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쾅!
별안간 현관문이 벌컥 열리면서 심 박사가 뛰어 들어왔다.
“김윤조! 동작 그만!”
“헉.”
놀란 두부 새끼가 얼어붙었다. 놈의 긴장도가 격렬하게 치솟은 덕분에 패널티 중인 수혁은 한층 더 떨어야 했다.
“크아아악.”
고통을 견디지 못한 수혁이 게거품을 물자 심 박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김윤조, 당장 패널티 중지!”
“헉! 예.”
당황한 김윤조가 허둥대는 바람에 패널티 중지가 늦어졌다. 보다 못한 심 박사가 직접 패널을 꺼내 긴급 중지를 명령을 내렸다.
“커헉!”
“강수혁, 숨 쉬어. 숨. 그래, 옳지, 옳지. 잘한다.”
패널티는 사라졌어도 고통 자체는 아직 이어졌다. 발작을 멈추지 못하는 수혁의 등을 심 박사가 툭툭 두들겼다.
“이게 무슨 난리통이야.”
최정이 폭삭 늙은 채로 현관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는 내키지 않은 듯 뜸을 들이다가 심 박사가 쏘아보고 나서야 느릿느릿 발걸음을 안으로 들였다.
“강 소령 낌새가 심상치 않아서 무슨 짓을 할까 봐서 걱정했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믿었던 김 준위가 사고를 쳤네.”
최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파트너 사이라지만 서로 기밀도 멋대로 다 발설하고 말이야. 아주 좋아, 내 승진에 참 도움되겠어.”
흐릿한 미소를 짓는 그를 향해 김윤조가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여기에?”
“김 준위. 아까부터 계속 얘기했잖아. 우리 오픈 채널 쓴다고. 듣는 게 싫으면 통신을 꺼야지.”
“아.”
그제야 김윤조는 통신을 껐다. 무슨 생각으로 여태 통신도 끄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너희 싸우자마자 다른 놈들 통신을 다 꺼서 망정이지, 아니면 기밀 누설로 온 부대가 발칵 뒤집혔을 거다.”
가이드의 감탄사에 작전 사령관의 행색은 피곤하다 못해 남루해졌다. 분명히 입고 있는 군복은 새것인데 주인을 따라 세월이 한꺼번에 찾아온 듯 디지털 패턴이 흐려졌다.
고통이 현저히 반감되었다. 그래도 멀쩡하게 정신 차릴 수준은 아니어서 수혁은 심 박사의 부축을 받아 두 손과 무릎으로 바닥을 짚고 호흡을 골랐다.
“헉, 헉.”
전신에 힘이 없었다. 고통은 참는 동안 눈에 실핏줄이 다 터졌다. 안압이 너무 높아져서 그런지 시야도 흐렸다. 어금니가 흔들거리면서 잇몸에서 피가 났다.
“퉤.”
수혁은 입 안에 고인 핏물을 뱉었다.
패널티로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뇌가 천천히 회복하면서 뿌옇게 흐려졌던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수혁은 빌어먹을 개새끼부터 찾았다.
“너, 이리, 헉. 와. 김, 허억, 윤조.”
천천히 한쪽 손을 들어 까딱까딱했다. 시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 아직 흐린 중에도 얼어붙은 놈의 낯짝이 선명했다. 울컥 분노가 치솟았다.
-경고. 분노 급상승. 대상 에스퍼-강수혁.
심 박사의 패드에서 AI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싸늘한 적막 가운데서 수혁은 좆 같은 두부 새끼를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딱 한 대만 맞자. 그러면 용서해 줄게.”
이 사태의 주범이자 겁을 상실한 혓바닥을 소유한 시발 새끼는 가만히 있는데, 정작 겁먹은 최정이 토를 달았다.
“강 소령이 말하는 한 대는 그냥 한 대로 곱게 사망이란 뜻이잖아.”
시뻘겋게 핏발 선 수혁의 시선이 최정을 향했다. 끼어들 자리를 제대로 못 찾는 멍청한 작전사령관이 움찔하면서 김윤조 뒤로 물러났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죽이진 않을게.”
그렇게 말한 수혁은 심 박사를 봤다.
“인큐베이터, 다 고쳤지?”
드물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심 박사가 갑자기 패드를 조작했다.
“점검 중.”
“시발, 장난해? 하루면 다 고친다고 한 지가 언젠데?”
“그렇게 됐어.”
그러면서 심 박사는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을 패드에 띄웠다. 재점검을 위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지 18초 정도 흘렀다. 완료는 48시간 이후. 기가 막혔다.
“하. 시발놈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수혁이 후들거리는 무릎을 세워 한 발을 디뎠다.
“야, 김윤조도 만만찮은 또라이잖아. 가만히 맞아 주겠냐? 너, 두 번 당하면 뇌에 영구 손상 생길 수도 있어, 참아.”
심 박사가 김윤조를 향해 얼른 신호를 보냈다.
“심 박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 의사는 접어 주십시오.”
개새끼가 같잖게 경고했다.
수혁은 김윤조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얗게 질린 놈은 가까이 오지도, 그렇다고 멀리 달아나지도 않았다.
“시발.”
욕설을 들은 시발놈이 정말로 2차 패널티를 준비했다. 수혁의 정수리가 다시 따끔거렸다.
이미 동조된 이상 이쪽에서 페어링을 임의로 끊을 방법이 없다.
