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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47화 (124/256)

47화

미친 새끼가 윤조를 능력으로 들어서 제 곁으로 옮겼다. 옆에 앉힐 줄 알았는데 미친놈이 윤조를 제 무릎 위에 앉혔다. 기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놈이 손목을 잡았다.

“왜 이러십니까? 요즘은 늙다리 변태도 안 이럽니다.”

“뭐 어때?”

강수혁이 윤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람.

“놓으십시오. 불편합니다.”

“할 거 다 했는데 무릎에 앉으면 어때?”

“제가 싫습니다.”

“나는 좋아.”

유치하기가 진짜 끝도 없다. 윤조는 허리에 들러붙은 강수혁을 밀어내지만, 완력으로 이길 리가 만무하다.

“같이 산다고 다 이럽니까?”

“어차피 장선욱이 나 달래 보라고 보낸 거잖아. 내 집에 들어올 때 각오했어야지.”

개새끼가 눈치는 빨라 가지고. 장선욱 중장 얘기에 윤조는 밀어내던 팔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상대가 작게 코웃음 쳤다. 작게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에스퍼가 아니라 제대로 듣진 못했으나 몇 단어와 뉘앙스를 조합해 보건대 동거 동기가 자원이 아닌 명령에 따른 것이라 불만인 듯했다. 당연히 명령이지. 그 외에 뭘 바란 건지 모르겠다.

불만을 품고도 강수혁은 윤조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까?”

“응.”

확답이 돌아왔다.

“왜요?”

“그냥.”

“그냥이 어딨어요?”

되묻는 말에 힘을 실진 않았다.

“그냥이 그냥이지. 가이드가 그런 거잖아. 그냥 같이 있으면 기분이 안정되고 좋은 거.”

“그렇긴 한데 제 의사는 없습니까?”

“없어. 넌 내 전용이니까. 나한테 맞춰.”

“소령님 전용 아닌데요.”

“아니야?”

쏘아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잡은 손목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라고 계속 우기면 사달이 날 분위기였다. 윤조는 감금 폭행, 그리고 다른 후보 에스퍼는 의문의 사망 실종 등등.

기왕 긍정적 변화를 보이는 망나니를 굳이 자극할 필요 없다.

“농담입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개새끼.

말없이 후식처럼 윤조를 음미하던 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말 다 했으면 아까 하던 거 계속하자.”

“아까 하던 거 뭐요?”

미친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다.

의도를 알아채지 못해 멀뚱하게 선 윤조를 망나니가 돌려세웠다. 길쭉하고 넓은 문짝 같은 몸의 그림자가 윤조 위로 쏟아졌다.

“어?”

“내가 한 번으로 안 된다고 얘기했던가? 원래는 너 기절하고 더 했거든.”

“기절한 사람 겁탈하고…… 참 나라의 자랑이십니다.”

비꼬는 말에 강수혁은 그저 입꼬리만 말아 올렸다.

동시에 윤조의 티셔츠도 말려 올라갔다. 빌어먹을.

* * *

처음 우려하던 바와 달리 둘은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얼굴을 마주하고 의식주를 나누고 몸을 겹치는 동안 얼렁뚱땅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말싸움은 여전히 이어졌다. 대신 힘이 한결 빠졌다. 죽일 듯이 짖어 대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솔직히 침대로 뛰어들기 전 괜히 서로를 자극하는 방편으로 전락해 버렸다.

강수혁은 툭하면 윤조의 입술을 빨고 젖꼭지를 만졌다. 그것이 긴 행위로 이어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자꾸 만져지는 데 지친 윤조가 먼저 그를 침대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주로 벽이 뻥 뚫린 쪽 방을 썼다. 그곳의 새 침구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장선욱 중장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

“너 이제 키스만 해도 선다.”

별다른 예고도 없이 주둥이부터 붙이던 강수혁이 지적했다.

“익숙해져서 그런 겁니다.”

“더 익숙해지면 눈만 마주쳐도 세우겠는데?”

놀림에도 윤조는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강수혁이 진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어쩐지 찌릿찌릿하곤 했으니까.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떨어지십시오.”

“하자.”

강수혁이 윤조를 끌어안았다. 누구는 세운 정도지만 누구는 아예 옷을 뚫을 상황이었다.

‘눈만 마주쳐도 벌떡 세우는 게 누군데.’

진득한 키스를 이어 가며 윤조는 코웃음 쳤다.

원래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세우진 않았다. 빈도가 잦아진 대신에 행위의 폭력 정도는 현저히 낮아졌다. 회를 거듭할수록 강수혁 본인도 안정되어서 쓰는 완력의 수준도 그저 힘 좀 센 남자 정도에 머물렀다. 윤조가 온몸을 다 던져 강도 조절 능력을 키워 준 덕분이었다.

문제는 길들여진 건 강수혁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윤조 또한 강수혁의 존재에 점점 빠져들었다.

가이드 시스템으로 인한 뇌파 동조란 결국 상호적이니.

06. 훈련

훈련 일정이 잡혔다. 원래는 무시하려고 했다. 아니 애초에 연락 온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인 통신기는 이쪽에서 먼저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선 아예 보질 않는다. 하지만 최근 생긴 동거인은 달랐다.

