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한색 계열로 발광하는 게이트는 주로 F형이었다. 또한 수집한 전파 패턴과 방사능 수치도 F형일 확률 98퍼센트로 추정했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발생한 게이트의 89퍼센트는 M형이었다. G형은 손에 꼽을 정도라 1퍼센트에도 훨씬 못 미친다. 따라서 그 외는 전부 F형이라고 보면 된다.
해상에 생기는 M형 게이트는 통상 슬라임이라고 불리는 머드형을 해상 위로 툭툭 떨군다. 느리기 짝이 없는 슬라임 괴물은 해면에 닿으면 빠르게 녹기 때문에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방사능 쓰레기가 바다를 오염시키기 전에 공중에서 받아내 폐기하는, ‘도전! 쓰레기 처리’의 과정에 불과하다.
비교적 체계적인 대응법이 마련된 M형과 달리, F형은 대처하기 무척 까다로웠다. 대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F형 외계 지성체 자체의 특성 때문이었다.
플라이형이라고 이름 붙여진 F형은 당연하게도 날아다녔다. 해상에서는 처리하기 더욱 까다로웠다. 평평한 지형 탓에 이용할 엄폐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엔진과 연료의 한계를 가진 항공기와 달리 플라이형은 무한한 체력을 과시했다. 실제로 체력인지 혹은 소형 핵연료봉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격하여 떨어뜨리기 전까지는 쉬는 법이 없다. 회피력 및 기동력도 어마어마하기에 개별 요격도 쉽지 않아 개발된 것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레이저를 때리는 난수 저격이다.
그리고 현재 이율희 중장의 함대는 그 난수 저격 시스템에 구멍이 생긴 상태다. 고작 두 기긴 해도 제주도에 장착된 주 함포 두 기가 파손으로 작동 불능이었다. 임시 거울을 부착할 수 있긴 하지만, 기존 거울에 비해서는 집광력이 확실히 떨어진다. 명중해도 별 타격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공백이나 마찬가지다.
“함대는 어쩌고 있지?”
최정이 물었다.
윤조가 위성이 보낸 일대 스캔 데이터를 수집하자마자 장세인을 통해 전체에게 공유되었다. 역시나 난수 장막 저격 포메이션이었다.
“구멍이 생길 텐데. 우린 그 구멍을 막아야 해.”
-함교에서 저희를 찾습니다. 곧 장교가 이쪽으로 올 겁니다.
걱정하는 최정을 향해 장세인이 보고했다.
최정은 임성준을 보았고, 임성준은 말도 없이 바로 최정을 데리고 함교로 점프했다. 장세인의 보고부터 두 사람이 사라지기까지 거의 1초도 안 걸렸다.
“와우.”
윤조는 저도 모르게 과장 섞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장세인이 능력을 발휘할 때부터 통신의 의미가 사라졌다. 인사 소통으로 낭비되는 시간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그것은 빠르고 효율적인 대응을 가능케 했다.
심지어 함교에서 벌어지는 대화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라는 함교 장교들의 반응에서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시선을 던지는 이율희 중장의 우아하면서도 시니컬한 태도까지. 뇌리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저희 쪽에 텔레파시 능력자가 있습니다. 장세인 S급, 현재 게이트 대응을 위해 능력 전개 중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이번 게이트 소멸까지 함교와 의사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해군 기밀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중간자, 그러니까 함교의 상황을 전달할 1인을 정해 주시면 그 사람에 한해 의사 공유될 겁니다.
최정이 이율희 함장을 향해 설명했다.
이율희의 눈짓에 통신을 담당하는 함교 장교가 일어섰다. 그는 팔에 반깁스를 감고 있어서 통신 장비 활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장세인의 도움이 오히려 반가운 듯했다.
-강수혁이 출격하나?
-강수혁 소령은 저희 명령과는 다르게 움직여서요. 하지만 게이트 대응은 확실하게 할 겁니다.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군.
이율희가 조소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노년에게서 옅은 분노가 발산되었다.
함장은 자유 의지를 가진 자산을 대단히 불신했다. 까라고 하는데도 까지 않는 병사를 좋아할 상관은 없다. 거기다가 해군이 자랑하는 난수 저격망을 망쳐 놓고 최신형 항모 속속들이 긴 벌레 구멍을 내 놓은 원흉이었다. 따라서 강수혁에 대한 이율희의 분노는 짐짓 이해가 가는 면도 있다.
