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뭐?”
“능력 발현 언제 했는데요?”
“모르는데?”
“무슨 에스퍼가 자기 발현 시기도 몰라요?”
“자아가 생기기 전부터 발현해 있어서.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발현 상태였을걸?”
“그런 경우도 있어요? 처음 들어 봅니다.”
“있어 여기. 그런데 그건 왜 물어봐?”
“보통 발현 시기에 따라 입대하니까요. 에스퍼라도 미성년자이면 예비군으로 등록하고 나이가 차거나, 능력이 일정치 이상 올라가면 군 소속이 되니까.”
“아하. 언제부터 군 생활을 했는데 여태 삽질도 안 해 봤냐, 이거야?”
정곡이 찔렸는지 놈이 멈칫했다.
“예.”
불퉁한 대답에 수혁은 쿡쿡 웃었다. 하여간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이겨 먹으려고 애쓴다 싶었다.
“너는 트리플 S가 물로 보이냐? 나는 처음부터 장교였어, 멍청아. 그것도 실전 투입되는 전투 장교. 외계 괴물 때려잡아야지 삽질할 틈이 어디 있어.”
“그렇군요. 누구는 스무 살에 삽질부터 시작해서 목숨 걸고 준위를 달았는데. 누구는 날 때부터 어깨에 꽃 달고 나왔구나. 그렇구나. 참 공평한 세상이네요.”
놈은 금세 침울해졌다. 그러곤 세상 허망하다는 태도로 느릿느릿 낫질했다.
‘화내다가 우울하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잖아. 진짜 웃기는 놈이야.’
수혁은 헛웃음이 터졌다. 저게 어떻게 군인이 되었는지 심지어 어떻게 전과를 세워 특작부로 들어왔는지 궁금했다.
특작부는 엘리트 중 엘리트만 들어오는 특수 목적 부대이다.
일반인 출신 병사들도 다른 부대 병사에 비해 월등한 전투 실력을 보유한다. 전투 실력은 보통 눈치와 빠른 판단, 참을성이 없으면 갖추기 힘들다. 전투병력이 아닌 부대원들은 두뇌가 아주 뛰어나다. 그들은 전략 기획을 하거나 혹은 군에서 운영하는 각종 무기 및 설비 개발과 연구에 종사한다.
성격적으로도 엘리트 부대인 이상, 상하 질서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떤 강압에도 묵묵히 버틸 만큼 성격이 무던하거나 혹은 약삭빨라서 조직 생활에 도가 트거나.
김윤조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동시에 둘 다기도 했다. 곰 같으면서도 미련하진 않고 그렇다고 여우라고 치기에는 너무 허술했다. 특작부에 있는 여타 군인들에 비해 성격부터가 이질적이었다.
왜 김윤조여야 했을까.
심나연은 김윤조의 무엇을 보고 가이드로 선택한 걸까.
심 박사가 가이드 시스템을 만드는 걸 알았을 때, 수혁은 솔직히 무시했다. 가이드 시스템이 무슨 종이학 접기도 아니고. 만들겠다고 결심만 하면 뚝딱 해낼 수준의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유럽과 북미에 가이드 시스템이 있으나, 이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십 명의 희생자를 내고서 간신히 가이드 시스템을 완성했다. 더불어 현재도 가이드 제작 성공률이 별로 높지 않아서 가이드 세대교체가 미뤄지고 있다.
그런 가이드 시스템을 아무리 두뇌 발달형 에스퍼라지만 심 박사 혼자서 만들어 냈다고? 뭔가 석연치 않다.
더욱이 가이드가 된 후 김윤조의 처지는 매우 암울했다.
인큐베이터에서 눈을 뜨자마자 수혁의 손에 몸이 피떡이 되었다. 이후로도 수시로 뼈와 살이 터져나갔다. 그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다리까지 벌려 가며 역겨운 짓을 해야 했다.
솔직히 수혁이 김윤조 입장이라면 벌써 혀 깨물고 죽었다.
“야, 김윤조.”
“예에에? 왜요?”
놈은 0.5배속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짜증 나서 죽겠다는 놈을 향해 수혁이 물었다.
“가이드는 왜 된 거야?”
잠시 멈칫하던 놈은 이내 황당함을 담은 눈빛을 수혁에게 던졌다.
“이렇게 갑자기요?”
“갑자기는 무슨. 전부터 물어보려고 했어.”
김윤조는 들고 있던 낫을 바닥에 쿡 찍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 불쑥 물어볼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불쑥 안 물어보면. 물어보겠다고 사전 예고라도 하고 물어봐야 하나? 이용 가능한 시간 알려 줘. 예약부터 잡게.”
조롱하며 따지고 들자 놈은 고개를 저쪽으로 돌렸다.
“됐습니다.”
“그래서 대답은?”
김윤조는 낫으로 잔디를 짓이기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멋있어 보여서요.”
“뭐라고?”
수혁은 제가 잘못 들었나 했다.
“다시 말해 봐.”
“거참. 트리플 S급이라면서요? 청각 기준 미달이에요? 트리플 S급 전용 보청기 하나 구해다 드려요?”
저게 정도를 모르고 날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창가 소파에 누워 있던 수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상체를 창밖으로 내밀고 삿대질하며 고함쳤다.
“야잇! 미친 새끼야. 넌 목숨을 스페어로 막 몇 개씩 달고 다니냐? 툭하면 뼈 부러져, 살 찢어져. 인큐베이터 없으면 죽는다고 지랄하는 새끼가. 멋있어 보인다고 겁대가리도 없이 가이드 프로젝트를 지원해? 순 처돌은 놈 아냐.”
