮은 새끼가.”
정작 본인도 헬멧을 벗은 주제에 강수혁은 바닥에 뒹구는 헬멧을 끌어당겨 윤조의 머리에 씌웠다. 그러곤 제멋대로 조인트를 꽉 잠가 버렸다.
“아프다면서요?”
“뭐?”
윤조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등입니까? 뒤돌아 보세요?”
“뭔 개소리야?”
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를 당했습니까? 혹은 벌써 재생이 끝난 겁니까? 소령님처럼 통각 신경이 아예 고장 난 탈인간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정도면 엄청난 부상일 텐데. 벌써 재생이 끝난 겁니까?”
윤조가 다급하게 따졌다. 하지만 강수혁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비명을 왜 질러?”
“아까 아프다고 악을 썼잖습니까!”
윤조가 화를 냈다.
“정신 나갔냐? 이게 상관도 못 알아보고 쌍욕 찍찍 발사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너 정말로 어디 제대로 고장 난 거 아냐?”
도리어 강수혁이 윤조의 상태를 걱정했다.
강수혁은 어디 아픈 곳 없이 멀쩡해 보이긴 했다. 긴장과 충격의 롤러코스터를 너무 타서 그런지 갑자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통신으로…….”
“통신은 무슨. 좆같은 황금 뚱땡이 놈 때문에 전파가 아예 끊겼는데. 페어링 감각도 없어지고. 그래서 일단 네 상태 파악하려고 후퇴한 거야. 쯧쯧. EMP에는 인조 인간도 별수 없군. 헬멧 좀 튼튼히 만들지.”
강수혁이 조소했다.
“두 분! 지금 그럴 때가 아닙니다!”
임성준의 육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좆같은 황금 뚱땡이가 이쪽으로 돌진합니다.”
나쁜 말은 즉시 흡수하여 사용하는 임성준의 외침에 두 사람의 시선이 즉시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초거대 플라이의 대가리로 추정되는 부분이 정확하게 이쪽을 겨냥하고 있었다.
-저기야.
“네?”
-저기 있어.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윤조가 강수혁에게 물었다.
“뭘?”
강수혁이 다시금 얼굴을 구겼다.
“방금 저기 있다고…….”
“야, 너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니냐? 어이, 아줌마! 이 새끼 EMP 차폐막이 아주 망가졌잖아! 이대로 작전 가능해? 인큐에 넣어야 하는 거 아냐?”
강수혁이 심 박사를 향해 짜증을 부렸다.
-차폐막 멀쩡하다, 개새끼야. 위성 재부팅하고 바로 신호 강화했으니까 EMP 펄스 중심부에만 피해. 그리고 김윤조, EMP로 인한 통신 혼선 같으니 일단 오픈 채널은 차단한다. 지금부터 텔레파시로 얘기해. 점검은 황금 뚱땡이부터 처리한 후에.
심 박사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알겠습니다.’
뒤이어 위성 신호가 증폭하면서 뇌에 살짝 진동이 왔다. 속이 약간 울렁거렸다. AI가 가볍게 윤조를 스캔했다.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통신 혼선이라. 혹시 정말로 내가 크게 당한 줄 알고 그렇게 지랄한 거야?”
당황한 윤조는 강수혁을 쳐다봤다. 못마땅한 기색이 한결 가신 자리에 기묘한 웃음이 번졌다.
“아, 뭐.”
대강 상황을 파악한 윤조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누군가의 통신과 겹친 덕에 괜히 감정을 낭비했다.
망할 EMP. 좆같은 황금 뚱땡이 새끼.
“우리 가이드님. 그렇게까지 나 생각하는 줄 미처 몰랐는걸? 아주 울려고 하더라.”
“게이트를 닫지도 못했는데 트리플 S급 에스퍼가 당하면 답이 없으니까요. 절실하긴 했습니다.”
“그래?”
괜히 뒷덜미가 뜨끈해졌다. 뒤늦게 수치심이 올라왔다.
그렇게까지 이성을 잃을 일이 아니었다. 가이드로서, 전투 상황에서 항상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부족하고 부적절한 짓이었다.
“저기, 강 소령님? 김 준위? 그러니까 황금 뚱땡이가 이쪽으로 온다니까요?”
임성준은 숫제 울상이었다.
‘미친놈들아! 연애질은 다음에 하고 황금 뚱땡이부터 어떻게 해 봐!’
‘김윤조! 야! 이쪽으로 온다고! 벌써 10km 거리라고!’
심 박사에 이어 최정까지 난리였다.
-김 준위, 나중에 어떻게 화해할 건지 자세하게 들려 주시기예요.
장세인의 헛소리에 윤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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