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쾅!
성질 더러운 에스퍼의 발길이 철제 현관문 중심에 꽂혔다. 잠금이 망가지면서 활짝 열렸던 현관문이 이내 삐이이익 초라한 마찰음과 함께 다시 닫혔다. 역시나 비뚜름하게 틀어진 문짝은 제대로 닫히지 않고 틀에 걸쳐졌다. 그사이 원흉은 벌써 사라졌다.
“무식하게 힘만 센 미친 새끼.”
윤조는 양 중지로 공중을 휘저었다.
당장 연구실로 가서 인큐베이터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인큐베이터 상태가 심각하면 당분간 훈련과 작전에 빠져야 한다. 이세명 건으로 최정 대령이 신세를 졌으니, 당분간 사정을 봐줄 거다.
남은 인공 양수부터 씻으려고 막 욕실로 향하던 때였다.
쿠르르르릉.
거대한 굉음과 함께 아파트가 진동했다.
“뭐지? 게이트인가?”
깜짝 놀란 윤조는 황급히 아파트 베란다로 향했다. 알몸인 것도 잊고 통창을 열고 나가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멀쩡했다. 고개를 빼보아도 게이트의 출현을 알리는 형광색 오로라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게이트 조짐이 보이면 바로 경고를 할 특수 위성 AI도 별다른 이상 없이 잠잠했다.
다만 윤조를 놀라게 한 것은, 꼭대기에서부터 서서히 미끄러지고 있는 뒷산의 풍경이었다.
우르르르르.
산사태가 일어났다. 태풍도, 장마도 없이.
“뭐야? 산이 왜 무너져? 당장 본부에 연락해!”
“외계 침공인가? 게이트 경보가 왜 안 울려?”
군인 아파트인 만큼 각 층 베란다에서 상황을 주시하는 인물이 많았다. 그들이 외치는 말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방사능 수치 이상 없습니다. 게이트 아닙니다.”
“강수혁 소령입니다.”
“또?”
“그 새끼 꼭두새벽부터 왜 지랄이야? 도대체가 발 뻗고 잘 수가 없어!”
“어휴, 외계인은 뭐하나. 화상 새끼부터 안 잡아가고.”
강수혁 짓이라는 걸 확인한 장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욕했다.
잡목으로 빽빽하던 산 한쪽이 완전히 깎였다. 흙먼지가 우르르 피어올랐다. 아파트에 닿기 전, 베란다를 채웠던 장교들은 열었던 창문을 닫고 아파트 안으로 사라졌다.
자욱한 흙먼지를 맞은 윤조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미친 새끼.”
깊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윤조가 인공 양수부터 씻고 옷을 입는 사이 헌병대가 집에 도착했다.
강수혁이 영문 없이 지랄했는데 그 인근에 가이드의 집이 있다? 상관관계를 빠르게 파악한 사령부가 사건 발생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윤조부터 소환한 것이다.
보통은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를 연행해야 옳다. 하지만 성질이 난다고 산사태를 일으키는 트리플 S급 광인(狂人) 새끼를 누가 연행할 수 있을까.
헌병대 차를 타고 사령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반대편에서 아파트 단지 쪽으로 군용 트럭 두 대가 지나갔다. 자연스럽게 눈길이 그쪽을 향했다. 입구 없이 천장만 만든 짐칸의 가장자리 간이 의자에 저마다 삽을 든 공병대 병사가 영혼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심지어 몇은 잠도 덜 깬 모습이었다.
강수혁의 뒤치다꺼리를 어느 누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건가.
‘외계인은 뭐 하냐? 화상 새끼부터 안 잡아가고.’
공병대 병사의 얼굴에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윤조를 사령부로 이송 중인 헌병대의 포커페이스에도, 베란다에 섰던 장교와 같은 의문이 걸려 있었다.
사령부에 도착하자마자 헌병대는 윤조를 사령부 조사실로 데려갔다.
앞쪽 중앙 상석부터 뒤쪽 벽까지 벽을 따라 의자가 놓여 있다. 탁 트인 중앙에는 보통 의자 한 개 혹은 두 개가 있는데 오늘은 한 개였다. 윤조는 중앙 의자에 앉았다. 헌병대가 각 입구에 부동자세로 섰다.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별 세 개를 단 장군이 한 명 들어왔다. 장선욱 중장이었다. 뒤를 따라 최정 대령과 심 나연 박사도 모습을 드러냈다.
윤조는 벌떡 일어서서 경례했다.
“준위 김윤조.”
귀밑이 희끗희끗한 장군은 ‘쉬어’라는 말도 없이 손끝만 눈썹 인근에 슬쩍 댔다가 내렸다. 그리곤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아서 깊은 한숨부터 푹 쉬었다. 오늘로써 장선욱 중장의 주름살이 하나 더 늘 것이다.
“우리 망나니 새끼가 오늘도 사고를 쳤다지?”
“예. 금일 05시 13분경. 소령 강수혁이 군인 아파트 뒷산 봉오리를 타격,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아파트 피해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측량을 위해 공병대가 우선 출동했습니다.”
최정 대령이 보고했다.
“이유는? 이라고 물어봐야 당장은 최정이, 너도 모를 테고. 김 준위, 대답할 수 있나?”
장선욱의 눈길은 곧장 윤조를 향했다.