하지만 이 사태를 자초한 원인은 덮어놓고 에스퍼를 공격한 이율희 자신이 아니던가. 또한 에스퍼를 보조하고 관리하는 특작부 입장에서는 그의 태도를 이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특히 강수혁에 대한 부조리한 대우를 인지하기 시작한 윤조로서는 더더욱.
‘마음에 안 들어.’
“나도.”
윤조의 속마음에 심 박사가 대답했다.
“순수주의자 놈들은 게이트 발생하면 저들끼리 지지고 볶다가 뒈지게 둬야 해.”
과격한 반응에 일견 동조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생기려 했다. 하지만 불쾌감과는 별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 대한 파괴적인 상상은 이어지지 못했다.
사람이 죽는 건 싫다.
윤조는 수십만 명이 증발한 서울 사건의 당사자였다.
코스믹 호러급 대재난이 가져오는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충격을 정면으로 맞아야 했다. 슬픔의 5단계를 아주 고통스럽게 거치고 났더니, 그냥 무고한 사람들의 영문 모를 죽음 자체가 혐오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에스퍼가 사람인 만큼 지구 순수주의자도 사람이다. 개개인의 특별한 사유 없이 갑자기 증발하는 사태는 피하고 싶다. 이런 좆같은 세상에선 꿈 먹는 얘기라고 치부당하더라도.
-김 준위는 아직 인류애가 남아 있네요.
“갑자기 인류애요?”
장세인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기에 윤조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대량 학살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인류애까지 갈 사안인가. 보통 인간이라면 당연히 싫어할 건데.
-가이드로 선정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아요.
“야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혹시라도 개망나니가 들을라. 그 새끼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인류애 이해 못 해.”
심 박사가 반 농담조로 응수했다.
윤조는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놀림당하는 기분이었다.
“놀리는 거 아냐. 처음으로 가이드의 개념을 정립한 사람은 인간과 점점 유리(遊離)되는 에스퍼와의 가교 역할을 기대했으니까. 군에서는 망나니 에스퍼용 목줄에 리모컨으로 치부하지만 말이야. 가이드의 필수 조건은 인간에 대한 자애와 에스퍼에 대한 수용이야. 신인류의 출현이 구인류를 도태시키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최소한으로 하는 중간자가 바로 가이드지. 물론 원론적으로는 그렇다고. 나는 멘탈이 튼튼한 놈을 고르다 보니 얻어걸렸지.”
“제게 그런 막대한 사명이 있는 줄 몰랐는데요.”
윤조는 솔직히 떨떠름했다. 뭔가 정리하자면 인류 평화를 위해서 강수혁과 떡을 친다는 얘기가 아닌가.
-인류를 위한 고귀한 희생,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강수혁은 우리 에스퍼 입장에서도 덮어놓고 환영하기 어려운 엑스맨이라서요.
장세인의 말은 반 농담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순수주의자가 강수혁을 취급을 함부로 하는데 같은 에스퍼까지 그럴 필요 있을까 싶었다.
-강수혁을요? 어려운 부탁이네요. 강수혁은 에스퍼 입장에서도 수용 불가능한 악업을 쌓은 전과가 있어서요.
“에스퍼 살해 기록은 없던데요.”
-그런 사소한 얘기가 아니에요. 알려지면 에스퍼 전체가 멸종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그때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무슨 얘기하는데?”
귓바퀴에 날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들리는 낮은 음성에 윤조는 기겁했다.
“헉!”
“엄마! 시발!”
-억!
강수혁은 저마다 기겁하는 셋을 냉기 어린 시선으로 돌아봤다.
“에스퍼 살해 뭐? 장세인, 너 김윤조한테 없는 소리 지어내지 마. 시발, 내가 에스퍼를 죽이긴 뭘 죽여? 허리 좀 부러진다고 뒈질 놈이면 에스퍼 때려치우라고 해.”
-그런 얘기가 아니지만 저는 묵비권 행사하겠습니다.
“야, 대답 안 해?”
강수혁이 장세인이 누운 침대를 걷어차려고 들었다. 그걸 윤조가 말렸다.
아까 말했던 대로 강수혁은 장세인의 능력 범위 밖이었다. 텔레파시로 전한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런 얘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말씀 안 하신대요.”
