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변태 새끼가 일상적인 용어 사용으로 인한 충격을 소화하는 사이 윤조는 계속 쪼록쪼록 두유를 빨았다.
“시끄럽게도 마시네.”
“근데 저 계속 이렇게 둥둥 떠 있어야 합니까?”
윤조는 바닥과 강수혁을 번갈아 봤다.
강수혁은 윤조의 말을 마치 못 알아들은 듯이 이쪽을 계속 외면했다. 윤조의 의도를 모르는 척했으나 강수혁이 정말로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잠시 후 방구석에 몰려 있던 윤조의 몸이 바닥으로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언제는 눈 앞에 녹슨 낫을 내밀더니. 친절해서 좋긴 한데 약간 떨떠름했다.
윤조가 따로 요청하기도 전에 침대를 알아서 교체했다. 때를 맞춰 간식도 제공한다. 비록 유치한 보복도 하고 도청도 하고 아까는 정말 뚜껑 열리는 개소리도 찍찍 짖었으나 그거야 늘 그러니까 열외로 쳤다.
삭막해도 약간 촉촉한 구석이 있긴 있다. 뭐 사막에도 가끔 비가 온다고 하니까.
“그런데 제가 이 두유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생긴 대로 놀 것 같긴 했는데. 역시 그렇네.”
고개를 끄덕이는 상대의 눈빛이 꽤 기분 나빴다. 하긴 강수혁 전체가 기분 나쁘지 않을 리가 없을 터다.
“생긴 대로? 설마 두부라서?”
“정답.”
상큼한 톤으로 돌아온 응답에 윤조의 입맛이 뚝 떨어졌다. 고소하고 시원하긴 개뿔. 잘 마시던 두유가 순식간에 텁텁하고 미적지근하게 느껴졌다.
“아 씨. 무슨 콩국물 추가도 아니고. 기분 나빠서 안 마셔.”
“풋.”
강수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즐거움으로 살짝 접힌 상대의 눈매를 보자마자 윤조는 두유 빨대로 얄미운 눈알을 찌를 뻔했다.
참을 인을 열 번 새기면서 윤조는 반쯤 빈 통을 개새끼에게 내밀었다.
“가져가십시오.”
“싫으면 관둬.”
실실 쪼개면서 강수혁은 윤조에게서 두유를 받아들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윤조가 입을 댔던 빨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그러곤 쪽쪽 빨아먹었다.
그 광경에 윤조가 기겁했다.
“소령님이 그걸 왜 먹습니까?”
“네가 안 마시니까?”
두유를 다시 빼앗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애초에 몸으로 하는 건 뭐든 강수혁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일로 패널티를 쓸 수도 없고. 윤조의 속만 뒤틀렸다.
“갖다 버린다면서요?”
“마음 바뀌었어.”
정말 뻔뻔하게 나온다. 순 억지쟁이에 변태 새끼.
“아니 그래도 남이 먹던 걸. 더럽지도 않아요?”
비위를 공격해 보았다. 노팬티 하나로도 펄펄 뛰는 작자이니 비위가 약할 수도 있다.
“안 더러운데.”
“…….”
윤조는 할 말을 잊었다.
강수혁 이 새끼는 진짜 모든 일에 너무 선택적이다. 군 상부에서 가이드 시스템을 서둘러 만든 이유가 있었다. 이런 또라이를 제대로 된 고삐 하나, 목줄 하나 없이 감당했으니 얼마나 빡이 쳤을까.
강수혁은 두유를 금방 비우고도 빨대를 뱉지 않았다. 오히려 잘근잘근 씹으면서 윤조를 빤히 봤다. 아주 먹을 기세였다. 의도와 태도가 불순했다.
“그런 식으로 보지 마십시오.”
“무슨 식?”
“그거 성희롱입니다.”
도대체 지겨운 말싸움을 또 얼마나 해야 하는 걸까.
“뭐가?”
“음흉하게 보지 말라고요.”
“뭘 음흉하게 봤다는 거야?”
여전히 조롱이 어린 눈길이 윤조의 전신을 훑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지금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젠 눈깔 뜨는 방식도 건드리네.”
망나니가 보란 듯이 더 들이대면서 피식 웃었다.
윤조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정말로 투시 못하는 거 맞나? 그러기엔 윤조의 토르소만 집요하게 훑는 시선이 너무 변태적이고 끈적했다.
“정말 투시 능력 없는 거 맞죠?”
“내가 무슨 신이냐? 별걸 다 하게.”
“별거 다 할 줄 아니까 확인하는 겁니다.”
이젠 끊어지기 직전인 빨대를 여전히 씹던 상대가 심드렁하게 콧방귀를 꼈다.
“못해. 할 줄 알면 네 대가리 속부터 확인했을 거다. 하여간 발랑 까져가지고. 순수하게 쳐다보는 것도 그런 쪽으로 연결하지 않나. 사상 개조부터 해야 해, 너는.”
“사돈 남말 하지 마십시오. 남 사생활이나 도청하는 변태 끝판왕 주제에.”
변태 끝판왕이라는 말이 능글거리던 강수혁이 발끈했다.
“도청이 아니라 들린 거라고. 뚫린 귓구멍을 막을까?”
“네. 막으세요. 급속 건조 시멘트 구해다가 귀에 부어 드려요?”
“하여간 지랄 맞은 새끼. 한마디도 지지를 않아.”
빈 두유 팩을 콱 우그러뜨린 강수혁이 드디어 몸을 돌렸다.