“오늘 훈련 일정이 있습니다. 소령님도, 저도요. 저는 훈련 전에 점검부터 받아야 해서 연구소로 갈 겁니다.”

뜨끈한 침대에서 불쑥 일어서 나가는 놈을 수혁은 잡지 못했다. 대신에 놈이 씻는 사이 일어나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역시 김윤조 혼자 보내긴 싫다.

준비 후 뒤늦게 개인 통신기를 확인했다. 작전 본부 내에 있는 소형 격납고로 오라는 통지를 확인하곤 얼굴을 구겼다.

목적지로 향하기 전에 함께 데려온 김윤조를 심 박사 연구실에 먼저 데려다 놓았다. 상태 점검을 위해서였다.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재생 프로그램을 돌릴 것 같진 않다고 김윤조가 말하긴 했지만. 일주일 내내 살을 붙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떨어뜨려 놓으니 어쩐지 허전했다.

훈련 일정을 잡은 놈에게 화풀이할 심산으로 강수혁은 호출 장소로 향했다.

특수 콘크리트로 지은 소형 격납고 안에 간의 철제 의자가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강 소령님! 이번 훈련에도 안 오실 줄 알았습니다.”

덜 자란 개새끼 같은 놈이 벌떡 일어나더니 격납고 바닥을 향해 미끄러지듯 착륙하는 강수혁을 향해 보이지 않는 꼬리를 살살 쳤다. 20대 중반에 웃는 상이 인상적인 저 애송이 새끼는 중위 임성준이었다.

김윤조 리스트 두 번째에 있을 후보. 비행 능력 겸 순간 이동 능력자.

거기까지 떠올리자마자 그렇지 않아도 저조하던 기분이 팍 상했다.

원래도 징글징글한 붙임성으로 유명한 임성준 새끼는 수혁을 비롯한 모든 에스퍼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버릇이 있었다.

다소 귀찮긴 해도 눈치가 빨라 성질을 건드리는 일은 드물며, 더욱이 수혁이 무시하는 본부 연락 사항 중 꼭 필요한 사안을 선별하여 전달하는 편리한 짓도 해서 딱히 배척하지는 않았다.

다른 놈처럼 얼쩡거리다가 척추가 나가는 일이 임성준에게는 없었던 덕분인지 수혁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후배라는 말도 안 되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여태까지 정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내버려 뒀다.

그러나 그런 오해도 오늘부로 끝이다. 정정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감히 누굴 보고 알은척이지?”

수혁은 임성준을 싸늘하게 노려봤다. 더불어 놈이 권하려고 손을 댔던 간이 의자가 그 자리에서 엉망진창으로 우그러졌다.

덜컹.

제가 가리키던 의자가 구체로 변해 뒹구는 걸 본 놈이 우뚝 굳었다.

“음, 어.”

임성준은 당황한 채로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임성준과 한 칸 띄고 자리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장세인. 김윤조 리스트 세 번째 후보. 텔레파시 겸 마인드 콘트롤 능력자.

하지만 장세인의 경우는 임성준만큼 반감이 들지 않는다.

일단 장세인은 수혁만큼이나 마이페이스에 인간 혐오자였다. 그를 증명하듯 강수혁도 챙겨 입는 군복은 어디로 내버리고 치렁치렁한 검은 드레스 차림이었다. 싸구려 흡혈귀 영화에 출연하는 단역 배우 같았다.

실력은 단역 배우급이 아니어도 빛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처럼 파리한 낯에 시커멓고 귀신 같은 장모 산발에 음침한 성격까지. 이성에게 어필할 매력 요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결정적으로 장세인은 여자다. 튼튼한 가랑이 물건이 없어서 김윤조를 쑤셔 줄 수 없다.

최근 김윤조는 삽입할 때마다 세게 해 달라고 징징댔다. 구멍이 가렵다나 뭐라나. 거칠게 박아 줘야 만족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세인은 김윤조 리스트에 있으나 마나 했다.

“훗.”

장세인과 눈이 마주친 수혁은 승리감이 가득한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텔레파시 능력자여서 과묵하기 이를 데 없는 그가 드물게 입을 열었다.

“뭔가 기분이 나쁜데.”

“그렇죠? 대위님?”

임성준에게 한 말은 아닐 텐데. 임성준은 장세인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수혁을 대놓고 관찰했다. 딴에는 낮은 목소리로 장세인에게 속삭였으나 수혁에게 다 들렸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 텔레파시로 파악할 수 없어요?”

“나, 텔레파시 능력자야. 머리로 생각하면 다 들리니까 속삭이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강수혁은 안 돼. 읽을 수 없어. 안 들려. 마지막으로 좀 떨어져.”

“왜요?”

“들러붙는 게 귀찮으니까.”

“그거 말고 강수혁 소령님 왜 읽을 수 없냐고요.”

임성준이 이유를 굳이 또 물었다. 장세인은 그런 임성준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보안 사항.”

“아.”

보안 사항으로 통하는 수혁의 척추에 박힌 장치를 떠올린 임성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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