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철퍽. 철퍽.
상체가 무너지자 슬라임의 잘린 절단면에서부터 형광색 체액이 솟구쳤다. 핵이 파괴당한 머드형의 끈적한 신체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독소 가득한 체액이 아스팔트를 태웠다. 짙은 녹회색 가스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강수혁은 전혀 움직인 적이 없었다. 그건 그냥 저절로 일어난 일처럼 보였다.
“제발 능력 발휘 전에 경고를 해 주십시오. 까딱하다간 체액에 닿았을 겁니다.”
“잘난 페어링으로 내 뇌를 다 들여다보는 거 아니었나?”
간발의 차로 체액을 피한 윤조와 달리 강수혁의 훤칠한 이마와 솟은 광대에 형광색 체액이 흥건했다. 콧등에도 끈끈한 체액이 주르륵 흘렀다. 드러낸 팔과 티셔츠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독성 물질에 흠뻑 젖었음에도 강수혁은 멀쩡했다. 애석하게도 매캐한 연기를 뿜으면서 삭는 건 그가 걸친 티셔츠뿐이었다.
“더럽게.”
얼굴을 찡그린 강수혁은 반쯤 녹은 티셔츠를 찢듯이 벗었다.
덜 녹은 멀쩡한 쪽 천으로 얼굴과 팔을 닦았다. 끈끈이 덩어리가 된 티셔츠를 가차 없이 바닥에 버린 강수혁은 손에 남은 검은색 끈끈이를 장갑으로 닦았다. 장갑도 곧 티셔츠와 같은 오물 신세가 되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에스퍼 중 화력으로는 단연 첫 손에 꼽히는 남자의 상체가 드러났다. 밝은 곳에서 강수혁의 맨피부를 보는 일은 드물었다.
강수혁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만큼, 나신도 별로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다. 훈련할 때도 티셔츠는 꼭꼭 챙겨 입었다. 군인이면서 샤워도 꼭 따로 했다.
너무 잘나신 분이라 비천한 일반인과 하찮은 하급 에스퍼와 한 공간에서 어울리기 싫어서 그런 것으로 소문났다. 강수혁이 딱히 반박도 정정도 하지 않아 정설로 굳어졌다.
윤조는 그의 맨살을 보고 만질 기회가 종종 있긴 했다. 하지만 제한된 부위만 가능했다. 오늘처럼 상체 전반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이번에도 슬라임의 체액만 아니었다면 맨몸을 보는 일은 없었을 거다. 매우 드문 기회기에 윤조는 그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흉터?’
강수혁의 등엔 특이한 흉터가 있었다.
두꺼운 흉터는 뒷머리에서부터 목을 타고 내려와 세로로 이어졌다. 꼭 살찐 뱀처럼 보였다. 그것도 붉은 뱀. 끝은 바지 허리 아래로 사라졌기에 확인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엉치뼈까지 연결되지 않았을까 추정했다. 딱 척추 길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막강한 재생력을 보유한 강수혁에게 영구적 손상을 입힐 수단은 극히 드물었다. 물리적 타격으로 뼈가 부서지고 피부를 잡아 뜯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말끔하게 복원된다. 그건 재생력을 가진 다른 에스퍼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재생이 완료되지 않은, 그러니까 재생 도중이라면 저런 흉터가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척추를 뽑았다가 다시 끼워 넣은 것 같은 흉터가 남을 만한 극심한 부상을 입었다면 윤조가 모를 수가 없다. 부상이 아니면 자해인가?
‘뭐지?’
저 또라이가 본인 척추에 무슨 짓을 했기에 저런 흉터가 남았을까.
“이거 왜 이럽니까?”
“뭐, 등? 알 것 없어.”
언제나 그렇듯이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강수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윤조의 임무 대상인 에스퍼의 상태 변화를 감지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건 자연스러운, 마땅히 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언제 생겼습니까?”
“알 것 없다고 했잖아.”
이번엔 험악한 시선도 함께였다.
그러든가 말든가 윤조는 뒤로 돌아가 흉터를 자세히 살폈다. 아직 붉은 기가 선명한 흉터에 손을 대려는 때, 강수혁이 몸을 홱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윤조의 손을 움켜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관절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누가 내 몸에 함부로 손대라고 했어?”
아니 손대는 게 싫다는 사람이 남의 손은 왜 잡는지. 어차피 손대는 건 똑같은데.
강수혁이 모순적인 주장을 하거나 말거나 윤조는 무시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특수 위성을 통해 전군 통합 메인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했다.
윤조는 봉인된 과거 작전 기록을 제외하곤 최근 3년 내 강수혁의 모든 기록에 접근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척추 부상이나 관련이 있을 만한 내역은 찾지 못했다.
“방금 소령님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적어도 3년 내에 생긴 자국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완벽하게 재생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기분 나쁜 스토커 짓, 그만하라고 전에 말했을 텐데.”
굵은 흉통에 붙은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강수혁의 뇌파가 불쾌감을 강하게 발산했다.
늘 나쁜 상대의 기분 따윈 당장 중요치 않다. 대신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몸에 남은 상처 쪽이 훨씬 신경 쓰였다. 윤조는 물러서지 않았다. 눈에 힘을 주었다.
“설명하지 않으시니, 상부에 봉인 자료 열람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러든가.”