“그럼 무슨 얘기 한 건데?”
“별 얘기 아닙니다. 소령님이 좀 거치셨다고 그 정도만.”
입을 다물면 더 집요하게 파고들 성질머리기에 윤조는 적당히 둘러댔다. 거짓말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강수혁은 안면을 더욱 험악하게 구겼다. 홍채에 은은한 오팔빛이 돌기 시작했다.
“뒷담을 까긴 깠다는 거네. 시발.”
“야! 개망나니! 없는 곳에선 나라님 뒷담도 까는데 네 뒷담도 좀 깔 수도 있지. 뒷담 하는 게 싫었으면 앞담하게 재깍재깍 나타나든가. 무슨 똥을 그렇게 오래 싸냐! 변비약 보내 줘?”
심 박사가 삿대질했다.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누가 똥을…… 김윤조, 너냐?”
“아닙니다.”
“구라 까고 있네. 시발놈이. 중간에 튄 것도 모자라서 뭐? 똥을 싸?”
아까 둘러댄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하긴 마음에 들기 힘든 핑계긴 했다. 그렇다고 한들 강수혁의 태도가 너무 히스테릭했다.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불만이 가득해서 그런가.
-욕구불만 맞는 거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망할 개망나니 놈. 대가리가 가랑이에 달렸지.’
‘제발요. 두 분 다 끼어들지 말아 주십시오. 머리 아파요.’
강수혁이 한 걸음 더 다가와 윤조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봤다.
“눈깔 돌아가는 거 봐라, 또 내 뒷담 까고 있지?”
“눈치는 더럽게 빠른 놈.”
심 박사가 대답했다. 강수혁의 무시무시한 눈초리가 심 박사를 향할 때였다.
“이 망할 놈들아! 지금 게이트가 열리는 중인데 한가롭게 반상회 할 때야?”
임성준과 함께 나타난 최정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평소에 흥분은 자주 해도 언성을 높이는 경우는 드문 편인 최 대령의 호통에 전체 시선에 그를 향했다. 짙은 시선을 느낀 최정은 뒤늦게 움찔했다. 담대한 권위 발산이 오래가는 편이 아니었다.
“흠흠. 하, 항모 무기고에 에스퍼용 텅스텐 빔이 있어. 원래 없는데 이번 피지 훈련에 사용하려고 우리 측에서 실은 거라서 규격이 맞을 거야. 임 중위. 강 소령은 함상으로, 김 준위는 함교로 이동시켜. 이후에 임 중위는 선창으로 이동해서 텅스텐 빔을 강 소령에게 전달하고. 김 준위는 함교에 머물면서 합동 작전 시작한다. 나와 심나연은 여기서 장세인 보조 및 엄호.”
장세인을 통해서 1초면 전달할 내용을 최정은 일일이 말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최정의 지시에 동의했으나, 강수혁만은 여전히 불퉁한 태도였다.
“아무리 화가 나도 게이트는 닫아야지, 강 소령.”
“시발. 내가 왜? 실컷 협조해 줬더니 돌아오는 거라곤 고작 ‘하다가 끊기’인데. 잘난 레이저로 날벌레 새끼들 열심히 지져 보라고 해.”
망할 변태 망나니 새끼. 그게 지금 가질 불만인가.
하지만 사정이 급했다. 난수 장막이 불완전한 가운데 F형을 상대하다가는 함대가 크게 손실 당한다. 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면 몰라도, 트리플 S급 개새끼가 협조한다면 아군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하는 수 없이 윤조가 한발 물러서야 할 상황이었다. 강수혁을 달랠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윤조는 속으로 빠르게 다른 이들의 협조를 구했다.
‘모두 동의하십니까?’
-전원 동의.
장세인이 대답했다.
험악하게 돌아선 강수혁에게 다가간 윤조는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어차피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이지만 너무 대놓고 말하기에는 좀 그랬다.
“이번에 협조하면 물 맑고 백사장이 아름다운 태평양 무인도 체류 만 12시간 보장. 이동 봉사는 임성준 중위, 선베드, 파라솔 및 보급품 봉사는 최정 대령, 추후 컨디션 관리는 심나연 박사, 훈련 중 이탈에 관한 비밀 보장은 장세인 대위가 책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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