둘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부정해도 소용없다. 그는 이미 부처님 손바닥 안의 원숭이 신세였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닥치자 분노가 일었다. 어쩔 도리가 없음에 깊은 좌절감도 느껴야 했다.
올렸던 손이 툭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정수리의 따끔거림이 사라졌다.
“빌어먹을 가이드 시스템. 너희 모두, 곱게 못 죽을 줄 알아.”
심 박사가 어깨를 툭툭 쳤다. 수혁은 그 가당찮은 손을 거칠게 쳐냈다.
“왜 나한테 성질이야. 솔직히 네가 선을 넘은 것도 있잖아.”
이쪽이 숙인다 싶으니 눈치 빠른 심 박사가 다시 목청을 높였다. 간사한 새끼. 가이드인 김윤조 성격이 저 지경인 건 그를 재창조한 심 박사 탓도 분명히 있을 거다.
“다 같은 군 따까리 인생인데 과거를 묻긴 왜 물어. 막말로 김윤조가 진짜 복수한다 치자. 그래서 뭐? 도와줄 거 아니면 참견도 하지 말아. 또 기억 조작은 무슨 얼어 죽을 기억 조작. 기억 조작이 그렇게 쉽게 가능하면 네 대가리부터 먼저 조지고 시작했어.”
심 박사는 기억 조작이 얼마나 힘든 건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정신계열 조작은 너무 복잡하고 미묘해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대참사가 난다면서, 정신계 에스퍼는 보안 때문에라도 각국이 관광 목적 입국도 불가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 기억 조작이 가능한 정신계는 장세인뿐인데. 세인이 꼴을 봐라. 너만큼이나 제 멋대로인 애가 잘도 협조하겠다.”
맞는 얘기긴 하다.
장세인은 얌전한 편이어서 평범한 작전 명령에는 토를 달지 않는 대신에 특수 프로젝트를 시키면 발작한다. 일상적인 작전은 철저히 생 까는 대신에 대규모 특수 작전에는 그럭저럭 참여하는 수혁과는 반대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중상모략까지 할 일이야, 이게?”
“저 좆만 한 새끼가 감히 나를 이용하려 들잖아.”
심 박사에게 대꾸하면서도 수혁은 내내 개새끼를 노려봤다. 두부 낯짝에는 아까부터 표정이 없었다. 대신에 먹물색 눈깔이 수혁을 담담하게 응시했다.
“군인으로서 이래저래 이용당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냐? 너도, 나도, 최정도 다 군에 이용당하는 신세인데 새삼 왜 이러실까? 그나마 김윤조는 너랑 잘 지내보겠다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잖아. 좀 가상하게 생각해.”
“저 새끼는…….”
수혁은 저 새끼만은 다르다고 외치려다가 말았다. 본인을 두고 말을 하는데도 놈의 눈은 어떤 이채도 띄지 않았다. 수혁이 무슨 얘기를 하든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다르긴 뭐가 달라. 시발. 똑같다. 잠시나마 인간적인 뭔가를 기대한 자신만 우스울 뿐이다.
“심나연 얘기가 맞아.”
최정이 거들었다.
“강 소령은 그렇다 치고, 김 준위. 대단히 실망했어. 가이드로서 에스퍼의 안정을 보장해야 할 사람이 그런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서 에스퍼를 도리어 공격하면 어떻게 하나? 이거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 알아 봐, 당장 정신 교육이야. 강수혁은 알아서 달아날 테지만. 김 준위, 자네도 헌병대 피할 자신 있나?”
당연히 수혁을 탓할 줄 알았는데, 최정의 다그침은 의외로 김윤조를 향했다.
각종 능력을 보유한 에스퍼를 관리, 운용하는 특수작전부대는 다른 부대와는 내부 환경이 판이했다. 능력이 우선하는 야만 세계와 밀접해서 계급을 막론하고 날뛰는 미친놈이 허다했다.
가장 유명한 예시인 강수혁을 필두로, 에스퍼는 물론이거니와 그들과 이래저래 부대끼는 일반인 출신들도 하나둘씩 정신을 놓기 일쑤였다.
그런 만큼 정신 교육 과정이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차라리 군 교도소를 가면 갔지 정신 교육 과정은 못 받는다고 버티는 놈도 있다. 제멋대로인 에스퍼들 또한 되도록 안 끌려가려고 말 듣는 시늉을 할 정도였다.
본인의 협조 없이 연행이 불가능한 강수혁에게는 무용지물이지만, 하급 에스퍼 정도의 완력만 보유한 김윤조에게는 강력한 제재로써 작용한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상황의 불리함을 파악한 놈이 고개를 숙였다.
수혁이 화를 낼 때는 바락바락 대들던 놈이, 심나연도 아니고 고작 최정 따위에 고개를 숙이다니. 기분이 구겨지다 못해 썩어 들어갔다.
둘의 다툼을 적시에 무마한 심 박사와 최정은 주택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김윤조, 내가 허락할 때까지 패널티 금지……까지는 아니고 신중하게.”
“강 소령, 웬만하면 오늘은 곱게 넘어가자. 중장님 강림하신 지 며칠 안 됐잖아.”
장선욱까지 언급하던 두 사람이 떠나고 나자 주택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아직 바닥에 앉아 있는 수혁도, 멀찍이 선 두부 새끼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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