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속으로 중지를 수차례 올려 댄 윤조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으면서 마냥 쉴 수만은 없었다. 특수 위성 점검이 끝나서 재연결 되는 즉시, 뇌파 기록을 정리하고 강수혁의 반응에 대한 분석을 AI와 함께 시행했다. 후에 인큐베이터 안에서 보고서를 작성해 군 상부에 전송했다. 동시에 봉인된 강수혁 파일에 대한 접근을 요청했었다.
“봉인 정보 열람 요청 결과가 나왔습니다.”
먼 산을 보던 강수혁의 시선이 다시 윤조를 향했다.
“열람 불허랍니다.”
“훗.”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강수혁이 코웃음 쳤다.
“솔직히 상부 통보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강수혁에 대한 사감을 제외하더라도, 현재 가이드 김윤조는 에스퍼 강수혁과 한배를 탔다. 한배가 뭔가? 뇌파가 연결된 관계니 따지고 보면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피실험자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다곤 하지만, 애초에 군부가 설계한 프로젝트였고, 실제로 현실화시킨 장본인도 군이었다. 즉, 둘을 불가분의 관계로 붙여 놓은 주체가 바로 군 사령부였다. 그런데도 상대에 관한 자료 열람이 안 된다고?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있나.
“왜 불허입니까?”
“그걸 왜 내게 물어?”
“소령님도 모릅니까?”
윤조는 실망감을 일부러 크게 표출했다.
“소령님은 도대체 아는 게 뭡니까?”
그러자 강수혁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코웃음만 치다가 늙어 죽겠다.
“알든 모르든, 내가 네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나?”
“그야 당연히 저는 소령님의…….”
“가이드라고?”
강수혁이 말을 잘랐다.
“가이드면 뭐? 인간 리모컨 주제에.”
“…….”
“리모컨이면 리모컨답게 신호만 해. 나대지 말고.”
사람을 무슨 기계 취급 아니 기계 중에서도 정말 단순한 버튼 세트에 불과한 리모컨 취급이라니.
아무리 유치한 싸움에는 응대하는 쪽이 지는 거라지만. 그래도 얼굴 마주하면서 대놓고 리모콘이라 운운하는 건 선을 세게 넘었다.
“저는 리모컨이 아닙니다.”
항의하는 윤조의 음성은 의도하던 것보다 더 딱딱하고 낮았다. 말을 꺼내고 나니 더 화가 났다. 여태껏 당한 무시와 조롱에 대한 울분이 울컥 치솟았다.
“제가 리모컨이면 소령님은 뭡니까? 고장 난 TV요?”
“TV가 아니라 미사일이겠지. 핵쯤 되는 거.”
밑도 끝도 없는 응수에 윤조는 할 말을 잊었다.
또 따지고 보니 TV보다는 핵미사일 쪽이 더 타당하긴 했다. 에스퍼 연구진들의 결론에 따르면 강수혁의 최대 출력이 소형 전술핵 정도 된다고 했으니. 물론 최대 출력은 내 본 일이 없어서 어디까지나 추정치였다.
“그, 그럼 저는 전술핵 컨트롤 패널입니다. 고도로 발달한 슈퍼컴이란 말입니다. 위성 궤도에 제 보조 AI도 있어요.”
“얼마나 복잡한지 따위는 알 거 없고. 신호를 딱딱 발신하면서 온갖 귀찮은 일을 다 시키는 기계, 인류는 그걸 리모컨이라고 불러요.”
존대어 섞은 조롱까지 날아왔다.
기분이 엿 같은데 딱히 뭐라고 따지고 들 틈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기계도 맞고 신호를 딱딱 보내서 일을 시키기도 한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광대가 씰룩거렸다. 입술이 살짝 벌어지면서 날숨이 씩씩 샜다.
“씨이? 지금 씨라고 했어?”
“그냥 숨 쉬었습니다.”
“지금 욕했잖아.”
“아닌데요? 잘못 들으셨는데요? 이제는 숨도 편하게 못 쉽니까?”
미친 개자식은 역시나 분을 참지 못했다. 윤조의 멱살이 단숨에 틀어 잡혔다. 힘을 준 손아귀가 위로 들리는 바람에 윤조는 까치발로 섰다.
“소령님 키 큰 거, 잘 알겠으니까 좀 놓아주시죠?”
“입이 뚫려 있다고 함부로 말하지? 두부 새끼.”
싸늘한 음성이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윤조의 안색도 굳을 만큼 굳었다.
“김윤조, 고작 준위 주제에 일급 군사 기밀을 알려고 드는 심보가 주제넘지 않나? 가이드가 되었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그래 봤자 너는 내 부속품에 불과해.”
윤조의 멱살을 쥔 강수혁은 사소한 조롱은 무시하고 핵심을 거론했다. 화내는 겉모습과 달리 그는 이성적이었고 윤조가 도발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제가 바로 그 군사 기밀입니다. 제가 소령님의 부속품이라 칩시다. 소령님에 관련한 정보는 곧 저와 직결되기 때문에 오히려 공유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제넘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윤조가 대답했다.
“내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그 태도가 주제넘는다고, 김윤조.”
험악한 얼굴이 윤조의 눈 바로 앞까지 내려왔다.