윤조는 어제 재생 중에 멋대로 인큐베이터를 부수고 자신을 빼낸 일부터 아침에 그에 관해 추궁하던 상황까지 보고했다.
장선욱 중장은 중간중간 심 박사에게 사실을 확인했다. 심 박사는 윤조의 경위 보고를 듣다가 인큐베이터 파손 정도에 관해서 다른 의견을 내놨다.
“좀 전에 파손 정도를 확인했습니다. 잠금 부분이 부서졌는데 교체용 부품이 있어 하루 정도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가? 듣던 중 반가운 얘기군. 그게 얼마짜리인데.”
장선욱의 굳었던 낯이 살짝 풀렸다.
특수작전사령부의 최고 사령관인 그의 주요 전장(戰場)은 국회와 정부 부처였다. 예산 확보와 부대 유지가 주 임무인 장선욱으로서는 당장 돈 생각이 먼저 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이드 시스템 가동 이후로 그 녀석이 큰 사고를 치는 횟수가 줄긴 했어. 하지만 가이드 시스템에 들어간 돈을 갈음하기엔 부족하단 말이야. 이렇게 자잘한 사고라도 계속 치면 말이지.”
탄식에 심 박사가 바싹 얼어붙었다. 장선욱의 한마디면 가이드 시스템을 완전히 무(無)로 돌리는 일도 가능했다.
윤조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산봉우리 하나가 박살이 났는데 그게 과연 자잘한 사고인가 잠시 고민했다.
“가이드가 있는데 도대체 왜 사고가 계속 이어지지? 그리고 가이드에 대한 공격성은 아직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나? 둘이 그렇고 그래서 이제는 이럴 일 없다고 심나연이, 네가 전에 그랬잖아.”
“예, 중장님. 강수혁의 난동 빈도와 강도는 확실하게 줄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가이드에 대한 공격성이 아니라 다른 요인으로 추정됩니다.”
“다른 요인?”
“예.”
심 박사의 시선이 윤조를 향했다. 직후 심 박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를 했다.
“어제 19시 20분경. 김윤조 준위가 인큐베이터를 통해 2시간 재생 프로그램을 받던 중,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발작?”
장선욱이 되물었다. 윤조도 할 수 있다면 되묻고 싶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발작이라니.
“네. 김윤조 준위의 발작 정도가 심하여 연구실 메인 시스템이 프로그램 긴급 중단을 선언하고 비상 개폐를 시도하는 중, 강수혁 소령이 먼저 잠금장치를 파손하고 김윤조 준위를 구조했습니다.”
설명을 끝낸 심 박사는 윤조를 응시했다. 덩달아 장선욱과 최정의 시선도 윤조에게 꽂혔다.
처음에 윤조는 심 박사가 자신을 놀리는 줄 알았다. 이거 몰카 아냐? 라는 의심마저 들었다.
사방을 돌아봐도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다. 장선욱 중장과 최정 대령, 심지어 심나연 박사까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윤조를 응시했다.
그래도 믿을 수가 없어 반사적으로 목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진짜요? 뻥 아니고?’라고 물었다. 심 박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정말 세상에 마상에.
미친개가 그 또라이가 한 말이 사실이라고? 그러니까 무지막지한 성능을 자랑하는 트리플 S급 가랑이의 즐거움을 채우려고 재생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위급 상황에서 윤조를 구했다고?
윤조는 그걸 전혀 믿지 않았을뿐더러 사람을 변태 취급하고 집에서 내쫓았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못할망정.
저를 향한 세 쌍의 시선 앞에서 윤조는 말을 더듬었다.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어?”
이쪽을 바라보는 장선욱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예. 재생 중에 잠이 들었습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제 숙소 침실이었고 강수혁 소령이 옆에 있었습니다.”
윤조는 아까 보고했던 내용을 다시 읊었다. 더불어 아까 대거 생략했던 아침의 상황도 소상히 전했다. 강수혁을 오해했고 그로 인해 말다툼이 있었단 설명을 들은 장선욱 중장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강수혁 녀석, 참긴 참았네.”
“그러게 말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뒷산이 아니라 김윤조 준위가 사는 아파트 동 전체가 주저앉았지 말입니다.”
최정 대령이 중장의 말에 동의했다. 혼자 제풀에 성질내는 또라이라고 여겼던 윤조도 그렇게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심 박사가 입을 열었다.
“요즘 강 소령의 태도가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어제 강 소령이 김 준위를 제 연구실까지 직접 이송했습니다. 무슨 예식장에 입장하는 신랑처럼 양팔로 안아서요.”
“뭐라고? 그 망나니가?”
두 중년 남자가 깜짝 놀라 심 박사를 돌아봤다. 윤조는 조용히 눈을 깔았다. 수치심이 솔솔 올라왔다.
“그뿐만 아닙니다. 어제 추가 재생은 심플하고 통상적인 절차이기 때문에 김 준위에게 일임하고 강 소령에게 재생이 끝나면 숙소까지 동행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지킬 거라는 예상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엉덩이에 뿔이 나도 단단히 난 망나니 놈이 얌전히 재생 과정을 참관하고 응급 대응을 한 후에 숙소까지 데려갔다? 직접?”
“네. CCTV를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심 박사의 확인에 장선욱 중장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정은 아예 턱관절이 나간 것 같았다.
“강수혁이가 김 준위한데 정말 홀딱 반하긴 했나 봅니다.”
빠진 턱을 간신히 수습한 최정이 괴상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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