지겨운 말싸움을 빙자한 성질 더러운 개 길들이기 일과가 드디어 끝나나 싶었다.
문지방을 넘던 강수혁이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또 뭐 하려고? 싶은 마음에 눈초리부터 가늘어지던 참이었다. 놈이 갑자기 이름을 툭 불렀다.
“야, 김윤조.”
“또 왜요?”
“너, 내가 너랑 4계급 정도 차이 나는, 하늘 같은 상관인 건 알고 있지?”
참 새삼스럽게도 물어본다.
“네. 왜요?”
“아는 새끼가 왜 이렇게 시건방져? 너는 위아래도 없냐?”
“아니까 소령님을 상대하고 있죠. 고작 준위라서 상부 명령에 납작 엎드리는 신세가 아니면 제가 소령님 상판을 보기라도 했겠습니까?”
순간 강수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하지만 언성을 높이진 않았다.
“누군 아닌 줄 아나 봐. 가이드 시스템만 아니면 너 같은 거 벌써 피떡 되고도 남았어.”
돌아온 말에 가시가 가득했다. 시답잖게 농담을 따먹던 분위기였는데. 갑작스럽게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뭘 또 진심이 되고 그래? 속이 나노미터급인 밴댕이 새끼.
“암요. 잘 압니다.”
“징그러운 새끼.”
진저리를 떤 강수혁은 집 안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문 쪽을 보는데 이상하게도 윤조의 명치가 꾹꾹 눌렸다.
“스트레스인가. 아, 다 들리니까 혼잣말하지 말랬지. 미안합니다. 앞으로 욕은 속으로만 할게요.”
윤조는 명치를 문지르다 말고 작게 중얼거렸다. 상대의 반응은 감지 못했지만, 분명히 들었을 거다.
그보다는 명치 통증이 신경 쓰인다. 어쩌다 한 번이면 넘어가겠는데. 벌써 세 번째다.
뇌 다음으로 중요 기관이 몰려 있는 곳이 흉부다. 재생 과정에서 집중 치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겨울 만큼 많은 재생, 검사를 반복했는데도 흉부에 특별한 이상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왜 이렇게 명치가 쑤시지?’
스트레스성 위염 증세 같기는 한데. 문제는 위염이 있으면 검사에 반드시 걸린다. 장기에 발생한 이상은 윤조나 심 박사의 명령이 없이도 연구실 AI가 알아서 복구한다. 그럴 때도 재생 보고 파일에 관련 항목은 뜨게 되어 있다.
심 박사와 의논할 항목이 늘었다. 부디 강수혁과 관련된 이상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방이 고요했다.
‘잠잠하니까 또 이상한데?’
눈앞에 있으면 빡치는데 막상 없으니 또 신경 쓰인다. 성질을 부리고 나갔는데 또 어느 동네 산이 무너질지. 꼭 화약을 가진 아이를 산불 현장에 내버려 둔 느낌이었다.
궁금함과 불안함 반에 윤조는 특수 위성에 강수혁의 위치 파악을 지시했다.
1초도 안 되어 AI가 보고했다. 그에 따르면 그는 윤조의 전두엽 위치를 기준으로 대략 4.7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집안 같은 층 다른 방이었다.
‘자기 방인가. 근데 뭐 하는데 잠잠하지? 어느 집 뒷산을 무너뜨릴지 고민하나?’
알아볼 수 있는 수단은 하나뿐이다. 에스퍼의 뇌를 뒤질 수 있는 뇌파 동조.
윤조는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망할 놈의 뇌파 패턴을 읽어 내렸다.
* * *
제 방으로 돌아온 수혁은 김윤조와 바꾼 침대에 벌러덩 누워 천장을 봤다.
자신의 옷을 입고 자신의 이불을 덮고 있을 놈을 상상했다. 제 생체 부스러기가 묻어 있을 옷과 이불에 발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니. 가이드 시스템으로 인한 뇌파 동조가 김윤조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침이 틀림없다.
“그래도 내 이불을 훔친다니…… 황당한 놈.”
들키지 않고 이불 절도가 가능하리라고 진심으로 여겼나. 그랬다면 상상 이상으로 멍청하거나, 혹은 순진하거나.
‘순진이라니. 노팬티에 한 판 하고 시원하게 끝내자는 놈한테 순진은 무슨. 전혀 어울리지 않지. 아니 약간 어울리나? 두유 마시는 꼴이 좀.’
거기다가 따박따박 말대꾸하여 수혁을 열받게 하는 재간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저울추가 순진함 쪽으로 기울어진다.
오랫동안 방치한 시트와 매트리스에선 불쾌하고 꿉꿉한 냄새가 났다. 갓난쟁이 피부를 가진 놈이 싫어할 만했다.
능력을 이용해 먼지를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일어나야 한다. 귀찮다. 더욱이 가랑이가 딱딱할 때는 사소한 것이라도 능력을 쓰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런데 사소한 일로 세 번이나 능력을 사용했다.
평소라면 고작 그런 수준의 능력 사용으로 이런 반응이 있을 턱이 없다. 이건 다 건넛방에 있는 놈 탓이었다.
“시발.”
그냥 모든 게 좆같다.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일 수가.
김윤조라는, 수혁의 무료하고 삭막한 에스퍼 삶에 거대한 장애물이 나타난 후로 한시도 잠잠한 날이 없다.
매번 벌이는 말다툼 하나하나가 태풍이고 해일이었다. 오늘은 지진으로 수혁의 고요한 일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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