“생각이란 걸 좀 해, 멍청아. 네가 알 필요가 있으면 벌써 사령부에서 네 대가리 속에 관련 정보를 입력했겠지? 거기에 없는 건 네 소관이 아니란 얘기야.”
“그…… 그럴 수가 있습니까?”
“있으니까 있겠지?”
비웃음과 함께 강수혁은 윤조의 멱살을 거칠게 놓았다.
“그러니까 나대지 말라고. 특히 내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거 적당히 해. 징그러우니까.”
징그럽다는 말을 되새기는 순간, 갑자기 윤조의 심장께 언저리에 알 수 없는 자극이 발생했다. 보이지 않는 말뚝에 쿡 찍히는 것 같은 통증이 뒤이었다.
‘명치가…… 아픈데.’
손이 저절로 가슴골 사이에 닿았다.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재생 직후다. 뭔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가서 이상 부위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침 심 박사가 이용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눈앞에 있기도 하고. 정말로 말을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심 박사의 연구실로 연락 정도는 해 줄 것 같아서 그를 불렀다.
“소령님. 죄송하지만 저…….”
“뭐?”
강수혁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윤조를 훑었다. 그때였다.
-뇌파 동조 이상 발생. 뇌파 동조율 안정권 이하.
AI가 전혀 들어 본 일이 없는 경고를 날렸다.
‘동조율이 떨어진다고?’
현재 강수혁과 과도한 물리적 접촉은 없었다. 멱살을 잡히긴 했지만 그건 뭐 귀여운 정도고. 그 외엔 평소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나눴다.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 없다.
신체 이상보다 뇌파 동조 이상이 훨씬 시급한 사안이었다. 정신을 차린 윤조는 가슴 통증을 무시하고 AI에게 즉시 재진단할 것을 요구했다.
-뇌파 동조 정상. 동조율 안정권 이상.
‘일시적인 오류인가?’
AI의 경고 때문에 명치의 통증은 뒷전으로 밀렸다. 일시적인 오류가 일시 오류로 끝나면 좋겠지만, 큰 결함의 작은 조짐일 수도 있다.
“야, 김윤조. 뭐 해?”
강수혁이 말을 걸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윤조는 즉각 약식 점검 프로그램을 돌렸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윤조는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허공을 응시했다. 커다란 손바닥이 눈앞을 휙휙 지나다녔다.
“이거 또 혼자서 대가리 굴리고 있네.”
윤조가 자가 점검에 들어가자 강수혁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사람을 불러 놓고 말이야. 재수 없는 인형 새끼.”
욕설을 하면서도 강수혁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신에 못마땅한 듯이 팔짱을 끼고 사방을 경계했다. 자가 점검 프로그램이 시행되는 동안 윤조가 무방비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구 연병장 내에서 윤조를 건드릴 사람은 없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 심 박사도 걱정한 부분이기도 하고. 그걸 강수혁도 우려한 모양이었다.
“말도 없이 까마득한 상관을 경호원으로 막 써도 되는 거야? 썩은 동태 눈깔 보기 싫으니까 감아. 징그럽게.”
강수혁은 손가락으로 윤조의 눈꺼풀을 꾹 눌렀다. 강제로 시선이 차단되는 순간, 명치 통증이 다시 한번 커졌다.
‘어? 왜 이러지?’
이번에도 별다른 징후를 찾을 수 없었다. 신체는 완벽한 정상이었다. 호르몬 수치도 정상, 뇌파도 정상이다. 그런데 왜 가슴 통증이 이는 걸까? 정밀 검사를 해 봐야 하나? 또 인큐베이터 신세인가. 늘 지랄 맞은 강수혁보다는 이쪽이 더 짜증 났다.
‘시발. 가지가지 하네.’
윤조는 동시다발적인 이상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몰두했다.
AI가 프로그램 진행 상황을 알렸다.
-64, 68, 72.
점검이 완료되자 곧바로 보고가 이어졌다.
-발견한 이상이 0개입니다.
‘이상이 없다고? 그게 더 이상한데?’
-정밀 점검을 하시겠습니까?
‘아니.’
AI의 물음에 윤조는 일단 대답을 보류했다.
명치에 둔통을 두 번 느꼈다. 신체 이상과 뇌파 동조 이상이 연관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자체 검사를 할 게 아니라 연구실로 돌아가 심 박사와 의논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경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부 새끼 자빠져서 무릎이라도 깨면 나만 귀찮아지니까.”
“그렇게 제 걱정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역시 파트너입니다.”
윤조는 방긋 웃으면서 얄미운 톤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수혁의 얼굴이 와장창 일그러졌다.
“너 같은 걸 상대한 내가 잘못이지.”
내내 마음에 안 드는 티를 팍팍 내던 강수혁은 뒤늦게 거칠게 돌아섰다.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도 확 사라지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짜증 생성 능력치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누가 할 소릴. 개새끼.’
윤조는 뚜벅뚜벅 걸어가는 강수혁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상당히 멀어졌을 때 윤조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뱉었다.
“지는 그 리모컨에게 좆질 하는 변태 새끼 주제에.”
그때였다. 갑자기 강수혁이 뚝 멈추더니 뒤를 휙 돌아보았다.
“야, 방금 뭐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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