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네. 에스퍼 움직임은 이쪽에서 보조, 대신 실시간 동향 보고하겠습니다.”
“내 통신 장교와 텔레파시를 해서 그런가. 불필요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군요.”
절제된 표현이나마 함장은 에스퍼의 능력을 인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게이트 완전 개방까지 17초 전. 모든 드론 부대 편대 대형 형성 및 선회 중.”
“모든 함선 포메이션 구축 완료. 전 레이저 차징 완료. 발포 대기 중.”
함교 장교들이 앞다투어 외쳤다.
위이이잉.
삐이이잉.
레이저 엔진이 돌아가는 시동음과 함께 비상 알람의 피치가 올라갔다.
-코드 레드, 게이트 오픈합니다. 타입 F, 클래스 미들. 비행형 외계 지성체에 유의하십시오. 각 에스퍼, 혈압 상승. 흥분도 증가. 안정도 허용 범위 내에서 가벼운 긴장 유지 중.
위성 AI의 경고를 마지막으로 게이트가 급격하게 밝아졌다. 게이트를 모니터링하던 함교의 모든 스크린이 백화되고 전파 패턴과 방사능 패턴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심한 진동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사위가 고요해졌다. 오픈 정도에 따라 피치를 올리던 알람도 꺼졌다. 전투 직전의 흥분으로 내내 번잡하던 함교에 무시무시한 침묵이 돌았다.
이론은 잘 숙지하고 있다.
게이트가 열린 직후 플라이가 쏟아지기 전까지, 수 초간의 타임 갭이 있다.
지구에 갓 도달한 플라이에게 아군의 위치를 알리지 않기 위해 모든 장비를 일시 정지하는 것. 그래서 태풍의 눈 같은 침묵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
하지만 무거운 침묵을 실제로 대면하자 전신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열렸다.
줄곧 침묵하던 트리플 S급 에스퍼의 음성에 섞인 엷은 웃음기가 굳은 가이드의 몸을 전율케 했다.
콰아아아!
고요한 가운데 느닷없이 괴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하늘에 뚫린 형광색 구멍으로부터 다양한 크기의 플라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머드형은 개체마다 크기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비슷한 슬라임 괴물 같은 형태를 취한다. 대조적으로 플라이형은 천차만별의 생김새를 자랑했다.
풍뎅이나 땅벌 같은 형태에서부터 잠자리에 나비 형태를 비롯한 곤충형이 있는가 하면, 익룡과 박쥐와 비슷한 놈도 있다. 하물며 일반 새처럼 깃털 형태의 방사능 비늘이 촘촘하게 박힌 놈도 있다. 그냥 날아다니기에 유리한 형태는 뭐든 다 갖추고 있는 편이었다.
형태에 따라 아름다운 개체도 있어서 무해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 봤자 외계 지성체다. 일정 이상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방사능에 노출되어 즉사한다. 즉사가 아닐 경우는 다발성 암으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 간다.
플라이형은 머물다가 간 자리에도 머드형과는 차원이 다른 농도의 방사능이 남는다. 인간이나 다른 생물은 차지하고, 보통 핵 방사능에서도 버티는 바퀴벌레와 전갈에 개미마저 절멸하는 절대 죽음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존재 자체가 지구 생명체(Terran)에 위협이었다. 표면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최대한 저격하는 것이 최고다.
그 치명적인 날틀의 총체가 구멍에서부터 우수수 쏟아졌다.
“플라이 하강 시작!”
“플라이 3기, 7기 아니 12기! 숫자 계속 증가합니다.”
함교 곳곳에서 날 선 보고가 이어졌다.
-김윤조.
강수혁이 재촉했다.
“함대가 우선 공격합니다. 우리는 1차 저격 후 산개하는 플라이를 쫓아 각개 격파합니다.”
-작전 한번 지루하고 재미없네.
강수혁은 역시나 게이트가 열리면 바로 달려들어 아무렇게나 마구 때려잡으려 한 모양이었다. 슬라임보다는 플라이가 훨씬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기에 여러 가지 능력을 마음껏 발산하기에 편리하고 좋긴 했다.
손만 대도 뭉그러지는 연약한 연두부 새끼와 함께 사느라 항상 목줄 걸고 집 안에서 조심조심 살아야 하는 대형 사냥개가 오랜만에 산으로 들로 마구 달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전력을 다하고 싶은 상대의 충동도 일견 이해는 갔다.
하지만 에스퍼의 투입이 빠르면 빠를수록 외계 지성체의 반응 양상도 빨라진다. 외계 지성체는 형태를 불문하고 일반인보다 에스퍼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그 때문에 강수혁의 초반 활약은 게이트 오픈 초반, 갓 지구로 진입해 덜 산개된 플라이를 레이저 난수 저격으로 다중 타격할 기회를 날려 버리게 된다.
“공격 효율을 높이고 아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12시간 5번. 꼭 지켜라.
한층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지킵니다.”
-개새끼가 말은.
상대가 쪼갰다. 조소엔 짜증과 화가 옅게 묻어났다.
갖가지 상황 덕분에 번번이 욕구 해소가 좌절된 탓만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강수혁의 흥분 그래프가 완만하게 상승하는 중이었다. 게이트 때문이었다.
현재 제주도 함대는 초반에 쏟아지는 플라이 다수 개체와 그들이 활동 범위를 추적하여 최적의 공격 포인트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돌리는 중이었다.
“플라이 개체 수 증가 그래프 공격 범위 진입!”
“정찰 드론이 공격 포인트 레이저 유도 시작.”
장교 하나가 소리쳤다. 그러자 이율희 함장이 조용히 명령했다.