“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령님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신선한데요?”
김윤조는 부끄러움을 전혀 몰랐다. 이런 황당한 새끼를 봤나.
“뭐, 멋있어 보여? 그래서 몸을 바꿨어요? 가이드 프로젝트가 무슨 무료 전신 성형인 줄 알아? 좀만 삐끗해도 너 바로 뒈졌어. 성공 확률이 로또급이었다고.”
“안 삐끗했는데요.”
얄밉게도 따박따박 대꾸하던 놈이 별안간 사나운 눈초리로 수혁을 노려봤다.
“로또 확률을 뚫고 성공했는데 누구누구 덕분에 뒈질 뻔은 했습니다. 아주 고오맙게도 새 몸을 또 새 몸으로 갈아 주시더라고요? 이후로도 수시로 뼈 강도 확인하여 주시고, 피부 파손 한계도 손수 파악해 주시고. 망할 놈의 성욕 해소까지. 아주 뭐 고루고루 저를 위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순간 수혁은 반박할 말을 잊었다. 특히 성욕 해소라는 부분이 수혁의 먼지 같은 양심을 자극했다. 그 부분에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막노동까지 시켜요? 그렇다고 사람 취급을 해 주긴 하나. 아니다. 리모컨에서 예초기로 업그레이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격하다 못해 아주 눈물이 나네요.”
김윤조가 쉬지도 않고 구시렁거렸다. 잔소리에도 위성 AI 돌리는 거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됐어. 때려치워. 이 새끼야.”
더는 듣기 싫어서 수혁은 능력으로 낫부터 저 멀리 날려 버렸다. 그러자 구시렁거림이 딱 멎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놈의 낯짝에는 노동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이 만연했다.
“이제 쉴까요?”
망할. 휘말렸다. 낫질 지시 후 일절 상관을 안 했어야 했는데. 괜히 말을 걸었다가 손해 봤다. 잠이나 잘걸.
후회가 들었다. 아주 잠깐, 뱉은 말을 취소하고 다시 시킬까 고민했으나 도로 주워 담는 건 수혁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쪼잔했다.
“어휴 저걸. 때릴 수도 없고.”
약이 올라 죽으려고 하는 수혁을 향해 김윤조는 씨익 쪼갰다.
수건을 벗어 땀난 이마를 닦으면서 놈은 알아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멋대로 거실 에어컨도 작동시켰다. 에어컨의 찬바람이 놈의 젖은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수혁의 예민한 후각에 옅은 땀 냄새가 걸렸다. 다른 놈들의 땀 냄새는 역겨워서 구역질이 나는데. 저 새끼는 땀 냄새가 꼭 젖먹이 아기 내음 같았다.
몸을 수시로 재생해서 그런가. 아니면 자신의 후각 수용 체계에 문제가 생겼든가. 어느 쪽이든 근본 원인은 하나다.
‘망할 놈의 가이드 시스템.’
땀을 식힌 놈은 알아서 욕실을 찾아서 샤워를 시작했다.
거리낌이 없다 못해 아주 제집이다. 저 능청스럽고 뻔뻔한 놈이라면 샤워 후에 차가운 음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게 뻔하다. 애처럼 바나나 우유나 혹은 옛날식 요구르트나.
“물 마시면 되지. 내가 그런 거까지 챙겨야 해?”
수혁은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후 햇살을 받은 천장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평소 안 하던 생각이 야금야금 꼬리를 물었다.
‘저 새끼. 연두부라서 수분 함량이 높을 텐데. 아까도 10분 일하고 물 마셨고. 냉장고에 시원한 물은 있고. 하지만 수분 보충에는 맹물 말고 다른 게 더 좋은데. 물 말고 또 뭐가 있더라.’
머릿속으로 냉장고를 더듬던 수혁은 이내 벌떡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평소에 물 외에 다른 음료는 딱히 즐기지 않아서 이렇다 할 음료수가 없었다.
물을 제외하면 밥 대신 먹는 맥주나 밥 먹을 때 종종 곁들이는 독한 증류주. 연두부에게 먹일 만한 순한 음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우유라도 사 놔야 하나. 아니 두부니까 두유?”
두유가 딱이다.
결심하자마자 수혁은 즉시 열린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오늘 아침 직접 무너뜨린 산자락 인근에 복합 편의 시설이 있다. 고속으로 날아간 수혁은 건물 바로 앞 외부 주차장에 착지했다.
쿵.
진동에 이어 돌풍이 불자 주차장을 오가던 사람들이 기겁했다. 군인이거나 군인 가족인 그들은 즉시 바닥에 엎드렸다. 똑바로 선 사람은 오로지 수혁뿐이었다.
자동문을 무시한 수혁은 능력으로 수동문을 밀치고 복합몰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서 인이어 무전이 난무했다.
-날강도 출현. 날강도 출현. 모든 직원은 정위치에 대기. 가져가는 물건 빠짐없이 체크할 것.
딴에는 소리를 낮춰 몰래 무전을 돌리는 것이지만 수혁에게는 다 들렸다.
“날강도라니. 사람을 뭐로 보고.”
물건값은 확실하게 계산하고 있다. 물론 거추장스럽게 수혁 본인이 계산대에 서는 일은 없다. 본부 소속 행정병이 추후에 알아서 해결한다. 물론 부대의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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