코웃음과 함께 강수혁은 잡았던 윤조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윤조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발산되는 짜증 정도로 보아 아마도 윤조를 여기에 두고 혼자 귀환할 셈 같았다.
평소라면 그래도 상관없다. 이대로 곱게 사라져 주면 고마울 거다. 그러니까 평소라면 말이었다.
삐이이이-
고장 난 전투복이 비명을 질렀다.
강수혁이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윤조는 손목 컨트롤 패널을 조작하면서 아까 하려고 했던 얘기를 꺼냈다.
“제 산소 발생기와 제염 장치가 고장 났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숨 막혀 죽든가, 약한 방사능에 오랫동안 지져져서 죽을 것 같습니다. 장치 고장 정도로 보아 아무래도 전자 쪽 확률이 높습니다. 빌빌거리던 산소 발생기가 방금 완전히 꺼졌거든요.”
간단한 보고를 끝낸 윤조는 시선을 들어 강수혁을 봤다.
에스퍼의 안구가 오팔색을 발했다. 창백한 진주 가루가 섞인 눈빛이 너무 섬뜩했다. 눈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심장이 다 덜컹거렸다.
‘어, 강 소령에게 냉매 생성 능력도 있었나?’
재생, 염력 외에 온도 제어 속성도 있는지 확인해 볼 가치가 있었다. 그만큼 눈빛이 냉랭했다.
“그걸 왜 이제 말하지?”
“닥치라고 하셨잖습니까.”
할 말이 많은 듯 강수혁의 뇌파가 요동쳤다. 분노와 짜증, 그리고 폭력 성향이 일상 정도를 넘어섰다. 좋지 않은 징조다. 매우 좋지 않은 징조.
“얼마나 남았어?”
목적어가 없어도 산소 잔존량에 관한 의문임을 알아들은 윤조는 손목 패드를 들어 보였다. 크게 뜬 숫자가 시시각각 줄어들었다.
“47초 정도? 46, 45, 44…….”
“시발.”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윤조의 허리에 길고 굵은 팔이 감겼다. 직후 다리가 둥실 뜨는가 싶더니 갑자기 전신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억!”
놀란 윤조는 두 팔로 강수혁의 어깨를 감쌌다. 예고 없는 남자는 지독한 속도로 비행을 시작했다.
“어으으윽.”
중력 가속도에 윤조의 고개가 절로 꺾었다. 둥근 헬멧이 강수혁의 턱에 닿았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벌써 기절했을 속도를, 윤조는 고장 난 전투복에 허리에 감긴 팔 하나에 의지해 버텨야 했다.
“속도를! 늦추십시오!”
“시끄러워.”
쐐애애액.
초음속 비행기와 맞먹는 무지막지한 속도였다. 공기가 윤조의 전신을 두드렸다.
압력으로 인해 뇌가 터지려고 했다. 속이 뒤집히면서 구토감이 일었다. 태풍 같은 바람 속에서 속을 게우면 토사물이 강수혁의 얼굴을 직방으로 때릴 거다. 그랬다간 윤조는 당장 먼지로 사라질 공산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창조주와 제2의 창조주가 제게 부여한 모든 힘을 다해 구토를 참았다.
다행히 구토하기 전 비행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벌써?’
방금 두 사람이 있던 구(舊) 강진시에서 특작부 본거지까지 거리는 50km가 넘는다.
뇌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윤조 대신에 특수 위성이 있던 자리에서 13km 정도 지점임을 밝혔다. 행정 구역상 여전히 강진시 안이었다.
속도가 줄어들면서 윤조는 역방향으로 강한 힘을 받았다. 일반인보다 3배쯤 강한 척추가 반대로 아주 꺾일 뻔했다.
“윽.”
윤조는 이를 깨물며 두 팔을 강수혁의 목에 둘렀다. 안 그러면 하반신 마비다. 재생 가능하다고 해도 재생 인큐베이터 신세를 오래 지는 것도 별로다.
쿵.
큰 충격과 함께 강수혁의 두 발이 지면에 착지했다. 착지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이 진흙처럼 푹 파였다. 보기만 해도 정강이뼈가 바스러질 것 같은 거친 착지에도 강수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부드럽게 몸을 세웠다.
강수혁이 윤조를 지면에 내려놨다.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내려놓은 게 아니라 택배 상자처럼 무심하게 툭 던졌다. 대놓고 팽개치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큭.”
땅을 디디는 순간 윤조는 아찔한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거친 비행을 하는 동안 완전히 풀린 관절에 갑자기 체중이 실린 탓이었다. 이를 꽉 깨물고 내적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느릿느릿 모았다.
“가지가지 하는군, 두부 새끼.”
강수혁이 싸늘한 음조로 냉소했다.
사실 끙끙 앓느라 윤조는 상대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말투가 이미 비비 꼬여 있어서 모를 수가 없었다. 그때 평소와 다른 독특한 뇌파가 감지되었다.
‘새로운 패턴. 비웃음_021로 저장.’
머리를 숙인 채로 다리를 모으면서도 윤조는 머릿속으로 새로운 샘플을 빠르게 정리했다. 전두엽에 심은 가이드 프로세서가 샘플 파일을 인공위성에 신호를 쏘아 올렸다. 여기까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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