“발사 카운트다운 5초 후 전 함대 일제 포격”
위이이잉.
제주도함의 파손된 레이저 함포 두기 또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알루미늄 포일로 만들어진 임시 거울이 해풍에 펄럭였다. 동시에 모든 구축함과 호위함에 달린 수십 기의 레이저 함포가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발사 카운트다운 5초! 4초! 3초! 2초! 1초! 발사!”
우우우웅!
동시에 돌아가는 레이저 엔진의 공명 파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펑! 퍼퍼퍼펑! 펑!
꾸에에에엑!
콰아아아악!
정찰 드론이 송신하는 현장 중계 화면에 검은 연기가 다수 피어올랐다. 수 초 간격을 두고 검은 사체들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레이저 함포에 제대로 맞은 개체는 해수면에 닿기 전에 사멸한다. 저들은 사멸한 후 방사능 외에는 지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이 점을 두고 게이트를 처음 대면한 초창기에는 저들이 생명체인지 아닌지 논란이 분분했다.
어떤 생명체이든 사멸 후에는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질량 자체를 전부 방사능이나 다른 에너지로 변환시킨다고 하기에는 잔존 방사능의 에너지 총량과 대치되지 않는다. 여전히 치명적인 수준의 방사능이지만 외계 지성체 전체를 변환시킨 에너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그 때문에 게이트를 두고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열역학 제2 법칙도 안 통하는, 우리 우주와는 전혀 다른 우주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추후 연구로 사멸한 후 남는 질량은 F형 게이트에 재흡수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른 우주설은 수그러들었다.
현재까지 게이트로 재흡수되는 매커니즘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게이트 저편 외계 지성체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공간일지도 혹은 아닐지도 모르는 ‘곳’에서 ‘어떤 존재’가 ‘뭔가 하는 것’이라는, 아주 막연한 추측뿐이었다.
그래도 사멸시키면 남은 흔적은 지구에 남지 않고 재흡수된다는 걸 안 이상, 최대한 완전 사멸로 몰고 가야 한다는 방향성은 명확해졌다.
하지만 반만 당하거나 날개만 당한 개체는 바다로 입수한다. 그걸 두면 해양 생명체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각 함대에 있는 B, C급 에스퍼 병사가 염력으로 건져내 폐기한다.
“5초 간격으로 10회 연사 개시.”
“3회 연사 개시! 5초! 4초!”
이율희 함장의 명령에 따라 전 함대의 함포가 10회 연사를 시작했다.
게이트를 중심으로 붉은색 빛무리가 선명하게 번쩍였다. 강수혁과 임성준을 추적할 때와는 비교 불가능한 출력이었다.
어마어마한 첨단 기술이 동원되긴 했지만, 레이저 난수 저격의 기본 개념은 전기 파리채의 거대화다. 덕분에 게이트 인근을 노리고 레이저 함포가 빛을 발할 때마다 게이트를 바로 통과한 플라이는 거대 파리채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징그럽게도 많네.’
윤조는 함대 전방 유리에 뜬 드론 송신 화면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숫자가 너무 많아서 난수 저격만으로는 전부 처리할 수 없었다.
곧이어 레이저를 피한 개체가 다수 발생했다. 어떤 개체는 크기가 너무 거대한 나머지 레이저에 맞아도 추락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피해 범위가 작기 때문이었다.
“10회 연사 후 A급 레이저부터 과열 방지를 위한 냉각기에 들어간다.”
이율희 함장이 명령하면서 윤조를 봤다.
“냉각기 동안 공격력이 75퍼센트로 축소돼. 나머지 25퍼센트의 공백 보완이 필요한데. 가능하겠나, 김 준위?”
“맡겨 주십시오.”
이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윤조는 바로 강수혁과의 동조율을 끌어올렸다. 울렁거림이 전해졌다.
-레이저 포격 범위에서 벗어난 추적 스캔 시작합니다.
AI가 보고했다.
-드디어 내 차례군.
더는 기다리기가 정말로 지긋지긋했다는 투였다.
‘임 중위님.’
‘텅스텐 빔 총 25기 중 5기 현재 함상 강 소령님 영향력 아래에서 부유 중입니다. 소실될 때마다 1기씩 추가합니다. 추가 타이밍은 그쪽에서 주십니다.’
임성준의 목소리에는 빈틈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변수 보정은 심 박사님께 부탁드립니다.’
‘맡겨 둬.’
‘딱 플라이만 치기야, 알겠지?’
자신만만한 심 박사와 달리 특작부의 유일한 일반인이 마지막까지 걱정을 놓지 못했다.
‘노력해 보지요.’
윤조는 확답하지 못했다.
최정의 걱정이 전해졌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무리 날고 기는 트리플 S급 에스퍼가 있다지만 F형 게이트와 막대한 수의 플라이를 상대로 함대 손실을 제로로 유지할 순 없다. 함대 유지보다 외계 지성체의 완벽한 제거가 우선이다.
-간다.
짤막한 선언과 함께 강수혁이 떠올랐다.
차폐된 함교에서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페어링 덕분에 윤조는 강수혁이 떠오르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꼈다.
“강수혁 소령 비행 시작. 텅스텐 빔으로 레이저 저격 망에서 벗어난 개체부터 우선 요격합니다. 드론 부대는 이쪽 움직임에 유의하십시오.”
함교에 경고한 후에 윤조는 공격 루트를 짜서 강수혁에게 보냈다.
강수혁은 레이저 장막과 플라이를 피해 비행하면서 5기의 텅스텐 빔을 조종해야 했다. 고도화된 다중 조작 능력이 필요하기에 수행 난이도는 단연코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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